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7화 >
엘프의 나라 알븐하임, 드워프의 나라 마키나, 수인의 나라 애니머스 등등. 이 세상에는 다양한 종족이 존재하는만큼 각 종족을 대표하는 나라가 다수 존재하고 있다.
인간은 인구가 인구이다보니 미네르바 제국, 테르스 왕국, 벨루아 공국, 세이비어 교국 등등 다양한 나라가 있으나 다른 종족은 대부분 나라가 하나밖에 없다. 인간들도 그러하듯 사람은 같은 종족끼리 규합하려는 특징 때문이다.
다만 헬리움의 경우는 약간 다르다고 보아야 옳다. 모두들 알고 있겠지만 마족은 다른 종족과 달리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고 악마 전쟁 이후부터 새로이 등장한 종족이다.
악마에게 짙은 영향을 받은데다 악마에 가까웠던 탓에 모진 차별을 받고, 심지어 인간들에게 학살까지 당한 비극적인 역사를 갖고 있다. 이탓에 헬리움이 건국되기 전까지는 도망자 신세였으며 기반조차 제대로 닦지 못 했다.
허나 참으면 기회는 언제나 찾아온다고, 마족들은 다른 종족들이 서로를 견제하고 있을 때 적당한 땅을 찾아 헬리움을 건국했다. 그들은 척박한 땅조차 마법을 통해 곡창지대로 탈바꿈시켰으며, 눈 깜짝할 사이에 눈부신 성장을 이룩했다.
그 결과, 마족들이 도망친 땅에서 '헬리움'이 건국되었다. 사실 초대 헬리움의 국왕은 본인들의 안전을 위하여 헬리움을 세웠으며 만약 다른 종족이 받아준다면 기꺼이 땅을 내줄 포부가 있었다.
물론 마족을 향한 혐오감이 장난 아니었기에 시간이 흐르다보니 어느새 강대국이 되었을 뿐. 심지어 종족 전쟁 당시에도 그리 언질을 했으나 악마들이 달콤한 말로 속이려 든다며 무시당했다.
이로인해 헬리움의 건국 이념은 다른 종족과 달리 조금 특이한 편이었다. 좀 더 훌륭한 발전을 위해서가 아닌, 도망자들을 위한 요람으로.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제논 일대기가 발간된 이후부터는 180도 달라졌다. 헬리움은 진정한 의미로 국가가 될 준비를 하고 있다.
"우리 헬리움은 도망자들의 요람이 아닌, 하나의 종족으로서 나아갈 준비를 마쳤습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의 언어로 '외교'를 시작한 것이죠. 며칠 전 테르스 왕국으로 헬리움의 사절단이 방문하여 특산품을 선물했습니다."
"특산품이 뭐에요?"
"마법으로 짠 비단입니다. 우리 헬리움은 도망자들이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마법을 연마한 바, 마법과 관련된 물품을 제작하는 건 누구보다 뛰어나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드워프보다요?"
"드워프가 제작 그 자체에 능력이 치중되어 있다면 저희는 마법 물품에만 집중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예를 들어 드워프는 기본적인 검마저도 명검으로 만든다면, 우리 마족은 자체적인 제작 능력은 부족할지언정 마법으로 충당해 명검을 제작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마법에 인챈트를 걸어 절삭력이나 내구성을 높이는 거죠."
듣기만 해서는 역시 개사기 종족답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나는 진심으로 감탄하며 설명을 한 가르츠를 바라봤다.
"그럼 드워프제보다 훨씬 좋은 거 아니에요?"
"그건 아닙니다. 드워프가 만든 검은 자체적인 절삭력이나 내구성이 뛰어나다면, 저희는 마나를 주입해야 그 효과가 발동되는 식이죠. 더군다나 무기 제작은 드워프를 따라갈 종족이 이 세상에 없습니다."
