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1. 건드리면 안 되는 것들
“대, 대가리를 박아?”
천무류가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되묻자, 남궁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설마 멀쩡한 사람을 천살성으로 몰아놓고 사과 한마디로 땡 치려는 건 아니죠?”
“허! 그래도 남궁세가 소가주라고 들었는데 어찌 내뱉는 말투가 그리도 천박한…….”
“말이 천박한 게 차라리 낫죠.”
“뭐라?”
“말투야 상황에 따라 격식을 갖추면 그만이라고요. 하지만 사람을 억울하게 몰아가는 건? 더구나 천살성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씌우는 건 어떨까요? 한 사람 매장하는 건 일도 아니겠죠. 무림공적이 되는 건 물론이요, 평생 낙인이 찍혀 인간 대접도 받지 못할 거예요.”
“그래서 자네가 천살성이 아니라는 증거가 있단 건가?”
“이것 보세요, 선배. 증명이라는 건 밝히려는 쪽에서 하는 겁니다. 제가 천살성이라고 생각한다면서요? 그럼 그걸 밝힐 증거를 그쪽에서 찾아야죠.”
“네놈은 살곡주가 아니더……!”
“살곡주는 천살성입니까? 그럼 전대 살곡주도 천살성입니까?”
“말장난을 하는군.”
“이렇게 말이 안 통하다니. 아무튼 내가 천살성이 아니면 대가리 박고 사죄하세요.”
“허! 오냐, 어디 한번 지켜보자. 무릇 살성이란 감춘다고 숨겨지는 것이 아닐 터니.”
“해보시죠.”
남궁천이 씨익 웃더니 검집에서 벽라검을 뽑아 들었다.
입을 꽉 다문 천무류가 단전에서부터 예안기공을 끌어 올리기 시작했다.
우우우우우웅.
칼날처럼 예리한 기운이 천무류의 전신을 휘어감는 듯하다. 눈빛은 냉엄하게 가라앉았고, 매처럼 빛났다.
‘과연. 유현이 이 기운에 당한 건가?’
확실히 그저 의지를 담은 살기와는 또 다른 기운이다.
목숨을 위협할 것만 같은 압도적인 기운은 아니지만, 등골이 오싹해질 정도로 예리하고 섬세한 기운이다.
특히 유현처럼 예민한 성격을 가진 자라면 이러한 기운을 오롯이 감당해 내기가 쉽지 않았으리라.
그래도 그만하면 잘 버틴 거다.
어지간한 고수라도 이런 예기를 온몸으로 받는다면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어려워질 테니까.
이러한 분위기는 관중석에도 전달이 되었는지, 웅성임이 급격히 잦아들면서 모두들 조용히 비무에만 집중하기 시작했다.
천무류가 눈을 가늘게 뜨다가 말했다.
“선공을 양보하지.”
“괜찮겠어요?”
“비록 자네가 천살성을 지녔더라도 내게는 까마득한 후배. 보는 눈도 많으니 선공을 양보하겠네. 하나 결코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을 걸세.”
“그러죠.”
남궁천이 가볍게 대답을 하고는 천천히 기수식을 취해갔다.
꿀꺽.
지켜보는 관중들이 저마다 마른침을 삼켰다.
다음 순간!
파밧!
촤라라라라라라!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암기가 하늘을 수놓았다. 흰색으로 칠해져 있었기에 흩날리는 눈발과 구분이 되지 않을 지경이었다.
‘이건…… 만천화우!’
천무류는 곧바로 남궁천의 암기술을 파악했다.
파아아앙!
일순 천무류의 전신에서 강렬한 기풍이 불어나갔다.
하지만 만천화우는 사천당가의 최고 절기 중 하나다.
기풍만으로 만천화우를 모두 튕겨낼 수는 없었다.
후우우우웅!
곧이어 천무류의 전신에서 강맹한 기운이 막을 형성하며 일어났다.
호신강기다.
투타타타타탕!
수십 개의 암기가 철판에 콩을 볶는 듯한 소리를 울리며 호신강기에 부딪쳤다.
쒸쒸에에엑!
그사이에 남궁천이 다시 비수 두 자루를 날렸다.
가장 기본에 충실한 암기술.
곧게 뻗어나간 한 자루의 비수가 호신강기를 깨뜨렸다.
콰차앙!
마치 술병이 깨지는 것처럼 요란한 소리가 울린다.
바로 뒤를 쫓던 비수는 천무류의 일장에 튕겨 날아갔다.
파아앙!
타다닷!
하지만 남궁천의 공격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쏜 화살처럼 달려 나간 남궁천이 그대로 벽라검을 내질러 갔다.
쒸아아아앙!
파공성을 터뜨리며 날아가는 벽라검이 그대로 천무류의 심장을 노렸다.
하나 찰나지간에 천무류는 궁을 꺼내 들고는 곧장 시위를 당겼다.
놀라운 것은 화살을 재우지 않았다는 것이다.
맨손으로 시위를 당기니 시간은 훨씬 단축될 수밖에 없었다.
남궁천이 달려들면서도 눈을 부릅떴다.
‘오로지 공력으로만?’
