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2화 〉 기사에 내가 나온다고?(2)
* * *
“뭘 어떻게 한 거야? 대부분이 우호적인 기사밖에 안 나오던데.”
“오히려 제가 이사장님한테 묻고 싶은데요. 신문사들이 그걸 어떻게 알았는지.”
이사장실에 들어선 순간, 나와 클로에 간에 팽팽한 기 싸움이 이어졌다.
어지간하면 내가 무슨 짓을 해도 그러려니 하고 넘기는 클로에인데, 이번만큼은 그러지 않는 것으로 보아, 언젠가는 내 콧대를 한 번 눌러주겠노라고 벼르고 있던 모양이었다.
“블레이크가 뒤를 봐줬구나?”
“아뇨?”
“성진아,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한테 그런 거짓말이 통할 것 같니? 솔직하게 대답하자. 솔직하게.”
“…맞아요.”
블레이크 정도 되는 사람이면 걸리지 않고 속여 넘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보다.
미안해, 블레이크.
그나저나, 이 사람은 그걸 또 어떻게 알았대.
“얼마 전에 너한테 익명으로 거액을 후원했던 사람이 블레이크잖아. 그리고, 거짓말을 할 거면 제대로 해야지. 그렇게 얼굴로 ‘어떻게 알았지?’하고 다 드러내 버리면 어떻게 하니?”
“제 후원자가 블레이크란 사실은 어떻게 아신 거예요?”
“그 정도 조사는 나한테 너무 쉽지. 내가 무슨 바지사장 정도로 보이니? 트리니티 아카데미의 이사장 자리를 꾸준히 유지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란다.”
“그래도, 고위 정치인이나 유명 히어로 엿 먹이는 데 도가 튼 걸로 유명한 블레이크니까, 알아차리는 데 좀 걸릴 줄 알았죠. 다른 애들도 몰래몰래 이상한 짓 하고 다니는 데 안 걸리니까.”
“이 화상아, 다 눈감아주는 거지. 정말로 내가 몰라서 그러는 거겠어?”
맹한 얼굴로 괴짜 같은 짓만 해대니, 클로에가 사실은 대단한 사람이었다는 걸 매번 까먹게 된단 말이지.
가끔 지도자스러운 면모를 보여주긴 한다지만, 강경함을 앞세운 카리스마 있는 리더가 아니라, 부드럽고 유한 스타일의 리더에 가까운 탓에, 의식하고 있지 않으면 그냥 동네 아줌마 정도로밖에 느껴지지 않거든.
“아뇨.”
“그래, 시원하게 인정해줘서 고맙구나. 전처럼 말꼬리 잡고 늘어지지 않아서 참 좋네. 발전한 네 모습을 봐서, 이번까진 쌤쌤인 걸로 치고 넘어갈게. 나도 어른답지 못하게 질 나쁜 장난이나 치려고 했던 건 사실이니까.”
“네.”
“대답이 시원찮네. 왜 불완전 연소라는 표정인데?”
“그냥, 떨떠름해서요. 기자들이 제가 한 짓을 어떻게 알았는지는 좀 궁금하거든요.”
“아, 그거? 원래 실습, 그러니까 임무에 투입되는 기간이 되면 많은 기자가 기삿거리로 쓸 임무를 찾으려고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녀. 트리니티 아카데미도 예외는 아니고. 그렇다 보니 우리도 적당히 인상적인 임무 몇 개 정도는 샘플로 보내주곤 하는데, 거기에 네 거를 보냈을 뿐이야.”
‘뭐야, 생각보단 별거 없었네.’
내 입으로 말하긴 조금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내가 좀 유명해야 말이지.
생도 중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 탑 5를 꼽으라 하면 무조건 들어가 있을 걸?
특히나 실전에서 더 강한 스타일로 유명세를 떨친 게 나니까, 실습 기간이라고 분명 내 임무에 관한 자료를 요구한 기자도 있었겠지.
“뭐야, 생각보다 담담하네? 짜증은 낼 줄 알았는데.”
“뭐, 저도 이제 나름 유명하니까요. 이사장님 아니었어도, 누군가는 나중에 그걸 가지고 떠들어 댔을걸요. 매도 미리 맞는 게 낫다고, 미리 맞은 셈 치죠.”
“야, 너 너무 뻔뻔한 거 아냐? 그, 뭐라 그러더라? 월… 어쩌고 하는 병이었는데.”
“월클병 말씀하시는 거죠?”
