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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3화 〉 기사에 내가 나온다고?(3) (163/173)

〈 163화 〉 기사에 내가 나온다고?(3)

* * *

[이토록 화려한 데뷔는 없었다! 준비된 자의 여유 보여준 박성진!]

[내년 이적 시장 최대의 대어는 누구? 당당하게 이름을 올린 신예 히어로!]

[“뛰어난 전술이었지만 흠잡을 곳도 많아…” ‘에스메랄다’ 과연 실전에서도 통할까 우려를 표해.]

[치솟기 시작한 유망주들 몸값… 영입 경쟁 과열될 우려 있어.]

세상에, 이게 다 뭐람.

나에 관한 기사가 많이 떴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이 정도로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었다니.

게다가, 기사 대부분도 나에 대한 칭찬 일색인 내용뿐이라 조금 낯부끄러웠다.

그나마 객관적으로 쓰여진 기사가 없을까 싶어 조금 더 기사를 찾아 보던 중, 흥미로운 제목 하나가 눈에 띄었다.

[‘샤를’ “박성진 사단, 아직 넘어야 할 벽 많아… 증명하지 못한다면 그것으로 끝” 발언으로 화제]

‘샤를? 분명 어디서 들어봤던 이름인데. 누구였더라? 아, 클로에의 제자이자, 오셀롯 아카데미의 이사장인 사람이었지.’

아무래도 지위가 지위다 보니, 외압 따위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한 것으로 보였다.

블레이크가 대단한 사람이긴 하지만, 샤를의 아성을 뛰어넘는 건 무리일 테니까.

어조가 조금 강경하긴 한데, 그거야 오셀롯 아카데미가 트리니티 아카데미의 경쟁 상대니 그런 걸 테고.

이거라면 비교적 객관적인 시선에서 쓰였을 테니, 한번 확인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는걸.

조금 기대되는 마음으로 기사를 눌러 보았다.

[천재는 무대에 함부로 뛰어들지 않는다.]

‘샤를 퐁텐’ 오셀롯 아카데미의 이사장이 조심스러운 접근을 내놓았다. 최근 화제가 되는 유망주들에 대한 이목은 과도하다는 게 그의 입장이다.

샤를은 ‘소위 ‘박성진 사단’으로 분류되는 이들이 데뷔전에서 신선하고 충격적인 전술을 선보인 것은 사실이나, 세간의 평론이나 팬들의 기대만큼 놀라워할 수준은 아니라 밝혔다.

“천재는 무대에 함부로 뛰어들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과감히 뛰어들어 모두를 놀라게 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사람과 시대상이 원하는 영웅이 변했음을 의미한다. 분명 그의 전략은 위험천만한데다, 나아가서는 민간인들에게 피해를 줄 수조차 있었던 전략임에도 사람들은 모두 박성진에게 열광하고 있다. 그게 히어로를 바라보는 현실이라면 현실이다.”라며, 샤를 퐁텐은 우려의 뜻을 표했다.

과감한 전략이었던 만큼, 실패했을 시 뒤따라올 책임은 무척이나 뼈아플 수밖에 없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는 있는 법이라고, 그가 언제나 비상한 전략만을 내놓으리라 기대하는 건 위험한 생각이다.

다만, 그저 목적에만 충실한 히어로들과는 달리 그만이 선사할 수 있는 즐거움과 과감하면서도 독창적인 결단력은 수많은 히어로들 사이에서 자신의 입지와 인식을 확고히 하는 데엔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해이해진 요즘 시대의 히어로들에게 긴장감과 경각심을 심어주었다는 것은 충분히 대단한 일이다. 허나, 그가 넘어야 할 벽은 아직 많이 남아있다. 히어로로서 자질을 증명했다고 보기엔 어렵다. 지금은 그저 그들에게서 시선을 놓치지만 않는 것으로 충분하다.”라고 샤를 퐁텐은 전했다.

샤를 퐁텐 이사장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그가 변화의 바람을 불러왔다고 보기엔 이르다는 것이다. 하나, 이 또한 잊어선 안 된다. ‘박성진 사단’은 쟁쟁한 히어로들 사이에서 이제 막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이것도 결국엔 우호적인 기사였네.

하긴, 만나봤던 기억으론, 샤를은 클로에와 대립하는 의견을 가지고 있다 뿐, 이제 막 데뷔한 신인의 기를 꺾으려 들 정도로 옹졸한 사람은 아니었지.

