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파공검제-66화 (66/508)

66. 용천관 대약진

남궁검과 남궁화는 금왕 덕분에 귀빈석 못지않게 좋은 자리에 앉아서 편안하게 관람할 수 있었다.

돈으로 해결되지 않는 건 없는 법.

그들이 앉은 자리에는 순식간에 햇빛을 가리는 천막이 생겼고, 반듯한 탁자가 설치됐으며, 호위들이 주변을 에워싸 경계를 섰다.

남궁검이 적당히 나서서 말리지 않았다면 주변으로 금줄까지 칠 지경이었다.

덕분에 주변 사람들의 이목은 확실히 사로잡았다. 귀빈석에서도 이 광경이 여실히 보였으므로, 맹주는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속을 앓았다.

그러는 와중에 첫 번째 비무가 치러졌고, 대연무장의 열기는 더욱 올라갔다.

첫 비무는 팽수혁과 무맹관 생도의 대결이었다.

남궁천 덕분에 어기신풍을 발전시킨 팽수혁은 무맹관 생도를 어렵지 않게 상대했다.

몇 차례 공수를 주고받던 팽수혁은 어느 순간 어기신풍을 펼쳐 상대의 옆구리를 돌아가며 일도를 가했다.

쩌어엉!

대연무장의 공기가 쩌렁쩌렁 울렸다. 동시에 무맹관 생도가 속절없이 튕겨 나가면서 까딱하면 비무대 밖으로 떨어질 뻔했다.

“와아아아!”

관람석을 메운 사람들이 일제히 함성을 내질렀다.

“그렇지! 이게 바로 팽가의 위력이지!”

“무맹관에 다니면서 뭘 배운 거냐! 힘을 내라!”

“시끄러워, 이 사람아! 이제 대세는 용천관이야! 내가 건 돈이 얼만데!”

관람석의 사람들이 저마다 지지하는 생도의 이름을 부르며 환호했다.

대개 이런 비무 대회가 열리면 반드시 따라붙는 게 있다.

바로 판돈이다.

사람들은 승패를 가려서 판돈을 걸고 도박을 한다. 그러다 보니 관람자들 사이에서 때론 격한 언쟁이나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한다.

한편 비무를 지켜보던 금왕이 감탄을 터뜨리며 남궁검에게 말을 붙였다.

“하북팽가의 무공은 실전 바탕이라 패도적인 줄만 알았는데, 의외로 민첩함도 겸비하고 있군요. 안목을 넓히는 계기가 됐습니다.”

“흐음.”

남궁검은 눈을 가늘게 뜨고는 침음을 흘렸다.

확실히 그로서도 의외이긴 했다.

하북팽가가 저토록 민첩한 신법을 펼칠 수 있었던가?

분명 하북팽가의 어기신풍이다.

하지만 어딘지 묘하게 바뀐 느낌이다.

본디 무공이란 동전의 양면성과 같아서 아주 작은 것 하나만 바꿔도 완전히 달라 보이기도 한다.

한데 그 작은 것을 찾는 게 말처럼 쉽지 않은 것인데…….

‘팽가주가 깨달음을 얻은 것인가? 아니면 기연이라도 얻은 건가?’

물론 기연이라고 하기에는 그 변화가 그리 크진 않지만…….

남궁천의 시선이 슬쩍 귀빈석의 하북팽가주에게 향했다.

하지만 놀란 건 하북팽가주 팽적호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조금 전 팽수혁의 반격을 보면서 눈자위를 꿈틀거렸다.

‘방금…… 뭐였지?’

아들이 사용한 어기신풍에 묘한 이질감이 느껴졌다.

분명 어기신풍이긴 한데 어딘지 묘하게 다르다.

처음엔 아들이 실수한 게 아닌가, 생각했다.

한데 그건 아니다.

아들의 표정을 보면 분명 의도한 바였다. 게다가 실수라기에는 그 결과가 놀랍다.

강공일변도인 어기신풍에 유연함과 민첩함이 더해지다니.

무맹관 생도가 가까스로 중심을 잡고 겨우 비무대 안쪽으로 걸음을 옮기는 찰나였다.

타닷!

다시 한번 팽수혁이 바닥을 차더니 쏜살같이 날아가는 게 아닌가?

“와아아! 빠르다!”

“가라! 팽수혁!”

“대세는 용천관이다!”

용천관 생도들은 물론 양민들마저 팽수혁을 응원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늘 무맹관 생도들의 활약만 구경했던 양민들에겐 이런 변화가 마냥 신기했던 것이다.

“하앗!”

무맹관 생도가 기합성을 터뜨리면서 일검을 내지르는데,

파밧!

놀랍게도 팽수혁이 몸을 회전하면서 검신을 타고 미끄러지듯 안쪽으로 파고드는 게 아닌가?

