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 부수는 플레이어-44화 (44/170)

<44>

“쓰러뜨린 클랜은 전부 인수합병하여 하나의 단일 클랜으로 만들어라.”

“센트럴 시티를 먹겠다는 게 농담이 아니셨어요?”

“그래. 이곳에 단 하나의 클랜만을 남겨둘 거다. 그러니 슬슬 이름을 생각해두도록.”

“예?”

“알파카 시티 같은 이름을 쓸 거라면 굳이 말리진 않겠다만.”

베르나데트에게 사태의 수습을 맡겨둔 성진은 다나에게 붙여둔 정령을 통해 그녀에게 연결했다.

“이야기는 들었겠지? 놈들은 반성하고 얌전히 물러날 생각 따윈 없다.”

-예. 확실히 알겠네요. 이대로 기다리고 있어 봐야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거라는 걸.

분명 시에라는 다나가 보는 앞에서 실험용 NPC들을 풀어주고, 만들어둔 약을 폐기 처분하는 등 약속을 지키는 것처럼 행동했다.

그러나 티타니아를 통해 들은 정상회의의 내용은 그것들이 모두 쇼에 불과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놈들은 사도의 속셈과는 상관없이 스스로 그런 결정을 내렸다.”

돈이든, 권력이든, 힘이든.

무엇을 바라고 사도의 편에 섰든, 그들은 선을 넘었다.

“그렇담 우리도 보답을 해줘야겠지.”

* * *

“크읏!”

맥스웰은 분노했다.

“내 연구야! 내 약이라고! 내가 시작해서 드디어 실제 약을 제조하는 단계까지 왔는데, 그딴 애새끼의 정의감 따위에 발목을 잡혀야 한다고?”

시에라는 다나의 등장을 계기로 삼아 평소 본가의 위광을 등에 업고 백악관을 멋대로 휘두르던 맥스웰의 영향력을 잘라냈다.

그녀 딴에는 단순 연구원이자 늑대도 아닌 인간 따위가 늑대인 그들에게 명령하는 꼴을 볼 수 없었을 뿐이지만, 맥스웰에게는 달랐다.

약육강식의 시대.

맥스웰은 힘을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카르텔의 눈에 들었다.

탑에 들어와서도 약물을 연구하며 그가 바랬던 것은 더 강한 힘을 얻는 것.

탑을 나설 때 고정되어 더 이상 강해질 방법이 없는 레벨과 달리 약물은 얼마든지 개선할 수 있다.

그렇다면 약물의 힘을 이용하면 높은 층에 도달할 수 있음은 물론 탑을 나가서도 더 강해질 수 있으리라.

허나 그런 그를 막아선 다나는 약도, 웨어울프의 힘도 쓰지 않고 그와 부하들을 제압했다.

“어째서지? 이렇게까지 해도 애새끼 하나를 이길 수 없단 말인가? 재능이라는 것 때문에?”

충격이었다.

“인정할 수 없다. 선천적인 반사신경이나 동체시력 따위로 인간의 가능성을 결정할 수는 없어!”

맥스웰은 자신을 증명해야만 했다.

“내가 만든 약을 사용하면 그런 애새끼한테 질 리가 없다.”

다나는 사도의 동생.

당연하게도 그가 손대선 안 될 사람이지만, 지금 센트럴 시티는 대규모 처분 앞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예상치 못한 사고가 일어나도 제대로 된 진상을 파악할 수 없으리라.

‘행맨을 도시 전역에 살포하기 위해서는 백악관의 모든 인원들이 움직여야 한다. 그때라면 감시의 눈도 줄어든다.’

사람 하나 묻어 버리기에는 딱 좋은 기회였다.

* * *

센트럴 시티의 인구는 소환된 NPC를 포함해 약 1만으로 추정되고 있었다.

이 중 대부분은 공략을 멈추고 부가가치 창출에 매진하는 생산직.

