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1. 좀 뒈져라! 좀!
해가 저물었다.
안천길은 어금니를 빠드득 갈았다.
오늘 하루 얼마나 이를 갈았는지 턱이 다 아플 지경이다.
정말이지 기절초풍할 노릇이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세상에 천운을 타고 태어난 자가 정말 있는 것인가?
그럴 리가!
천운을 타고 태어난 놈이 대살성의 아들일 리가 없지 않나?
아니지. 실제로 그 아비가 대살성이 아니었으니, 그건 다른 문제겠다.
어쨌거나 남궁천은 오늘 하루 기적을 만들고 있었다.
물론 남궁천 스스로는 그 사실을 전혀 인지 못 하겠지만.
‘이건 정말 말도 안 돼!’
지금쯤 남궁천은 싸늘한 주검이 되어 있었어야 했다.
한데 남궁천은 저렇듯 멀쩡하게 저잣거리를 걷고 있었다.
‘저 쳐 죽일 놈이…… 죽지도 않고…… 좀 뒈져라! 제발 좀!’
안천길은 주술이라도 걸 듯 시뻘게진 눈으로 남궁천의 등을 노려보았다.
오늘 하루 남궁천은 인생의 모든 운을 쏟아붓는 것만 같았다.
독침을 실패한 후, 살곡은 약속대로 재차 남궁천을 노렸다.
사람이 빽빽하게 많은 대로에서 인파에 뒤섞인 채로 걷다가 남궁천 곁으로 다가가 쥐도 새도 모르게 목을 그어버리는 작전이었다.
물론 남궁천 같은 고수를 근접전으로 죽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살수는 오로지 죽이는 임무에 특화된 자들이다.
기척도 없이 은밀히 다가가서 느닷없이 노린다면 가능성이 없진 않았다.
그렇게 살수가 남궁천 곁으로 다가갔을 때였다.
유독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대로였기 때문에 누군가 떠밀려서 남궁천 곁으로 다가간다고 해서 이상할 것도 없었다.
그런데 하필 그때 사두마차가 나타나더니 살수를 향해 질주하는 게 아닌가?
그 바람에 살수가 얼른 몸을 피하면서 남궁천을 암살하는 것에 실패하고 말았다.
살수들은 살행을 시도할 때 모든 계산을 끝마친 상태에서 하기 때문에 한 번 실패하면 곧바로 다시 시도하지 않는 법이다.
그런데 이렇게 큰 변수가 생겼으니 두 번째 암살도 실패라고 봐야 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후 살수들은 행인으로 변장한 다음 좁은 골목에서 완벽하게 남궁천을 포위한 후 공격하려고 했다.
그런데 웬걸?
갑자기 우리를 탈출한 개새끼들이 미쳐 날뛰며 골목으로 몰려드는 게 아닌가?
컹컹! 컹!
고막이 떨어지도록 짖어대며 미쳐 날뛰는 개새끼들 때문에 살행은커녕 하마터면 살수들이 미친개에게 물어뜯길 뻔했다.
믿어지는가?
조용하고 으슥하던 골목이 삽시간에 개판이 된 거다.
그래서 어떻게 됐냐고?
당연히 개장수들이 들이닥쳐서 달아나는 개새끼들을 잡느라 난리를 쳤고, 그걸 구경하는 사람들로 빼곡해지는 바람에 살수들은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부터 안천길은 남궁천이 정말 천운을 타고 태어난 건 아닌지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미신이라도 생길 지경이 아닌가?
하늘이 보호하는 개새끼를 잘못 건드렸다간 어떤 화를 당할지 알 수 없는 것 아니겠나?
이후에도 암살은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호숫가를 거닐고 있을 때, 수중에서 대롱을 입에 문 채로 기회를 엿보던 살수들은 갑자기 들이닥친 선박 때문에 실패했고, 남궁천이 점심을 먹고 늘 가던 측간을 노렸던 살수는 하필 지붕이 무너져서 실패했다.