“그래, 그거. 너 벌써 월클병 걸려서 그런 소리 하고 다니면 안 돼. 사람 일은 모르는 거야. 너라고 영원히 잘 나갈 줄 알아? 올라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한참이지만, 떨어지는 건 한순간이라고. 언제 밑바닥으로 추락할지 몰라.”
“에이, 이 정도는 괜찮아요. 제가 어디 가서 자기 자랑이나 하고 다니는 사람 아닌 거, 아시잖아요.”
난 이 정도로는 자의식 과잉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 실습 영상이 풀린 것만으로도 그렇게 많은 기사가 나갈 정도면, 이 바닥에선 나름 유명한 게 맞다는 소리잖아.
“그래, 지금까지 그런 사고는 안 치고 다녔으니까, 믿어줄게. 근데, 너무 자만하면 안 된다? 나간 기사들 한번 쭉 훑어 봐봐. 너에 관한 기사가 대부분 우호적인 내용일지라도, 그 과정은 분명 위험천만했다고 비판하는 기사도 제법 있으니까.”
“알겠습니다.”
“그래, 어서 가”
♬♪
시끄러운 알람음이 클로에의 컴퓨터로부터 울려대기 시작했다.
클로에는 인상을 찌푸리며 컴퓨터 앞에 앉고는, 나가라는 손짓을 내게 반복했다.
“여보세요.”
“네, 저랑 방금까지 면담하고 있었어요.”
“…알겠습니다. 너무 뭐라고 하진 마시고요. 제가 방금 한 소리해둔 참이니까, 잘 알아들을 거예요.”
어째 느낌이 싸한데.
누구 전화인지는 몰라도,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질 것 같은 기분이야.
빨리 튀어야겠어.
조용히 이사장실을 빠져나가기 직전.
“성진아! 세레나 교수님이 널 찾고 있다는데?”
“네?”
“너한테 할 말이 있다고 하시네. 빨리 가봐.”
“아…”
오늘은 진짜 대가리 깨지는 꼴 보겠네.
하필 다른 사람도 아니고 세레나라니.
“뭘 그렇게 죽상을 하고 있어. 인상 펴. 세레나 교수님도 다 널 아끼니까 그러시는 거야. 내가 적당히 하라고 말해뒀으니까, 괜히 쫄아있지 말고.”
“그분은 적당히라는 걸 모르시는 분인데요.”
“또, 또 말대꾸하지. 요놈아. 적당히를 모르는 건 네가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진 않아.”
“전 그래도 나쁜 짓은 안 하잖아요.”
“됐다. 너한테 이 이상 무슨 소리를 하겠니. 말도 안 듣고, 사고뭉치인 건 확실히 둘 다 똑같긴 하네. 그 스승에 그 제자라고 하여튼, 빨리 가보기나 하렴. 화가 단단히 난 거 같더라.”
“네. 이사장님도 안녕히 계세요.”
“오냐.”
또 무자비한 레슬링 시간이 이어지겠군.
과연 오늘은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 * *
비교적 최근에 알아차린 사실인데, 세레나는 화가 났을 때 모자를 꾹 눌러쓰는 습관이 있다.
다만, 세레나가 다혈질이라곤 해도, 의외로 그 장면을 보기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닌데, 이는 세레나가 화나는 일을 딱히 마음에 담아두는 성격이 아니라는 게 그 이유였다.
그말은 곧, 지금 내가 좋지 못한 상황에 처 해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닫힌 문을 조심스럽게 열자마자 눈에 들어온 게 바로 모자를 꾹 눌러쓴 세레나였으니까.
심지어, 지금 나에게로 천천히 다가오는 중이다!
‘제발 안 아프게 때려줬으면…?’
뭐지, 분명 한 대 맞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세레나는 내게 별다른 위해를 가하지 않았다.
안아주기만 했지.
그마저도 옛날의 그 베어 허그가 아니라, 살포시 안아주는 따스한 포옹이었다.
갑자기 무슨 바람이 들어 이러는 건가 싶어, 세레나의 표정을 살폈다.
모자 아래로 엿볼 수 있었던 감정은, 의외로 분노가 아닌 서운함.
‘화난 게 아니라, 삐진 거였다고? 왜?’
또 위험한 짓이나 하고 싸돌아다닌다고 화난 건 줄 알았는데, 아니었잖아.
그럼, 내게 삐질 만한 이유가 뭐가 있지?
짚이는 구석이 딱히 생각나지 않았다.
“성진아.”