전투원은 각 클랜의 클랜전 멤버와 곧 위층으로 올라갈 일반 공략 플레이어들뿐이라 비율이 그리 높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티타니아가 30층을 틀어막으며 새로운 31레벨들의 유입이 끊기자 이런저런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으나, 베르나데트의 행보가 그 모든 목소리를 덮어버렸다.

신입이 안 들어오는 것보다 당장 눈앞에서 일어나는 대격변이 더 큰 문제였으니까.

성진은 철저히 자신의 존재를 숨기며 기존의 알파카 클럽 클랜원들을 움직였다.

“오늘 우리는 이곳에서 다른 사도의 클랜을 모두 몰아내고 센트럴 시티를 접수한다.”

해가 저물고 상업지구의 네온사인이 밝아오는 밤.

성진은 자신의 카르마로 강화된 알파카 클랜원들을 집합시켰다.

“놈들은 우리의 힘이 그들이 감당할 수 있는 선을 넘으려 하자 우리 모두를 제거하려 하고 있다.”

성진은 그곳에서 정령을 통해 보았던 회의장의 기록을 모두 공개했다.

“그러니 우리는 놈들이 상업지구에 행맨을 푸는 순간을 노려 역공을 가한다.”

센트럴 시티의 거의 모든 플레이어가 상업지구에 몰려 있는 밤.

놈들은 상업지구 전체에 행맨을 풀기 위해 사방으로 퍼질 테고, 그걸 모두 잡아내려면 성진 혼자서는 불가능했다.

강력한 한 명보다 사방에서 벌어지는 일을 동시에 처리할 수 있는 여러 손이 필요한 것.

이때를 위해 카르마를 키워둔 알파카 클랜원들은 이미 같은 레벨대에서는 적수가 없을 수준까지 성장해 있었다.

“숫자는 분명 놈들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놈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있고, 놈들은 우리가 자신들을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작전의 성패는 여기에 걸렸다.”

티타니아에게 플레이어들을 붙잡아 달라 부탁하여 30층을 틀어막은 것도.

이곳에서 베르나데트를 끌어들여 이 난리를 치는 것도.

결국 모든 것은 탑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바깥에 있을 놈들의 귀에 들어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인원을 나누어 놈들을 한꺼번에 친다. 놈들이 커뮤니티를 통해 서로 연락할 틈을 주지 마라.”

연락을 막기 위해선 어설프게 제압 따위를 시도하고 있을 틈이 없었다.

“우릴 제거하려던 놈들을 모두 제거해라.”

놈들은 스스로 센트럴 시티의 리셋을 선택했다.

이제는 사도에게 속았을 뿐이라 변명할 수 없게 된, 똑같은 놈들일 뿐.

“놈들에게 줄 것은 죽음뿐이다.”

* * *

“여기가 클럽 알파카인가? 대부분의 클랜을 집어삼켰다더니 확실히 규모가 크군. 탑 안에서 이만한 인원이 모여 있는 모습을 보는 건 오랜만이야.”

상업지구 클럽 알파카 인근의 건물 옥상.

시에라는 부하들과 함께 은신상태로 클럽을 살폈다.

“이제는 센트럴 시티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장소입니다. 행맨을 풀기엔 제격이라는 거죠.”

클럽 내부에는 여러 클랜의 관계자들이 모여 있었다.

개중에는 이미 행맨에 중독된 플레이어도 다수 있었다.

“그간 꾸준히 행맨을 풀어온 결과, 센트럴 시티의 전투 플레이어 절반은 행맨을 복용해본 적 있습니다. 한 번이라도 행맨을 먹어본 놈들은 우리가 신호만 주면 바로 이성을 잃고 날뛸 겁니다.”

“반절이 날뛰는 동안 나머지 인원에게도 기화시킨 행맨을 들이마시게 한다. 모든 플레이어들이 폭주하면 우리가 손을 더럽힐 것도 없이 상잔하겠지.”

