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 용천관 대약진
쉬이잇! 퍼억!
“크윽!”
푹, 푹, 푹! 빠악!
“끄으윽!”
일방적인 구타가 이어졌다.
열기가 가득했던 대연무장은 찬물을 뒤집어쓴 듯 고요하기만 했다.
상기되어 있던 표정들은 진작 사라졌고, 모두들 불편한 표정으로 혀를 찼다.
“쯔쯧. 저래서야 상대가 안 되는군.”
“악가의 생도가 일방적으로 가지고 노는 느낌인데?”
“내가 무공은 쥐뿔도 모르지만, 저건 무공도 뭣도 아니잖아? 그냥 패싸움이나 다름없지 않나?”
“그만큼 저 용천관 생도의 실력이 형편없단 뜻이겠지.”
사람들의 힐난이 간간이 이어졌다.
정협관 생도들은 아예 대놓고 조소를 지으며 조롱을 퍼부었다.
“비무 대회의 수준을 떨어뜨린다! 그냥 기권해라!”
“이제야 용천관의 진짜 실력이 드러나는구나!”
“하하하! 방금 그건 웃으라고 날린 일장이냐?”
무맹관 생도들도 비교적 점잖게 행동했지만 눈빛에서만큼은 멸시의 감정을 지우지 못했다.
특히 앞서 무맹관 생도가 팽수혁에게 처참하게 패했기에 용천관 소속인 윤종승을 보는 시선이 고울 수가 없었다.
용천관 생도들의 분위기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팽수혁으로 인해 한껏 고무심을 키웠던 용천관 생도들은 윤종승을 불안해하면서도 은근히 기대를 걸었다.
한데 막상 비무가 시작되고 보니 너무 일방적이지 않나?
악굉이 선공까지 양보했음에도 윤종승은 제대로 된 한 방을 날리지 못한 상황이다.
물론 창과 맨손의 대결이다.
창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 해도 적당히 비등한 모습을 보이면 좋겠는데, 이래서야 그저 일방적으로 괴롭힘을 당하는 꼴이니…….
“역시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 건가?”
“엄청 아프겠다.”
“그래도 꽤 오래 버티네…….”
“그거야 하도 오랫동안 호구로 지내다보니 맷집이 생긴 모양이지.”
누군가의 말에 생도들이 키들거리다가 이내 표정을 굳혔다.
그 호구가 지금 자신들도 오르지 못한 비무 대회에 참가하지 않았나?
확실히 웃을 일은 아니란 생각에 몇몇 생도들이 헛기침을 했다.
그때 누군가 벌떡 일어나더니 소리쳤다.
“야! 윤종승! 언제까지 처맞을 거냐! 반격을 해라! 우리가 널 응원하러 왔다고!”
그 목소리를 들은 윤종승은 어금니를 꽉 깨물면서 명치로 날아드는 창끝을 노려보았다.
‘젠장…… 누군 처맞고 싶어서…….’
탁! 퍽!
‘처맞냐고오웁!’
비교적 뭉툭한 창끝이 그대로 단전을 찌르면서 구토가 치밀어 올랐다.
급히 일권을 내리치며 창을 막으려고 했지만, 조금 늦은 탓에 명치에서 반 뼘 정도 아래인 단전을 때린 것이다.
“쿠웨에에엑!”
윤종승이 비명을 지르며 그대로 고꾸라지자 그 위로 창대가 사정없이 떨어졌다.
쉬이이잇!
퍽! 퍽! 퍽……!
“아악! 크윽! 으악!”
비무대 위로 연신 비명이 솟구쳤다.
그야말로 악굉은 윤종승을 개 패듯 두드려 팼다.
그는 창을 휘두르면서도 화가 났다.
정식 비무 대회였기에 창날을 실전용으로 사용해도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상대가 적수공권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연습용 창날이 달린 창대를 가지고 올라왔다.
상대를 위한 배려 따위는 아니었다.
확실한 앙갚음을 위해서 죽도록 때려줄 생각이었다.
한데 막상 손을 섞고 보니 약해도 너무 약하지 않은가?
이런 약한 놈을 상대로 황보승이 당했다고 생각하니 화가 치밀었다.
“이제 보니 겨우 운이 좋아서 황보 형을 이겨놓고선 그리도 기고만장 하셨소?”
악굉은 서슬 퍼런 목소리를 흘리며 연신 창대를 휘둘렀다.
퍽! 퍽! 뻑……!
지켜보던 양민들이 이맛살을 잔뜩 구겼다.
벌써 저러길 몇 번째인가?
겨우 소나기처럼 떨어지는 매질을 피해서 물러나면 다시 또 이런 일이 반복되곤 했다.
지나치게 일방적인 비무가 펼쳐지니 응원할 마음은 진작 사라졌다.
“저거 좀 말려야 하는 것 아냐?”
“저러다 죽이겠는데?”
양민들의 반응이 신경 쓰였던 것인지 심사관인 모용신이 한 걸음 나서며 물었다.
“윤종승, 패배를 인정하지 않으면 비무는 끝나지 않는다. 패배를 인정하겠느냐?”
