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화
리엘리는 반사적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러자 리셀은 별안간 끔찍한 사실을 깨달은 사람과 같이, 핏기가 돌지 않는 낯빛으로 입을 열었다.
“동생, 여동생과 함께 있었습니다. 납치될 당시 그 애와 함께 있었는데… 그 아이도 저와 함께 그곳에 끌려갔을지도 모릅니다….”
그는 쓰러지듯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대체 무슨 짓을 당했는지 모를 만큼 엉망이 된 손을 들어 애원했다.
“제발 도와주십시오, 영애.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잔뜩 쉰 목에서 거의 쇠를 긁는 듯한 듣기 싫은 흐느낌이 흘렀고, 찢어진 입술 새로 피가 배어 나왔다.
하지만 리엘리는 그런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저 그를 일으켜 세우기 급급했다.
“…그럴게. 어떻게든 도와줄 테니까 일단 여기서 나가.”
리엘리는 정신없이 그를 돌려보내려 애를 썼다.
시간이 없었다.
혼자 산책을 할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에이미나 카렌이 그녀를 찾기 전에 돌아가야만 했다.
하지만 리셀이 자리에서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자 불안스러워진 리엘리가 입을 열었다.
“약속할게. 우리 가문의 명예를 걸고 네 동생을 찾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 약속할 테니까, 빨리 일어나.”
“그럼 증명해주십시오.”
“무슨….”
“이름을 걸고 맹세해 주시면 일어나겠습니다.”
“…리엘리, 리엘리 로베르. 로베르 공작가의 명예를 걸 테니 제발….”
빨리 일어나서 이곳을 떠나.
사뭇 애원과도 같았다.
리셀은 그런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기실 그로서는 리엘리가 왜 이렇게 필사적인지 이해가 되지 않겠지.
그의 의문이 표정을 통해 여실히 느껴져 왔지만 언제 들킬지 몰라 마음이 초조한 리엘리는 그저 리셀을 재촉할 뿐이었다.
리엘리는 그가 누군가의 눈에 띈다면 살아 돌아갈 수 없음을 직감했다.
지하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곳은 로베르의 직계만이 알고 있는 공간이라 했다.
그러니 모든 일의 원흉은….
‘그래, 공작이겠지.’
나는 리엘리의 생각에 긍정했다.
리엘리는 제 머리에 꽂혀있던 머리핀을 뽑아 그의 손에 들려 보냈다.
모쪼록 그가 무사하길 바랐다.
그녀는 크게 안도하며 다시 유리 온실로 걸음을 돌렸다.
‘아니, 얘가 지금 왜 또 거길 가는 거야.’
그녀의 생각을 읽고 있던 나는 황당하다 못해 기가 찼다.
제 눈앞에서 리셀이 죽어가는 꼴을 볼 수 없어 저리 살려 보내 놓고, 그 시체 더미가 쌓여 있는 곳으로 다시 돌아간다니.
‘…미친 건가.’
겁도 많은 애가 뭘 잘못 먹기라도 했나.
내심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
새하얗게 질려 핏기조차 없는 리엘리의 얼굴이 온실 유리에 비쳤다.
‘미련하게 뭐 하는 거야.’
하지만 내 속을 모르는 리엘리는 지하로 나아갔다.
저 아래 제가 모르는 무언가를 확인하기 위해.
부들거리는 다리로 한 발 한 발 내려가는 리엘리의 생각을 읽은 나는 깊게 탄식했다.
그녀는 아주 어릴 적 기억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러니까, 공작이 어린 아몬의 방에 들어가 그 아이에게 손을 뻗는 모습을.
원작에 언급되었던 그 장면이 리엘리의 머릿속에서 생생하게 회상되었다.
분명 아몬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그저 가벼이 손을 뻗었다 거두어드리는 일말의 과정이었을 뿐임에도 공작의 눈에 비친 광기가 말하고 있었다.
이 아이를 해칠 것이라고.
때마침 눈을 뜬 아몬과 그의 시선이 얽히지 않았다면 아마도….
리엘리는 그날을 기점으로 아몬에게 큰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게 되었다.
어린 그녀 역시 아몬을 미워하는 마음이 없지 않았지만, 그 장면은 큰 트라우마로 남았다.
천만다행으로 아몬은 무사할 수 있었지만 리엘리는 그때의 일을 여태 후회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아몬과 마주하지 못했다.
마주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고, 마주할 자격이 없다 여겼다.
어린 동생의 위험을 외면한 채 도망가버린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으니까.
그러니 이번만큼은 도망가지 않고 직면해볼 용기를 낸 것이다.
그 많은 희생자를 목격해놓고 또다시 침묵하는 건 너무나도 비겁한 행동이라 생각했다.
마침내 다시 갈림길에 도달한 리엘리는 왼쪽 길이 아닌 오른쪽으로 걸어갔다.
유일무이한 검은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그곳에 존재하던 모든 이들의 이목이 리엘리에게 집중되었다.
하지만 기억 속의 리엘리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사람들을 인지하기도 전에 실험실로 추정되는 공간 중앙에 위치한 유리관에 시선을 빼앗겨버렸다.
비단 리엘리만이 아니라 나 역시도.
커다란 유리관에는 세리나 로베르가 안치되어 있었다.
영원한 안식을 취하고 있는 줄 알았던 어머니를 뜻밖의 장소에서 목격하고야만 리엘리의 사고가 일순 정지했다.
‘…무슨?!’
뒤늦게 정신을 차린 나 역시도 경악에 빠졌다.
