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센트럴 시티 어딘가.
사방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전투가 벌어지는 와중, 주술사 하나가 집중포화를 벗어나는데 성공했다.
“주술사! 달부름이다!”
“저놈들이 야수화하려 한다! 막아!”
난전 속에서도 모두의 시선이 주술사에게로 몰렸다.
주술사를 보호하려는 웨어울프들과 어떻게든 달부름을 쓰기 전에 죽이려는 플레이어들.
마법사가 쏘아낸 불꽃이 길을 막아선 웨어울프에게 작렬했다.
웨어울프는 전신이 불타면서도 주술사 앞을 막아섰다.
불타는 웨어울프는 눈앞의 격투가 플레이어를 맨손으로 잡아 찢어 피로 불길을 껐다.
그러나 드루이드가 소환한 새들이 눈을 쪼고, 전사가 휘두른 망치에 그도 정수리를 얻어맞고 쓰러졌다.
‘가족’의 죽음이 웨어울프의 신경망을 통해 계속해서 퍼져나갔다.
그리고 달이 떠올랐다.
“아아아아!!!”
비명과 같은 하울링.
거기에 호응하듯 곳곳의 전장에서 하울링이 뒤따랐다.
“컥!”
“뭐야, 우린 아군……!”
야수화한 웨어울프들은 피아를 가리지 않고 주위의 모든 것을 때려 부수기 시작했다.
그들의 눈에는 적과 아군이 아니라 인간과 늑대만이 있었다.
그리고 인간은 늑대를 막아낼 수 없었다.
“끄아악!”
내려친 손에 판금갑옷이 종잇장처럼 찢겨나갔다.
내딛는 다리에 탱커들이 바닥을 구르며 밀려났다.
인간전차.
야수화한 웨어울프들은 압도적인 힘으로 전장을 갈아버렸다.
“전부 죽여 버리겠어!!”
시에라는 그 속에서 가족들의 죽음에 분노했다.
야수화한 그녀는 인벤토리에서 40mm기관포를 양손에 하나씩 꺼내들었다.
베르나데트는 그 모습에 기겁했다.
“미친?”
장갑차에나 얹어둘 기관포를 무슨 쌍권총마냥 양손에 들어 버린 것.
문제는 그 기관포가 인벤토리에서 나왔다는 것이었다.
인벤토리 안에 넣을 수 있는 총화기는 마찬가지로 인벤토리 안에 넣을 수 있는 탄환과 링크가 가능했다.
직접 장전할 필요 없이 총알이나 포탄을 드래그하는 것으로 재장전이 가능한 무기라는 뜻이고,
얼음마법으로 열기를 식히며 무한탄창 연사가 가능하다는 뜻이었다.
“일반 총알도 아니고 40미리 탄을?”
그러려면 무기도 탄환도 전부 아이템으로 취급되어야 해서 가격이 기하급수적으로 뛰지만, 그들의 뒷배가 누구던가?
“저 새끼들이라면 하루 종일도 쏴재낄 만큼 탄환을 쌓아뒀을 거야! 젠장 모두 물러나!”
아무리 플레이어가 초인이라도 그들의 레벨로는 대포를 막아낼 수 없었다.
하물며 그것이 괴물 같은 늑대인간이 양손에 들고 쏘는 거라면 더더욱.
“가족의 복수다!!!”
퍼버버버버버벙!!!
시에라는 야수화한 웨어울프의 근력으로 반동을 버티며 포탄을 난사했다.
산탄처럼 퍼지는 대공포탄을 연발로 갈겨대자 미처 피하지 못한 플레이어들은 순식간에 갈려 나갔다.
베르나데트는 황급히 빌딩 모퉁이를 돌아 포탄세례를 피하며 욕을 박았다.
“미친 저게 같은 49레벨이라고? 말이 돼?”
야수화한 웨어울프가 강하다는 건 알았지만 이건 정도가 심하지 않은가.
늑대 앞에서 플레이어들은 모두 평등해졌다.
“나와라 알파카 놈들!”
