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4화 〉 기사에 내가 나온다고?(4)
* * *
가을은 한 해를 마무리하는 계절이다.
겨울은 다음 해를 준비하는 계절이고.
그렇기에, 아직 제대로 된 영입 시즌은 열릴 때가 아니었다.
스토브리그는 고사하고, 가을 야구조차 채 시작하지 않은 기간이었으니까.
하나, 히어로 스카우터들은 여느 때보다 분주히 움직이느라 바빴다.
하반기를 훌쩍 넘어, 졸업까지 내다보고 있는 생도들이 제법 있었기에.
대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의 신성이 하나도 아니고, 이렇게나 많이 등장한 적이 얼마 만인가.
대체로는 그 소식에 반가워하는 분위기였지만, 회의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이들도 적지는 않았다.
이곳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그래서, 영입에 성공했다는 소식은 있나?”
“아직이요. 접촉에 성공했다는 이야기는 가끔 들려오지만, 대부분 퇴짜맞은 분위기던데요.”
“그럴 줄 알았어. 염병. 몇몇은 대놓고 씹는 거 같던데.”
“아카데미 측이라도 협조적이면 또 모르겠는데, 그쪽도 대응이 미적지근하니, 어쩔 수 없죠.”
크루거는 이 상황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일찍이 트리니티 아카데미 측에 여러 번 접선을 시도해보았지만, 이렇다 할 대어를 영입하지 못한 것이 그 이유였다.
물론 그가 회유하는 데 성공한 제롬도 나름 대단하다면 대단한 인재였지만, 들인 시간에 비하면 영 아쉬운 성과였다.
“하여간 요즘 것들은 아주 배가 불렀다니까. 우리 젊었을 적엔 불러주기만 해도 감사하다고 했었는데 말이야.”
“어디 가서 그런 소리 하면 꼰대 소리 듣기 십상인 거, 아시죠?”
“그래서, 내가 뭐 틀린 말이라도 했나? 유진?”
“너무 심술부리지 말라는 겁니다. 제롬 정도면 그래도 나쁘지 않은 성과잖아요.”
“트리니티 아카데미에 날려 먹은 돈이랑 시간이 얼만데, 고작 제롬 정도로 어떻게 만족을 하겠나. 그래, 나쁘지야 않지. 하지만 그 수고로움이면 못해도 천현우 정도는 입단시킬 수 있었다고!”
“저도 그 마음이 이해돼서 차마 진정하라는 말은 못 하겠네요. 아이나야 몸값이 하도 비싸니 어쩔 수 없었다지만, 그래도 제롬 정도면 최고의 수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죠. 근데 진짜 유망주는 따로 있었다니. 갑자기 어디서 저런 놈이 튀어나왔는지, 원.”
속았다며 길길이 날뛰는 크루거에 비하면야 훨씬 사정이 나은 게 유진이었지만, 위로하는 그 또한 못내 아쉽다는 티를 숨길 수는 없었다.
트리니티 아카데미의 유망주를 높게 평가하지 않았던 그는 진작에 매그놀리아 쪽으로 눈길을 돌렸던 사람이었기에.
“나오토, 그쪽은 우리보다 사정이 나아 보이는데, 어떻게 돼가고 있나?”
“여기라고 다른 건 없소. 같은 일본인이라고 뭐가 다를 줄 아오?”
“그게 그렇게 오래 끌릴 이야기라곤 상상 못 했으니 말이지. 여차하면 갈라먹는 수도 있는데.”
“어림도 없는 소리요. 미츠루 쪽의 현 당주와 담판이라도 지으면 모를까.”
“그건 좀 사양하고 싶은 이야기군. 돈만 주면 누구의 마음이라도 움직여야 하는 게 우리긴 해도, 그쪽 집안이랑 얽히는 건 또 사정이 다르지.”
“잘 알면서 왜 물어본 거요. 그럼.”
“박성진 쪽은 다르지 않나. 사실상 올해랑 내년 판은 그놈 뜻대로 다 굴러가는 거나 다름없는데. 우린 몰라도, 그쪽은 거점을 동아시아 쪽에 두고 있으니, 조금은 사정이 나아 보인다만?”
나오토는 턱도 없다는 듯 헛웃음을 치고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걸로 넘어올 양반이었으면 나 말고도 진작 다른 누군가가 채갔을 거요. 아니, 그 이전에 협상이나 가능한 사람인지 모르겠소. 본인 의사도 물론 중요하지만, 중간에 이야기를 자꾸 끊어 버리려 드는 자들이 있어서 말이오. 딱히 어딘가에 소속된 것 같지는 않은데…”
“뭐, 보나 마나 가로채려 드는 놈들이겠지. 뻔하지 않은가.”
“아니오. 그런 것 같지는 않소. 그랬더라면 어디선가 이야기는 나왔겠지. 이미 정해놓은 팀이 있다고. 한데, 그런 이야기는 들어본 적 없소.”
“간 보는 걸 수도 있지. 그놈이 어디 보통 약아빠진 놈이던가. 잔머리 하나는 아주 비상한 녀석이니, 계속 짱구를 굴려대고 있을 거야. 어떻게 하면 자기 몸값을 더 올릴 수 있을까, 하고. 특히나 녀석은 아직 졸업까지 1년이나 더 남지 않았나.”
“하긴, 클로에가 괜히 여우라고 부르겠소.”
“잠시만, 박성진에 관한 새로운 소식이 올라왔는데… 뭐야, 이게?”
크루거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소식을 접한 다른 이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 어느 곳에도 소속될 의사 없어… ‘박성진’ 팀은 스스로 창단할 것.]