그래도 성향이 보수적인 편이라 그런가, 행보 자체는 아직 두고 봐야 한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이 정도면 나름 성공적인 출발인데?’

다른 기사야 블레이크의 입김이 들어갔으니 제외하더라도, 샤를이 이렇게 후한 평가를 해줄 줄은 몰랐는걸.

헛바람 든 게 아니라, 이제 진짜로 어깨에 힘 좀 주고 다녀도 되지 않을까.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궁금하네.

어차피 주말이라 다들 한가할 테니, 물어보기도 할 겸, 아이나를 한번 만나봐야겠어.

“여보세요. 아이나?”

­응, 무슨 일이야?

“잠시 만날래? 장소는 너가 편한 곳으로 정해.”

­그래, 좋아. 서문 광장에서 만나는 걸로 하자. 1시간 정도만 있다가.

“알겠어. 좀 이따 봐.”

과연 아이나는 뭐라고 하려나.

관심받는 걸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 성격이라, 좋게 생각하진 않을 거 같은데.

* * *

서문 광장은 늘 북새통을 이루던 그 거리라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한산하기 그지없었다.

아마 중간고사가 목전이라 그런 모양이었다.

‘여기도 참 오랜만에 오는 것 같네. 모습도 많이 변했고 말이야.’

줄곧 자주 왔던 이 장소가 새롭게 느껴지는 건 단순한 기분 탓이 아니었다.

물론 텅 빈 서문 광장의 풍경이 낯설게 와닿아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한동안은 바쁘기도 했고, 어쩌다 여유가 생겨도 대부분은 조용히 쉬거나, 동아리실에만 처박혀있었기에, 변화한 서문 광장의 거리는 이질감이 드는 게 당연했다.

가만히 앉아 달라진 서문 광장의 모습을 구경하던 중, 익숙한 인기척 하나가 내 곁으로 조용히 다가와 앉았다.

“무슨 기분 좋은 일이라도 있어? 표정이 밝네?”

“아니, 그냥. 이번에 우리 임무 과정이 외부에 알려지게 됐잖아? 근데 생각보다 사람들이 우릴 굉장히 좋게 봐주더라고.”

“의외네. 네가 그런 걸 의식하고 있을 거라곤 생각 못 했는데. 너는 누가 뭐라 하든 너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사람이잖아.”

“그래도 히어로라는 직업 특성상 아예 안 하고 살긴 힘드니까. 기왕 하는 거 욕보단 칭찬 들으면서 하는 편이 낫지. 조용히 지내기엔 이미 우린 너무 유명해져 버렸는걸.”

아이나는 그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눈매를 살짝 일그러트렸다.

“그럼 자중할 줄도 알아야지. 넌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아직 우린 미숙해. 언제까지고 성공 가도만을 달리리란 보장이 없다구.”

“걱정하지 마. 내가 그렇게 되지 못하더라도, 너희들만은 꼭 그렇게 되게 만들어 줄 테니까.”

분명 많은 사건을 겪긴 했지만, 무슨 일을 계기로 내가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중간고사에서 1위란 성적을 기록했을 때? 아마도 아닐 것이다.

그녀들의 진심을 알게 되었을 때? 충분히 의심해볼 만하다.

니힐리스라는 무섭지만 따스한 스승을 만나게 되었을 때? 인상적이긴 했다.

만일 이 모든 것이 아니라면, 두 번째 아버지께서 남긴 마지막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뭐가 원인이 됐든, 중요한 것은 하나다.

난 많은 사람에게 신세를 졌다는 거.

그렇기에, 그 빚을 갚아나갈 것이다.

그게 내가 질 수 있는 책임이자, 의무니까.

“그게 뭐야, 이상해.”

“어디가?”

아이나가 새초롬한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내게로 다가왔다.

그녀에게선 늘 나던 그 향수 냄새가 났다.

“어차피 쭉 함께할 거잖아, 아니었어? 설마 도망칠 생각이었던 거야?”

“그럴 리가.”

“그럼 아무 의미도 없잖아. 우리가 앞서 나가면, 자연히 너도 그 뒤를 따르게 될 텐데.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내가 널 버리기라도 하겠어? 설령 네가 뒤처지는 한이 있더라도, 난 널 이끌고 올라설 거야. 반드시.”

낯이 뜨거워지는 게 느껴졌다.