"그래도 뛰어난 건 마찬가지잖아요. 이때까지 외교를 하지 못해서 이 사실을 모르고 있던 건가?"
"네. 사절단과 선물을 보냈으니 조만간 눈치챌 것입니다. 그리고 매트릭스 극단의 감독이 마족이라는 사실도 밝혀졌으니 예술에도 조예가 깊다는 걸 알 수 있을테죠."
나는 가르츠의 설명을 들으면서도 주변을 둘러보는 건 잊지 않았다.
가르츠가 우리 저택을 방문하고 하루가 지나고, 현재 나는 헬리움의 거리를 돌아다니는 중이다. 인간이 엘프의 문명을 모방한 것처럼, 마족도 인간의 생활상을 모방하여 내가 알던 거리와 매우 유사했다.
마차가 지나다니는 도로와 그 옆에는 다양각색의 건물이 세워져 있고, 건물의 형식 또한 미네르바 제국의 수도에서 본 것과 비슷하다.
다른 점이라고는 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들. 그들은 하나같이 검은색 머리카락에 붉은 눈을 가지고 있었으며, 머리의 뿔 또한 비슷하지 않고 약간씩 다르다.
그래도 '사람'이 사는 곳인지라 거리는 활기를 띄었고, 아이들이 해맑게 웃으며 뛰어다니는 모습은 나로 하여금 안정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진짜 다른 게 하나도 없네. 저게 무슨 악마야?'
내가 이토록 빨리 헬리움에 도착할 수 있던 이유는 당연히 가르츠의 마법 덕분이다. 그는 모든 준비가 끝나자 우리 부모님에게 인사를 한 후, 텔레포트를 통해 헬리움의 국경에 도착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기본적인 입국 절차를 밟고 안으로 들어섰다.
입국 절차를 밟을 때 내가 인간이라는 걸 알고 군인(전사)들이 깜짝 놀랐지만, 가르츠가 관광객이라고 적당히 둘러대니 의외로 쉽게 통과할 수 있었다. 대신 몇 가지 당부하는 건 잊지 않았다.
첫 번째. 만약 헬리움에서 마족을 향한 차별적인 언행을 '고의적으로' 한 것이 발각된다면 외국인이라 해도 처벌을 받게 된다. 사실 인종차별 같은 거였기에 대수롭지 않게 받았다.
두 번째. 가급적이면 밤이나 새벽에 돌아다니지 말 것. 그 이유를 물어보자니 악주기를 버티지 못 하여 밤에 돌아다니는 마족들이 상당히 많다고.
같은 마족이라면 그들을 발견할시 도움을 줄 수 있지만 외국인은 자칫하다가 피해를 입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엄청난 근력으로 나를 밀어붙였던 세실리가 떠올랐다.
마지막으로 특별히 허가받지 않는 이상 헬리움의 왕성 근처에는 접근도 하지 말 것. 기본적으로 강한 결계가 발동되어 있어 마족이 아닌 인간이 접근하면 위험하다고 알려줬다.
텔레포트도 사용할 수 있는 마당에 왜 입국 절차를 하는지 궁금해 할 수도 있는데, 헬리움의 외벽은 기본적으로 텔레포트가 불가능하도록 커다란 막이 형성되어있다. 정확한 좌표가 입력된 게 아닌 이상 워프나 텔레포트를 통해 침투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가르츠에게 어떤 원리라고 물으니 마나의 흐름을 불규칙적으로 꼬아버려 실패 확률을 높히는 거라고. 물론 마족들에게조차 복잡한 마법이라 내가 들어서 알아들을리가 만무하다.
"엄마! 엄마! 저거 봐! 저 빨간 머리 남자 인간이지?"
"쉿! 이리 오렴. 그러면 못 써!"
그러다 귓가를 파고드는 아이의 철없는 외침이 들어왔다. 고개를 돌리니 엄마로 추정되는 젊은 여인이 자그만한 아이를 급하게 말리는 모습에 내 눈에 잡혔다.
