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0화 〉 인터루드.(3)
* * *
약속했던 장소였던 훈련장으로 오니, 아카데미 측 직원 한 명이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맞이했다.
“박성진 생도, 이쪽으로 오시죠.”
“훈련장에서 진행되는 건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요?”
“이사장님께서 생각을 바꾸셨습니다. 자신이 있어봤자 다른 생도들의 훈련을 방해하는 꼴만 될 테니, 따로 준비해 놓은 장소에서 연습하는 게 낫겠다고.”
“그건 그렇겠네요.”
확실히, 클로에의 개인 교습을 받는 게 밖으로 알려져봤자 좋을 게 없긴 했다.
계기도 그렇고.
차라리 한적한 곳에서 조용히 가르치는 편이 훨씬 낫겠지.
“그런데, 어디로 가는 건가요?”
“교수들이나 T클래스 생도들은 일반적인 훈련장에서 훈련하는 일이 드물다는 건 알고 계시겠죠?”
“네, 당연하죠.”
“이사장님과 학장님이 사용하는 훈련실 또한 따로 있습니다. 그곳으로 가는 거고요.”
직원은 이만하면 충분한 설명이었다는 듯이 다시 앞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 또한 그 이상 궁금한 점은 없었기에, 묵묵히 그의 뒤를 쫓았고.
* * *
“그럼, 저는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수고하세요.”
어지간한 대강당이라 봐도 무방하지 않을 정도의 규모.
그리고 그 넓은 공간을 가득 채울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크기의 훈련실 네 개.
작중에서도 언급되지 않았던 공간이었던 만큼, 신기하게 느껴졌다.
“의외네. 이곳에 대해선 모르고 있었다니. 당연히 알고 있을 줄 알았는데.”
어디선가 느닷없이 나타난 클로에가 천연덕스럽게 말을 걸어오고 있었다.
있으면 있다는 기척이라도 내던가.
마치 놀라기라도 바란 것 마냥 갑자기 뒤에서 튀어나올 건 또 뭐람.
하지만 클로에의 이런 면모는 익히 알고 있었기에, 나는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말투로 응대했다.
“그런가요? 아는 게 더 이상하다고 생각하는데.”
“우리 꼬마 여우는 조금 다르잖니. 일반적인 생도들에겐 굉장히 생소하게 여겨질 일들에는 전혀 놀라지 않으면서, 고작 이런 걸 보고 신기해하고 있으니 조금 새롭게 다가왔을 뿐이야.”
그 설명을 들으니 충분히 그렇게 보일 수 있겠거니, 싶었다.
여태까지 ‘무엇이든 다 알아요’ 같은 태도로 일관하던 녀석이 별것도 아닌 것에 갑자기 모르겠다는 제스처를 취한다면, 그것도 이상할 테지.
“저라고 다 아는 건 아니니까요.”
“그건 그렇다 치고, 일단 훈련 이야기로 넘어가자. 나한텐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거든.”
나는 군소리 없이 그 말을 따랐다.
자신이 맡은 업무조차 오스카에게 떠넘기기 급급한 클로에가 나 같은 일반 생도를 위해 시간을 내어주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었으니까.
“그래서, 뭘 가르치려는 건가요? 대충은 알 것 같지만.”
“네가 가진 마나와 사상력의 성질을 이용하는 방법이지.”
“성질이요?”
“그래, 직접 보는 게 가장 빠를 거야. 훈련실에서 직접 보여줄게.”
왠지 모르게 잔뜩 신나 보이는 표정을 한 클로에를 따라 훈련실로 들어갔다.
그러자, 지금까지는 한 번도 느껴본 적 없었던 완전히 새로운 감각이 온몸을 간질이기 시작했다.
나는 본능적으로 그 낯선 자극의 정체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마나라고.
하지만, 지금까지 내가 접해왔던 마나와는 크게 다르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토록 많은 양의 마나가 한 장소에 존재하는 것은 본 적도 없거니와, 피부를 통해 전해지는 감각조차 특이했으니까.
“이제 마나의 성질이라는 게 뭔지 이해가 가지?”
“그러네요. 부드럽고 따듯해요. 그럼에도 아득하게 멀게만 느껴지는 게, 뭔가 옛날 생각이 나게 만드네요.”
“그게 마나 자체를 사용하는 각성자들의 특징이지. 마나를 사용할 때 고유한 사상력의 성질이 묻어나거든. 단순히 마나를 자원으로 소모하기만 하는 각성자들에게선 나타나지 않는 특징이지.”
“이사장님은 양쪽 모두 아닌가요?”
“그렇긴 하지. 근데 내가 말하고자 하는 요지는, 마나를 다루는 각성자들은 모두 저마다의 성질이 마나에 드러난다는 거야. 내가 아니더라도 느껴봤을걸?”