잠시 들른 도박장에서는 남궁천이 거금을 따는 바람에 만인의 이목을 집중받아서 실패했고, 한적한 사당에서 기회를 엿보던 살수는 느닷없이 시작된 공사 때문에 실패했다.
만약 이 모든 이야기를 부곡주로부터 전해 들었다면 어땠을까?
절대 믿지 못했을 거다.
안천길이 두 눈으로 보면서도 믿지 못할 지경이었으니까.
한데 실제로 그런 일이 버젓이 일어나고 있으니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 아니겠나?
“남궁천 그놈은 천운을 타고난 녀석 같았소.”
천운이라니!
설령 천운이라고 하더라도 상관없다.
천운을 타고난 자는 불사신이라도 된단 말인가?
마침내 저녁을 먹은 남궁천이 주루에 들렀다.
물론, 저녁을 먹을 때도 점소이로 위장한 살수가 암살을 시도할라 치면 손님들이 자꾸 불러대는 통에 실패하고 말았다.
주루 이 층에서 화주를 한 병 시킨 남궁천이 저잣거리를 내려다보며 술과 음식을 기다렸다.
안천길은 남궁천이 바로 보이는 맞은편 객잔으로 들어가서 눈을 가늘게 뜨고는 동태를 살폈다.
이제 마지막 암살 시도였다.
정확히 열 번째 암살 시도다.
첫 살행 이후로 반시진에 한 번씩은 시도한 셈이었다.
이만하면 살곡도 할 만큼 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래도 이번에는 제발……!’
안천길이 주먹을 꾹 말아 쥐며 맞은편 전각에 앉은 남궁천을 노려보았다.
자칫 살기가 일어날까 봐 조심하고 또 조심했다.
마침내 점소이가 다가와 술과 음식을 내어주었다.
이른 저녁이어서 그런지 주루에는 손님이 거의 없었다.
특히 이 층에는 남궁천 혼자뿐이었다.
암살을 시도하기에는 더 없이 좋은 기회!
점소이로 위장한 살수가 남궁천에게 화주를 권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나리, 혼자 오신 것 같으니 제가 한 잔 따라 드리겠습니다요!”
“좋지.”
남궁천이 기분 좋게 술잔을 들어 올렸다.
맞은편에서 지켜보던 안천길이 손에 땀이 나도록 주먹을 말아 쥐었다.
저 화주에는 맹독이 들어 있었다.
남궁천이 화주를 들이켜기만 하면 즉각적인 반응이 올 것이다.
그때 점소이는 완벽을 기하기 위한 암살을 시도할 것이다. 탁자에 놓인 젓가락으로 남궁천의 목을 찌를 것이기에.
꼴꼴꼴…….
점소이가 술잔을 채운다.
은밀히 지켜보던 안천길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이번에는 제발……!’
그런데 돌연 남궁천이 고개를 들고 이쪽을 휙 돌아보는 게 아닌가?
‘헛!’
헛바람을 삼킨 안천길이 얼른 방갓을 눌러쓰며 고개를 돌렸다. 심장이 가슴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뛰었다.
‘제길, 들켰나? 안 들켰나?’
방갓을 눌러쓴 채 술잔을 집어 드는데 마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불쑥 들려왔다.
“어어? 호법당주님 아니십니까?”
염병할.
들켰다.
안천길이 얼른 당황스러운 마음을 추스르고 애써 웃으며 방갓을 밀어 올렸다.
“으음? 이게 누구시오? 적랑단주 아니시오?”
“예, 접니다. 하하! 이렇게 뵙는군요. 그런데 거기서 술을 드시는군요. 그 집보단 여기가 안주가 더 낫던데, 합석하시겠습니까?”
“허허, 난 괜찮소.”
“그렇습니까? 아쉽지만 그럼 다음 기회에 함께 술 한잔 나누지요.”
그래, 네놈 제사상에서 한잔 나누도록 하지!
안천길이 속내를 접으며 공허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럽시다.”
“예, 그럼 좀 멀지만 건배라도 할까요?”
“좋소.”
