소설리스트

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402화 (403/763)

〈 402화 〉 참회(1)

* * *

케이트가 나를 찾아온 건 내가 아리엘을 돌보고 있을 때였다. 아리엘은 광합성으로도 에너지를 채울 수 있어서 식사를 안 해도 상관없다.

그런데도 내가 그녀의 곁을 지키고 있는 이유는 단순하다. 자는 모습이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웠으니까.

아이 특유의 오동통한 젖살부터 시작해서 머리 위의 새싹과 천사의 날개까지. 귀여움이란 귀여움은 전부 쏟아부은 것 같은 외모다.

그렇게 깨울 생각도 미처 하지 못하고 가만히 쳐다보고 있을 때 케이트가 내 방으로 들어온 것이다.

"······죄송합니다."

"예?"

그리고 아무런 이유 없이 사과의 말을 건넸다. 살짝 당황스러워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니 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당장이라도 울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두 손으로는 치맛자락을 꽉 붙잡고 있었으니까.

아리엘의 낮잠을 위해 불은 꺼놓은 상황이다. 때문에 침대 옆의 등불만이 그녀를 미미하게 비추고 있다.

푸른색으로 빛나는 눈동자가 촉촉하게 젖은 걸 보아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이다.

"······무슨 일 있었어요?"

나는 일단 무슨 일인지부터 파악하기로 정했다. 다짜고짜 사과부터 한 지라 무슨 사정이 있는 건지 도통 알 수 없다.

내가 약간 가라앉은 목소리로 묻자 케이트는 몸을 흠칫 떨더니 고개를 서서히 들었다.

이윽고 나와 눈이 마주쳤지만 그것도 잠시, 곧바로 홱­ 소리가 나도록 내렸다.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죄를 지은 사람 같다. 나는 점점 더 의아해지는 기분을 느끼다가 아리엘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코오······"

아리엘은 세상 물정 모르고 자고 있다. 하지만 이대로 대화하다가 도중에 깨기라도 한다면 끊길 수 있다.

기숙사 내에 아직 쓰지 않는 방이 있으니 그쪽으로 가서 얘기하면 되겠지.

"일단 따라오세요. 여기서 얘기하기는 좀 그러니까."

"네······"

진짜로 죄인처럼 고개를 푹 숙인 채 졸졸 따라오는 케이트다. 나는 아리엘이 깨지 않도록 조심조심 움직이며 거실로 나왔다.

거실로 나오니 아델리아와 마리가 서로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델리아는 성격상 마리의 대화를 전부 들어주는 편이고, 마리가 대부분의 이야기를 주도하고 있다.

"응? 둘이서 어디 가는 거야?"

타이밍 좋게 마리가 우리를 발견했는지 미소 지은 얼굴로 질문했다. 그 질문에 아델리아도 따라 우리를 쳐다봤다.

이에 나는 머쓱함에 머리를 긁적거렸다가 케이트를 바라봤다. 그녀는 여전히 고개도 들지 못한 채 음울한 표정이다.

아무래도 꽤 이야기가 될 것 같다.

"케이트 씨랑 잠깐 할 얘기가 있어서. 식사 준비는 언제쯤 끝나?"

"글쎄. 아델 언니?"

"늦어도 20분 안에는 끝날 겁니다."

"넉넉잡아서 30분 안에는 돌아올게. 괜찮지?"

"괜찮긴 한데······"

마리는 말을 흐리더니 오묘한 표정으로 나와 케이트를 번갈아봤다.

그 시선에 약간 불안해졌을 때쯤, 그녀가 입을 열었다.

"설마······ 아, 아니지. 30분은 턱없이 부족하겠구나."

"그런 거 아니야."

대충 무슨 생각을 한 건지 알 것 같다. 그녀가 나에 대해서 아는만큼 나 또한 그녀의 생각을 어느 정도 읽을 수 있으니.

마리는 내가 힘 빠진 목소리로 답하자 장난꾸러기처럼 키득거렸다. 예쁘니까 봐준다.