뭘 말하는 지는 대충 알 것 같다.
니힐리스에게서 새어 나오는 중압감과 한기를 의미하는 것일 테지.
지금까지는 단순히 분위기라고만 생각했는데, 검법을 사용할 때마다 그 기운이 더 강해졌던 걸 떠올리면, 클로에가 말하는 성질 쪽에 더 가깝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었다.
“맞아요. 예전엔 잘 몰랐는데, 말씀해주시니 확실히 알 것 같네요.”
“여기서 한 가지 이상한 점이 느껴지지 않아? 단순히 대기 중에 흩뿌려진 마나 만으로 이렇게 확고한 성질이 느껴지는데, 극단적인 포화 상태나 다름없는 마나글레이브의 검신은 어째서 그러한 성질을 갖지 않는지?”
듣고 보니 그러네.
니힐리스와 검을 겨뤄본 경험이 그렇게 많았던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적다고 말할 수준은 또 아니었다.
허나, 나는 니힐리스의 검에서 그러한 성질 같은 건 전혀 느껴본 적이 없었다.
“이상하긴 하네요.”
“그건 말이지. 마나글레이브의 검신을 만들어내는 렌즈와 프리즘이 성질을 제거하기 때문이야.”
“프리즘과 렌즈를 투과하면서 그러한 성질을 잃게 된다는 말씀이시죠?”
“정확해. 반대로 말하면, 렌즈와 프리즘을 거치지 않은 마나 집합체는 여전히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겠지?”
“그런 것 치고 저는 구시대의 소드 오러 사용자들이 특별한 능력을 갖췄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는데요.”
“당연하지. 그 사람들은 ‘검사’니까. 마나를 다룬다는 것 자체에 포커스를 맞추는 사람들이 아니다 보니, 당연한 거야. 이런 사소한 것의 숙련도를 올릴 만한 여유는 없겠지. 하지만, 너는 근본적으론 검사가 아니잖아.”
빙 돌아오긴 했지만, 결론은 하나였다.
검을 배우긴 했지만, 검사는 아니지 않냐는 것.
확고한 정체성이 없는 나를 정확하게 분석한 평가였다.
니힐리스에게서 검법을 전수받고 있다곤 하나, 나는 검사보단 잡캐 쪽에 가까웠으니까.
“그렇네요.”
“결국, 너는 이렇다 할 특색이 없는 녀석인 거지. 물론 현실은 게임처럼 검사 스킬을 찍는다고 검성이 되고, 마법사 스킬을 찍는다고 대마법사가 되지는 못해. 하지만, 대부분은 희미하게라도 각자 맡은 역할이 있다고. 게임에서 탱커, 딜러, 서포터로 나누듯이.”
“그럼, 저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거죠? 이제라도 스킬을 다시 찍어야 하나요?”
“아니지. 잡캐가 존재하는 RPG의 특징 중 하나가 뭘까?”
“변태들이 많이 한다?”
내 대답이 꽤 웃겼는지, 클로에는 배까지 부여잡고 웃어댔다.
틀딱 중에서도 비할 바가 없는 상틀딱인 클로에가 농담을 이해할 줄은 몰랐는데.
생각보다 젊은 사람들이 즐기는 문화에 대해서 잘 알고 있군.
나이 먹고 할 게 없어지니 게임이라도 시작하게 된 걸까?
아니면, 생도들과 대화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알게 됐나?
어느 쪽이든 소통이 잘 된다는 점은 좋았지만.
아이나나 프리실라는 이런 걸 전혀 이해 못 하니까.
“그래, 맞아. 변태들이 많이 하지. 내가 말하려고 했던 것과 비슷한 맥락이기도 하고. 내가 생각했던 답은 ‘왕귀만 노리고 플레이하는 사람이 많다’야.”
“아무래도 그렇겠죠. 결국 잡캐라는 건 쌔면 뭐든지 다 할 수 있는 캐릭터라는 뜻이니까. 잡캐를 하고 싶어서 왕귀 플레이를 하는 사람도 많고.”
“네가 딱 그 변태에 해당하거든. 스킬 찍은 건 엉망이지, 지금 다시 찍기엔 또 늦었고. 잘못 육성한 캐릭터의 대표 같은 느낌이지.”
“그건 좀 너무하시네요. 제 인생이 망했다는 것처럼 들리잖아요.”
“하지만 사실인걸? 전문적으로 육성한 캐릭터라는 느낌은 절대 안 들잖아. 마치, 게임 초보나 어린 애들이 새로운 스킬만 열렸다 하면 일단 찍어보는 거랑 비슷한 거지. 그러고 나서 나중에 알아보니 잡캐라서 망했다, 같은 느낌?”