로브조차 쓰지 않고 당당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기 때문일까. 가끔 가다가 몇몇 사람이 나를 힐긋거리는 건 물론이고 호기심 많은 아이들은 대놓고 소리쳤다.
아무래도 내가 인간인데다 이 세상에 흔치 않은 빨간 머리라 더욱 눈에 띌 것이다. 하물며 마족들은 하나 같이 흑발적안의 특색을 갖고 있으니 유달리 튀는 것도 한몫한다.
'역시 마족이라 젊네.'
아이를 말리는 여인도 누가 보면 누나라고 착각할만큼 젊다. 역시 엘프와 더불어 오래 사는 종족답게 노화가 더디기 때문이겠지.
나는 문득 마족의 나이는 어떻게 구별하는지 궁금해졌다. 엘프는 신에게 선택받은 종족인만큼 상대방을 보면 본능적으로 알게 된다만 마족은 어떤지 궁금해졌다.
"가르츠 씨. 마족은 서로의 나이를 엘프처럼 본능적으로 구별할 수 있어요?"
"본능적으로 구별하기는 힘들어도 주로 뿔의 색을 보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젊은 마족은 대부분 검은색이지만 고령의 마족은 옅은 회색을 띄고 있죠. 그리고 나이가 들면 들 수록 악주기가 찾아오는 주기가 길어질 뿐더러 욕망 또한 적은 편입니다."
"그래도 구분하기가 어렵겠네요."
"그래서 뿔에 표시를 하거나 문신을 통해 나이를 새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이가 많다는 건 오랜 시간동안 내면의 악과 싸워 승리했다는 의미이니 많은 마족들에게 존경을 받는 편이죠."
하긴 마족들은 자연사로 죽는 경우보다 악마가 되어 죽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러니 나이가 많은 마족들이 존경을 받는 건 당연하디 당연한 문화일 것이다.
이후로도 나는 가르츠에게서 마족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헬리움에 도착해서 그런지 몰라도 마족에 대한 궁금증이 무럭무럭 솟아났다.
세실리와 함께 있을 때는 다른 생각을 하느라 바빴지만 지금은 오로지 마족에게만 집중할 수 있어서 이것저것 묻게 되었다.
"검은 마나를 사용할 때마다 힘든 점은 없나요? 지나치게 사용하면 내면의 악이 폭주한다던가."
"먼 과거, 그러니까 1세대 마족들은 그랬지만 지금은 괜찮습니다. 그래도 혹시 몰라 만일에 대비하고 있는 편입니다."
"1세대 마족은 거의 없죠?"
"지금으로서는 사실상 없는 편입니다. 악마 전쟁처럼 다른 차원에서 악마가 건너와 씨를 뿌리는 게 아닌 이상 1세대 마족이 탄생하는 일은 없겠죠. 그런데 은인. 하나만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뭔데요?"
열심히 대답을 하고 있던 가르츠가 질문을 구하자 나는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허락했다. 그의 붉은 눈동자는 무심하기 짝이 없어 생각을 읽기가 어려웠다.
뒤이어 가르츠는 입을 벌렸다 닫았다를 반복하다가 조심스러운 어조로 나에게 물었다.
"은인이 보시기에 헬리움은 어떤 곳으로 보입니까?"
"헬리움이요?"
"예."
"흠..."
나는 그의 질문을 듣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마족들이 살고 있는 헬리움은 초창기에 도망자들의 보금자리나 다름없는 곳이었지만, 수 세기가 지난 이래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강대국으로 진화했다.
물론 외교적으로는 우물 안의 개구리나 마찬기지이지만 조만간 우위에 설 확률이 높다. 그러니 헬리움은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발언권이 강력한 나라로 발돋음 할 것이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헬리움의 국력을 보았을 때고, 그 안은... 인간들의 나라도 다를 게 하나도 없다. 하늘은 푸르기 그지 없었으며 그 아래에 사람들은 각자 할 일을 하러 가기 위해 바쁘다.