“우오오!”

“대단하다!”

“하북팽가 무공이 원래 저렇게 변화무쌍한 거였어?”

사람들이 연신 감탄을 터뜨린다.

사실 비무를 치르고 있는 팽수혁 스스로도 놀라웠다.

이렇게 제대로 비무를 치르게 되니 무공이 한 단계 상승했다는 걸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남궁천…… 이 괴물 같은 새끼.’

밉지만 미워할 수가 없는 녀석이 아닌가?

어떻게 자신의 어기신풍을 일견하고서 그런 조언을 할 수 있었던 걸까?

단지 공력의 흐름을 살짝 비틀었을 뿐인데, 마치 새로운 무공을 익혀 버린 기분이다.

생각은 길었으나, 실제로 걸린 시간은 찰나에 지나지 않았다.

이윽고 팽수혁이 일도를 횡으로 휘둘러갔다.

쒸아아앙!

파공성에 이어 청명한 금속성이 귓가에 울렸다.

까아앙!

“끄윽!”

신음과 함께 은빛 검이 허공으로 휘리릭 튕겨 올랐다.

손목을 쥔 무맹관 생도가 비틀거리며 물러나다가 그대로 비무대 밖으로 떨어졌다.

쿠웅!

어깨부터 떨어진 생도가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팽수혁이 어깨를 들먹이며 씨근거리다가 양손을 굳게 맞잡으며 포권했다.

“배려에 감사드리오! 한 수 잘 배웠소!”

무맹관 생도가 혀를 차고는 순순히 패배를 인정했다.

어차피 비무대에서 낙상하게 되면 실격처리였기에 변명의 여지가 없는 상황.

곧 관람석에서 환호성이 차올랐다.

“우와아앗! 팽수혁이 이겼다!”

“세상에! 용천관 생도가 무맹관 생도를 이겼어!”

“이게 무슨 일이야?”

“무맹관은 애들을 어떻게 가르치는 거냐? 교관 직을 때려 치워라!”

“무맹관 명성도 이제 끝났구나!”

열광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판돈을 잃어 욕을 하거나 화를 내는 사람들도 있었다.

심사관을 맡은 청랑단주 모용신이 팽수혁의 승리를 알리자 함성은 더욱 커졌다.

이를 가만히 지켜보던 금왕이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참으로 대단한 손자를 두셨습니다.”

“음……?”

남궁검이 눈을 가늘게 뜨고는 슬쩍 돌아보더니 무뚝뚝하게 말했다.

“내 알기로 저 아이는 팽 가주의 손자가 아니라 아들이오.”

“하하. 저 생도도 확실히 대단하지만, 저는 남궁 가주님의 손자를 말씀드린 겁니다.”

“천이를……?”

남궁검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듯 보았지만, 금왕은 그걸 또 다르게 해석했다.

‘아무래도 너무 드러나는 걸 꺼리시는 모양이구나. 하긴, 대살성의 사생아라는 낙인이 찍혔으니 괜히 튈 필요는 없을 터.’

금왕은 이미 딸인 소홍에게서 남궁천에 관한 이야기를 꽤나 자세히 들은 터였다.

남궁천이 소홍뿐만 아니라 팽수혁과 윤종승의 무공까지 봐주었다는 이야기를.

사실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반신반의였다.

물론 생도들끼리도 무공을 논하다 보면 뜻하지 않게 깨달음을 얻는 경우가 있다.

자고로 배움이란, 쫓아가기도 까마득한 초고수보다 바로 곁에서 한 걸음 앞서고 있는 동료에게 더 많은 걸 깨닫기도 하는 법이니까.

한데 단지 한 걸음 앞선 걸 배웠다기에는 팽수혁의 무공은 놀라웠다.

하북팽가의 무공은 강맹일변도라는 편견을 깨버리는 순간이기도 했다.

하나 남궁검이 이런 변화를 모른 척하고 싶다면야 굳이 들춰낼 필요는 없으리라.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저…… 딸아이가 남궁 소협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는 게 떠올라서 드린 말씀입니다.”

“흐음.”

남궁검은 침음을 흘리면서도 내심 궁금했다.

도대체 남궁천에게 그간 무슨 일이 있었기에 금왕이 이렇게까지 나온단 말인가?

금왕은 금왕대로 생각에 빠져 다음 비무를 기다렸다.

‘이제 윤종승이라는 생도 차례인가? 그 아이도 같은 조였다지…… 아직은 남궁천을 판단하기엔 이르다. 정작 본인의 무공을 직관하지도 못했으니.’

사실 이 비무 대회를 결승까지 본다고 한들 과연 판단이 설까?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판단이 서지 않는다면…… 남궁천은 잠룡이 아니라는 뜻이리라.