안천길이 싱긋 웃으며 술잔을 들어 보였다.
남궁천이 마주 웃으며 술잔을 들었다.
두근두근.
그러는 사이 점소이가 은밀히 젓가락을 챙겨 드는 게 보인다.
‘남궁천, 너는 이제 끝이다!’
안천길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화주를 들이켰다. 남궁천 역시 화주를 들이켜…… 야 하는데…….
“음? 이게 뭐야?”
남궁천이 술잔을 보면서 눈살을 찌푸리지 않는가?
왜! 또 뭐가 문젠데!
안천길은 정말이지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칠 뻔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남궁천이 술잔을 보며 푸념하듯 말했다.
“날파리 놈이 술 한잔하고 싶어서 빠져 죽었구나. 첫잔을 날파리와 함께할 수는 없지.”
말을 마친 남궁천이 술잔에 담긴 술을 휙 버리는 게 아닌가?
“저, 저……!”
안천길이 당황해서 더듬거리자, 남궁천이 의아한 표정으로 돌아보았다.
“음? 왜 그러십니까? 당주님?”
“커흠흠! 아, 아닐세. 술이 아깝다는 생각에.”
“하하. 당주님도 어지간한 애주가셨군요. 이런. 첫 잔을 건배하고 함께 마시려고 했는데, 다시 한잔하지요.”
“그, 그러세.”
다행히 남궁천이 술병을 통째로 바꿔 오라는 진상을 부리지는 않았다.
다시 술을 채운 두 사람이 허공으로 술잔을 들어 올렸다. 남궁천이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
“무림맹의 번영을 위하여.”
‘흥! 너의 죽음을…….’
“위하여!”
안천길이 답례를 하는 것과 동시에 다시 화주를 들이켰다. 뜨끈한 술기운이 식도를 타고 위장까지 흘러 들어간다.
그런데…….
‘아니 넌 또 왜 안 처먹은 거냐고!’
남궁천이 술잔을 든 채로 고개를 갸웃거리는 게 아닌가?
정말이지 벌떡 일어나서 남궁천의 아가리를 벌리고 술을 처넣고 싶은 심정이 굴뚝이었다.
‘왜! 왜 안 처먹는 거냐? 또 왜!’
안천길이 눈알을 부라리는데, 남궁천이 점소이를 빤히 보며 물었다.
“왜 안 가고?”
“예?”
“아니, 왜 계속 여기 서 있냐고. 뭐, 철전 한 닢이라도 던져줘?”
“아! 헤헤. 그게 아니라 이 화주가 좀 특별해서 주인장님이 손님 반응을 봐달라고 하셔서. 헤헤.”
점소이가 뒤통수를 긁적이며 어색하게 웃자, 남궁천이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그 느긋한 모습에 속이 타들어 가는 안천길이 참지 못하고 술병을 들어 통째로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어어? 당주님. 술이 많이 고프셨나 봅니다. 건배하면서 천천히 드시죠?”
아직 한 잔도 처먹지 않은 네가 할 소리냐!
고함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안천길이 애써 웃으며 답했다.
“적랑단주는 술을 몹시 천천히 마시는구려.”
“아, 이거 참 죄송합니다. 이젠 정말 마셔야죠. 그럼 건배를…….”
“아니, 그냥 좀 처……!”
“예?”
발끈해서 소리치던 안천길이 남궁천의 반응에 흠칫거렸다.
“커흠! 그냥…… 처음처럼 다시 건배를 하는 게 너무 좋다는 뜻이었소.”
“역시 그렇죠. 술은 언제나 처음처럼.”
마침내 두 사람이 다시 술잔을 들어 올렸다.
벌써 세 번째.
안천길이 신경질적으로 술잔을 입에 털어 넣고는 남궁천을 휙 돌아보았다.
이번에는 남궁천도 술잔을 입으로 가져가더니 단숨에 털어 넣었다.
‘드디어 마셨다!’
안천길은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만세를 부를 뻔했다.
‘자, 이제 반응이 오겠지!’
