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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118화 (119/763)

< 118화 >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힘없이 말하는 아르웬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지난 번처럼 로브를 입고 있었으나 후드를 완전히 벗어 그녀의 외모가 완전히 드러난 상태다.

은하수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은회색 머리카락과 눈동자. 그리고 다소 어려보이는 외관까지. 분명 내가 알고 있는 아르웬이 확실하다.

그렇다면 어째서 아르웬이 이곳에 있는 것일까. 내 머릿속에 그런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으며 곧바로 그녀의 옆을 바라봤다.

'이 사람들이...'

새하얀 피부의 아르웬과 달리 구릿빛 피부가 유독 눈에 띄는 두 여자가 곁에 서 있었다. 중앙에는 붉은기가 약간 도는 밀색 머리카락에 푸른 눈의 소녀가, 그 옆에는 흰색 머리카락과 황금색 눈동자를 지닌 여인이었다.

두 여자 모두 복면을 쓰고 있었으나 그럼에도 화려한 미모는 숨길 수 없었으며 아르웬과 달리 귀의 길이가 상당히 짧았다. 자연적으로 짧은 건 절대 아니고 인위적으로 자른 게 확실하다.

특히 이중에서도 성숙한 매력을 뿜내는 여인에게 눈길이 간다. 아르웬과 소녀 모두 로브를 쓰고 있었지만 여인 혼자만 방어력이 절륜할 것 같은 방어구를 착용 중이다.

탄탄할 것 같은 허벅지는 물론이고, 앙증맞은 배꼽과 더불어 11자로 선명하게 갈라진 복근으로 하여금 여성으로서의 매력을 과감하게 드러내고 있다.

사실 방어구라 하기에도 민망하고 사실상 속옷만 입고 있다 해도 무방할만큼 노출이 심했다. 덕분에 음심보다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저러면 안 춥나?'

나는 여인에게서 시선을 떼어 앞의 세 명을 둘러봤다. 이렇게 보니 차이가 더욱 눈에 띄었다.

이 모든 특징을 종합했을 때, 이 사람들이 말로만 듣던 다크 엘프일 터. 실물로 보니 엘프와 비슷한 점이 많지만 차이점도 상당히 많다.

하긴 인간들도 민족마다 큰 차이가 있는데 엘프라고 다를 건 없을테지. 이후로 두 명의 다크 엘프를 번갈아보다가 대충 무슨 상황인지 눈치채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와 똑같은 황금색 눈동자로 이쪽을 노려보는 다크 엘프는 몰라도, 중앙의 소녀는 죄인처럼 고개를 아래로 숙이고 있다. 위치로 보나 분위기로 보나 분명 저 소녀가 내 초고를 훔친 범인일 터.

전에 세실리가 넌지시 언질을 했던 것처럼, 전생으로 따지자면 이제 막 중학교에 입학할 것 같이 어리디 어린 소녀였다.

"...저 애야?"

나는 중앙에 선 소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옆의 세실리에게 물었다. 입꼬리를 말아올린 채 이 상황을 흥미롭게 지켜보던 세실리는 곧바로 긍정의 대답을 꺼냈다.

"맞아. 저기 중앙에 있는 애가 네 초고를 훔친 범인이야. 떡잎부터 못 돼먹은 아이지."

"흐음..."

세실리의 대답을 듣고 중앙의 소녀에게 시서을 고정시킨다. 청소년 쯤 되는 어린 아이인 건 둘째치고, 어째서 그녀가 내 초고를 훔친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초고의 가치는 두 말 할 것없이 굉장한 수준을 넘어 문화계의 보물이나 다름없다. 특히 마족들에게는 거진 성유물 취급을 받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그럼에도 저 다크 엘프 소녀가 초고를 훔친 이유가 설명되지는 않는다. 분명 목적이 있을 것이리라.

나는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는 다크 엘프 소녀를 말없이 바라보다가 아르웬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아르웬은 복잡미묘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분명 아르웬도 직간접적으로 연루되어 있겠지.'

그게 아니라면 아르웬이 이곳에 올 이유가 없다. 다크 엘프는 오래 전 알븐하임에서 추방되었다던데 어떻게 하여 친분을 다졌는지도 궁금하다.