회차 리셋을 위해 일일이 플레이어들을 잡아 죽일 필요는 없었다.

약을 풀고 중독을 버텨낸 소수만 따로 처리해두면 자기들끼리 싸우다 모두 죽으리라.

“우리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아가씨의 보호다. 오늘 밤은 신속하게 일을 처리하고 백악관으로 복귀한다.”

오늘의 작전을 위해 나온 것은 시에라와 부하들뿐. 다나는 맥스웰 및 소수의 늑대와 함께 백악관에 남아있었다.

‘맥스웰 그놈이 이런 상황에서 또 사고를 치진 않겠지?’

아무리 싫어도 그는 연구를 위해 카르텔 상층부가 섭외해 들여보낸 인물.

시에라라도 마음대로 건드릴 순 없었다.

‘뭐 아가씨의 실력이라면 그놈이 아무리 수작을 부려봐야 걱정 없겠지.’

본가에서 애지중지하는 아가씨답게 다나의 실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어쩌면 스펜서 가문의 두 번째 사도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

다나가 야수화한 부하들을 하나도 죽이지 않고 모두 제압한 모습을 보았을 때.

시에라는 단순히 세상물정 모르는 어린애를 돌보게 되었다는 생각을 버렸다.

‘비록 방식에 대한 생각은 달라도 가족을 위한다는 뜻은 같을 터. 언젠간 다나 아가씨 또한 사도위에 올라 가주님을 보필할 거야.’

그때가 되면 사도를 둘이나 보유한 스펜서 가문은 지구상의 그 어떤 이들도 범접할 수 없는 지위를 얻으리라.

“아가씨는 우리의 희망이다.”

‘가족’들을 위해서라면 시에라는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다른 쪽에서도 준비가 완료되었다는 소식입니다. 저희가 시작하면 그걸 신호로 상업지구 전역에 행맨 살포가 시작될 겁니다.”

“좋아. 그러면 시작해.”

시에라의 명령에 클럽 내에 잠입해 있던 첩자들이 일제히 호루라기를 꺼내 들었다.

특수 제작된 이 고주파 호루라기의 소리를 들으면 몸 안에 배출되지 않고 남아 있던 행맨 성분이 재차 작용, 해당 인물은 폭주한다.

그리하여 소란이 일어나는 동시에 바깥에서 대기하던 웨어울프들이 돌입하는 작전이었으나.

“뭐지? 왜 호루라기 소리가 안 나는 거냐?”

“그야 우리도 대비하고 있었으니까.”

뒤에서 들려온 소리에 시에라와 웨어울프들이 돌아보자 그곳에는 일단의 플레이어들이 서 있었다.

‘어떻게 이만한 인원이 웨어울프의 감각을 속이고 접근한 거지?’

갑작스런 등장에 순간적으로 당황했으나 시에라는 침착하게 상황을 살폈다.

등장한 것은 클럽 알파카의 수장, 베르나데트와 그녀가 흡수한 클랜의 전투원.

인원수로는 여기 모인 웨어울프들의 4배는 되는 숫자였다.

가장 앞에 선 베르나데트는 시에라가 첩자로 심어두었던 플레이어의 목을 집어 던졌다.

“멍청한 개새끼들은 시킨 일밖에 못해서 상황파악이 안 되나? 이미 네놈들의 작전은 다 발각됐거든.”

잘 숨어들었다고 생각한 첩자들은 호루라기를 꺼내드는 순간 모두 손모가지가 날아갔다.

이미 클럽 안의 모든 플레이어들은 베르나데트의 명령을 받아 역으로 늑대들이 움직이길 기다리고 있었던 것.

“피차 노리는 건 서로의 목숨인 것 같은데. 그럼 대화는 필요 없지?”

베르나데트의 말과 동시에 그녀의 부하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평범한 인간 주제에 간이 부었구나!”