“네?”
“누나가 벌써 싫어졌어?”
“아뇨?”
“그럼, 왜 임무 동행 교수로 내가 아닌 빈센트 교수님을 지목한 건데?”
삐진 이유가 고작 이거였어?
임무에 자기 안 데려가 줘서?
무슨 초등학생이냐고, 가는 곳마다 다 쫄래쫄래 쫓아다니게.
“아니, 작년까진 빈센트 교수님한테 신세 진 것도 있고, 아무래도 교수 짬밥도 있다 보니 좀 더 잘할 것 같다, 싶어서 그런 거죠.”
“누나가 싫어져서 그런 건 아니다, 이거지?”
“당연하죠.”
“그럼, 누나한테 뽀뽀해줘. 아직 좋아한다는 뜻으로.”
“아니, 그건 좀 아니죠. 이야기가 왜 그렇게 되는 건데요? 이건 싫다 좋다는 떠나서, 별개의 문제잖아요.”
“그래서, 하기 싫다? 이래도?”
세레나의 억센 팔이 순식간에 허리를 옥죄어오기 시작했다.
게다가, 여태까지 날 괴롭히면서 힘 조절 하는 방법이라도 깨우쳤는지, 한층 더 진보한 방법으로 내게 고통을 전파시키고 있었다.
전에는 ‘제발 살려줘!’였다면, 이젠 ‘차라리 죽여!’라는 느낌.
딱 죽지 않을 강도로 최대한 고통스럽게 고문하는 방법이 있다면 이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할게요! 할 테니까, 좀!”
“이미 늦었어. 내가 할 거야.”
그렇게, 너무나도 허무하게 세레나의 공격에 구문이 함락당하고 말았다.
사람인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세레나의 베어 허그 때문에, 제대로 된 호흡은 할 수조차 없는 상황인지라, 숨을 고르기 위해선 입을 벌릴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 찰나의 순간마저 놓치지 않는 사람이 세레나기도 했고.
그렇게, 비로소 혀와의 교접이 끝났다고 생각했을 때.
“미안해, 성진아. 한 번만 더 하자.”
세레나의 설육이 또 한 번 내 입안을 유린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그녀의 혀는 무척이나 길어서, 나의 것을 완전히 휘감은 채로도 구강 곳곳을 놓치지 않고 훑어댈 수 있었다.
그렇게, 세레나는 입구에 이르러서부터, 천장과 지하까지, 모든 곳을 정복하고 나서야 날 놓아주었다.
“하아… 이 좋은 걸 지금까지 참고 있었던 나도 진짜 미련했네.”
“누나, 뒷감당은 어떻게 하려고요.”
“네가 나쁜 새끼인데, 무슨 뒷감당? 누나는 설레어서 잠도 못 자는 날도 있었는데, 외면하고 딴짓이나 하러 다녀?”
“그런 이야기가 아니잖아요.”
“그래서, 싫었어?”
당연하지만, 절대 아니라고 대답할 수 없었다.
남자를 잡아먹는 귀신이 있다면 이 사람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천부적인 재능을 보여주었으니까.
물론, 아이나도 천재답게 나날이 일취월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긴 했었지만, 세레나는 아예 궤가 다른 수준이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본능적으로 깨닫는 경지를 넘어, 그 과정 자체 또한 탐미할 줄 알았다.
“…좋았죠.”
“나도 네가 좋아.”
“좋아하시면 그 베어 허그는 좀 안 하셨으면 좋겠는데요.”
“그러니까, 앞으로는 이유가 있더라면, 미리 언질 정도는 주기. 안 그러면 또 화낼 거다?”
짧게 볼에 입을 맞춘 세레나는 한쪽 눈을 찡긋거렸다.
“알겠어요.”
“그래, 그럼 가봐. 그 이야기 들으려고 부른 거였으니까.”
“근데, 누나는 기사 안 봤어요?”
“기사? 아, 너에 관한 것들? 난 별생각 없어. 원래 그랬잖아. 너는.”
세레나는 별 이상한 소리를 다 듣겠다는 표정이었다.
마치,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는 것처럼.
“그리고, 난 네가 그래서 좋은 거라고 이미 몇 번이나 말했는걸.”
참, 나도 운이 억세게 좋은 사람이긴 하네.
자신의 진실한 모습마저 좋아해 주는 사람은 인생에서 한 명을 채 만날까 말까 한 수준이라는 글을 어디서 봤었는데, 난 벌써 세 명이나 만났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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