여러모로 복잡한 사정이 있는 걸로 추정되는 바, 나는 우선적으로 아르웬의 이름을 불렀다.

"아르웬."

"말해라."

여전히 우아하면서도 근엄한 말투를 사용하는 아르웬. 아무래도 외모가 외모인지라 미묘한 간극이 느껴진다.

나는 피곤한 듯해 보이는 아르웬과 그 옆의 다크 엘프 소녀를 번갈아보다가 무뚝뚝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사정이 복잡해 보이는데 설명을 좀 해줄 수 있겠어? 너와 이 다크 엘프가 어떤 사이인지, 그리고 이 애가 어째서 초고를 훔쳤는지에 대해서."

"...알겠다."

아르웬은 내 질문에 다크 엘프 소녀를 힐긋거리더니 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리고는 가슴 중앙에 손을 올리며 예법에 맞게 인사했다.

"정식으로 소개하도록 하마. 내 이름은 아르웬 엘리디아. 신의 축복을 받은 나라, 알븐하임의 여왕이니라."

"여왕?"

나는 그녀의 정식 인사를 듣고 눈을 동그랗게 뜰 수밖에 없었다.

근엄한 말투로 보나, 은연히 흘러나오는 기품으로 보나 높으신 분인 건 예측하고 있었는데 설마하니 여왕일 줄은 생각치도 못 했다.

"이거 실례했습니다. 설마 알븐하임의 여왕일 줄은 상상도 못 했군요."

"괜찮다. 그리고 말을 놓아도 상관없느니라. 그대는 그럴만한 자격이 있으니. 어차피 이런 상황에 말을 놓아도 큰 의미도 없고."

내가 정중하게 사과하며 존댓말을 사용하자 아르웬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괜찮다고 답했다.

'과인'이나 '짐'처럼 스스로를 낮추는 특유의 문체를 사용하지 않는데다 축제 당시의 행적을 고려하자면 격식을 따지지 않는 성격인것 같다.

하대하는 듯한 말투도 무언가 어색함이 느껴진 걸 보면 아마 이때문인 듯싶다. 물론 상황이 상황인지라 아르웬 쪽에서 말을 높여라 명령하면 저쪽만 불리하다.

"알겠어. 그럼 인사는 넘어가고, 아까도 물었지만 이게 도통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되질 않거든. 자세히 설명해줄래?"

"그래. 레인."

"... ..."

아르웬은 내 부탁에 다크 엘프 소녀으로 추정되는 이름을 입에 담았다. 그러자 다크 엘프 소녀의 몸이 흠칫거리더니 슬쩍 아르웬을 바라봤다.

뒤이어 소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나와 정면으로 바라봤다. 두려움에 제대로 잡아먹힌 듯한, 두 눈이 덜덜 떨리고 연신 입술을 축이고 있다.

아무래도 500년 형이라는, 엘프에게도 엄청난 형량이 떨어졌으니 당연한 반응이다. 나 같아도 징역 50년 형을 받으면 정신이 아득할텐데 저 소녀에게는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조금 불쌍하긴 하네.'

이에 마음이 약해지려는 찰나, 내 표정을 보았는지 세실리가 나에게 귓속말로 속삭였다.

[아이작. 미리 말하는데 공연을 하고 있을 때 저 애가 네 저택에 침입했어. 그리고 또다시 초고를 훔치려고 했지.]

그 속삭임에 그게 무슨 소리냐는 표정으로 세실리를 쳐다봤다. 한 번이면 그러려니 하는데 두 번은 봐줄 수 없다.

세실리는 내 표정을 보고 싱긋 웃더니 귀를 빌려달라고 손짓했다. 나는 의문어린 표정을 지으면서도 그녀에게 귀를 빌려줬다.

[저 꼬마 말로는 그저 네가 제논인지 확인하기 위해 침입했다는데 그 말을 누가 믿어주겠니? 다행히 발락 경이 막아서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어. 물론 정말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침입한 것 자체만으로도 문제가 있지. 부디 현명하게 대처해주기를 바랄게.]

