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이쪽에서는 상대를 볼 수 있으나, 상대는 이쪽을 볼 수 없는 특수유리와 같은 방어막.
다나는 그 방어막 안에서 포션을 마시고 상태를 회복했다.
어느새 바깥에 있는 시에라도 방어막을 뚫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싸우실 거라면 보조는 하겠지만. 이 몸으로 쓸 수 있는 마력은 슬슬 바닥이랍니다. 이전에 드린 가호 정도가 한계에요. 방어막도 곧 해제될 거고요.
“그거면 충분해.”
티타니아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 내심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당신도 그런 부류였나요.’
종족의 지도자이자 성진의 동료로 함께하며 티타니아 또한 여러 인간군상을 만나보았다.
나라의 영웅이라 불린 자도, 세기의 악당이라 불린 자도.
수많은 이들이 있었으나 결국에는 똑같았다.
‘선생님과 함께하려 하는 자들은 모두 부나방처럼 죽어갈 뿐. 그것은 저도 마찬가지였죠.’
결국 티타니아가 사람을 분류하는 방식은 둘 중 하나가 될 수밖에 없었다.
성진에게 도움이 될 자.
혹은 그러지 않은 자.
무수한 죽음을 보아온 티타니아였다.
성진이 신경 쓰지 않도록 가급적 모두에게 똑같이 대하지만, 사실 그녀는 성진을 제외한 그 누구에게도 기대를 걸고 있지 않았다.
공손한 태도는 학습된 겉치레일 뿐.
‘저는 어디까지나 왕의 대체재이자 전투 병기. 그리고 선생님의 검.’
티타니아는 성진이 부모의 역할을 대신하여 자신에게 온갖 것들을 가르쳐주던 때를 떠올렸다.
‘선생님께서는 저의 이러한 생각을 금지하고, 세상을 보고 배워서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도록 시키셨지요.’
명령에 따라 고민한 끝에 티타니아는 스스로의 의지로 성진의 검이 되기로 했다.
전장에서는 성진을 위해 기쁘게 죽었다.
또한 탑에서 다시 만났을 때는 기쁨을 억누르고 평정을 가장했다.
‘선생님은 제 부모이자, 세계이자, 모든 것. 저따위의 죽음이 그분께 해가 되어서는 안 될 일.’
자신의 죽음 따위로 성진이 조금이라도 죄책감을 느껴서는 안 될 일이었기에.
인간의 윤리관으로는 비뚤어진 애정일지언정 요정으로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더러운 시체쟁이에 비하면 조금은 그분께 도움이 될까 싶었지만, 결국 영웅병자였을 뿐인가요.’
티타니아는 인형과도 같은 정령의 모습으로 싸늘한 시선을 보냈다.
‘가족의 잘못을 자신이 책임지겠다는 생각에 얽매여 무엇이 중요한지 잊어버리시다니. 어리석은 분.’
다나는 그러한 티타니아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포션을 마시며 바깥의 시에라에게 모든 집중을 쏟고 있었다.
‘호흡은 물론 심장의 박동까지. 상대의 모든 것을 읽는다.’
상대의 신체능력이 강하다?
어차피 지금까지 다나는 자신보다 약한 상대와 싸워본 적 따윈 없었다.
몬스터와의 근접전투는 기본적으로 자신보다 신체능력이 뛰어난 상대와의 싸움이었으니까.
때문에 대부분의 플레이어는 사제나 궁수, 마법사, 총잡이 등의 후열직업을 선호한다.
전열을 고른다고 해도 성기사처럼 탱킹과 서포팅에만 주력하는 경우가 대부분.
현실은 게임이 아니니 근접 딜러는 희소할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근접 딜러 간의 전투경험을 가진 사람은 드물었다.
그것이 1:1 PK라면 더더욱.
‘이제 알겠어. 지금의 내 능력으로도 충분히 이길 수 있어.’
물러서지 않겠다는 선택.
그에 따라 다나의 영혼에 카르마가 서리기 시작했다.
“내가 신호하면 방어막을 열어줘.”
* * *
시에라는 티타니아의 방어막을 몇 번 두들겨보다 이내 공격을 멈췄다.
‘때려서 부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아. 하지만 이만한 스킬이라면 무한정 유지할 수는 없을 터.’
상대의 MP가 모두 떨어지기를 기다려도 괜찮겠지만, 사방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제 발로 나오도록 끌어내면 될 일.”
결정한 순간, 시에라는 눈 깜짝할 새에 근처에 숨어 있던 베르나데트를 잡아왔다.
다나조차 반응하지 못한 운동능력에 베르나데트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잡힐 수밖에 없었다.