일반 플레이어와 웨어울프를 가리지 않고 마구잡이로 쏟아지던 죽음은 어느새 그들만을 향하고 있었다.
그녀는 곧장 무전기를 꺼내 들었다.
“보스! 결국 야수화하는 거 못 막았어요! 지원을!”
베르나데트의 지원요청.
그에 대한 성진의 답변은 간단했다.
“지원군은 이미 도착했다.”
“예?”
“숙여라.”
베르나데트가 엉겁결에 고개를 숙이는 그 순간.
빌딩 안에서 뿜어져 나온 검기가 건물을 통째로 반토막내며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갔다.
* * *
상업지구의 전투가 벌어진 순간, 백악관에서는 다나 또한 방문을 열어젖히고 나왔다.
방문 앞에서 다나를 감시하던 웨어울프들은 야밤에 전투 장비를 전부 갖춰 입고 튀어나온 그녀를 보고 일제히 무기를 꺼내 들었다.
“오늘 밤만은 방에서 나오시면 안 됩니다 아가씨.”
“오늘 밤만은?”
“…… 다 알고 계신 모양이군요.”
백악관에 온 첫날부터 대판 싸우고 비윤리적인 연구를 멈추게 했던 다나다.
당연하게도 시에라는 오늘 밤의 작전을 다나에게 숨기도록 명령했으나, 꼴을 보면 이미 들통났다는 사실은 명백했다.
“나한테 숨기고 몰래 일을 벌이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어?”
“대장님은 아가씨의 유약한 면을 걱정하셔서 그랬을 뿐입니다.”
“내가 유약한 거라면 너희는?”
다나가 검을 뽑아 들자 이전의 전투를 떠올린 몇몇 인원들이 움찔하며 물러났다.
“너희가 그렇게 끔찍한 짓을 하면서까지 추구하던 힘. 그 힘이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이었는지 가르쳐줄게.”
섬광이 번쩍이고 지나간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순식간에 백악관에 남아 있던 웨어울프들을 정리한 다나는 상업지구로 합류하기 전에 사도와 세계정부의 악행을 고발하기 위한 증거자료를 챙겼다.
‘어차피 초법적인 놈들이니 이걸 고발해봐야 처벌은 불가능. 하지만 적어도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릴 수는 있을 거야.’
성진은 강대한 적들을 상대하기 위해서 자신도 강해져야만 했다.
그런 그에게 남겨진 사람들을, 약자들을 돌보는 것까지 부탁하는 것은 너무한 일이리라.
“그렇다면 내가 옆에서 부족한 부분을 채우면 돼.”
베르나데트가 시에라를 처리하는 데 애를 먹고 있는 동안 다나는 가볍게 백악관을 정리했다.
이는 다나의 능력도 능력이었지만 웨어울프의 특성 탓이 컸다.
“그나저나 왜 나는 괜찮은 걸까?”
웨어울프의 유대감 때문에 시에라의 클랜원들은 다나를 상대로 진심으로 싸울 수가 없었다.
반면 다나는 같은 웨어울프이면서도 유대감에서 자유로워 그들과 싸우는 데 아무런 제약이 없었다.
그냥 넘어가기에는 신경 쓰이는 일이었으나 안타깝게도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다나 당신은 곧바로 상업지구에 합류하세요.
티타니아의 말과 동시에 다나의 눈앞에 빛의 길이 이어졌다.
다나의 눈에만 보이도록 마법으로 합류루트를 표시해준 것.
-오늘 밤. 당신이 센트럴 시티의 모든 늑대를 책임집니다.
* * *
도심의 빌딩 위에 앉아 있던 성진은 멀리서 느껴지는 마력파장에 시선을 향했다.
“잘 도착했군.”
스킬로 인한 마력과는 전혀 다른 방식의 요동.
야수화와 검기의 흔적이었다.
이런 식의 인위적인 흔적은 마법사가 흔한 세상이라면 모를까 지구에서는 멀리 떨어져 있어도 금방 눈에 띄었다.