그때부터 저 다크 엘프 소녀가 내 초고를 훔쳤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구나. 나는 세실리의 속삭임을 듣고 다크 엘프 소녀를 바라봤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라면 문제가 많다. 괜히 다크 엘프 쪽에서 징역 500년 형을 내린 게 아니다.

그사이 다크 엘프 소녀는 침을 꼴깍 삼키더니 허리를 깊게 숙였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조용히 입을 연다.

"아, 안녕하세요. 레, 레인이라고 합니다. 현재 여왕님을 후견인으로 두고 있습니다."

"후견인이라..."

후견인은 뒤를 봐주는 사람으로, 사무처리능력이 부족하거나 결여된 사람을 대신 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이건 전생의 이야기고, 이 세상은 보통 스승 또는 부모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전에도 언급했지만 엘프와 다크 엘프 사이는 그리 좋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다크 엘프인 레인이 아르웬을 후견인으로 둔 건 보면 대충 어떤 그림이 나오는지 알 수 있다.

그간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던 다크 엘프를 알븐하임으로 복귀시키기 위해 초석을 다지고 있을 확률이 높다. 그 초석이 바로 아르웬과 레인의 관계이고.

나는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이쪽을 보고 있는 레인을 조용히 응시하다가 고저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 대충 너랑 아르웬이 어떤 관계인지 알 것 같네. 자질구레한 말은 집어치우고 본론부터 들어갈게. 내 초고는 왜 훔쳤니?"

"... ..."

"다크 엘프는 남의 물건을 멋대로 훔치고, 그것도 모자라 저택에 함부로 침입해도 된다고 배워?"

"...아니에요."

내가 따끔하게 혼내자 레인은 의기소침하게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보아하니 자기 잘못을 알고 있는 듯했지만 그래서 더 괘씸하다.

잘못된 행동이라는 걸 알고 있으면 하면 안 된다. 이건 기본적인 상식이다.

비록 이 세계가 중세를 표방하는 판타지 세계이지만, 남의 물건을 훔치면 안 된다는 건 사람의 기본적의 양심이다. 그런 양심을 팔아버릴만큼 내 초고를 훔치게 된 경위가 대체 무엇일까.

"그럼 왜 훔쳤니? 그리고 어째서 저택에 몰래 침입해서 내가 제논이라는 걸 알고 싶어한 거야?"

"그건..."

"레인은 나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서 그대의 초고를 훔친 것이다."

레인이 입을 열기 직전이었다. 상황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아르웬이 앞으로 나서며 레인을 변호해줬지만...

"아르웬. 미안하지만 지금 네가 끼어들 타이밍은 아닌 것 같아. 저 애가 스스로 말하게 해야지."

"... ..."

할 말을 잃게 만드는 내 대꾸에 입을 꾹 다물었다. 다만 어떻게든 레인을 지키고 싶다는 마음이 얼굴에 속속 드러나는 중이었다.

나는 아르웬도 입을 다물었겠다, 레인이 스스로 말할 때까지 잠자코 기다려줬다. 레인은 아르웬이 본인의 편이라는 걸 알게 되어 긴장이 살짝 풀렸는지 아까보다 좀 더 커진 목소리로 답했다.

"여왕님의 말씀대로... 여왕님을 기쁘게 해주기 위해 훔쳤어요..."

"아르웬을 기쁘게 해주려고?"

"네. 여왕님도 당신의 책을 좋아하니까..."

레인의 말을 듣고 다시 한 번 아르웬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 보니 아르웬은 여왕으로서의 집무를 내팽겨치고 전시회에 참가했다.

원래라면 공식적으로 참석하겠다고 성명문을 내겠지만, 내부적으로 말이 많았는지 그러지 않고 정체를 숨긴 채 공연을 즐기기 바빴다.

'어린 아이다운 생각이네.'

아마 레인은 어린 아이 특유의 짧은 생각으로 내 초고를 훔쳐 아르웬을 기쁘게 만들려 했겠지만, 그 결과는 최악으로 돌아왔다. 아르웬의 부족한 교육을 책망해야할지, 아니면 레인의 도덕심을 탓해야할지 애매하다.