"알았어. 그럼 우린 천천히 준비하고 있을 테니까 얘기하고 와. 아리엘도 걱정하지 말고."

"고마워. 케이트 씨?"

"네······"

이리하여 나와 케이트는 비어있는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카데미측에서 제공하는 최상급 기숙사인만큼 비어있는 방은 많다.

원래라면 하녀 혹은 하인, 그리고 그들을 관리하는 고용인이 지내는 곳이다.

허나 아델리아는 특유의 고지식한 면모 때문에 사용하지 않는 방도 꼼꼼히 청소하고 있다.

드르륵­

나는 케이트를 푹신한 침대에 앉힌 후, 의자를 끌고 와 맞은편에 배치했다.

케이트는 침대에 앉는 순간까지도 고개를 들 생각이 없었는지 여전히 눈을 내리깔고 있다.

뒤이어 의자에 앉은 후, 나는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평소와 달라도 너무 다른 모습이다.

신을 향한 광적인 믿음으로 항상 반짝거리는 미소를 짓는 그녀인데, 오늘은 왜인지 몰라도 우울하다.

'보아하니 할아버지랑 마찰이 있던 것 같은데······'

지금으로서 할 수 있는 가정이 이것밖에 없다. 클라크는 겉보기에는 사특한 주술로 부활한 스켈레톤이었으니.

광신도인 케이트에게는 당연히 척살해야 될 대상이자 신이 정한 순리를 거부한 망자다.

다짜고짜 씨앗을 달라고 했던 때보다 성장한 그녀지만, 광신은 여전하다. 오히려 그때보다 심해졌다고 봐야겠지.

"케이트 씨."

"······네."

"저에게 사과를 한 이유를 알려줄 수 있나요?"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어디까지나 추측에 불과하다. 제대로 확인하기 위해서는 그녀의 말을 들어야 된다.

케이트는 내 물음에 또다시 몸을 흠칫 떨더니 무릎 위에 올린 주먹을 꽉 말아쥐었다.

여러 복잡한 감정이 담겨있는 반응에 나는 좀 더 마음을 진지하게 먹기로 정했다.

"······아이작 님."

"네. 말씀하세요."

"저는······ 죄를 지었습니다."

케이트가 본인의 죄를 고백했다. 흡사 신 앞에서 죄를 고백하는, 고해성사와 비슷하다.

그렇다면 그녀가 저지른 죄는 무엇일까. 나는 좀 더 경청하는 자세로 얼굴을 가까이 대었다.

그러자 그녀는 여전히 고개를 떨군 채로 하나 하나 죄를 밝히기 시작했다.

울먹거리는 목소리였지만, 어떻게든 말을 이으려고 노력하는 게 안쓰러웠다.

"신의 말씀대로 세상에서 가장 추악한 곳 즉, 클라크 님이 계시던 곳으로 향했습니다. 신탁대로 귀빈을 모셔오기 위해서였죠."

"··· ···"

"그러나 저는 클라크 님과 만나게 되었고, 그가 사악한 존재가 아니라는 정황이 있었는데 저는 제 멋대로 그에게 공격을 가했습니다."

역시 예상대로다. 케이트 성격상 싸우지 않는다는 게 더 이상한 거겠지.

동시에 하나 의문이 들었다. 어째서 루미너스는 케이트에게 저런 애매한 신탁을 내린 걸까.

원래 신탁이라는 게 애매모호한 것이나 사람에 따라 다르다. 나는 아예 미래를 점지해주지 않는가.

이건 케이트도 마찬가지. 타락한 추기경에게 천벌을 내리고나서 그녀도 나처럼 루미너스와 직접적인 대화를 할 수 있다.

헌데 저런 신탁을 내린 걸 보면 분명 루미너스에게도 의도가 있을 것이다.

"저는 평소에 믿었던대로 순리를 거스른 자라며, 뜻을 굽히지 않고 클라크 님에게 해를 끼쳤습니다. 만약 제가 조금만 더 생각을 깊이 했다면, 주변의 말을 들었다면, 하다못해 독선적으로 나서지 않았다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겁니다."

