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2. 제발 깨어나 줘요 (69/100)


72. 제발 깨어나 줘요
2022.05.10.


은조는 경찰과 함께 병원으로 달려갔다.

모터보트를 타고 육지에 도착해 경찰차를 타고 병원으로 이동했다.

차를 타고 가는 동안 은조는 두 손을 모으고 간절히 기도했다.

16551899515495.png

‘제발 민후 씨가 맞기를. 제발 살아 있기를…….’

인상착의가 민후와 비슷하다고 했지만 아직 확실하지 않아 은조는 불안했다.

응급실에 도착하니 의료진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커튼으로 가려진 침상들이 많아 바로 찾는 것은 불가능했다.

경찰이 데스크의 의료진에게 물었다.

165518995155.jpg

“해양 경찰입니다. 바다에서 구조되어 온 남성 환자 어디 있습니까?”

의료진이 침대 한쪽을 가리켰다.

은조는 의료진이 가리킨 방향으로 얼른 걸음을 옮겼다.

커튼으로 가려진 베드 가까이 다가가자 의식 없이 누워 있는 민후가 보였다.

16551899515495.png

‘아, 하느님 감사합니다. 구조되어 다행이다!’

은조는 민후의 얼굴을 보자 감격한 얼굴로 달려갔다.

16551899515495.png

“민후 씨!”

달려가 민후의 손을 잡았다.

그의 손이 흠칫 놀랄 정도로 차가웠다.

은조는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눈을 감은 그의 얼굴도 창백했다.

입술도 짙은 색을 띠고 있었다.

은조가 눈물을 글썽이며 민후의 얼굴을 떨리는 손으로 감쌌다.

따뜻한 온기라고는 없었다.

16551899515495.png

“헉…… 민후 씨.”

평소에 따뜻했던 몸이 얼음장처럼 차가워 은조는 덜컥 겁이 났다.

이대로 민후를 잃으면 어떡하나 두려움에 몸이 떨렸다.

16551899515495.png

“민후 씨…… 안 돼…… 민후 씨.”

그는 산소마스크를 쓰고 담요를 두 겹으로 덮고 있었다.

그때 의료진이 나타나 물었다.

165518995155.jpg

“보호자 되세요?”

은조가 돌아보았다.

16551899515495.png

“저희 남편 괜찮은 거죠? 그렇죠? 선생님.”

은조가 절박한 얼굴로 물었다.

165518995155.jpg

“저산소증과 저체온증으로 의식이 없이 병원에 도착했습니다. 호흡이나 맥박이 약한 상태고요.”

은조는 침대 옆에 있는 의료기계를 보았다.

그의 심장이 뛰고 있다는 선이 불규칙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16551899515495.png

“사, 살 수 있죠? 깨어날 수 있는 거죠?”

165518995155.jpg

“체온을 높이는 치료를 하고 있고요. 폐 손상이 있는지 검사도 해봐야 해요.”

의료진은 데워진 수액을 정맥으로 공급하기 위해 민후의 팔에 주사를 놓았다.

의료진은 검사와 함께 경과를 지켜보자고 말하고 갔다.

은조는 잠든 것처럼 눈을 감고 있는 민후를 보며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수도꼭지를 틀어놓은 것처럼 눈물이 흘렀다.

16551899515495.png

“흑흑…… 민후 씨.”

은조가 차가운 민후의 손을 잡고 얼굴에 비볐다.

자신의 따뜻한 온기를 조금이라도 나누고 싶었다.

16551899515495.png

“민후 씨. 제발 깨어나 줘요. 제발…….”

의료진이 못 깨어나거나 오래 걸릴 수도 있다는 말을 했기에 은조의 불안감이 가시지 않았다.

민후의 손에 은조의 뜨거운 눈물이 떨어졌다.

은조는 두려웠다.

앞으로 다시는 그와 눈을 마주치지 못할까 봐.

다시는 다정하게 웃는 얼굴을 못 보게 될까 봐.

16551899515495.png

“민후 씨, 이대로 못 깨어나면 안 돼요. 나 민후 씨한테 못 했던 말이 있단 말이에요.”

은조는 민후의 손을 잡고 울면서 말했다.

16551899515495.png

“나 민후 씨한테 거짓말했어요. 흑흑.”

잡은 그의 손을 이마에 대고 고해성사하듯이 말했다.

16551899515495.png

“계약이 끝나면 이혼을 원한다는 말, 거짓말이었어요.”

흐느끼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16551899545652.png

 

16551899515495.png

“사실은 민후 씨를 예전부터 좋아했어요. 처음부터 이혼을 원하지도 않았어요.”

은조는 할머니와의 거래 때문에 사실대로 말하지 못했던 것을 다 털어놓았다.

16551899515495.png

“거짓말을 했던 건……. 사실은 할머니가 이혼하면 엄마와 살게 해주겠다고 했어요. 민후 씨한테는 비밀로 해야 한다고 그래서…… 미안해요, 민후 씨. 흑흑.”

