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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의 애완동물이 되었다-41화 (41/193)

41화

방 안에는 미아와 아딜로트만 남았다. 미아가 눈을 감았다.

‘끝났다. 여주와 남주가 서로를 변태라고 생각해…….’

허망하게 굳은 미아를 아딜로트는 잠자코 침대에 올려놓았다. 아까 지나간 단어에 미아가 살짝 긴장했다.

‘이런 거 그런 거 저런 거……?’

그때였다. 갑자기 손을 뻗는 아딜로트의 모습에 미아가 기겁하며 눈을 감았다.

“아, 아딜! 이건 너무 이른 것……!”

“무슨 소리야?”

그러나 아딜로트의 손은 담백하게 미아의 이마를 짚었다. 그리고 그녀를 뒤로 밀어, 침대에 눕혔다. 그리고 아딜로트는 옆에 누워, 포도를 먹으며 다시 서류를 보기 시작했다.

“……?”

아딜로트가 포도를 먹는 모습을 지켜보던 미아가 눈을 깜빡였다. 아딜로트는 서류에서 눈을 떼고 물끄러미 미아를 보더니, 미아의 벌어진 입 안에 포도를 넣어 주었다.

“앗, 맛있당.”

“맛있지.”

미아가 멍하니 포도를 오물거리다 삼키자, 아딜로트는 또 다른 포도알을 입에 넣어 주었다. 미아는 앉은 자리에서 포도 한 송이를 다 먹어 치웠다.

‘이것이 애완동물의 삶?’

배가 부르니까 갑자기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아졌다.

“이런 거 그런 거 저런 거는 어디 갔어요?”

아딜로트가 헛기침했다.

“그냥 네 친구가 하도 시비를 걸어서 그렇게 말한 거야.”

세레니티가 떠올랐는지 아딜로트는 인상을 썼다.

“그리고 네 친구 좀 변태 같아.”

“…….”

‘미안해, 세레니티. 변호를 못 하겠어…….’

미아가 슬슬 상체를 일으키려 했다. 그러자 아딜로트가 다시 미아의 이마를 눌러 그녀를 눕혔다.

“누워 있어.”

“황제 앞에서?”

“반려동물은 그래도 돼. 심신 안정에 좋대.”

“‘자칭’ 반려동물 아니었어요?”

“이제 타칭이기도 한 것 같던데. 블라시하 남작 부인인가 하는 여자 때문에.”

“아.”

아딜로트가 하품을 하며 서류를 치우고 누웠다. 그리고 금세 졸린 듯 느린 숨을 쉬었다.

“……그게 맞나 봐. 며칠 없었다고…….”

그러더니 순식간에 잠들어 버리는 게 아닌가. 미아가 뒤늦게 깨달았다.

‘불면증!’

그동안 아딜로트는 잠을 제대로 못 잔 모양이었다. 잘 살펴보니 눈 밑에 피로가 배어 있었다.

‘그럼…… 그냥 자고 싶어서 부른 건가?’

하기야 아딜로트가 기계도 아니고 매일 그렇게 혹독한 일정을 소화하는데 피곤하지 않을 리가 없다.

미아가 괜히 손가락 끝으로 잠든 아딜로트의 앞머리를 건드렸다. 반듯한 이마가 찡그려지더니, 이내 다시 매끈하게 펴지는 게 보였다.

‘잘생기긴 했다.’

잘생김에도 종류가 있는 법이다.

아딜로트는 그중 묘하게 야한 느낌을 주는 얼굴이었다. 피로와 나른함이 겹쳐져서 살짝 색정적인…….

‘……나 지금 너무 변태 같아!’

얼굴을 붉힌 미아가 아딜로트가 깊게 잠든 것을 확인하고 나서 그의 침실을 나섰다. 마침 페르디안이 방 밖에 있었다. 그가 회색 눈을 내리깔며 물었다.

“폐하께선?”

“주무세요! 저기, 페르 님. 폐하 요즘 잠을 잘 못 주무세요?”

페르디안이 멈칫하더니 미아를 물끄러미 보았다. 황제의 건강 상태는 아무에게나 말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미아가 염려가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자 곧 입을 열었다.