반투명한 액체에 담긴 세리나는 마치 살아있다 해도 믿을 법한 생기있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단 하나.
눈동자만은 영락없는 죽은 자의 것이었기에, 리엘리는 본능적으로 제 눈앞에 있는 것이 제 어머니의 시체에 불가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머니.”
리엘리는 그대로 넋이 나가 자신을 포박하며 무어라 떠들어대는 이들에게 일말의 반응도 할 수 없었다.
그녀 자신의 몸을 구속함에도 정신이 붕 떠 있는 것처럼 모든 게 와닿지 않아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 와중, 리엘리를 둘러싼 그들이 떠들어대는 목소리가 내 고막을 갉작거렸다.
“야야, 살살 다뤄. 이거 아무리 봐도 공녀 같다고. 자국이라도 생기면 공작이 요란법석을 떨 텐데.”
리엘리의 손목을 묶는 남자에게 금발의 남자가 채신머리없는 음성으로 핀잔을 주자 그녀를 관찰하듯 바라보던 다른 이가 중얼거렸다.
“저런 눈동자였군. 우리가 찾아 헤매던 것이.”
“솔직히 저것들의 눈과 별다른 것도 없어 보인다만…. 보라색이 다 거기서 거기지.”
다른 이들의 중얼거림에 금발의 남자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핀잔을 놨다.
“뭔 헛소리야. 완전 다르구만. 이렇게 직접 보니까 느낌 확 온다.”
“혹시나 저것의 눈을 가져다 심을 생각이라면 아서라. 세리나 로베르 이외에 공작이 아끼는 유일한 것이니까.”
“…아아, 알아-, 알아. 그냥 해본 말이지. 공작도 참 귀찮게 군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보니까 그럴 만했네.”
눈동자가 정말 예뻐.
유독 리엘리를 집요하게 바라보던 금발 흑마법사가 검은 눈동자를 번뜩이며 입맛을 다셨다.
리엘리를 구속하는 건 조잡하게 묶은 노끈 하나가 전부였지만 그녀는 마치 전신을 포박당한 양,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했다.
그가 두려워서? 그것도 맞다.
하지만 그보다 더욱 그녀를 얼어붙게 만든 것은 뒤늦게 시야에 들어온 한 무리의 사람들이었다.
‘…….’
그들에게는 밖에 쌓여 있는 시체들과 다른 한 가지 특징이 두드러졌다.
바로 눈이 존재치 않는다는 것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빳빳이 굳어있는 리엘리의 곁으로 공작이 다가왔다.
공작은 창백한 그녀의 얼굴을 쓸며 물었다.
“어쩌다 이곳에 들어온 거니.”
“어, 어머니가….”
“세리나가?”
리엘리가 뒷말을 이어가지 못했음에도 공작은 아아, 하며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의 존재를 네게 알려주란 소리를 하지 않았었는데, 역시 리나가 우리 리리를 아주 많이 아꼈던 모양이야.”
사뭇 다정히, 안타깝다는 듯이 속삭이는 공작의 목소리에 리엘리는 벌벌 떨다 불현듯 의식에 걸리는 한 존재의 이름을 뱉어냈다.
무의식적으로 이 끔찍한 상황에서 도망치고자 떠올린 이름이었다.
“크, 클레어를 찾으려 했을 뿐이에요….”
“클레어? 흠, 그래. 클레어를 찾으러 왔구나.”
그럼 당연히 아빠가 찾아 주어야지.
공작은 여느 때와 같이 웃었다.
그의 추궁을 두려워하던 리엘리는 클레어를 데려오라 지시하는 공작의 앞에 못 박힌 듯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의 앞에 끌려온 클레어는 지금의 내가 알고 있는 그녀가 맞았다.
하얀 머리카락, 존재하지 않는 눈동자, 앳된 얼굴.
“…네가, 클레어?”
리엘리는 한눈에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다.
리셀이 설명한 클레어는 제비꽃 같은 보랏빛 눈동자에 곱슬곱슬한 연갈색 머리칼을 지닌 부드러운 인상의 소녀라고 했으니까.
그러나 리엘리가 당황함에도 공작은 클레어의 존재에 대해 어떠한 말도 하지 않았다.
“이제 이곳에는 발을 들이지 않는 편이 좋겠구나. 아냐, 장소를 옮기는 편이 낫겠군.”
공작은 리엘리가 어떻게 클레어를 알 수 있었고, 왜 그녀를 찾고자 했는지 또한 묻지 않았다.
마치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다는 듯이.
그날부로 클레어는 리엘리의 시녀로서 살아가게 되었다.
그렇게 넋을 잃고 살아가던 어느 날, 리엘리는 마지막 용기를 쥐어짜 제 어머니의 무덤으로 향했다.
공작은 그녀의 외출을 막지 않았고, 그곳에 도착한 리엘리는 호위들에게 무덤을 파헤칠 것을 명한다.
그리고 무덤 안에 덩그러니 놓인 텅 빈 관을 눈으로 확인하고 나서야, 그녀는 무너져 내렸다.
그 뒤로 그녀는 홀로 괴로워했다.
제 아버지에게 대체 무얼 하고 있는 것이냐 묻지도 못했다.
그저 두렵고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을 회피하고 싶을 뿐이었다.
*
정신이 없어 정리되지 않은 이야기를 털어놓았음을 뒤늦게 눈치챈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똑똑-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차분히 입을 열려는데, 작은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어느새 일어날 시간이 된 모양이었다.
“아침 먹고 다시 얘기해.”
작게 속삭이는 율렌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몸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