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화
“우리는 이제 편집만 하면 될 것 같다.”
도인호를 바라보는 레오의 눈은 그 어느 때보다 안광이 빛나 보였다. 해피엔딩이라. 도인호는 물결치는 글자를 바라보다 호은에게 시선을 돌렸다. 최유빈과 대화가 끝난 건지 상기된 볼의 호은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2팀 만든 걸 보니까 의지가 타오르는 기분이야.”
도인호는 부드럽게 호은의 손을 잡았다.
“다른 팀 것도 보러 갈까요?”
“아 맞다. 한 팀 더 있었지.”
도인호와 함께 훈련장을 빠져나오며 호은은 최유빈과 레오에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 “저희도 영상 나오면 보여 드릴게요!” 호은의 말에 두 사람은 알겠다며 손을 흔들어 줬다.
훈련장에서 나오자 지니가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음팀이 있는 곳으로 안내 도와드리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지니의 뒤를 따라가며 호은은 어째 되돌아가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분들이 설마 회의실에 계신 건가?’
의문 가진 채 지니의 뒤를 따라가자 호은이 예상했던 것처럼 두 사람은 본관 회의실 앞에 멈춰 섰다.
지니는 처음과 마찬가지로 회의실 문 앞에 자리를 조금 비켜 서 있다. 싱긋 웃고 있는 지니를 지나쳐 호은이 회의실 문을 열었다.
문을 열기 전에도 조용했던 내부는 역시나 아무도 없었다. 지니에게 설명이 필요하다는 눈으로 바라보자 그녀가 입을 열었다.
“현재 1팀은 자리에 없어 만나 보실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영상 제작은 완료된 상태라 동의를 구하고 확인할 수 있게 도와드리겠습니다.”
호은과 도인호는 나란히 앉아 지니가 노트북 만지는 걸 기다렸다. 메일함에서 영상을 다운로드받아 재생 버튼을 누른 지니는 자연스럽게 회의실에서 나갔다.
검은 화면이 10초간 있더니 흰색 돋움체의 글씨가 화면 가득 채운다.
‘안녕하세요. 바나나 TV입니다. 오늘은 한 달 전 반정부 에스퍼 타이거에서 정부를 협박해 논란이 일어났던 사건에 아무도 모르셨을 사실에 대해 알려 드리려고 합니다.’
검은색 화면은 증거 자료를 보여 주기라도 하듯 타이거가 영상으로 협박했던 캡처본을 보여 주고 있었다. 심각한 내용과 다르게 성의 없어 보이는 기본 글씨체의 자막이 눈에 거슬린다.
“……반정부는 영상에서 보인 것처럼 현재 5명으로 추정되고 있는데요. 자세한 내용은 아직 정부의 공식 입장을 기다리는 중입니다. 큰 인명 피해는 없었던 사고지만 국민으로서 참 답답하다는 반응입니다. 아무래도 에스퍼는 인간보다 강한 신체와 이능력을 사용할 수 있어 국가 관리가 반드시 필요한 거로 보입니다. 이상 현재 논란 중인 반정부 타이거의 논란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시청해 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무미건조한 목소리는 계속 듣다 보니 사람이 아니라 기계 목소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5분이라는 시간 중 호은이 얻은 정보는 아무것도 없었다. 영상이 끝나 검은색 화면이 되자 도인호와 권호은의 얼굴이 비쳤다.
“허.”
호은이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흘렸다. 호은은 너튜브를 하면서 싫어하는 콘텐츠가 있다면 당연히 현재 보고 있는 영상 콘텐츠라고 말할 것이다.
새로운 사실을 알려 줄 것처럼 제목으로 해 놓고 실제로 내용을 들어 보면 기사나 뉴스에서 찾아볼 수 있는 내용이 전부다. 거기에 목소리랑 사진만 추가로 몇 장 써서 그럴싸하게 영상으로 만드는데 영상을 다 본 뒤 얻은 게 하나도 없어 이럴 거면 혼자 일기장에나 쓰지 굳이 영상으로 제작한 의도가 무엇일까? 라는 궁금증마저 든다.
도인호는 1팀이 똑똑하다 생각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확실히 자신이 처음에 생각했던 계획과 일치한다. 말도 안 되는 콘텐츠를 만들어 채택이 안 되는 거로 가려는. 심지어 목소리도 기계음을 써서 해당 사람을 전혀 특정할 수 없다. 호은이 이런 사실을 알면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탐나는 영상이었다.