패애애애앵!
남궁천이 얼른 몸을 젖히자 날카롭게 다듬어진 공력이 화살처럼 날아오면서 남궁천의 어깨를 스쳤다.
스핏!
잘려 나간 머리카락 몇 올이 하늘하늘 떨어진다.
츠츠츠츠츠츳!
바닥을 미끄러지며 반원을 그린 남궁천이 그대로 발끝을 툭 찍으며 날아올랐다.
후우우웅!
벽라검을 치켜올리자 주변의 공기가 푸른빛으로 일렁인다.
창벽공을 운기하는 것과 동시에 공창낙조를 펼치자 푸른 하늘이 곧 노을빛으로 물드는 것만 같다.
쒸아아아앙!
천무류는 혜성처럼 떨어져 내리는 남궁천을 보고는 눈살을 가늘게 여미더니 다시 시위를 당겼다.
곧이어 검지와 중지로 당긴 시위를 검지부터 차례로 놓았다.
투투웅!
두 번의 울림 끝에 날카롭게 다듬어진 기운이 곧게 뻗어간다.
쒸쒸에에엑!
이번에도 화살은 없다.
오로지 시위를 당겨서 공력을 튕겨내는 방식이다. 패력궁 천무류의 독문무공으로 패기궁(霸氣弓)이라는 궁법이었다.
그중에서도 지금 사용한 것은 패기이시(霸氣二矢)!
따따아앙!
강맹한 기운과 부딪치자 벽라검이 금속성을 울리면서 튕긴다.
파라라라라!
남궁천이 그 반동을 이용해 이화접목의 술법을 펼쳐 몸을 빠르게 회전했다.
단전에서 솟구친 공력은 그대로 기세를 이어가면서 섬전십삼검뢰의 제삼초식인 풍운낙뢰검(風雲落雷劍)을 펼쳤다.
짜르르르릉!
공기가 흔들리면서 굉음이 울린다.
검이 횡으로 휘저어지자 광풍이 휘몰아친다. 동시에 하늘에서는 강기의 벽력이 떨어진다.
콰창!
떨어진 강기가 바닥의 대리석을 산산조각 냈다.
무연회 때처럼 일부러 약한 바닥을 설치한 것도 아니다.
강호 무림 고수들이 대결하는 장인 만큼 단단한 대리석 바닥을 깔았다.
그럼에도 대리석이 목판처럼 갈라지고 부서진다.
튀어오른 파편은 강기의 태풍에 휩쓸려 천무류를 향해 돌진했다.
섬전십삼검뢰가 무서운 건 바로 이러한 부분이다.
단 하나의 초식을 펼치는데, 세 가지 공격이 발생한다.
지금 펼친 풍운낙뢰검의 경우에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강기, 횡으로 베어 들어오는 검신, 그리고 바닥에서 튀어올라 풍운에 휩쓸리듯 날아드는 파편까지!
콰아아아아아!
그야말로 엄청난 소용돌이를 몰고 덤벼드는 듯하다.
천무류도 내심 탄복했다.
‘과연 공력을 다루는 솜씨가 보통이아니구나!’
초견파공안의 재능이 이토록 무섭다는 것을 새삼 실감하는 그였다.
자신이 날려 보내는 패기이시를 튕겨내면서 그 힘을 역이용해 이렇듯 어마어마한 검초를 펼칠 줄이야.
하나 그는 당황하지 않았다.
대신 재빨리 바닥을 차고 물러나면서 하늘을 향해 시위를 당겼다.
이번에는 손가락 네 개를 넓게 펼쳐서 걸어 당겼다.
투우우웅!
시위가 공기를 때리는 소리가 울리면서 폭넓은 기운이 천중으로 솟구쳤다.
파파파파파파앙!
허공에서 강기가 부딪치면서 마구 터져 나간다.
천무류의 독문무공인 광폭공시(廣幅功矢)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낙뢰강기를 일시에 파훼해 버린 천무류가 그대로 바닥을 차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파앙!
대리석 바닥이 튕겨 나가는 것과 동시에 그의 신형이 화살처럼 날아갔다.
투타타타타탕!
그가 활을 칼처럼 휘두르자 날아들던 대리석 파편이 속절없이 튕겨나갔다.
곧이어 검이 베어 들어오는 순간,
휘리리릭!
궁을 회전하더니 벽라검의 검신을 시위로 얽어매는 게 아닌가?
놀랍게도 시위가 검신에도 잘리지 않았다.
특수 제작된 은잠사로 만든 게 틀림없었다.
파박!
졸지에 남궁천과 패력궁이 바짝 붙었다.
“노부가 근접전에는 약할 것이라 생각한 것인가?”
“솔직히 멀리 떨어져서 싸우는 것보단 낫다고 생각했죠.”
“하면 지금은 어떤가?”
“역시 패력궁이시네요. 저는 어떻습니까? 여전히 천살성 같은가요?”
“흥! 그건 아직 모를 일이지!”
퍼어엉!
일순 두 사람이 일장을 뻗어내면서 손바닥이 부딪치자 폭기가 터지며 주르륵 멀어졌다.