[박성진, 또 한 번 무모한 도전을 시작하다.]
[“제안은 고맙지만, 도움은 필요 없다.” 스폰서 제안조차 모두 거절한 박성진, 정말로 괜찮을까?]
“교활한 게 아니라, 그냥 미친놈일 뿐이었군.”
“작년에도 제안을 거절하긴 했었지만, 그때는 그냥 몸값을 올리는 쇼라고만 생각했소. 상식적으로 이렇다 할 지지 기반도 없는 자가 뱉을 말은 아니었으니 말이오. 올해엔 아무런 반응조차 하지 않길래, 역시나 허풍이라고 여겼소만…”
“결국, 승자는 아무도 없었군요.”
“이걸로 나는 체면치레는 간신히 한 셈이 됐군. 남은 매물 중에선 제롬이 그나마 나은 축에 속하니 말이야. 하지만, 돈 많은 노땅들은 열이 바짝 올랐겠는걸. 이대로 가면 돈은 돈대로, 시간은 시간대로 다 날린 채로 모든 유망주를 놓치게 되는 거니까.”
그 말에, 셋은 너나 할 것 없이 쓴웃음을 지었다.
어디까지나 그 열받은 노땅들의 쓴 소리는 자신들이 들어야 할 몫이었기에.
* * *
내가 한가롭게 연인들과 여유를 만끽하는 동안, 히어로 업계는 한바탕 난리를 치르는 모양이었다.
‘과연 나를 필두로 한 멤버 전원을 차지할 영입 시장 승리자는 누가 될 것이냐’가 화두였는데, 내 입장에선 그저 웃음만 나오는 이야기일 뿐이었다.
난 아무 데도 갈 생각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과열된 분위기를 어느 정도 식힐 필요는 있다고 느꼈기에, 이참에 클로에에게 팀 창단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기로 했다.
“팀을 창단하고 싶다고.”
“네.”
“좋아, 도와줄게.”
클로에는 그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흔쾌히 내 제안을 받아들였다.
심지어 일말의 고민조차 하지 않고 곧장 손에 들려있는 서류를 가져가려 들었다.
이렇게 적극적인 반응을 보이니, 도리어 당황스러운 건 내 쪽이었다.
가벼운 논의 정도는 거칠 줄 알았으니까.
“뭐해? 얼른 서류 안 넘겨주고. 하기 싫어?”
“한 번만 더 재고해보면 안 되겠냐, 뭐 그런 이야기를 하실 줄 알았거든요.”
“내가? 내가 왜 그런 짓을 해?”
“생도들 이야기엔 신중하게 접근하는 편이시잖아요. 그렇다 보니.”
클로에는 늘 생글생글 웃는 편이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그 정도가 심했다.
마치 무척 기쁜 일이라도 있는 것마냥.
당연하지만 그런 클로에의 반응을 이해할 수 없었다.
조금이라도 귀찮은 일거리가 생기는 순간 곧바로 썩어들어가는 게 클로에의 표정이니 말이다.
“뭐, 틀린 말은 아니야. 아직 파릇파릇한 애기들 인생을 벌써 조져놓을 수는 없으니까. 적어도 내 품에 있는 순간까지는 보듬어 줘야지. 하지만, 너는 조금 예외야.”
“제가 미친놈이라서요?”
“아니, 그건 아니야.”
“그러면요?”
“넌 이미 내 품을 떠나간 사람이니까. 다른 아이들은 내 울타리 안에서 누군가는 새장이라고 하겠지만 아무튼, 꿈을 꾸고 있을 때, 넌 진작에 울타리를 넘어 바깥세상으로 나갔잖아? 물론 아직은 여전히 내 학생이지만, 슬슬 보내줄 준비도 해야지.”
클로에는 단순히 빈말로 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평소의 개구쟁이 같던 미소가 아닌, 기특하다는 듯한 미소에서 진심이라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으니까.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클로에의 리더다운 모습이었다.
“고맙습니다.”
“고맙긴, 오히려 내가 고마워해야지.”
“…왜요?”
“네가 빨리 팀을 창단해야 나한테 수작질하는 놈들이 떨어져 나가지. 전화가 하루에 몇십 통씩 걸려와. 그중 3할이 니들에 관한 질문이야. 얼마나 귀찮은지 아니? 따지고 보면 이건 내가 편해지기 위해서 하는 거라고.”
그럼 그렇지.
나랑 비슷한 부류인 이 사람이 웬일로 이렇게 진지해지나 싶었다.
“3할 밖에 안되면 적네요. 그 정도면 감내할만하지 않나요?”
“내가 너처럼 한가한 줄 아니? 오스카한테 짬처리 시킨다는 이미지가 붙어서 그렇지, 나도 바쁜 몸이야.”
“아, 그랬었지. 참.”
“까먹은 척 하지 말고.”
클로에는 툴툴거리면서도 손에 든 서류를 가져가, 재빠르게 서명을 하고 넘겨주었다.
“고맙습니다.”
“고마우면 다음부터 귀찮게 할 일 좀 만들지 마.”
“노력해봅죠.”
“볼 일 다 봤으면 나가.”
슬슬 여기서부터 위험하다는 적신호가 머리에서 들려오고 있었기에, 나는 재빠르게 이사장실을 빠져나갔다.
“…자기가 무슨 서류를 들고 온 지도 모르네. 거기다 사인해준 나도 만만치 않게 미련하고 말이야. 역시 손이 많이 가는 아이들한텐 애착이 생기는 법인가? 물론 대부분은 스스로 이룬 성과란 점을 감안하면, 내가 뭔가 해줬다 할 수준조차 아니지만… 그래도 잘 해나갔으면 좋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