아마 분명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도 아닌, 아이나에게서 이런 설레이는 멘트를 듣게 될 줄은 몰랐으니까.

물론 세레나의 저돌맹진에 비하면야 이 정도는 귀여운 애교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같은 말이라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지는 법 아니겠는가.

그녀의 도발은 무척이나 파괴적이었다.

“흐응, 이런 기분이었구나?”

“뭐… 뭐가?”

“네가 나를 놀려 먹을 때 말이야. 재밌네.”

역시 아이나는 위험하다니까.

이 정도 학습 속도면, 졸업할 때쯤엔 나를 한참 앞서있겠는데.

“뭐, 아무튼, 아이나 너는 아무렇지도 않아? 주변에서 관심 갖는 거. 옛날에는 싫어했잖아.”

“요즘엔 나쁘지 않은 것 같기도. 딱 적당한 수준이라서 마음에 드네.”

“뭐 때문에 생각이 바뀐 거야?”

“난 내 나름대로 외부에 소식이 닿지 않게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하는 편이지만, 그래도 한계는 있더라고. 그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좀 받았었는데, 네가 있으니까 그게 덜 해지더라.”

“아, 전에 비하면 줄어든 수준이라서 낫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네가 사람들의 시선을 모두 가져가 버리니까, 나한테는 관심을 별로 안 줘. 옛날엔 별것 아닌 일을 두고도 엄청나게 떠들어댔다면, 지금은 굵직한 사건만 언급하는 정도지.”

그럼 도리어 더더욱 싫어해야 하는 것 아닌가?

아이나가 줄곧 바라오던 것은 자신이 최고라는 증명이었으니까.

한데, 지금은 내가 그 명성과 자리를 몽땅 가져가게 된 거잖아.

“그럼 오히려 더 싫어해야 하는 거 아냐? 넌 항상 최고가 되고 싶어 했잖아. 그에 대한 증명이 필요하다고 여겼고.”

“이젠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 그 최고가 내 건데, 어느 누가 뭐라고 하겠어? 나한테는 오히려 잘 된 셈이지. 애초에 내 궁극적인 목적은 나로서 살고 싶다는 거였어. 최고라는 자리는 그 목적을 이루는 데 필요했던 거지. 그리고, 지금 되돌아보면 난 그 자리까지 올라서도, 나로서 살지 못했을 거란 생각이 들어.”

“왜?”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또 그 명성에 눈이 멀어 나를 쫓아다니는 이들을 피해, 나 자신과 사람들의 관심에 시달리며 살아야 했을 테니까.”

그랬구나.

하긴, 그렇다면 해방감이 느껴지는 게 당연하겠네, 그럼.

사사건건 쫓아다니며 지랄해대는 사람들의 시선도 없고, 최고라는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부담감도 없고, 드디어 미츠루가 아닌 ‘아이나’로서 살 수 있게 되었고.

“그러니, 난 지금이 더 좋아. 이젠 그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비로소 나로서 살 수 있게 된 거니까.”

“그럼, 나한테 감사 인사나 한 마디 해줘. 내 덕분이잖아.”

조금 전의 복수라고 던져본 농담이었는데, 아이나는 나름대로 그걸 진지하게 받아들였는 모양이었다.

살짝 고민하는 표정을 짓다, 이내 결심한 듯, 천천히 내 손을 맞잡았다.

“사랑해.”

또 한번 낯이 달아오르는 게 느껴졌다.

고동치는 심장 소리가 혹여 그녀에게 들리지는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어째서일까.

아까와 달리, 마음의 대비까지 해두었음에도 이렇게나 가슴이 벅찬 이유를, 나는 알 수 없었다.

“…너는 당할 때면 한없이 약해지는구나.”

“네가 너무 강한 거야.”

“바보 같아.”

부정하지 않았다.

아이나도 내가 우둔하기에 좋아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된 거지, 뭐.

나는 내민 손을 맞잡고, 천천히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아무튼, 슬슬 가볼까?”

“어디로?”

“가고 싶은 곳이라면 어디든지.”

“좋아.”

아이나가 내 팔에 기댄 순간에야, 다시금 기억해낼 수 있었다.

다른 것은 다 숨길 수 있었지만, 목덜미에 살짝 맺혀있는 땀방울은 미처 숨기지 못했기에.

그녀도, 역시 나 못지않게 약한 사람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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