완벽한 비유네.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좆대로 키운 건 사실이니까.
하지만, 듣는 나로선 몹시 서글픈 이야기였다.
그래도 적당히 하다가 멈춰줄 줄 알았건만, 내 뒷사정을 모르는 클로에의 신랄한 비판은 그칠 줄 몰랐다.
내 반응을 즐기는 걸로 보아, 어제 놀려댔던 것의 소소한 복수기도 한 모양이었다.
하여간 주책맞은 할망구였다.
“그래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뭡니까? 환생이라도 시켜주시려고요?”
“그건 조금 무리고, 내가 왕귀라도 하게 만들어주겠다, 이 이야기지.”
“어떻게요?”
“우선,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마나와 친화력을 올리는 거지. 네 몸이 마나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성질이 쉽게 발현되지 않거든. 이리 가까이 좀 와 볼래?”
나는 주뼛거리며 클로에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녀가 나의 이마에 손을 댄 순간, 시점이 ‘나’의 시점이 아닌, 제 3자의 시점으로 변화하며, 쓰러지는 나의 몸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놀라기엔 아직 이르렀다.
시야는 금세 원래대로 돌아왔으나, 온몸을 쥐어짜는 듯한 고통이 나를 에워싸기 시작했으니까.
“커흡…!”
“음, 시술은 완벽해, 역시 나, 아직 죽지 않았어!”
대관절 저게 무슨 미친 소리란 말인가.
날 이런 고통 속으로 몰아놓고선.
하지만, 클로에는 내 상황 따윈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듯, 콧노래까지 부르며 하던 일을 계속해 나갔다.
“흥, 흐흥, 이 작업은 되게 오랜만이네.”
그녀가 손가락을 튕기자, 정체 모를 액체가 가득한 욕조가 만들어졌다.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물처럼 보였지만, 포르말린 용액처럼 느껴지는 건 단순히 기분 탓일까.
한 발짝조차 움직이지 못하는 나의 몸뚱이를 질질 끌고 가, 그곳에 빠트리려는 모습은 그렇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자, 이제 이 속에서 한숨 푹 자고 나오는 거야.”
‘역시, 이 년이 제일 미친 년이었어. 절대 수락하면 안 됐는데…’
그 생각을 마지막으로, 내 의식은 이 차디찬 액체 아래로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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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끄무레한 빛이 눈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다.
묘하게 거무죽죽하고 칙칙한 게, 예전에 살던 집의 형광등의 불빛 같아 그리운 감정이 들었다.
드디어 나는 그 요상한 소설 속 세계에서 벗어나, 집으로 돌아온 건가?
그렇다기엔, 나는 이런 누나랑 동거했던 기억 같은 건 없는데.
그래도 왠지 모를 친숙함이 느껴지는 것 때문에, 나는 좀처럼 말을 듣지 않는 몸을 강제로 벌컥 일으켜 세울 수밖에 없었다.
“오, 드디어 일어났다! 나의 실험체가!”
…그럼 그렇지.
돌아갔을 리가 있나.
저 사람은 뭐가 좋다고 저렇게 박수까지 치고 있는 건지 모르겠고.
그래도 인간 표본이 되지 않은 건 참 다행이네 라고 생각한 순간.
“켁! 케헥!”
폐를 가득 채우고 있던 정체불명의 액체가 식도를 타고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 과정도 상당히 괴로운 건 마찬가지였지만, 조금 전에 겪었던 것에 비하면 새 발의 피에 지나지 않는 고통이었다.
“뭐가 어떻게 된 겁니까.”
나는 간신히 그 모든 것을 게워내고 내고는, 마치 공포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케 했던 조금 전의 상황에 관해 물었다.
“최대한 빠르게 네 몸을 마나에 적응시키는 방법을 사용했지. 잠시 영혼을 분리해낸 다음, 빈 육신에 마나를 가득 채워 넣었어. 그다음 다시 영혼을 집어넣었지. 물론 이 과정 중에 상당한 고열과 통증이 수반되기 때문에, 진통제가 들어간 차가운 용액에 담가둔 거야. 아, 이상한 액체는 아니니까 안심해. 퍼플루오로데칼린이라고 부르는, 들어가도 숨을 쉴 수 있는 액체야.”
뭐라는 지 전혀 이해가 안 가는군.
어지러워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이해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더 컸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시도조차 하지 않을 법한 방식을 택한 미친 년의 사고를 알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그래서, 이제 저는 어떻게 된 거죠?”
“그야말로 환골탈태했지. 직접 움직여보라고.”
가볍게 스텝을 밟으며 주먹을 휘둘러보았다,
…이게 말이나 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