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 부수는 플레이어-40화 (40/170)

<40>

탑 바깥에서 탑 내부의 아이템들이 비싸게 팔리는 것처럼, 탑 내부에서는 바깥의 물건들이 비싸게 팔렸다.

들고 나갈 수 있는 물건과 마찬가지로 들고 들어올 수 있는 물건도 한정적.

상점에서는 생활과 전투에 필요한 모든 아이템을 팔지만, 커피나 담배처럼 현대인이 소비하는 물건들은 한둘이 아니었다.

“공략을 멈추면 그 순간 포인트 벌이가 끊기죠. 49레벨에서 멈추고 센트럴 시티에 머물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으로 포인트를 벌 수밖에 없어요.”

베르나데트의 클랜은 이를 위해 클럽을 열고 술을 만들어 팔았다.

“대부분의 클랜은 저희처럼 장사를 해요. 하지만 세계정부의 공인 클랜들은 다르죠.”

“어떻게 다르지?”

“그놈들은 일을 안 하고 자릿세나 보호비를 뜯어먹죠. 이게 무슨 뜻이겠어요?”

“어디서나 돈의 흐름을 가장 잘 아는 건 세금징수원인 법이지. 놈들이 센트럴 시티의 현황을 가장 잘 파악하고 있겠군.”

“네. 그놈들부터 조져두면 나머지는 줄줄이 소세지나 마찬가지예요.”

성진은 그 말에 베르나데트를 빤히 바라보다 피식 웃었다.

“그래서, 너희 클럽에서 자릿세를 거둬가는 놈들은 누구지?”

“……!”

“이왕 조지는 거 너희 돈 뜯어가는 놈들부터 조져달라는 거 아닌가. 의도가 너무 빤히 보여서 웃기긴 하다만 진심으로 나를 돕는다면 그 정도쯤이야 못 해줄 것도 없지.”

정곡을 찔린 베르나데트는 성진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불리한 이야기는 전부 배시시 웃어넘기고 본론을 꺼내 들었다.

“정의구현 클랜입니다. 소속원은 14명에, 전원 49레벨 플레이어고, 특이사항으로는 군인 출신이 있어요.”

“정의구현?”

“클랜명이에요. 바깥에서야 클랜도 기업처럼 정식으로 등록하고 운영해야 하지만, 탑 내에서는 비공식적이라 게임 감각으로 이름 짓는 놈들이 많거든요.”

“군인 출신이라는 건 지금은 군에서 나왔다는 거군.”

“가끔 있죠. 정부군에 있다가 자기 클랜 차리려고 전역하고 들어오는 놈들이요.”

지금 같이 세계정부의 힘이 강한 상황에서는 군이야말로 가장 출세하기 좋은 곳이었으나, 메인스트림은 언제나 엘리트들의 차지인 법이었다.

능력이 있어도 출신성분의 한계로 올라갈 수 없다면 자기 사업을 하러 나오는 것도 좋은 방법이었다.

“이놈들은 군 시절의 인맥을 이용해서 센트럴 시티에 알박기를 시전한 놈들이죠. 덕분에 전투력은 그럭저럭하지만 여기저기 얽힌 놈들이 많아서 건드리기가 힘들어요.”

“설명이 참 상세하군. 애초에 명분만 생기면 바로 조져 버리겠다 벼르고 있었나?”

“우리 새로운 보스가 말이 참 잘 통하시네.”

“좋아. 어디 한번 해봐라.”

“바로 놈들에게 클랜전을 신청하겠습니다.”

클랜전.

사법기관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 탑 내에서는 분쟁이 생길 경우 이를 PK로 해결했다.

어차피 마지막엔 힘 싸움까지 갈 거, 서로 암살 같은 거 걱정하면서 고생하지 말고 공인된 자리에서 싸우고 결과에 승복하라고 만들어진 것.

클랜전에서 진 쪽은 이긴 쪽의 명령을 들어야만 했다.

결과에 승복하지 않으면 탑 내의 모든 플레이어들에게 제제를 받게 되기 때문.

그게 싫으면 아예 클랜을 해체하는 수밖에 없었으니, 클랜전은 신청하는 쪽에서도 최후의 수단이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평상시에는 클랜전을 신청해봐야 놈들이 어디서 강력한 용병을 데려와 저희를 응징할 테지만…… 보스가 있다면 이야기가 다르죠.”

가장 먼저 마주쳤다는 이유로 베르나데트에게 고삐를 씌운 성진이었으나, 마침 그녀는 성진이 찾던 ‘대신 날뛰어줄 사람’에 안성맞춤인 모습이었다.

새로운 인물을 내세우고 자신과 남태수의 이름은 뒤로 숨긴다.

“재미있군. 진행해봐.”

31층까지 올라오자 슬슬 플레이어 중에서도 쓸만한 놈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 * *

한편 그 시각 다나는 행맨 이외에도 웨어울프들이 벌이는 사업들을 보고 질색하고 있었다.