“그에 반해 다른 쪽은 아직 조용한가.”
성진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스테이지 전역을 훑었다.
이 스테이지의 면적은 여의도의 1.5배 정도.
성진이 뿌려둔 정령들은 잘게 쪼개져 스테이지 전역을 감시하고 있었다.
“스테이지 내에서 이렇게까지 날뛰면 관리자도 움직일 터.”
아무리 다나나 베르나데트가 카르마의 보정을 받아도 천사가 움직이면 그걸 막을 수 있는 것은 아직 성진뿐이었다.
“내가 움직일 수 있는 건 천사를 족친 뒤. 그때까지 버틸 수 있을지 없을지.”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성진이 아니라 다나를 비롯한 그들 자신이었다.
“앞으로도 나를 따라올 수 있는 녀석들인지 실력이나 한번 보도록 하지.”
* * *
“미친…….”
눈앞에서 벌어지는 광경에 베르나데트는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섬광이 주변을 훑고 지나간 직후, 주위의 빌딩이 짚단처럼 잘려나가며 쓰러지기 시작했다.
베르나데트는 황급히 무너지는 빌딩의 여파에서 빠져나왔다.
“콜록! 콜록!”
대량의 흙먼지가 몰아닥치며 사방을 뒤덮었다.
‘방금 그건 검기?’
빌딩이라고 해봐야 결국 철근 콘크리트.
검기가 가르지 못할 건 없었다.
그러나 스킬로 뽑아낼 수 있는 검기의 길이는 무기의 길이에 비례했다.
아무리 검기가 철근 콘크리트를 가를 수 있다고 해도, 빌딩만 한 크기의 검기를 뽑아내지 못하는 이상 빌딩을 베는 것은 불가능.
눈앞의 소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것을 해냈다.
“우리 보스는 도대체 지원군으로 뭐하는 인간을 보낸 거야? 설마 저 사람도 사도……?”
그렇다면 자신은 다수의 사도가 엮인 곳에 줄을 댄 것이었다.
“대박.”
베르나데트는 흙먼지고 뭐고 입이 찢어질 듯 벌어지는 걸 참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아직은 전투 중인 상황.
웃고만 있을 때는 아니었다.
“당신이 베르나데트?”
“네? 네! 그렇습니다!”
“혹시 칼 가진 거 있으면 전부 내놔요. 가급적 레어급 이상으로.”
“여기 있습니다!”
베르나데트는 총잡이였으나 클랜장으로서 돈이 될만한 아이템을 맡아두고 있기도 했다.
다나는 레어 등급 장검 7자루를 받아들고 곧장 시에라에게로 뛰어들었다.
“왜 그놈들의 편을 드는 겁니까 아가씨! 그놈들은 우리 애들을 죽인 놈들이란 말입니다!”
놀랍게도 시에라는 야수화한 상태로도 비교적 냉철한 이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시에라를 간부로 만들어준 유전자 적성.
웨어울프로서의 적성이 높은 그녀는 부하들과 달리 본능에 사로잡히지 않았다.
“그리고 너희도 저 사람들을 죽였지. 이제 와서 잘잘못을 따지기에는 늦었어.”
“아가씨!!!”
드르르륵!
기관포가 불을 뿜었으나 놀랍게도 다나는 검기로 포탄을 가르며 전진했다.
이러한 모습에는 시에라조차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시에라는 대공포를 인벤토리로 되돌렸다가 다시 꺼내 발사했다.
다나는 그 모습에 포탄을 베어내지 않고 피했다.
‘대공포가 잠시 사라졌다 나온 직후 포탄의 발사음이 미묘하게 변했어.’
예상대로 그녀가 피해낸 포탄은 공중에서 폭발하며 주변에 파편을 뿌렸다.
검으로 베지 못하도록 포탄을 고폭탄으로 갈아끼운 것.
그걸 직감적으로 간파해낸 다나는 순식간에 시에라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서걱!
포탄세례를 피해 간격을 좁힌 다나의 검에 시에라의 양팔이 날아갔다.