한참을 입을 꾹 다물고 있던 호은이 고르고 고른 말을 내뱉기 위해 운을 떼었다.
“1팀이랑 2팀이랑 너무 다르니까 어렵다. 뭐랄까……. 2팀은 되게 열심히 만든 것 같은데 1팀은 성의가 없어 보인다랄까.”
“전 1팀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어? 정말……?”
도인호는 흐트러진 호은의 앞머리를 손으로 정리하며 입을 열었다.
“2팀처럼 콘텐츠를 제작하면…….”
“…….”
“위험해질 것 같아서 싫습니다.”
“그게 무슨……?”
“한 달 동안 대응을 안 하고 있던 정부에서 이런 영상을 올리면 당연히 반정부도 관심을 가질 겁니다. 영상에 대한 흥미가 그 영상을 만든 사람에게 다가갈 수도 있고. 그 안에 가이드가 있다면 반정부의 타깃이 될 확률도 높을 것 같습니다.”
머리카락을 만지던 도인호의 손가락이 조심스럽게 닿을 듯 안 닿을 듯 뺨을 서성이다 이내 감싼다.
“형이 반정부의 타깃이 되는 게 싫, 싫어요.”
일자로 다물어진 도인호의 입술이 오늘따라 고집 있는 아이처럼 보인다. 호은은 도인호의 강한 주장에 당황스러운 마음과 함께 레오와 그의 가이드가 떠올랐다. 우리까지 제대로 영상을 제작하지 않으면 채택되는 건 당연히 2팀이다.
조금 전 도인호와 레오의 대화에서 영상이 채택되면 해당 영상을 올리는 조건으로 최유빈 가이드를 홍보부에서 제외하는 걸 말한다고 했었다. 그 이야기에 대해선 호은도 동의하였다. 임산부가 반정부 소탕 임무에 끼어 있는 건 위험했다.
도인호의 눈은 오로지 자신만을 담고 있었다. 호은은 알 수 있었다. 도인호의 목숨을 살려 준 그 순간 도인호에게 우선순위는 본인이 아닌 권호은이 1순위가 됐다는 걸. 그 사실에 가슴이 답답해지는 기분이다. 만약 도인호가 자기가 위험해질 것 같아 싫다고 했다면 괜찮았을지도 모른다.
“인호야. 일단 내 걱정해 줘서 고마워.”
“…….”
“그런데 나는 내가 반정부의 타깃이 되는 건 무섭지 않아. 오히려 반정부가 지난번처럼 아무 죄 없는 시민을 타깃으로 할까 봐 무섭지.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뭔가가 있다면 최대한 해 보고 싶어.”
호은의 1순위는 자기 자신이 아니다. 호은의 1순위는 도인호가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의 1순위는 지금 당장 눈앞에 있는 무고한 사람의 목숨이다.
알고있는 사실을 다시 자각시켜 주는 그의 모습에 도인호는 그늘진 얼굴을 숨겼다.
“형이 원한다면…….”
생각보다 쉽게 도인호는 허락의 말을 내뱉었다. 호은이 자신을 버리고 남을 선택할 거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권호은은 그런 사람이다. 눈앞에 있는 남자에게 구원받은 도인호가 그 사실을 모를 리 없다.
“나는 따라갈 거예요.”
“……고맙다.”
“어떤 걸 찍고 싶은데요?”
“나는 대한민국 시민들에게 에스퍼와 가이드에 대해 정말 잘 알려 주고 싶어. 지난번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시민이 도망도 못 치고 인질이 되는 그런 상황이 안 오게 말이야.”
조금 전과 다르게 호은의 두 눈동자가 반짝인다. 저 반짝임을 가장 먼저 눈치챈 건 도인호 자신이다. 나만 알 수 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조만간 호은의 저 눈을 모두가 알게 되겠지. 도인호는 입 안쪽 살을 씹었다.
“내 생각은 처음이랑 같아. 가이드 공단과 에스퍼 협회의 직원들을 찍고 싶어.”
도인호는 테이블에 마련된 수첩과 볼펜을 가운데로 가져왔다.
“구체적으로 콘셉트를 정해 볼까요.”
“좋아!”
회의실은 노트북 타이핑 소리와 볼펜이 종이에 닿는 소리가 어우러져 소음이 쌓이기 시작했다.