“끄으읍! 악! 아……! 아니오! 아직 지지 않았습니다앗! 커억!”
윤종승이 입가에서 피를 흘리며 간신히 대꾸했다.
이것도 벌써 세 번째다.
모용신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물러났다.
한편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던 윤첨산은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아들아……!’
처음에는 일방적으로 얻어맞는 아들에게 화가 났다. 그다음에는 아들이 조금 더 버텨주길 원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들이 포기하길 원하고 있었다.
‘그만하면 됐다…… 이 아비가 더는 못 보겠구나!’
주먹을 꽉 말아 쥐고는 어금니를 꾹 깨물었다.
등 뒤에서 조소 어린 목소리가 들렸다.
“쯔쯧. 안타깝군. 어느 쪽이든 무공 성취에 도움이 될 비무가 되길 바랐건만.”
윤첨산은 돌아보지도 않았다.
악현의 목소리라는 것을 알았기에.
보나마나 한껏 비웃고 있을 테지.
‘제길……! 이제 그만 포기해라! 더 해봐야 치욕만 당할 뿐이다! 이건 가망이 없어!’
* * *
“이래서야 가망이 없군요.”
금왕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중얼거렸다.
하나 곁에 앉은 남궁검은 시종 진중한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처참하게 얻어맞는 윤종승을 가만히 살펴보기만 했다.
금왕이 내심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소홍이 말로는 남궁천이 저 아이에게도 무공 성취를 이뤄주었다던데…… 아무래도 한계가 있었나 보구나. 하긴, 격차가 너무 크니 한계도 분명했을 터.’
하지만 이 세상은 냉정하다.
그런 사정을 일일이 다 봐주지 않는다.
결과는 결과일 뿐이다.
남궁천이 진소홍의 기대만큼 어마어마한 잠룡은 아니란 뜻이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딸이 남궁천에게 콩깍지가 씌인 것이리라.
‘뭐, 그 아이가 생긴 건 준수했으니…… 벌써 홍이가 그럴 나이인가?’
딸의 행동이 귀여우면서도 씁쓸하다.
무릇 상인이란, 감정에 휘둘려 득실을 판단하면 아니 되건만.
그때 남궁검이 무뚝뚝한 목소리를 흘렸다.
“가망이 있을지 없을지는 더 두고 봐야 알 일 아니겠소?”
“이 진 모가 무공을 보는 안목이 깊지는 않으나, 격차가 너무 크지 않습니까? 혹 남궁 가주님은 이 진 모를 놀리시는 건지요?”
그러자 남궁검이 차갑게 웃었다.
“훗. 내가 그대를 놀려서 무엇 하겠소? 어디 두고나 봅시다.”
“혹 아둔한 제가 보지 못한 무언가가 있는지요? 그렇다면 부디 한 수 가르침을 청합니다. 영광으로 알겠습니다.”
“가르침이라 할 것까진 없소. 그저 저 아이…… 잘 맞고 있소.”
“그야 저도 보아서 압니다만. 비무 대회에서 저렇게 잘 맞는 경우도 보기 드물…….”
“그런 뜻이 아니오. 정말 잘 맞고 있단 말이오.”
“……?”
“맞을 줄을 안단 뜻이오.”
“아……!”
금왕이 그제야 말뜻을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맞을 줄을 안다는 뜻.
한마디로 맷집이 좋은 걸 넘어서 피해를 줄일 줄 안다는 뜻이 아닐까?
똑같이 한 대를 맞아도 누군 뼈가 상하고, 누군 찰과상만 입고, 누군 오히려 혈액 순환에 도움이 될 수도 있는 법이다.
“그러고 보니…….”
금왕이 눈을 빛내며 다시 윤종승을 보았다.
확실히 윤종승은 비무가 시작된 후로 줄곧 얻어맞았지만, 관람자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오래 버티고 있었다.
게다가 자세히 보면…….
‘맞는 방향으로 몸을 틀면서 피해를 최소화하고 있구나!’
뿐만 아니라 요혈은 모조리 피하고 있다.
간발의 차이로 몸을 비틀면서 치명타를 무마시키는 것이다.
저건 거의 본능과도 같은 움직임.
정말 많이 맞아본 사람만 할 수 있는 움직임이리라.
이론이나 무공 수련으로는 익힐 수 없는 것이다.
남궁검이 나직이 뇌까렸다.
“만약 저 아이에게 한 수가 남아 있다면…… 이 비무의 결과는 어찌될 지 알 수 없소.”
“과연……!”
금왕이 놀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실제로 시간이 흐를수록 초조해지는 것은 악굉이었다.
악굉의 기분은 비무 내내 변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화가 났다가, 다음에는 우스웠다가 이제는 짜증이 났다.
퍽! 퍽! 퍽……!
‘어째서……! 어째서 항복을 하지 않는 거냐! 어째서!’
사실 문제는 항복을 받아내는 문제가 아니다.
상대가 의식을 잃고 기절만 해도 된다.
그런데 아무리 때려도 기절을 하지 않는다.
도대체 뭐 이런 인간이 다 있지?
맷집이 얼마나 좋은 건지 알 수가 없다.