“네게 방을 따로 준 뒤부터.”

“아.”

“세레니티 듀레인과 지내게 된 후로는 네가 찾아오는 일도 줄었고.”

미아가 삐질삐질 땀을 흘리며 웃었다.

‘반려동물에서 해고되는 건 아니겠지! 지금 내쳐지면 황태후한테 큰일 나는데!’

미아는 아딜로트가 일어나면 불러 달라는 말과 함께 페르디안에게서 도망쳤다. 복도로 나선 미아가 생각 끝에 앞으로의 행동 지침을 결론 내렸다.

첫째, 두 사람의 칭찬을 하면서 서로의 평판을 높이기.

‘이때, 계속 아딜로트의 반려동물로 있을 수 있게 신경 쓰기!’

둘째, 세레니티에게 잭 아저씨에 관해 물어보기.

셋째, 황태후 크리소르를 어떻게 할지 생각해 보기.

넷째, 원작 정리해 보기.

‘원작이 다 망가졌을 가능성도 있어. 그러면 내가 아는 게 소용이 없으니까, 그럴 경우도 대비해서…….’

생각 끝에 정원까지 나오게 된 미아가 문득 걸음을 멈췄다.

“그러고 보니 렌은 어디 있지?”

그때였다.

짝!

멀지 않은 곳에서 경쾌한 뺨 맞는 소리가 났다. 미아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설마 이 전개!?’

미아가 소리가 난 곳으로 달려갔다. 아니나 다를까, 그곳에서 세레니티는 누군가에게 뺨을 맞고 고개를 돌린 채였다. 그 앞에서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턱을 치켜들었다.

“어떻게 듀레인 남작가의 냄새 나는 계집애가 궁에 들어온 거야?”

이거, 읽은 적 있는 대사다.

그런 깨달음이 미아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좀 더 다가가자 확실해졌다. 소라빵처럼 돌돌 만 파란색 머리카락과, 장미로 장식된 드레스.

‘테레지아 카르디날레 공작 영애!’

악녀의 등장이었다.

<장미 정원의 세레니티>에는 악녀가 셋 나온다. 그리고 그 셋은 각자 나름의 이유로 세레니티를 적대한다.

한 명은 아딜로트의 사랑을 받는 세레니티를 질투해서.

한 명은 세레니티가 자기보다 아름답다는 걸 두고 보지 못해서.

마지막 한 명은 신분이 낮은 세레니티가 떠받들어지는 걸 못 견뎌서.

테레지아는 그중 아딜로트를 좋아해서 세레니티의 연적이 되는 악녀다. 그녀는 아딜로트를 연모하고 있으나, 반황제파인 카르디날레 공작가의 사람이라는 입장 때문에 그것을 숨기고 지낸다.

그리고 자신이 가질 수 없다면 누구도 가질 수 없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남몰래 아딜로트를 흠모하는 영애들을 괴롭혀 왔다.

그러다 아딜로트의 총애를 받는 세레니티가 나타났고, 테레지아는 그녀에게 패악을 부리기 시작한다.

‘그것도 주로 손찌검으로.’

카르디날레 공작가는 무가다. 그래서인지 테레지아 역시 기골이 장대하고 힘이 센 편이었다. 뒤에선 카르디날레의 멧돼지라고 불릴 정도니 오죽했을까.

사교계엔 아직도 카르디날레가 반지를 자랑하듯 손가락만 흔들어도 도망치는 영애들이 있다고 한다.

그녀의 특기가 열 손가락에 낀 반지의 보석을 이용해 뺨에 생채기를 내는 거라서.

‘소설에서 렌도 테레지아 때문에 여기저기서 뺨 맞고 난리도 아니었지.’

말인즉 봐줄 필요가 없다는 뜻이었다. 미아의 눈이 전투적으로 빛났다.

“너 같은 게 폐하 곁에―.”

“잠깐!”

미아가 재빨리 달려가 세레니티 앞을 가로막았다.

“미아?”

놀란 세레니티의 금빛 눈이 떨렸다.

“실례지만 렌은 제가 데려가야겠는데요!”