“상관없는 NPC의 목숨조차 그리 아끼시는 아가씨라면 이 자의 죽음을 그냥 보아 넘기지 않으시겠지요?”
“뭐? 당신 설마……!”
“셋을 셀 때까지 그 안에서 나오지 않으신다면 이 자를 죽이겠습니다.”
농담이 아니었다.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아가씨가 나올 때까지, 계속해서 주변에 보이는 플레이어를 마구잡이로 잡아 죽일 겁니다. 선택하십시오.”
셋.
오래 기다릴 것도 없이 카운트다운이 시작된 순간 보호막이 열리며 검기가 치솟았다.
두 자루의 검이 머리와 심장을 노리고 날아왔고, 이어서 다나가 양손에 또 다른 두 자루를 나눠들고 시에라를 베어왔다.
시에라는 침착하게 급소에 던진 두 자루를 잡아채고 팔로 이어진 베기를 막았다.
터억!
다나의 검기는 시에라의 살가죽을 파고들었으나 뼈를 베지 못하고 시에라의 근육에 붙들렸다.
“완전히 베어내지 못한다면 이까짓 상처쯤.”
시에라는 검이 꽂힌 채로 팔을 휘둘렀다.
다나는 검을 놓치고 도로 위로 던져졌다.
날아가던 다나는 가로등에 다리를 뻗어 발을 걸었다.
빙글!
다나가 걸린 발을 축으로 회전하며 가로등 위로 올라섬과 동시에 쫓아온 시에라의 주먹이 작렬했다.
콰앙!
예상하고 있던 공격.
그새 인벤토리에서 새로운 검을 뽑아든 다나는 검기를 입혀 맞부딪혔다.
“고작 그런 걸로 저를 죽일 수 있겠습니까!”
검기 덕분에 무기는 충격을 버틸지언정, 그걸 든 다나의 몸은 시에라와의 전투를 버티지 못했다.
오른팔이 부러지며 손에서 힘이 빠졌다.
검을 왼손으로 바꿔 쥔 다나는 가로등 아래로 뛰어내리며 이어진 공격을 흘려냈다.
시에라도 곧장 따라붙었으나 다나는 검기의 형태와 크기를 조절하며 모든 충격을 흘려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귀신에게 홀리기라도 한 듯한 감각.
시에라는 황급히 정신을 차리고 전략을 변경했다.
“그렇다면 충격을 흘려낼 수 없게 하면!”
시에라는 다나를 하늘로 집어던졌다.
행동이 제한되는 공중이라면 대응할 수 있는 것도 한계가 있으리라.
“2차 전직 전의 광전사라면 공중전을 위한 스킬도 아직 없을 터. 여기서 대공포라도 쏴 갈기면…….”
그러나 이어진 광경은 시에라의 상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타앗!
인벤토리에서 철제 방패나 갑옷 따위를 쏟아낸 다나는 그것들을 박차고 허공을 뛰어오르기 시작했다.
‘플레이어의 감각과 각력이라면 불가능한 일은 아냐. 하지만……!’
공중도약은 전투계 플레이어라면 두어 번 정도는 실전에서도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이었다.
그런데 지금의 다나는 연속으로 몇 번이나 공중도약을 반복하고 있었다.
‘10번? 20번? 아니 저 정도라면 방해가 없으면 몇 번이라도……!’
놀라울 정도의 균형감각.
‘날아가는 와중에 근처에 있는 가로등에 다리를 거는 것도 대단했지만 저건 도대체……?’
시에라가 충격적인 광경에 놀란 틈을 타 다나는 어느새 한참 위까지 올라가 있었다.
“아차, 이러다 놓친다!”
뒤늦게 대공포를 꺼내든 시에라는 순간 이상함을 느꼈다.
“잠깐. 어디까지 가는 거지?”
이쪽에 대공포가 있다는 사실은 다나도 알고 있을 터.
그렇다면 빌딩을 끼고 도망칠 법도 하건만 다나는 그저 높이, 하늘 위를 향해 일직선으로 뛰어오르고 있었다.
“설마! 주술사!!!”
“이미 늦었어.”
다나의 생각을 알아챈 시에라가 황급히 주술사를 불렀으나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부웅!
가진 마력을 전부 쏟아부어 만든 거대한 검기.
“검기가 서린 검은 만져지지 않는 영체나 마법조차 벨 수 있지.”
검기는 50레벨에 배우는 스킬.
아무리 전투에 익숙하더라도 49레벨까지만 머무를 수 있는 센트럴 시티의 플레이어들이 그 특성까지 떠올리긴 힘들었다.