밖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지니는 입꼬리를 올리며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3팀 콘텐츠 회의 정해졌습니다.”
***
호은의 주도하에 촬영 구성안이 나오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할 가이드 공단은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 건지 그리고 에스퍼와 가이드는 어떻게 함께 일하는지를 우선으로 보여 주려고 한다.
호은은 볼펜으로 테이블을 두드리다 앓는 소리를 냈다.
“문제는 나도 가이딩을 해 주는 거 말고는 가이드가 무슨 일하는지 모르겠단 말이지.”
인턴 기간 중 사고를 당해 한 달간 의식불명이었기에 기존에 배웠던 가이드 지식마저 사라진 기분이다. 퇴원 직전 호수와 개인 면담이 있었으나 미뤄지게 되어 현재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근무……. 덕분에 깨끗하게 비어 상쾌하기까지 한 머릿속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인턴 동기들에게 물어보는 건 어떨까요.”
“동기?”
“내근직으로 일하는 가이드는 가이딩 외로도 하는 업무가 있습니다. 꼭 형의 모습을 촬영할 필요는 없으니 다른 사람이 일하는 걸 보여 줘도 괜찮지 않을까요?”
평소 말을 더듬다가도 도인호는 자기가 말하고 싶은 것만큼은 정확하게 전달했다. 충분히 일리 있는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호은은 아직 가이드 공단과 이능력자 협회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다.
사람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처음 구성한 것처럼 두 사람이 영상에 나와 일하는 모습은 정보에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도인호의 말처럼 실제로 일하는 사람의 모습을 촬영으로 담는 것이 더 목적에 부합한다.
홍보부 신입의 직장인 브이로그 형식으로 가서 초반에는 영상을 보는 시청자와 같이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호은의 모습을 담는다. 그리고 멘토의 등장.
가이드와 에스퍼는 무슨 일을 하는 걸까? 왜 그 두 사람은 같이 일해야 하는 걸까? 시청자의 궁금증을 멘토가 풀어 주는 거다.
“그러면 가이드는 동기에게 도와 달라고 하고, 혹시 에스퍼 쪽도 다른 사람을 구해야 할까?”
공책 모서리에는 현장 참여라 적혀 있었다. 호은은 인턴 신분이라 그동안 현장 참여 제외 대상이었다. 지난번 몰래 참여했던 현장은 반정부에게 맞았던 기억밖에 없었으나 여전히 현장에 대한 궁금증은 남아 있었다.
“입사한 지 한 달이 넘었는데도 에스퍼가 무슨 일하는지 모르겠어. 무슨 일을 하길래 그렇게 다쳐 오는 거야……?”
자연스럽게 말하려던 호은의 목소리는 뒤끝이 갈라졌다.
피 냄새가 방 안을 채운다. 바닥은 붉은 피로 얼룩져 있다. 시선을 올리지 도인호의 복부가 피로 가득 젖는다. 이 모든 건 기억의 일부다. 도인호는 다치지 않았고 이 방 어디에도 피는 없었지만, 기억은 하나의 트라우마가 되어 호은의 머릿속을 배회했다.
“손 줘 봐.”
말 잘 듣는 강아지처럼 도인호가 손을 내민다. 호은은 거친 손을 마주 잡았다. 호은이 가이드라는 것을 의식하고 가이딩했던 에스퍼는 도인호가 처음이다.
‘그때 나는 진심으로 너를 도와주고 싶었어.’
차마 도인호의 앞에서 말할 수 없는 단어들을 삼켰다.
“에스퍼 등급에 따라 현장은 다릅니다.”
한참을 머뭇거리다 도인호가 대답했다. 직접 가이딩은 가이드의 감정을 공유한다. 호은의 불안함과 슬픔이 자신에게 전해졌다.
호은의 앞에서 크게 다친 모습을 보여 준 적이 없는 것 같은데 마치 어떤 현장을 나가는지 아는 것만 같은 불안감이었다.
호은이 궁금해하는 것이 모든 에스퍼가 위험한 현장 일을 하는 건지. 아니면 자신이 나가는 현장이 유독 위험한 건지 묻는다면 도인호의 대답은 호은을 슬프게 만들 것만 같았다.
“현장은 최대한 쉬운 쪽으로 찾겠습니다.”
대답을 회피한 도인호를 보며 호은은 더 묻지 않고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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