시위에 얽매여 있던 벽라검 탓에 남궁천의 신형이 팽이처럼 팽그르르 돌았다.
천무류는 여유를 두지 않고, 곧장 시위를 당겼다.
패애앵!
다시 한번 보이지 않는 화살이 남궁천을 향해 뻗어갔다.
“헛!”
남궁천이 헛바람을 삼키는 것과 동시에 금리도천파의 술법으로 몸을 튕겼다.
파밧!
정말이지 잉어 한 마리가 몸을 뒤틀며 뛰어오르는 듯한 모습이었다.
간발의 차이로 패력궁이 쏜 기의 화살이 남궁천의 옷깃을 스치며 지나갔다.
쒜에에엑, 콰앙!
강기의 화살이 그대로 대연무장 벽을 때렸다.
쿠르르르르.
벽의 파편이 무너지는 사이, 이번에는 남궁천이 바닥을 차며 쏜 화살처럼 날아갔다.
“정작 아버지는 추격도 하지 않으셨으면서 왜 저한테만 이렇게 모질게 대합니까?”
쒸에에엑!
천무류는 대답 대신 다시 시위를 당겼다.
순간 남궁천의 눈동자가 커졌다.
‘진짜 화살!’
그렇다.
이번에는 천무류가 등에 매고 있던 화살을 뽑아 들고 시위에 걸어 당긴 것!
위기감을 느낀 남궁천이 반사적으로 운공법을 바꿔 창벽검의 증기막하(蒸氣膜霞) 초식을 펼쳤다.
동시에 천무류의 손에서도 화살이 떠나갔다.
패애애앵, 쒸에에에엑!
후아아아앙!
화살이 날아드는 곳으로 노을빛 기운이 퍼져 나갔다.
후우우웅!
쩌어어엉!
노을빛 기운을 뚫고 들어온 화살이 그대로 남궁천의 검신에 부딪치며 금속성을 터뜨렸다.
“크읏!”
손바닥이 찢어질 것만 같은 힘에 남궁천이 신음을 삼키며 두 다리에 힘을 실었다.
콰가가가가가각!
대리석 바닥에 발자국이 새겨지면서 남궁천이 뒤로 수여 장이나 밀려갔다.
츠츠츠츳!
마침내 남궁천이 멈춰 섰을 때는 뒤꿈치가 비무대 밖으로 밀려서 까딱하다간 장외 실격을 받을 수도 있는 상황.
“우왁!”
화들짝 놀란 남궁천이 얼른 걸음을 내디뎌서 비무대 안쪽으로 이동했다.
“후유, 그대로 떨어질 뻔했네.”
남궁천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너스레를 떨자 천무류가 미간을 슬쩍 구겼다.
“네 아버지는 어차피 내가 나서지 않아도 평생 쫓기다가 죽을 운명이었다. 하나 너는 다르지. 본 맹에 너무 깊숙이 들어와 있다.”
“그래서 제가 정말 천살성 같습니까?”
“흐음.”
천무류가 눈을 가늘게 뜨고는 침음을 흘렸다.
솔직히 그는 지금 남궁천과 손을 섞으면서 시종 놀라고 있었다.
자신이 정말 후기지수와 싸우는 게 맞는 건지 헷갈릴 정도였다.
예안기공이 일절 먹히지 않는 것도 놀라운데, 벌써 몇 차례나 공방을 주고받지 않았는가?
확실히 남궁천은 초절정에 이른 고수였다.
하나 싸우는 방식을 보면 강호 경험이 풍부한 노고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단지 초견파공안의 재능을 가졌다고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는 것인가?
여러모로 제 아비를 뛰어넘는 재능이 아닌가?
무엇보다 지금 그를 혼란하게 하는 것은…….
‘모처럼이군.’
천무류는 활을 든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미약한 떨림.
힘이 부족해서 떠는 게 아니다.
미묘한 흥분이다.
그렇다.
지금 자신은 모처럼 이 비무를 즐기고 있었다.
우습게도 천살성을 상대하면서 분노와 실망의 감정보다는 즐거움을 느끼고 있었다.
비무가 시작된 이래로 남궁천은 단 한 번도 살기를 드러내지 않았다.
진짜 천살성이라면 이토록 살기를 숨길 수 있을까?
비무가 격해지다 보면 자연히 살기가 드러나게 마련이다.
한데 남궁천은 처음 말한 대로 자신의 한계를 가늠해 보려고만 하는 것 같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은 자세다.
오히려 자신이 살기를 드러내며 비무에 임했다.
‘좀처럼 감을 잡기 어렵군. 하나 속단하긴 이르지. 조금 더 겨루다 보면 알게 될 터.’
이제부턴 더욱 살기를 드러내어 죽일 각오로 비무에 임하리라.
“네가 천살성이라면, 반드시 밝혀질 것이다.”
그러자 남궁천이 씨익 웃었다.
“이야, 그래도 좀 나아졌네요. 아까는 분명 제가 천살성이라고 확신하시더니. 이젠 가정으로 바뀌었군요.”
“하나 죽을 각오로 덤벼야 할 것이다.”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천살성이 아니라는 걸 밝히는 건 시간문제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