“그리고 달부름으로 불러낸 달은 어디까지나 공중에 떠 있는 마력 구체 일 뿐.”
진짜 달처럼 우주 저 멀리에 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즉,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다.
서걱!
다나가 휘두른 검이 하늘에 떠오른 달을 갈랐다.
달은 다나의 검기를 버티지 못하고 반으로 쪼개지며 소멸했다.
“으아아아아아아아!!! 다나 스펜서!!!!!!”
플레이어들과 뒤섞여 싸우고 있는 와중에 야수화가 풀린다면 웨어울프는 전멸이다.
시에라는 야수화가 풀려가는 것을 느끼며 다나를 향해 분노했다.
반면 다나는 무심하게 밤하늘에서 떨어져 내렸다.
“네가 저지른 죄는 내가 대신 속죄할게.”
시에라를 향해 떨어진 다나는 폭풍과도 같은 연격으로 그녀를 베어내며 착지했다.
이어서 착지한 그녀가 검을 집어넣은 순간.
털썩!
시에라가 쓰러졌다.
[당신의 행동이 영혼의 업(業)으로 쌓입니다!]
[새로운 카르마를 획득합니다.]
[<불굴의 투지(희귀)>를 획득하셨습니다.]
[<피보다 진한 신념(영웅)>을 획득하셨습니다.]
“우와아아아아아!!!”
“웨어울프 대장이 쓰러졌다!!!”
우레와 같은 함성이 터져 나왔다.
상업지구에 있던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다나의 전투를 목격했다.
전투에 참여한 이들 외에도 야밤의 갑작스러운 소란에 일반 플레이어들도 상황을 지켜보던 중이었다.
달을 베어내고 유성처럼 떨어져 내린 일격.
같은 플레이어라고는 믿기지 않는 영화 같은 한 장면에 모두가 환호했다.
정작 다나는 주변에서 그러거나 말거나 고갈된 체력과 마력을 보충하기 위해 포션과 칼로리바를 뜯어먹었다.
-부러진 팔로 잘도 드시네요.
“아직 전투 중이니까. 빨리 회복해야 해.”
티타니아는 그런 다나를 신기하다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자신보다 강한 적을 향해 거리낌 없이 달려드는 이들은 드물지 않았다.
분노에 몸을 맡기든, 자포자기를 했든. 항상 합리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으니까.
-사람은 항상 합리적이기만 한 게 아니다.
티타니아는 문득 성진이 자신에게 처음 해주었던 말을 떠올렸다.
이성과 합리성 아래 살아가는 요정족.
성진은 왕의 대체품이었던 그녀에게 티타니아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그녀가 도구나 장치가 아닌,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해주었다.
훗날 알아본 바에 따르면 그 이름은 그저 지구의 한 작가가 사용했던 요정여왕의 이름을 떼어왔을 뿐인 것이었으나, 그녀에게는 무엇보다도 소중한 이름이 되었다.
-그리고 ‘합리적이지 않기 때문에 위기 앞에서도 합리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였던가요.
지금처럼 담담히 다음 싸움을 준비하는 다나의 모습은 꽤나 인상적이었다.
-위험 앞에 당당한 자는 기적을 일으키는 영웅이 되지만, 기적조차 담담히 여기는 자는 구원자가 되는 법.
평범한 이들과는 달리 너무도 먼 곳을 바라보고 있기에.
모두가 기적이라 여길만한 일도 구원자에게는 그저 담담히 거쳐 가야 할 일이 되는 법이었다.
한때 성진이 그랬듯.
문득 티타니아는 성진이 왜 다나를 데려왔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조금은 선생님과 닮았을지도 모르겠네요.
“응?”
-혼잣말이니 신경 쓰지 마시길.
티타니아는 문득 먼 산을 바라보다 말했다.
-혹시 모를 일이니 조금이라도 회복을 해두는 건 좋지만. 오늘 밤 당신이 더 싸워야 할 필요는 없겠네요.
“음?”
-저길 보세요.
티타니아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하늘을 바라보자 어느새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다.
“아니, 아직 그럴 시간은 아닐 텐데……?”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밝아온 하늘은 고작 1분 남짓한 시간 만에 완전한 대낮이 되었다.
아직까지 싸우고 있던 플레이어들도 이러한 이상 현상에 전투를 중단하고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베르나데트는 눈치껏 다나에게 합류했다.
“저기 그러니까 아가씨? 저희 보스와 함께하시는 분이죠? 아무튼 지금 저 상황에 대해서 아시는 게 있으십니까?”
“천사.”
“네?”
“곧 천사가 내려올 거야.”
마침내 관리자가 움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