"······후회하는 건가요?"

"네. 그것보다 스스로가 혐오스러워진 건······"

케이트는 말을 하다말고 이를 악 깨물었다. 앙 다문 입술은 부들거리고, 무릎 위의 주먹 또한 떨리고 있다.

주륵­

결국 속에서 우러러 나오는 죄책감을 이겨내지 못했는지, 한 줄기의 눈물이 새하얀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나는 그걸 보며 깜짝 놀란 것도 잠시, 닦아주지 않고 잠자코 지켜봤다. 지금은 참회의 시간이었으니.

물론 내가 진짜 신부도 아니고 고해성사를 받아줄 위인은 되지 못하나 상담으로 생각하면 될 것이다.

"그런 신탁을 내려준 루미너스 님을······ 잠깐이나마 원망했다는 겁니다."

"··· ···"

"제가 잘못한 건데······ 제가 잘못 해석하고 마음대로 행동한 건데······ 그분에게 책임을 전가하려 했다는 것이······ 너무나도 혐오스럽습니다."

사람은 참 간사하다. 자신의 잘못을 어떻게든 다른 곳으로 넘기려고 하며 책임지는 걸 싫어한다.

지금 케이트도 그 상황을 겪고 있는 거지만 알다시피 그녀의 머릿속은 광신으로 가득 채워진 상황.

목숨마저 버릴 수 있는 신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건 광신도로서 결코 용납받지 못할 일이다.

그렇다 해서 본인이 잘못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잘못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에게 져도 문제고, 신에게 떠넘겨도 문제다.

이 모든 일이 케이트의 '광신' 때문에 발생한 일이다. 평범한 사고방식을 지닌 사람이었다면 사과하고 끝냈겠지.

'이것 때문에 신탁을 애매하게 내린 거구나.'

루미너스도 이 점을 노린 모양이다. 사람 냄새를 물씬 풍기긴 해도 역시 신답게 통찰력이 대단하다.

그렇다면 내가 할 일은 단 한 가지. 혼란스러워하는 케이트로부터 광신을 천천히 벗겨주는 것.

나는 이제 거의 흐느껴 울고 있는 그녀를 바라보다가 빙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렇군요. 혹시 클라크 할아버지께서 하신 말씀이 있으신가요?"

"흐극. 네, 네. 눈과 귀로 보고 들은 걸로 모든 것을 판별하고, 판별한 걸 신의 의지라며 떠넘기는 것만큼 무책임한 것도 없다고······ 그거야 말로 제가 싫어하는 이단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때가 첫 만남이었죠?"

"네에······"

역시 짬, 아니 경험에서 우러러 나오는 관록은 무시하지 못한다. 첫 만남인데도 케이트의 본질과 모순을 정확히 꿰뚫어보셨다.

나는 눈물도 닦지 않고 흐느끼는 케이트에게 손을 천천히 뻗었다. 뒤이어 한 쪽 손으로 뺨을 살포시 잡아줬다.

내가 뺨에 손을 갖다 대자 그녀가 몸을 크게 움찔거리더니 고개를 서서히 들었다.

꼴사납게 엉엉 울고 있는 게 아니라 한 폭의 그림 같은 미모가 시야에 잡혔다. 우는 모습도 어쩜 이리 예쁜 건지.

"케이트 씨."

"네······"

"그 과정 속에서 무언가 잘못됐다는 점은 못 느꼈나요?"

내 질문에 케이트가 눈을 느리게 깜빡였다. 아직까지 근본적인 원인을 찾지 못한 것 같다.

이럴 때는 아주 적절한 예시를 제시하는 게 편하고 빠르다. 나는 그녀의 눈물을 조심스레 닦아주며 말하기 시작했다.

"제가 하나 예를 들어줄게요. 어느 날 병에 걸린 아내를 치료하기 위해 남편이 약을 도둑질했어요. 그 약이 너무 비싸기도 했고, 집이 너무 가난해서 약을 살 돈도 없었죠."