그러나 레인은 이미 범죄를 저질렀고, 더 나아가 저택에 침입했다. 이것만으로도 문제가 많다.

나는 복잡한 상황에 뒷목을 매만지다가 한숨을 푹 내쉬고는 낮게 깔린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아르웬."

"...말해도 좋다."

"너도 잘못된 건 알고 있었어?"

"...알고 있었다."

"그럼 왜 초고를 바로 돌려주지 않은거야? 출판사에 돌려놓기만 해도 괜찮잖아."

솔직히 레인이 일을 저질렀어도 아르웬이 잘 수습만 한다면 문제가 없다. 말이 좀 많겠지만 초고를 출판사에 돌려놓기만 해도 상관없었으니까.

그러나 아르웬에게 무슨 사정이 있었는지 몰라도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이 사단이 나버렸고.

아르웬은 내 질문을 듣고 약간 망설이더니 정말 미안하다는 기색으로 사과했다.

"...그 부분은 내가 판단을 잘못한 것이다. 인간들은 의심이 많으니 바로 돌려놓아도 진짜라는 걸 믿지 않을거라 생각했지."

"쩝..."

할 말이 없어진다. 종족 특유의 관점과 남들보다 깊은 생각이 스스로 함정을 파놓은 꼴이었으니까. 그것도 삽질을 좀 심하게 했다.

하지만 그녀의 교육 방식은 매우 잘못되었다. 도덕심이 부족한 어린애가 범죄를 저질렀다면 따끔하게 혼을 내야지, 오냐오냐하니까 이리 된 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레인이 우리 저택에 침범하는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아르웬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그녀는 후견인으로서의 자격이 매우 부족했다.

"아르웬. 인간들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의심이 많지는 않아. 오히려 의심이 많은 건 너희 엘프겠지. 다른 종족보다 심지가 굵고 신념이 확실한만큼, 무언가를 배척하는 경향이 강할테니까."

"... ..."

"어쨌거나 아르웬 너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건 알겠어. 그러면 두 번째. 우리 저택에 침입해서 초고를 훔치려 한 건..."

"그, 그건 절대 아니에요! 전 정말로 확인만 하려 했다고요!"

레인은 내가 말을 하다가 말고 다급하게 소리쳤다. 억울한 표정을 보아 정말로 초고를 훔치지 않고 확인만 하려고 한 듯했다.

하지만 저택의 침입한 것도 많은 문제를 낳는다. 그때 당시 저택에는 황궁에서 파견한 기사가 경계 근무를 서는 중이었는데 그 삼엄한 경계를 뚫고 내 침실에 들어왔다는 의미이니.

바꿔말하자면, 나와 우리 가족이 위협받았을 수도 있다는 의미다. 천만다행히도 공연을 관람하고 있던지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 평소였다면 어쩌 되었을지 아무도 모른다.

"정말로 네가 그렇다 해도 저택에 침입한 것 자체부터가 용서할 수 없어. 네가 나쁜 마음을 먹고 우리 가족을 빌미로 협박을 할 수도 있잖아? 언제 어디서든 우리 가족을 위협할 수도 있으니 초고를 훔친 건 용서해달라면서."

"아, 아니에요. 저는..."

"레인."

레인이 항의하려는 찰나, 그 옆에서 묵묵히 서 있었던 다크 엘프 여인이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에 레인은 황금처럼 빛나는 여인의 눈과 마주했다가 입을 꾹 다물었다.

이대로 변명을 해봤자 불리해지는 건 본인이라는 걸 깨닫은 모양이다. 나는 문득 저 다크 엘프 여인이 누구인지 궁금해져 아르웬에게 물었다.

"저 사람은 누구야?"

"시리스 루나틱. 다크 엘프 쪽에서 내 호위로 붙여준 인물이지."

"시리스 루나틱이라고 한다."

허스키하면서도 낮은 톤의 매력적인 목소리다. 아델리아와 비슷하지만 시리스라는 여인의 목소리가 훨씬 낮고 중후하다.

나는 시리스라고 소개한 다크 엘프를 바라보다가 다시 레인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레인은 내가 처벌을 내릴 때까지 기다리는 모습이다.