몇몇 사람들은 헬리움에 오지도 않고 언제나 붉은 하늘이 불길하다니, 악마들이 살고 있어 하루가 멀다 하고 살인이 일어난다니 등등. 별의 별 괴상한 소문이 떠돌았지만 정작 발을 디디고 나서는 글쎄? 라는 의문이 든다.
헬리움은, 그 누구보다 사람 사는 냄새를 풍기는 곳이다.
"별 생각 없는데요?"
"별 생각이 없다는 말씀은..."
"제가 지금까지 봤던 거랑 똑같아요. 나라가 세워지고, 그 나라를 왕과 귀족이 다르리고, 백성들은 통치에 맞게 행동하면서 생활을 즐긴다. 끝."
"... ..."
"저에게서 무슨 대답을 원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사람 냄새를 풍기는 곳이네요."
"...하하."
내 대답에 가르츠가 약간 허탈하다는 듯이 웃음을 흘렸다. 언제나 무뚝뚝하고 감정 표현이라고는 일체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가 웃다니 나로서는 놀라웠다.
그동안 가르츠는 어딘가 만족스러운 듯한 미소를 짓더니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제가 실례를 끼쳤군요. 은인에게 너무 뻔한 대답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가요?"
"네. 사람 냄새 풍기는 곳이라... 가슴에 크게 와닿는 말입니다."
그냥 대충 던져준 말인데 가르츠에게는 큰 감동으로 다가온 모양이다. 나는 무언가 생각을 하는 듯, 여운에 잠긴 듯한 가르츠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하긴 그는 군인, 그것도 세실리의 호위 기사로 나올만큼 강하다. 강한만큼 헬리움의 위협이 되는 임무들을 여태까지 줄곧 처리해 왔을 터.
현재 그는 악마가 아닌 사람들을 지키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에 충분할 것이다.
"어째서 공주님이 은인에게 깊은 관심을 표했는지 알 것 같군요. 은인은 작가가 아니더라도 한 명의 사람으로서 존중받아야 마땅합니다."
"제 얼굴에 금칠을 해주시네요. 아까도 말했지만 전 별 생각이 없습니다."
"그게 가장 중요합니다. 의식하지 않고도 저희 마족을 여태껏 사람으로 봤다는 의미니까."
그게 그렇게 되나?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문을 갖는 동안, 가르츠는 허공에 손을 뻗었다. 그러자 그의 손에 한 권의 책이 쥐어졌다.
아무래도 마법인 것 같아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을 때, 가르츠는 나에게 그 책을 내밀면서 조심스레 부탁했다.
"그 말을 듣고나니 더욱 참기가 어렵네요. 한 번만 부탁하겠습니다."
"이게 뭔데요?"
"제논 일대기 5권입니다. 사크란의 최후가 묘사되어있는, 우리 마족의 인식이 본격적으로 변하게 된 책이죠."
"이건 왜..."
내가 의문 가득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을 때, 가르츠는 특유의 무뚝뚝하면서도 무심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사인 부탁드립니다."
"... ..."
"원래 공주님이 받고 나서 받으려 했지만 지금이 아니라면 못 받을 것 같습니다."
너무 진심이라서 그냥 해줬다.
아무튼 간에 가르츠에게 사인을 해주고는 세실리와 약속을 잡았던 별장으로 이동했다. 왕성으로는 들어가지 못 하니 세실리의 개인 별장으로 약속을 잡은 것이다.
그녀의 별장은 헬리움의 안에 위치해 있었는데 놀랍게도 도시 안에 울창한 숲이 버젓이 존재했다. 가르츠에게 듣자하니 안식의 숲이라고, 헬리움의 왕족만이 드나들 수 있는 일종의 성지라고 설명해줬으며 그 안에 별장이 따로 존재한다고 들었다.