세상에 이렇게 재미없는 비무가 또 있을까?
지쳐간다.
이제 그만 쓰러져서 항복을 했으면 좋겠는데, 이 미친놈은 끝까지 버티면서 처맞기만 하니 환장할 노릇이다.
“그만 좀 항복해라!”
악굉이 버럭 소리치면서 악가창법의 절기를 펼쳤다.
쉬이이이잇!
창이 회전하면서 윤종승의 가슴을 내질렀다.
퍼어억!
“크어억!”
윤종승이 몸을 뒤집으며 날아갔다.
쿠당탕탕!
한참을 쓰러진 윤종승이 비무대 끝까지 밀려나더니 아슬아슬하게 멈췄다.
“치잇!”
악굉이 혀를 차자, 윤종승이 다시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관람석에서 탄식에 가까운 소리가 들렸다.
“으으으.”
“세상에, 또 일어났어.”
이제 좀 그만하지, 라는 말도 들려온다.
하나 윤종승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됐어……! 놈이 초조해하기 시작했어! 싸움은 지금부터다!’
윤종승의 눈빛이 번뜩이자, 악굉은 부아가 치밀었다.
‘어째서 저딴 호구 새끼가…… 끝까지……!’
찰나, 악굉이 바닥을 박차며 튀어나갔다.
“노오오옴!”
그의 신형이 쏜살같이 날아가면서 창을 곧게 내질렀다.
그러나 성급한 공격 탓에 허점이 드러났다.
오랫동안 구타를 당하면서 윤종승은 상대의 창술을 꽤나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이 순간 창술에서 허술한 부분이 바로 보였다.
찰나지간 남궁천과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일단 처맞아라.”
“뭐……?”
“뒈지도록 처맞다 보면 놈에게 빈틈이 보일 거야. 물론, 네가 잘 버텨야겠지. 너는 그간 처맞으면서 본능적으로 적당히 맞아주는 방법을 터득했을 거야. 네 나름의 요령대로.”
“그, 그건 어떻게 알았어?”
“네가 반에서 처맞는 걸 나도 봤으니까.”
“아…….”
“넌 그저 덜 아프게 맞으려고 했을 뿐이겠지만, 그게 꽤나 효과적인 안마 효과를 가져다주더군. 실제로 너도 느꼈을걸? 처맞다가 어느 순간 반격하고 싶은 충동을…….”
“그건 누구나 마찬가지 아냐?”
“아니. 보통은 처맞느라 정신없고 공포에 떨기 바쁘지. 그런데 반격하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는 몸이 알고 반응하는 거다. 지금이라면 한 방 먹일 수 있다고.”
“아…….”
“하지만 보통 쫄아서 손을 쓰지 못해. 너도 마찬가지였을 거야. 뭐, 실제로 손을 썼다면 더 뒈지게 처맞았겠지. 결국 기회가 와도 솜 주먹이 될 테니까.”
“그럼 어떻게 해?”
“어떡하긴 네가 때려야지.”
“더 처맞을 거라며.”
“넌 이제 솜 주먹이 아니잖아?”
“아……! 혁련장!”
“게다가 평소처럼 잘 처맞았다면 몸의 감각이 그 어느 때보다도 생생하게 올라왔을 거야. 한마디로 공력의 흐름이 여실히 느껴져서 평소보다 훨씬 강맹한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거다.”
상념에서 빠져나온 윤종승은 확실히 몸의 감각이 평소보다 기민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남궁천의 말대로야! 전신이 따끔따끔하면서 피가 확확 도는 느낌이다. 혈맥도 대로처럼 뚫렸어. 이대로면 내공을 평소보다 시원하게 질주시킬 수 있다!’
찰나, 윤종승의 단전에서 한 줄기 공력이 일어나더니 수태양소장경을 따라 맹렬히 뻗어갔다.
확실히 평소보다 훨씬 빠르며 강맹한 기운이었다.
지금껏 당한 구타가 약이 된 기분이랄까?
혈맥을 따라 흐르는 공력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마침내 악굉의 창이 지척에 다다랐을 때,
파밧!
윤종승의 신형이 빛살처럼 뻗어가면서 다섯 손가락이 악굉의 가슴에 작렬했다.
쉬이잇, 뻐어어어엉!
폭음 같은 소리가 울리면서 악굉의 장삼 앞섶이 온통 터져 나갔다.
슈우우욱, 콰당탕탕!
그대로 비무대 반대편까지 날아간 악굉이 밖으로 나가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눈을 허옇게 까뒤집고는 의식을 잃고 말았다.
“헉, 헉, 헉……!”
눈이 퉁퉁 부어올라 한쪽 눈만 겨우 치켜 뜬 윤종승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뻗어낸 손을 보았다.
“해, 해냈다…….”
대연무장 전체가 조용해졌다.
원래도 조용했지만 이젠 과장 좀 보태서 바늘 떨어지는 소리도 들릴 지경.
한참이 지나서야 모용신이 얼떨떨한 목소리로 선언했다.
“용천관, 윤종승…… 승!”
순간 대연무장이 떠나가도록 함성이 울려 퍼졌다.
“우와아아아아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