안천길이 벌겋게 물든 눈으로 남궁천을 빤히 노려보았다.
남궁천이 한차례 몸을 떨더니 입을 열었다.
“크으으! 좋다! 그럼 안주를…… 헛!”
순간 남궁천의 표정이 심각하게 굳었다.
안천길이 내심 쾌재를 불렀다.
‘왔구나! 드디어! 뒈져라, 남궁천!’
마침 살수도 젓가락을 돌려 쥐고는 천천히 남궁천에게 접근해 갔다. 그리고 일격을 날리려는 순간!
“내 젓가락이 어디 있지?”
순간 움찔거린 점소이가 얼른 젓가락을 들어 보이더니 육전 하나를 집어 들어 남궁천에게 내밀었다.
“여기 안주 드시지요, 나리.”
“뭘, 이렇게까지.”
남궁천이 싱글싱글 웃으면서 안주를 받아먹는 게 아닌가?
안천길은 머리꼭지가 돌아 버리기 직전이었다.
‘아니, 뭐 저런……!’
도대체 저게 뭔가?
맹독이라며?
젓가락으로 목을 따야 하는데 저러면…… 안 되는 건데?
안천길이 좌불안석이 되었지만, 남궁천은 태연히 술을 마셔갔다.
놀랍게도 술 한 병을 거의 다 비울 때까지 남궁천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애초에 중독 증세가 나타나지 않으니 젓가락으로 목을 따는 건 시도조차 할 수 없었다.
결국 술을 거하게 마신 남궁천이 기분 좋게 주루를 나설 때까지 그 어떠한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쾅!
탁자를 거칠게 내려친 안천길이 벌떡 일어나서 건너편 주루로 달려갔다.
마침 점소이가 자리를 정리하고 있었기에 안천길은 다짜고짜 점소이의 멱살부터 잡아 올렸다.
“커억! 이게 무슨 짓이오?”
“이런 개 같은 놈들! 날 속여? 뭐? 맹독을 탔어? 맹독을 처먹은 새끼가 저렇게 기분 좋게 걸어 나간다고?”
“분명히 풀었소! 그런데 독이 통하지 않는 걸 나보고 어쩌란 말이오!”
“말이 되는 소리를 해! 그럼 남궁천이 만독불침이라도 된단 말이더냐!”
“그런 것 같소.”
“허! 천운을 타고 태어나서 하늘이 돕는 것도 모자라서 이젠 만독불침지체라고? 지금 나하고 장난하는가!”
“사실인 걸 어쩌란 말이오?”
“닥쳐라! 네놈들이 날 속인 걸 모를 줄 알고? 독을 주랬지, 누가 이딴 술을 주랬나? 내 직접 확인해 보지!”
화도 잔뜩 난 상태인 데다 독한 화주를 연거푸 마셔 취기도 오른 안천길이었기에 앞뒤 생각할 것도 없이 술병을 집어 들더니 그대로 나발을 불었다.
“어어?”
살수가 당황해서 말리려고 했지만, 이미 뜨끈한 화주가 안천길의 식도를 타고 꿀꺽꿀꺽 넘어가고 있었다.
“제기랄! 맛만 좋구나! 이러고도 네놈들이 날 속이…… 어……? 흡! 크읍!”
순간 안천길은 속이 뒤집어질 듯한 통증에 가슴께를 움켜쥐고는 그대로 쓰러졌다.
“끄으으윽!”
눈이 뒤집히고 입에서 거품이 나오기 시작했다.
점소이가 혀를 차며 품에서 해독제를 꺼냈다.
“글세, 진짜 독이라니까 왜 사람 말을 못 믿어서는…… 쯧.”
“얼, 얼른…… 해독…… 크읍! 해독제를……!”
“이거 비싼 거요.”
“어서! 빨리 해독…… 끄으으윽!”
“오백만 냥이오.”
“알았으니까…… 어서…….”
살수가 한숨을 푹 내쉬고는 안천길 앞에 쪼그려 앉았다.
“거, 손이 많이 가는 사람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