“이쪽은 생간을 탑의 진정포션처럼 정제할 방법을 연구하는 시설입니다. 탑에서는 포인트만 있으면 얼마든지 NPC를 소환해 간을 뽑아낼 수 있으니 연구에 제격이지요.”

닭장처럼 만들어진 그 공간에서는 수많은 NPC들이 정육점의 고기처럼 매달린 채, 간을 뽑히고 포션으로 재생하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윤리의식은 쓰레기통에 처박아둔 모습이었으나, 그것을 부끄러워하는 웨어울프는 없었다.

인간이 아닌 웨어울프인 그들에게 인간 NPC는 돼지나 소와 다를 바가 없었으니까.

이곳에 있는 웨어울프들은 오히려 바깥의 다른 동족들을 위해 일한다는 자부심마저 가지고 있었다.

“윽…….”

다나는 허리춤에 찬 검의 손잡이를 꽉 쥐며 속에서 올라오려는 것을 겨우 참아냈다.

‘베어 버릴까?’

웨어울프는 기본적으로 강자존.

아무리 신시아가 명령했다고 해도 이 안에서 그녀가 우두머리를 먹는다면 이런 행태를 멈출 수 있으리라.

성진의 힘을 빌리지 않고 오로지 그녀의 힘만으로 제압할 수 있다면, 정보가 새어나갈 리는 없었다.

어차피 신시아도 다나의 성격은 잘 알고 있었으니 그녀라면 그럴만하다고 생각하리라.

‘내가 여기서 검을 뽑는다면?’

다나가 살의를 가지고 검을 뽑는 순간, 맥스웰이 반응한다.

아직 기습에까지 활용할 수 있을 정도로 검기의 숙련도가 높진 않다.

레벨 차이를 생각하면 맥스웰도 기습 한 방에 제압되진 않으리라.

맥스웰이 거리를 벌리고 상처를 재생하는 동안, 다른 웨어울프들이 그 앞을 막아선다.

마력운용으로 제압 스킬을 어떻게든 저항한다고 쳐도, 백병전만으로 전원을 쓰러뜨릴 수 있을까?

검기는 전사계열 플레이어가 50레벨을 넘어 2차 전직을 이루어야 배우는 스킬.

즉, 그걸 스킬 없이 발현시킬 수 있는 다나의 검술은 50레벨의 벽을 넘어섰다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일 대 다수의 전투에선 그 이점을 살리기가 쉽지 않으리라.

‘하지만 아예 불가능한 일은 아니야.’

실내라는 점을 이용해 전투구도를 잘 이끌어내면 다나 홀로 이곳의 모두를 제압하는 것도 불가능은 아니었다.

위험하겠지만, NPC들을 푸아그라 공장마냥 매달아둔 꼴을 보니 그 정도 위험쯤은 감수해도 될 것만 같았다.

자신의 위험 따윈 중요하지 않았다.

유일한 걱정은 자신의 돌발행동이 가져올 결과.

‘내 행동이 괜한 변수를 가져오는 건 아닌가?’

자신의 행동이 성진의 발목을 잡는다면 다나는 그 사실을 견딜 수 없으리라.

은신 상태로 다나를 따라오던 티타니아는 그녀의 생각을 알아채고 말했다.

-고민되시나요?

‘응……?’

-선생님께선 제게 당신을 봐달라고 부탁하시면서 이렇게 덧붙이셨죠. 만일 당신이 성좌와의 싸움까지 염두에 두고 고민한다면 그럴 필요 없다, 고.

다나가 성진에게 폐가 되는 것을 걱정하여 고민하는 상황.

성진은 진작부터 이런 상황이 올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성좌를 쓰러뜨리는 것은 내 사명이지 네 사명이 아니다. 그러니 너는 눈치 보지 말고 네가 옳다고 생각한 일을 해라’라고 덧붙이시면서요.

‘……!’

책임은 내가 지겠다.

네 판단대로 해라.

너 같은 애송이의 생각쯤이야 뻔하다고 말하는 듯한 이야기.

속내를 읽혔지만 다나는 그리 나쁜 기분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 정도는 되어야 성좌에 맞서 싸울 수 있는 건가 싶은…….’

그러한 감탄 속에서 다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백악관 내의 웨어울프들을 제압하겠어. 도와줘.’

-성좌의 개들을 치겠다는 거라면 얼마든지요.

그와 동시에 다나의 전신에 정령의 가호가 서렸다.

[카르마 효과가 발동됩니다.]

<정령의 가호 (전설)>

[Lv.0가 적용되어 카르마의 효과가 제한됩니다.]

남은 지속 시간 (2:59)

-버프 효과

체력 회복 속도 +100%

마력 회복 속도 +100%

모든 스탯 +50%

물리 저항력 +200

속성 저항력 +200

저주 저항력 +200

-정령 친화도에 따라 추가 효과가 적용됩니다.