"··· ···"

"그리고 도둑질은 인간이 아니라 신이 정해놓은 죄악 중 하나죠. 이런 상황에서도 케이트 씨는 죄를 저질렀다면 그 남편에게 천벌을 내릴 건가요?"

여러모로 많은 생각이 들게 만드는 난제라고 볼 수 있다. 남편은 분명 죄를 저질렀으나, 그 이유가 병에 걸린 아내를 치료해주기 위해서다.

상황도 여의치 않아서 남편이 '어쩔 수 없이' 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방치하자니 아내가 위험하다.

안타깝지만 죄는 죄라며 벌을 내리는 사람이 있을 테고, 한 번만 봐주자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케이트는 어떤 판결을 내릴까. 나는 가만히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다.

"저는······"

비슷한 상황을 겪고 와서 그런지 케이트는 쉬이 대답을 내리지 못했다. 아마 꽤 혼란스러울 것이다.

신이 정해놓은 죄를 저질렀으니 벌을 내려야겠지만, 사정을 알고나니 딱한 마음이 들 수밖에 없다.

만일 이전의 케이트였다면 다 무시하고 벌을 내렸겠지. 광신도라면 말이다.

"······모르겠습니다."

"모르겠다고요?"

"네. 전이었다면 감옥에 넣었겠지만······ 지금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전혀 다른 대답을 내놓았다. 단호하게 벌을 내리는 게 아니라, 어떻게 판결을 해야 될지 갈팡질팡하고 있다.

여지껏 믿고 있던 믿음이 흔들릴 때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다. 단호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왔다 갔다 하는 모습.

여기서 말을 잘 해야 된다. 잘못하면 전혀 다른 방향으로 길을 인도할 수 있으니 제일 위험한 순간이라 말할 수 있다.

이에 나는 빙긋 웃으며 그녀의 뺨을 살살 쓰다듬어줬다. 마치 아이를 타이르는 부모처럼, 도덕심을 가르쳐주는 선생처럼 조용히 말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케이트 씨에게는 좋은 방법이 있어요. 케이트 씨도 그 가정이 안타깝죠?"

"네. 하지만 죄는 저질렀는데······"

"그럼 케이트 씨가 아내를 치료하거나 약값을 대신 지불하고, 남편은 선처를 하는 게 어떨까요? 이건 루미너스 님이 정해놓은 게 아니라 케이트 씨가 직접 판단한 거죠. 그리고 케이트 씨는 그럴만한 능력이 있고요."

"··· ···"

내 말에 케이트가 눈을 깜빡이더니 이내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봤다. 푸른색으로 빛나는 두 눈이 크게 떠지며 놀람을 나타내고 있다.

이건 케이트만 할 수 있는 일이다. 케이트의 신성력과 지위라면 그 가정을 충분히 구원할 수 있을 것이리라.

신의 뜻을 따르는 게 아닌, 본인이 직접 생각하면서 행하는 일이다. 광신과 전혀 동떨어져 있는 사고방식.

나는 무언가 깨달아가는 케이트를 바라보다가 뺨에서 손을 떼었다. 이어서 두 손을 살포시 붙잡아주며 나긋나긋하게 말했다.

"무작정 신의 뜻에 따르는 게 아니라 스스로 행동하는 것.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해주고, 자신이 틀렸다면 바꿔야 된다는 생각을 가지는 것."

"··· ···"

"신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게 아닌, 자신이 책임을 지는 것. 신은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지만 우리가 저지른 죄는 덮어주지 않아요. 단지 그림자로 눈을 가려줄 뿐이죠."

"가려줄 뿐······"

책임은 말은 쉽지만 정말 무거운 것이다. 가끔 몇몇 사람들이 내가 책임지겠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하는 이유도 그 책임의 무게가 너무나도 무겁기 때문이다.

만약 그 무거운 책임을 확실하게 질 의지가 있다면, 그 사람은 실패할지언정 한층 성장하게 될 것이다.