양팔과 대공포를 잃은 시에라는 비통한 목소리로 외쳤다.
“아가씨께서 이러실 순 없는 겁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시에라의 머릿속에는 가족들의 죽음이 들려오고 있었다.
“우리는 당신을 위해! 당신에게 조금이라도 위험이 될만한 것들을 제거하기 위해 목숨을 바치고 있는데!”
다나는 그 말을 듣곤 문득 그녀의 언니를 떠올렸다.
‘어디까지라면 네가 받아들일 수 있겠니.’
신시아는 다나를 보며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 말을 내뱉었다.
자신이 저지른 짓에 대한 죄책감이나 부끄러움 따위는 전무하다는 듯한 모습.
그런 사람과는 어떻게 대화를 해야 할까?
시에라는 진심으로 저런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다나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없었다.
“나와 이 세상에 위험이 되는 건 다름 아닌 너희들이야.”
“……!”
뿌득!
시에라가 분노하여 이를 악물자 피가 흘러나왔다.
그러나 그 행동은 단순히 분을 못 이긴 행동이 아니었다.
“너……!”
입안에 숨겨둔 행맨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며 몸속으로 흡수되었다.
“그거 아십니까?”
잘려 나간 시에라의 양팔이 그 자리에서 재생되었다.
“행맨의 중독, 광폭화 등의 효과는 어디까지나 부작용. 초인의 몸을 가정해 만들어진 전투자극제를 저레벨 플레이어들이 복용해서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반면 웨어울프라면 그 부작용에 휩쓸리지 않고 약효를 온전히 받을 수 있다.
시에라는 재생된 팔로 격투자세를 잡았다.
“무리의 우두머리가 되고 싶다면 애들이 아니라 저를 넘어서십시오.”
파앙!
충격파가 터졌다.
“커헉!”
복부에 틀어박힌 주먹이 내장을 파괴했다.
인식한 순간, 한 박자 늦게 튕겨 나간 다나의 몸이 쇼윈도를 깨고 근처의 상가에 처박혔다.
“케흐흑!”
공격당한 다나는 자세를 잡지 못하고 허우적거리며 피를 토했다.
신체의 대미지보다 정신의 대미지가 더 컸다.
‘방금 그거, 죽는 거였어.’
지금 자신이 살아 있는 것은 즉사피해를 막아주는 불굴의 의지라는 광전사의 패시브 스킬 때문.
콰앙!
-정신 차리세요!
이어진 공격을 막아낸 것은 미니언 상태의 티타니아가 펼친 보호막이었다.
-죽고 싶어서 환장했어요? 전투 중에는 상대에게 집중하세요!
생각은 나중이다.
이번만큼은 다나도 불굴의 의지 효과로 요동치는 마력을 일일이 통제하려드는 대신 흐름에 순응했다.
-현재 상대의 몸 안에는 폭주하는 마력의 흐름이 일종의 마법진의 형태를 띄고 있어요. 신체능력은 거의 80레벨 수준이에요.
레벨 차이에 따른 전투력의 차이는 10레벨당 10배 정도로 취급했다.
10레벨에 10배.
20레벨에 100배.
30레벨이면 1,000배.
80레벨급이라면 49레벨 플레이어에 비해서 1,000배는 강한 수준이란 소리.
-물론 레벨 간의 장비나 스킬, 스탯을 고려한 차이니까 신체능력만으로는 그보다 적은 차이겠지만, 지금의 당신으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적입니다. 제가 보조할 테니 물러나세요.
안 그래도 31레벨인 다나의 상태를 생각하면 타당한 이야기였다.
그러나 다나는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도망치는 건 질렸어.”
-당신……?
“저 녀석도 웨어울프인 이상 이건 언니가 시작한 일이야. 그렇다면 내가 책임지고 끝을 내겠어.”
다나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티타니아에게 웃어 보였다.
“상대가 강력하다면 그만큼 카르마라는 걸 많이 얻을 수 있다는 거잖아?”
그녀는 자신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