다크 엘프 자체적으로도 처벌을 내렸다지만, 최종 권한은 나에게 있다. 내가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에 따라 처벌의 강도가 이보다 더 강해질 수도 있고 약해질 수도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우선적으로 저들의 입장을 들어보아야겠지. 나는 레인이 아닌 아르웬을 바라보며 질문을 꺼냈다.

"아르웬. 아까 보니까 네가 레인을 감싸려는 이유가 혹시 다크 엘프와의 협력 때문이야? 레인의 후견인으로 있다고 했잖아."

"그대의 말이 맞다. 나는 오랫동안 고향에서 떨어져 있던 다크 엘프를 알븐하임으로 들여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 하지만 서로 간의 앙금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는 바, 내가 레인의 후견인으로서 잘 융화될 수 있는지 보려는 것이다."

"만약 이대로 내가 형을 집행하라고 한다면?"

솔직히 엘프와 다크 엘프가 어찌 되었던 간에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냥 궁금해서 묻는거다.

이에 아르웬은 몸을 흠칫 떨더니 침울한 표정으로 눈을 내리깔았다.

"...아마 무산될 확률이 높을 것이다. 레인에게도 잘못이 있지만 내가 후견인으로서 부족한 점이 많으니 다크 엘프도 나를 믿기 힘들겠지."

"흠..."

"그대가 이대로 형을 집행하라고 해도 상관없다. 하지만 이 말만큼은 그대에게 전하고 싶구나."

저벅- 저벅-

아르웬은 내려깔았던 눈을 천천히 올리더니 나와 시선을 교환했다. 뒤이어 발을 천천히 떼어 내 앞으로 걸어왔다.

그녀가 이쪽을 향해 걸어오자 곁에 있던 세실리가 한 발짝 앞으로 나섰지만, 나는 팔을 들어 제지시켰다. 딱히 아르웬이 나에게 해를 가하지는 않을테고 대충 무슨 행동을 할지 예상이 갔기 때문이다.

저벅-

이윽고 아르웬이 바로 코 앞까지 다가왔다. 약 5m 정도 떨어진 채로 우리 둘은 말없이 서로를 바라봤다. 밤하늘의 은하수처럼 빛나는 은회색 눈동자가 나를 똑바로 직시하고, 나 또한 그녀를 마주했다.

이어서 그녀는 약간 긴장한 듯한 표정으로 있다가 숨을 길게 들이쉬었다 내쉬더니 두 손을 움직였다. 그녀의 두 손이 움직인 곳은 다름아닌 로브의 앞섬.

로브를 묶던 단추를 푸려는 듯, 앞섬을 주섬주섬거리던 아르웬은 로브를 천천히 벗기 시작했다. 몸을 가리던 로브를 벗자 은회색의 드레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사실 드레스라기 보다는 타이트한 원피스에 가까워서 그녀의 몸매가 부각되었다. 어린 아이와 같은 외모와 달리 나올 곳은 나오고, 들어갈 곳은 들어간 아름다운 몸.

특히 가느다란 허리에서부터 아래로 이어지는 골반 라인이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워낙 타이트한 드레스이다보니 라인이 돋보였다.

투욱-

내가 아름다운 골반 라인에 잠시 시선을 빼앗겼을 때, 아르웬은 로브를 땅바닥에 툭- 내려놓았다. 그녀가 로브를 내려놓음으로서 겨우겨우 얼굴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녀는 이미 결의를 내린 표정을 짓더니 서서히, 그리고 천천히 무릎을 굽히기 시작했다. 뒤쪽에서 당황한 레인이 다급하게 아르웬을 불렀으나 시리스가 곧바로 제지시켰다.

이윽고 두 무릎을 땅바닥에 붙인 아르웬은 상체마저 숙이더니...

"죄송합니다."

"... ..."

"제가 후견인으로서 부족한 탓에 레인이 잘못을 저지르고, 더 나아가 사태를 수습하지 못 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죄송하다는 말씀밖에 못 드리겠습니다."

땅 위에 바싹 엎드려 나에게 사죄했다.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