민후에게 고백하면서 감정은 점점 격해졌다.

16551899515495.png

“비밀을 발설하면 엄마가 해코지를 당할까 봐…… 그래서 민후 씨한테 말을 못 했어요. 으흐흑!”

자신이 너무 바보 같아서.

민후에게 너무나 미안해서 은조는 오열하듯 울었다.

16551899515495.png

“흑흑. 미안해요. 민후 씨. 당신을 예전부터 좋아했어요. 당신과 헤어지기 싫어요. 그러니 제발 깨어나 줘요.”

은조는 엎드려서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은조의 목소리가 들리는지 아닌지 민후는 눈을 감고 아무 미동도 없었다.

생명줄 같은 의료기계의 줄을 주렁주렁 매달고 심장박동을 알리는 기계음만 날 뿐이었다.

*

시은은 준호가 나간 후에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16551899578452.png

‘고백했어. 그랬던 거였어. 그래서 안 왔던 거였어.’

진지한 얼굴로 얘기 좀 하자는 관장 말에 시은은 그날의 자신이 고백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긴가민가했던 궁금증이 해결되자 시은은 준호 앞에서 갑자기 고개를 들고 있기가 힘들었다.

쥐구멍이 있다며 숨고 싶었다.

16551899578458.png

‘오늘 끝나고 시간 됩니까? 폐점시간에 오겠습니다.’

카페 문 닫을 때 다시 오겠다고 하고 그는 커피숍을 나갔다.

완전히 그가 사라지자 시은은 다리에 힘이 풀려 풀썩 주저앉았다.

그가 나간 후 시은은 일손이 안 잡혔다.

정식으로 거절을 하려는 건가? 아니면 그 반대?

그 고백을 듣고 2주 동안 연락이 없었던 것은 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부담되니까 오기 싫었던 거? 그동안 대답을 고민했나?

시은은 정식으로 거절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가슴이 찌릿하게 아파졌다.

아니면 어쩌면 2주 동안 진지하게 생각했을 수도 있다.

긍정적인 대답을 하려고 그러는 건가?

사귀자고 말하려는 건가?

그럼 오늘이 1일?

16551899578452.png

“꺅!”

시은은 들뜬 얼굴을 양손으로 가렸다.

폐점시간까지의 두어 시간이 시은에게는 200년도 더 되는 것 같았다.

심판을 앞둔 사람처럼 그가 어떤 얘기를 할지 긴장되어 미칠 것 같았다.

점점 시간이 다가오면서 시은은 거울을 수시로 쳐다보았다.

짙은 색 립글로스를 발랐다가 너무 꾸민 것 같아서 다시 지웠다.

오늘따라 앞머리가 자꾸 갈라져서 속상했다.

아침에 헤어 손질에 좀 신경 쓸걸.

옷도 아무거나 주워입고 오지 말걸.

후회되는 것이 한둘이 아니었다.

박물관 직원들이 하나둘 퇴근하고 카페도 폐점시간이 다가왔다.

3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하는 [어린 왕자] 속 여우처럼 시은은 가슴이 두근대기 시작했다.

박물관 불도 하나씩 꺼지고 준호가 모습을 드러냈다.

카페가 왜 문을 안 닫는지 의아하게 생각한 보안요원에게 관장이 무어라 얘기하는 것 같았다.

보안요원이 돌아가고 준호가 카페로 들어왔다.

시은은 긴장한 얼굴이었지만 미소를 띠었다.

16551899578452.png

“이쪽에 앉으세요.”

준호도 긴장했는지 무표정이었다.

시은은 미리 준비한 커피를 가지고 왔다.

16551899578452.png

“관장님 늘 드시던 커피예요.”

16551899578458.png

“아…… 고맙습니다.”

시은은 준호에게 정성스럽게 내린 커피 한 잔을 주고 자신의 것도 앞에 놓았다.

두 사람은 긴장한 얼굴로 앞에 놓인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준호는 심각한 얼굴로 시선을 커피잔에 고정하고 입을 열지 못했다.

시은은 준호의 표정이 굳어 있자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아무래도 안 좋은 결말일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16551899578452.png

“말씀하세요.”

시은이 먼저 입을 열었다.

준호가 시선을 들어 시은을 보았다.

16551899578458.png

“임대차 서류를 보니까 계약이 2개월 남았더군요.”

16551899578452.png

“……?”

시은이 의아한 눈으로 준호를 보았다.

그날 고백한 거 아니었어? 그것 때문에 얘기하자는 거 아니었나?

왜 갑자기 임대 계약 얘기?

16551899578458.png

“죄송한 말씀이지만…….”

준호가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었다.

16551899578458.png

“재계약은 힘들겠습니다.”

시은은 혼란스러웠다.

그날 고백한 것에 대답을 하는 건 줄 알았는데 준호는 엉뚱한 얘기를 꺼냈다.