이곳에서 마법을 수련하거나 명상을 통해 마음을 진정시키는 등. 다방면으로 활용할 수 있으며 방어 결계도 쳐져 있어서 사고가 터질 일은 없다고.
그런 성지에 마음대로 들어와도 되는지 걱정되었지만 가르츠는 세실리가 허락한 이상 괜찮다고 답했다. 덕분에 아무런 걱정없이 숲 안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아이작!"
숲 입구에는 세실리가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녀는 축제 때 처럼 붉은 드레스가 아닌, 어깨와 쇄골이 전부 드러나는 검은색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나는 세실리가 드레스 자락을 잡으며 달려오자 당황한 것도 잠시, 이미 마음을 먹었던지라 두 팔을 벌려 환영해줬다. 세실리도 내가 환영해주자 활짝 핀 꽃 같은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안겨들었다.
푸욱-
"우우움... 이제 정말로 받아주는구나?"
"마리에게도 허락받은 마당에 꺼릴 게 뭐가 있다고."
"좋아해. 정말로..."
세실리와 안게 되면서 가슴의 감촉이 고스란히 전달되었지만, 나는 끝까지 인내했다. 둘밖에 없었다면 못 참았겠지만 지금 곁에는 가르츠가 있다.
그가 아무리 나에게 호감을 갖고 있다 할지라도 지켜야할 대상인 세실리와 비교도 안 될 것이다. 기껏 쌓아올린 호감을 무너뜨릴 수 없는 법.
이에 나는 세실리와 진한 포옹을 나눈 뒤, 서서히 떨어지며 그녀의 얼굴을 바라봤다. 애정과 사랑으로 점칠된 그녀의 붉은색 눈동자가 눈에 들어왔다.
나도 스스로 생각하는 거지만, 참 복 받았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마리 뿐만 아니라 세실리처럼 각자 매력이 뛰어난 여자들을 두었으니까.
하지만 언제까지나 재회의 감동에 젖어들 수 없다. 내가 헬리움에 온 본질적인 이유가 따로 있다.
"누나. 도둑은 어디에 있어? 가능하면 빨리 처리하고 헬리움을 돌아다니고 싶거든."
"그 사람들은 미리 도착해 있어. 어서 가자."
"응."
세실리도 어서 빨리 처우를 결정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녀는 내 말고 동시에 나와 팔짱을 끼더니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가르츠는 그런 우리의 뒤를 따라왔다.
자연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숲의 풍경에 감탄한 것도 잠시, 세실리가 입을 열었다.
"아참. 그들 내부끼리 이미 어떤 처벌을 내릴지 정해놓았어. 아이작 네가 최종 판결을 내리면 될 거야."
"그래? 어떤 처벌인데?"
솔직히 제 식구 감싸기라고, 그닥 큰 처벌을 내리지 않을 거라 예상했다. 엘프 대 엘프가 아닌 엘프 대 인간의 문제였으니까.
겨우 초고 도난이 뭐라고 그렇게까지 해야하나? 이런 마인드를 가졌을 확률이 농후하다는 의미다.
그러나 세실리가 입 밖으로 꺼낸 처벌의 강도는 내 예상을 한참 웃돌았다.
"500년 형."
"뭐?"
"감옥에서 500년 동안 투옥되는 거래. 아무래도 사안이 사안이다보니 다크 엘프 내에서도 중형을 내린 모양이야."
"... ..."
그거 참 화끈한 종족이구만. 나는 헛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솔직히 말해서 타인이었기에 상관없었지만, 일단 반성하는 태도를 보고 처우를 결정할 생각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약속 장소에 도달했고...
"...아르웬?"
"... ..."
"네가 왜 여기 있어?"
나는 생각치도 못한 손님을 맞이하게 되었다.
꼬마 엘프 숙녀, 아르웬은 나를 보자마자 쓴웃음을 짓더니 피곤에 절어있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시 만나게 되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