케이트의 광신을 완전히 벗겨내기 위해서는, 가정 먼저 책임의 중요성부터 깨닫는 게 좋다.

"저는 케이트 씨가 이번 일을 계기로 자기자신을 성찰했으면 좋겠어요. 물론 케이트 씨에게 있어서 루미너스 님은 부모이자 삶 전체이니 힘들 수도 있죠."

"··· ···"

"하지만 케이트 씨. 새는 새장 안에서 가장 안전하지만, 새장 안에서 죽기 위해 태어난 게 아니에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가 스스로 독립하는 것처럼, 케이트 씨도 언젠가 루미너스 님이 제시한 길이 아니라 스스로의 길을 걸어야 할 거예요. 그게 바로 진정한 성장이죠."

케이트는 내 말을 듣는 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나를 멍하니 쳐다봤다. 처음 보는 모습이라 생소했으나 아름다운 외모는 여전하다.

나는 그녀가 생각하는 시간을 만들어주기 위해 붙잡았던 손을 서서히 떼어냈다.

"뭐······ 제가 할 말은 여기까지에요. 혹시 묻고 싶은 거라도 있나요?"

"······부탁하고 싶은 건 있어요."

"그게 뭐죠?"

"한 번만······"

그녀는 약간 우물쭈물거리더니 어딘가 부끄러워하는 기색으로 말을 마저 이었다.

"한 번만······ 안아줄 수 있나요?"

"안아달라고요?"

"네에······"

살짝 뜬금없다고 느껴지는 부탁. 나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으나 그녀가 원하는대로 들어줬다.

이윽고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두 팔을 서서히 벌렸다. 케이트도 두 팔을 벌리며 내가 안아주기까지 가만히 기다렸다.

"하아······"

"크흠."

마침내 서로 포옹을 하자 케이트가 달뜬 숨소리를 내뱉었다. 나 또한 수녀복 아래로 느껴지는 푹신한 감각에 멋쩍게 기침했다.

케이트가 침대에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아 엉거주춤한 자세였지만, 우리 둘은 한동안 그 상태를 유지했다.

그사이 그녀는 내 목에 얼굴을 비비거나 몸을 꼼지락거리는 등. 뭔가 참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아이작 님."

"말하세요."

"그동안 죄송했습니다. 되돌아보니 제가 멋대로 군 게 많아서······"

드디어 깨달았구나! 나는 그녀의 사과에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드디어 그 지독하던 광신에서 벗어난 모양이다.

이에 나는 대견하다는 듯이 더 강하게 안아줬다.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건 덤이다.

"이제라도 알았으니 괜찮아요. 앞으로 그렇게 하시면 될 거예요. 단, 잘못에 대한 책임은 반드시 져야 해요. 알겠죠?"

"······네."

"좋아요. 그러면······"

나는 포옹을 느리게 풀고는 케이트와 마주했다. 포옹을 한 게 창피했는지 붉어질대로 붉어진 그녀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순수한 시골 처녀가 처음으로 이성과 신체 접촉을 한 것과 같은 반응. 왠지 몰라도 전보다 더 순수해진 기분이다.

"식사하러 갈까요?"

"네, 네!"

케이트는 내 말에 벌떡 일어나며 곧바로 거실로 향했다. 일어날 때 뭔가 자세가 영 이상했으나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이윽고 나도 바깥으로 나가려던 찰나, 그녀가 앉았던 자리에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그 짧은 사이에 무슨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라도, 케이트가 앉은 자리가 축축해져 있는 게 아닌가. 새하얀 이불이라 더 눈에 띈다.

"······아니겠지."

땀일 거야. 암. 땀이고 말고.

나는 그리 중얼거리며 거실로 향했다. 그리고······

"어? 케이트 씨는?"

"잠깐 자기 기숙사로 돌아갔는데?"

"왜?"

"몰라.배가 아프다던데? 나갈 때도 뭔가 이상했어."

"··· ···"

광신은 풀려도, 욕망은 그대로라는 걸 깨달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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