16551899578458.png

“더 죄송한 얘기지만……. ”

시은이 의아한 얼굴로 준호를 바라보았다.

16551899578458.png

“계약 조기 종료를 했으면 합니다.”

16551899578452.png

“…….”

계약 조기 종료?

시은의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16551899578458.png

“위약금은 드리겠습니다.”

웬만해서는 계약을 조기 종료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심각한 문제가 아니고서는.

나랑 손절 하고 싶다는 얘기인가?

계약보다 빨리 내보내고자 하는 건 그날 고백이 상당히 부담스럽다는 얘기인가?

얼마나 내가 마음에 안 들고 부담되면 아예 내쫓을 생각을 할까?

같은 공간에 있는 것조차 싫은 건가?

시은은 조금 전까지 오늘부터 1일일 수도 있겠다며 들떴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테이블 아래 놓인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16551899578452.png

“네. 그러죠.”

시은은 준호를 더는 바라볼 수 없어 테이블에 시선을 고정했다.

16551899578452.png

“위약금은 안 주셔도 됩니다. 가능한 한 빨리 카페 정리할게요.”

최대한 목에 힘을 주고 말했다.

떨리는 목소리나 울음이 섞일 것 같아서.

16551899578452.png

“말씀 끝나셨으면 이제 가게 문 닫겠습니다.”

시은은 그날 고백했을 자신의 모습이 너무 비참해서 도저히 그와 마주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시은이 먼저 일어났다.

끼이이.

의자가 뒤로 밀리며 바닥에 끌리는 소리가 났다.

박물관이 적막해 더 크게 울리는 것 같았다.

준호는 굳은 얼굴로 일어나 돌아서는 시은을 물끄러미 보다가 카페를 나왔다.

준호는 박물관 관장과 편의시설 운영자와의 관계로 그녀의 고백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계약서상 갑을관계이고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거나 시은이 오해받을 수 있는 상황이 생기길 원하지 않았다.

일로 엮이지 않은 관계에서 생각하고 싶었다.

그녀가 오해하지 않았으면 하는데 아무래도 오해를 한 것 같다.

*


16551899515495.png

“으흐흑. 미안해요. 당신한테 사실대로 말을 못 했어요. 죽지 말아요. 제발 깨어나 줘요.”

은조는 엎드려 울며 고해성사하듯이 그에게 고백했다.

울음을 터트리며 그의 손에 뜨거운 눈물을 쏟아 냈다.

그러던 중, 그의 손을 잡고 엎드려 있던 은조가 번쩍 고개를 들었다.

그의 손에서 미세하게 움직임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16551899515495.png

“민후 씨?”

은조가 민후의 얼굴을 만졌다.

그는 여전히 잠든 사람처럼 미동도 없었다.

16551899515495.png

‘잘못 느낀 건가?’

너무 간절해서 그가 의식이 돌아왔다고 착각한 건가, 생각했다.

그런데 잡고 있던 그의 손에서 약간의 온기가 느껴졌다.

처음처럼 그리 차갑지가 않았다.

은조의 얼굴에 기쁨이 차올랐다.

얼음장처럼 차갑던 그의 손 때문에 영영 그가 돌아오지 못할까 봐 마음을 졸였었다.

그런데 잡고 있던 민후의 손에 조금 더 힘이 들어간 걸 느꼈다.

은조의 눈이 휘둥그레지며 그의 손을 보았다.

16551899515495.png

“민후 씨! 민후 씨?”

은조가 민후의 이름을 애타게 불렀다.

민후의 눈꺼풀이 조금씩 움직였다.

은조가 감격한 얼굴로 소리쳤다.

16551899515495.png

“민후 씨! 민후 씨, 정신이 들어요?”

그가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 은조를 쳐다보았다.

은조는 그와 다시 눈을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만으로 감격했다.

16551899515495.png

“으허엉. 민후 씨!”

내내 마음을 졸였던 은조가 민후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울음을 터트렸다.

16551899515495.png

“깨어나서 정말 다행이에요! 고마워요. 민후 씨. 으흐흑.”

은조는 엎드려 민후를 안고 감격의 눈물을 쏟아냈다.

민후가 힘겹게 입을 움직여 말했다.

16551899637723.png

“은조야.”

그의 목소리가 들리자 은조는 더 감정이 격해졌다.

16551899515495.png

“으흐흑!”

16551899637723.png

“아까 한 말…….”

은조가 눈물이 범벅된 얼굴을 들고 그를 보았다.

16551899637723.png

“정말이야?”

눈물이 그렁한 은조의 눈이 커다래졌다.

16551899637723.png

“방금 한 말…… 다 들었어.”

은조가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16551899515495.png

“네. 거짓말해서 미안해요.”

은조가 민후의 손을 잡고 흐느끼며 말했다.

16551899515495.png

“나 이혼하지 않을 거예요. 당신을 좋아해요.”

 

16551899666204.jpg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