Lv.1 모든 마력 소모값 50% 감소

Lv.2 (제한됨)

Lv.3 (제한됨)

Lv.4 (제한됨)

Lv.5 (제한됨)

…….

[카르마 효과를 인식합니다!]

[당신의 행동이 영혼의 업(業)으로 쌓입니다!]

[희귀 등급의 카르마를 획득합니다.]

[<정령의 친구(희귀)>를 획득하셨습니다.]

[주의! 카르마 관련 메시지는 카르마를 느낄 수 있는 영혼에게만 제공됩니다.]

[일반 플레이어에게 카르마의 존재를 가르치는 행동은 관리자의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이건……?’

-궁금한 게 많겠지만 지속시간이 있으니 이야기는 나중에 하도록 하죠.

‘알았어.’

직후, 다나의 검이 검집에서 뽑혀 나왔다.

서걱!

“아가씨……!”

맥스웰의 목을 노린 기습은 그의 팔을 자르고 끝났다.

찰나의 순간에 어떻게든 기습을 막아낸 맥스웰은 곧장 거리를 벌리곤 얼떨떨한 표정으로 다나를 바라보았다.

“진짭니까 이거? 가주님께 반대하는 건 이제 포기한 게 아니셨습니까?”

“포기하려고 했었지. 좀 전까진 말이야.”

“그런데 어째서?”

“자신을 도와 달라 말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에, 오히려 방해가 되어도 좋으니 내가 옳다고 생각한 일을 하라고 말해준 사람이 있었거든.”

백악관에 머물던 웨어울프들이 순식간에 몰려와 다나를 포위했으나, 그녀는 맥스웰을 향해 검을 겨눈 채 자세를 유지했다.

‘레벨은 전부 49지만 위험한 건 저 녀석뿐.’

그러한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맥스웰은 팔을 지혈하며 어이없다는 듯이 물었다.

“원래 모든 생물은 살기 위해 다른 생물을 잡아먹는 법입니다. 탑이 나타나기 전의 강대국들도 사실상 제3세계의 약소국을 수탈하여 먹고살고 있었는데 어째서 가문의 일에는 그리도 반대하신단 말씀이십니까?”

누군가 이득을 보기 위해서는 누군가 손해를 보는 법이었다.

모두가 공평한 이상향 따위는 게임 속에서나 가능한 일.

결국 이득인 쪽과 손해 보는 쪽이 갈린다면, 누구나 이득인 쪽에 서고 싶어 하는 법이었다.

모두가 똑같은 생각이니 결국 힘을 가진 쪽이 약한 쪽을 수탈할 뿐.

“어쩌면 네 말이 맞을지도 몰라. 결국엔 다 힘의 논리에 불과할 뿐. 도덕이니 양심이니 하는 건 다 기만일지도 모르지.”

“그걸 아셨다면 지금이라도 검을 내려놓으십시오.”

“그러니까.”

다나는 단호한 목소리로 맥스웰의 말을 끊었다.

“나도 힘의 논리대로 갈게. 당장 이곳에서 진행하는 비윤리적인 행위를 모두 중단하고 탑에서 나가. 아니면…….”

다나의 검 위를 타고 마력이 흐르자 검기가 서렸다.

“누가 강자인지 확인해보자고.”

50레벨의 벽.

그 벽을 넘고 2차 전직을 이룬 전사계열 직업군에게 주어지는 강력한 전직스킬.

다나는 탑의 도움 없이 31레벨의 몸으로 검기를 구현해냈다.

그 모습에 맥스웰 또한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으나, 아무리 다나가 강해 봐야 현재 클랜 내에는 수십 명의 웨어울프 클랜원들이 있었다.

“…… 백악관에 상주하는 저희 클랜원 전원을 혼자 상대하시겠다는 겁니까?”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그와 동시에 검광이 번쩍였다.

검기의 잔상이 만들어낸 빛의 궤적이 주위를 휩쓸었다.

후두둑!

다나를 포위한 웨어울프들은 그녀의 공격을 막으려 했으나, 오히려 들고 있던 무기가 동강나 줄줄이 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비록 탑의 시스템으로 온갖 플레이어들이 다 다룬다곤 하나, 검기는 기본적으로 극한으로 단련된 검사가 도달하는 달인의 경지.

맞닿은 순간 자신의 무기가 잘려 나가니, 검기 없이 검기를 사용하는 전사를 근접전에서 막아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감당 안 되는 놈들은 물러나라!”

맥스웰의 외침에 민첩한 몸놀림으로 검기에 닿지 않을 자신이 있는 소수의 도적계열 플레이어 외의 다른 인원이 뒤로 물러났다.

맥스웰은 정장 상의를 벗어 던지고 넥타이를 풀며 앞으로 나섰다.

“철없는 아가씨를 교육하는 것도 업무내용에 다 포함된 거 아니겠습니까.”

맥스웰은 넥타이를 오른손에 휘감고 복싱 자세를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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