웨어울프들도 그 모습에 물러나지 않고 돌격했다.

센트럴 시티의 플레이어들을 상잔시키려는 작전은 수포로 돌아갔지만, 웨어울프인 그들의 전투력은 60레벨 수준.

49레벨 플레이어로 가득한 이곳에선 그야말로 여포나 다름없는 이들이었다.

“그래 봐야 죽는 방식이 바뀌었을……!”

타앙!

그렇게 외치며 가장 먼저 돌격한 웨어울프는 베르나데트의 총격에 머리가 터져 나갔다.

“아닛?”

베르나데트는 놀란 웨어울프들을 바라보며 리볼버의 총구에 바람을 불어 연기를 흩어 버렸다.

총잡이의 주력 딜링 스킬인 헤드샷.

허나 그것만으로는 동레벨 전사를 한 방에 죽인 게 설명되지 않았다.

“축성된 은탄 맛이 어떠냐 개새끼들아.”

오로지 웨어울프를 잡기 위해 준비한 한 발에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특수탄.

전 재산을 꼴아박아 준비한 은탄의 효과는 확실했다.

“저 망할 개새끼들한테 본때를 보여줘라!”

베르나데트가 데려온 플레이어들은 대부분 최근 흡수한 동맹의 클랜원들.

이들은 불패의 선봉장 효과를 받지 못했으나, 이번 전투를 위해 온갖 버프와 장비를 떡칠해온 상태였다.

‘그러고도 부족한 전투력은 인원수로 채우면 돼!’

상업지구 전역에서 벌어질 전투를 커버하기 위해서는 알파카의 멤버들도 인원을 나눌 수밖에 없었다.

이곳에서 성진의 카르마 효과를 받는 건 베르나데트 하나뿐.

놈들이 야수화하기 전에 모두 끝내야 했다.

타앙! 타앙!

난전 속에서 베르나데트는 다른 플레이어들이 준 버프를 떡칠한 채 침착하게 헤드샷으로 적의 수를 줄여나갔다.

“커헉!”

베르나데트의 총알이 박힐 때마다 웨어울프가 한 명씩 쓰러져갔다.

이러한 상황이 반복되자 웨어울프들도 누구를 노려야 할지 깨달았다.

“네년이 감히!!!”

웨어울프의 유전자로 서로의 감정을 공유하는 그들은 아군이 쓰러지자 복수심에 불타며 베르나데트에게 달려들었다.

일당백은 아니더라도 개개인의 능력은 여전히 그들이 뛰어났다.

그들은 순식간에 막아서는 플레이어들을 뚫고 베르나데트를 노렸다.

“죽엇!!!”

콰직!

베르나데트의 목을 노린 단검 찌르기에 탱커 플레이어가 방패를 들고 그 사이를 막아섰다.

“꺼져 이 미친 개새끼들아! 네놈들이 먼저 우릴 죽이려고 했으면서 어딜 피해자행세야!”

“그야 인간 주제에 기어오르려 하니 그런 거다!”

뒤이어 달려든 또 다른 웨어울프의 대검에 탱커의 머리가 반으로 쪼개졌다.

그 사이 재장전을 마친 베르나데트는 속사 스킬로 상대의 눈을 노렸다.

웨어울프들은 헤드샷에 비해 약한 대미지의 속사를 버텨냈으나, 시야가 가려진 틈을 타 다른 플레이어들이 쇠사슬을 걸고 심장에 창을 꽂았다.

“으아아아아!!!”

“죽여라!!!”

죽고 죽이는 싸움.

이러한 싸움이 상업지구 전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사장님!

“뭔데 나 지금 바쁘……!”

-죄송합니다! 저희 쪽 애들이 주술사 하나를 놓쳤습니다!

베르나데트는 그 말에 발작적으로 연락해온 이들이 투입된 방면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젠장.”

그와 동시에 도시 한복판에서 달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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