미아의 얼굴을 본 테레지아는 얼굴에 놀란 빛을 띠었다가, 이내 거만하게 부채를 펼쳤다.

“이게 누구야. 폐하의 애완동물 아니야?”

“그래!”

“…….”

일순 잔뜩 독이 올랐던 테레지아의 표정에 금이 갔다.

“……너 지금 나한테 반말한 거야?”

“그래! 네가 먼저 나한테 반말했잖아!”

미아의 당당한 말에 부채를 쥔 테레지아의 손이 떨렸다.

“지금 나더러 네게 존대라도 쓰라는 거야? 난 공작 영애야!”

“난 폐하의 애완동물이야! 그러니까 당연히 내가 더 높지!”

미아가 얄미울 정도로 똑같이 테레지아의 어투를 따라 하며 말했다.

“빨리 존댓말 해!”

“……!”

테레지아가 부채 너머로 이를 갈았다. 당장이라도 미아의 뺨을 내려칠 것처럼 손이 움찔거리는 게 보였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가소롭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

“용기 하나는 대단하네!”

“어허!”

“……하군요! 수치도 모르고 반역까지 저지르고서 무도회에 나왔을 때부터 알아봤지만, 당최…….”

“너 폐하 좋아하지!”

난데없이 정곡을 찌르는 말에 테레지아가 비틀거렸다.

“뭐, 뭐?”

“내가 폐하랑 가까이 지내서 질투했지!”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거기다 엄청 예쁘고 착한 세레니티가 궁으로 들어가니까 더 화났지!”

“아니야!!”

발끈한 테레지아가 목소리를 높인 순간, 미아는 방긋 웃었다.

“아니야? 알았어! 폐하한테 네가 폐하 안 좋아한다고 전해 줄게!”

그 말에 테레지아는 멍한 얼굴을 했다가, 삽시간에 얼굴을 시뻘겋게 붉혔다.

“너, 너 이 계집애!!”

“테레지아는 폐하를 좋아하지 않는다!”

“이, 이게!? 조용히 안 해!?”

“어허!”

“조용히 하세요!!”

테레지아가 고함과 함께 미아의 머리카락을 잡기 위해 손을 뻗은 순간이었다.

‘손부터 나가는 성격인 걸 내가 모를까 봐!’

예상하고 있던 미아는 이어진 공격을 매끄럽게 피했다. 세레니티가 뒤에서 박수를 칠 정도의 솜씨였다.

아무리 노력해도 미아가 잡히지 않자, 테레지아는 울화통을 터뜨리며 부채를 내던졌다.

“왜 안 맞는 거야!”

그녀는 곧 붉은 눈을 부라리며 미아에게 삿대질하기 시작했다.

“네가 뭘 착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폐하께서 널 거둔 건 네가 그냥 반역자의 딸이라서야!”

오. 의외로 정확한데?

미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자, 제 말이 정곡을 찔렀다고 생각한 테레지아는 사악하고 표독스럽게 웃기 시작했다.

“이제야 좀 정신이 들어? 폐하께선 그냥 널 꿇어 앉혀서 황권이 건재함을 보여 주시려는 거라고! 그것도 모르고 뭐라도 된 것처럼……. 사람들이 널 두고 뭐라고 지껄이는지는 알고?”

“그만하세요, 카르디날레 영애!”

그녀의 말이 너무 심해지자 세레니티가 급하게 나섰다. 하지만 테레지아는 비웃으며 말을 끝마쳤다.

“넌 그냥 그분의 장난감일 뿐이야!”

테레지아의 외침이 정원에 울려 퍼졌다. 세레니티가 경악해 입을 가렸다.

“어떻게 그런 심한 말을……!”

테레지아는 우쭐한 채 미아의 반응을 기다리는 눈치였다. 최소한 상처받기라도 할 거라고 예상하는 듯했다.

그리고 미아는 거기다 대고 당당하게 외쳤다.

“맞아!”

“부정하고 싶겠지만……, 잠깐. 뭐?”

“맞다고! 장난감!”

미아는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난 그냥 폐하와 이런 거 그런 거 저런 거를 하는 사이일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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