그러는 사이 당예설의 진행에 따라 다음 순번인 윤종승과 악굉이 비무대 위로 올라왔다.

사람들의 함성이 터지기도 전에,

“아드으을! 아비가 왔다! 내 아들, 장하다!”

귀빈석에서 쩌렁쩌렁 터져 나온 목소리.

공력이 심후하진 않지만 분명 내공을 이용한 사자후였다.

그 소리에 관람석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윤종승은 얼굴이 벌게져서는 고개를 푹 숙였다.

‘아으, 아버지……! 좀……!’

왜 부끄러움은 나의 몫일까?

그러거나 말거나 윤첨산은 연신 싱글벙글하면서 주변의 귀빈들에게 자랑을 늘어놓았다.

“하하하! 저 녀석이 제 아들입니다. 예, 어려서부터는 그리 속을 썩이더니 이제야 한 사람 몫을 하나 봅니다.”

“훌륭한 아드님을 두셨습니다.”

“든든하시겠습니다.”

형식적으로 건넨 인사말에도 윤첨산은 그저 싱글벙글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하지만 곧 이어진 목소리에 윤첨산의 웃음기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 장한 아들이 제 아들과 겨루게 됐군요.”

“……!”

산동악가주인 악현이었다.

“아…….”

윤첨산이 당황해서 말을 잃자, 악현이 한쪽 입매를 비틀며 말했다.

“부디 제 아들이 한 수 잘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겸양으로 하는 말 같지만 사실은 ‘제발 그 정도 수준이길 바란다’는 비아냥이나 다름없는 말.

윤첨산은 얼굴이 벌게져서는 헛기침을 하고는 자세를 바로잡았다.

그러는 사이 비무는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쉭쉭쉭쉭쉭!

아니나 다를까, 악굉은 초반부터 현란한 창술을 보여주면서 윤종승의 눈을 어지럽혔다.

촤아앗!

마침내 오른발을 길게 미끄러뜨리며 기수식을 취한 악굉이 창을 옆구리에 낀 채로 왼손을 까딱거리며 도발했다.

“선공은 양보하겠소.”

윤종승이 어금니를 꾹 씹고는 주먹을 꽉 말아 쥐었다.

창과 적수공권의 대결.

두말할 필요도 없이 맨손이 명백히 불리하다.

해서 검을 들고 싸우려고 했다.

황산윤가는 원래 도검창을 고루 다루니까.

한데 남궁천이 반대했다.

“너는 장법이나 권법이 체질에 맞아. 더구나 어려서부터 병기를 다루는 것보다는 맨손으로 싸우는 걸 선호했겠지.”

“뭐, 뭐야? 너 기억이 돌아온 거야?”

“아니. 네놈은 단순하니까 당연히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병기를 다루는 게 맨손을 다루는 것보다 복잡하고 까다로우니까.”

“난 또…… 그럼 내가 맨손으로 싸워도 악가창법을 꺾을 수 있을까?”

“글쎄. 어렵겠지. 하지만 네가 정말 지옥을 제대로 겪은 적이 있다면 가능할지도 모르지.”

“그래? 그럼 가능성이 있다는 거잖아! 네가 생각하기엔 어떤지 몰라도…… 난 정말 지옥을 겪었어. 골병이 들 만큼 두드려 맞기도 하고, 비참한 수모를…….”

“그게 나한테 할 소리냐?”

“미, 미안하다. 내가 이길 방법이 있다면 알려줘.”

“다시 말하지만 반드시 이길 수 있다는 건 아니야. 가능성이 있을 뿐.”

“그래도 괜찮아! 가능성이 티끌만큼이라도 있다면!”

“흐음. 악굉과 비무할 때 네가 사용해야 할 전술은…….”

윤종승이 생각을 정리하며 서서히 기수식을 취했다.

‘남궁천……! 정말 그걸로 되는 거겠지? 진짜 널 믿어도 되는 걸 테지?’

처음에는 너무 황당해서 믿을 수가 없었다.

사실 지금도 반신반의이긴 하다.

정말 그 전술로 되는 걸까? 내가 할 수 있을까?

그때 우연인지 뭔지 비무대 밖에서 지켜보는 남궁천과 두 눈이 딱 마주쳤다.

남궁천이 다음 순번이었기에 대연무장 안으로 들어와 대기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남궁천이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널 믿어보마!’

순간 윤종승이 확신을 가졌다.

“이여어업!”

파밧!

윤종승이 기합성을 터뜨리는 것과 동시에 악굉을 향해 황소처럼 돌진했다.

“좋아! 싸워라!”

“아들! 힘내라!”

“용천관, 이기자!”

“정협관, 호구한테 지지마라!”

대연무장에 다시금 함성이 차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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