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 부수는 플레이어-41화 (41/170)

<41>

-괜찮을까요?

베르나데트가 클랜전을 선포하러 간 동안, 성진은 클럽에 남아 술잔을 기울이며 시간을 죽였다.

“뭐가 말이냐?”

-가호 외에도 이것저것 가능하긴 하지만 미니언급 정령으로는 할 수 있는 일에 한계가 있다고요. 다나가 걱정되진 않나요?

“너는 걱정되는 모양이군.”

그 말에 성진에게 붙어 있던 정령 티타니아는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누, 누가 그런 바보 같은 인간 따위를 걱정하겠어요! 그냥 딱 봐도 사고 칠 것 같으니까 그러는 거죠.

“아마 사고는 치겠지.”

성진은 순순히 다나가 사고칠 거란 말을 인정했다.

“그래도 어디 가서 맞고 오진 않을 거다.”

검기는 일종의 증명일 뿐.

검기가 무서운 것은 검기를 뽑아낼 만큼 뛰어난 검사라면 애초에 검술 자체가 달인의 경지이기 때문이었다.

“진짜 검기는 스킬로 구현된 버튼만 누르면 되는 편리한 기술 따위와는 차원이 다르다. 그 정도 실력이면 문제없어.”

다나가 성진이 일일이 지켜줘야 하는 짐짝이었다면 30층에서 데려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녀의 재능은 진짜였다.

처음부터 제대로만 배웠다면 그 나이에 이미 무르무르같은 이들과 대등하게 싸울 수 있을 정도로.

게다가 그것만이 아니었다.

“뭣보다 청동망치를 한번 소환한 덕분에 카르마가 돌아왔다.”

성진은 지구에 넘어오기 위해 자신의 모든 카르마를 청동망치에 옮겨 담아 힘을 잃었다.

그러나 30층에서의 소환으로 그중 일부가 다시 성진에게 흘러들어왔다.

[카르마가 온전하지 않아 효과가 제한됩니다.]

<불패의 선봉장(전설)>

그 어떤 위기 속에서도 승리를 거머쥔 당신에게 불패의 가호가 내립니다.

(해당 카르마는 당신이 패배하지 않는 동안에만 지속됩니다.)

-일반 등급 효과 활성화됨.

당신의 능력이 강화됩니다.

-희귀 등급 효과 활성화됨.

당신을 따르는 동료들에게도 효과가 적용됩니다.

-영웅 등급 효과 제한됨.

-전설 등급 효과 제한됨.

-신화 등급 효과 미획득.

“그 녀석이 진심으로 나를 돕고 싶다 생각한다면 카르마의 효과를 받을 수 있겠지.”

-…… 추가로 그 아이가 진심으로 선생님을 도우려는 건지도 확인할 수 있을 테고요?

카르마는 영혼에 새겨지는 업보다.

조금이라도 그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면 업이 무너져 내리며 모든 카르마가 무효화된다.

무패로 얻은 카르마는 패배하면 사라지고, 누군가를 따르며 얻은 카르마는 그를 배신하면 사라진다.

이는 그럴 마음을 먹는 것만으로도 적용되는 법칙이었다.

아예 카르마를 제거할 순 있어도 속이거나 조작할 순 없다.

“자신의 영혼을 속일 순 없는 법이지.”

마찬가지로 이번 클랜전에서도 성진은 직접 나설 생각이 없었다.

애초에 자신들의 소식을 숨기기 위해 제3자인 베르나데트를 끌어들여 소동을 일으키는 것이었으니까.

“내가 나서지 않아도 베르나데트나 그 부하들이 불패의 선봉장 효과를 받는다면 충분하겠지.”

-그들이 효과를 받을 수 있을까요?

심지어 그들 입장에서 성진은 갑자기 나타나 자신들을 두들겨 팬 인간이었다.

다소의 강요 하에 이해관계가 일치했기에 함께할 뿐, 그들이 성진을 믿거나 충성을 다할 이유는 없었다.

“안 되면 되게 해야지.”

-어떻게 하시려고요?

“보스 소리를 들을 거라면 일단 부하들이 믿고 따르게 만드는 것부터 해야 하지 않겠나.”

그에 관해서는 생각해둔 바가 있었다.

* * *

전투가 벌어진 순간, 다나는 이미 맥스웰을 향해 달려나가고 있었다.

‘내 마력으로는 검기를 오래 유지할 수 없어. 하지만 가호로 마력소모가 줄어든 지금이라면!’

한순간에 거리를 좁힌 다나는 상대의 가슴 정중앙에 검을 찔러 들어갔다.

맥스웰은 그 모습에 눈을 번뜩였다.

“검기가 있으니 어딜 찔러도 급소나 마찬가지라 이겁니까?”

아무리 포션이나 힐이 있어도 큰 상처를 입으면 회복할 때까지 무력화될 수밖에 없었다.

치명상이 아니더라도 상처의 크기와 숫자를 늘려 대미지를 누적시키는 수법.

몸의 중심선을 공격하면 상대가 피한다고 해도 그만큼 많이 움직여야 했다.

‘점멸.’

40레벨 마법사의 회피스킬.

맥스웰은 다나의 등 뒤로 점멸했다.

“전사가 달려드는 걸 상대할 때는 상대를 타 넘듯이 이동하면 되는 법이죠.”

빠르게 달려든 만큼 방향을 전환하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한 법.

이러면 뒤를 잡은 쪽이 먼저 행동할 수 있었다.

휘릭!

‘없다?’

다나의 뒤로 점멸한 맥스웰은 그녀가 있을 방향을 향해 몸을 돌렸으나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래입니다!”

부하들의 목소리에 시선을 아래로 내리자 그곳에는 다나가 바닥에 달라붙듯 땅을 짚고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법사의 점멸. 뻔해.”

이어진 올려 차기가 맥스웰의 턱에 작렬했다.

처음부터 찌르기를 맞출 생각 따윈 없었다.

다나는 찌르기 직전 손으로 땅을 짚고 제동을 걸어 몸을 돌렸다.

예상대로 맥스웰은 점멸을 사용했고, 다나는 손으로 땅을 짚은 자세 그대로 물구나무를 서듯 턱이 올 위치에 발차기를 날린 것.

맥스웰이 목이 돌아간 채 하늘을 날자 웨어울프들은 당황했다.

맥스웰 본인 또한 황급히 자세를 바로잡으며 눈을 크게 떴다.

“어떻게……?”

“그 눈. 내가 아니라 내 어깨너머를 보고 있었어.”

맥스웰은 자신에게 달려들고 있는 다나가 아니라 점멸을 사용할 위치를 보고 있었다.

적이 달려드는 와중에 먼 산을 보고 있을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다나는 동공의 움직임만으로 상대의 생각을 읽고 점멸을 쓰기도 전에 그 위치에 발차기를 날린 것이었다.

단순히 뛰어난 육체능력을 얻은 사람이 싸움법이 아니었다.

이는 가진 것을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는 자의 움직임이었다.

‘과연 사도의 동생이라는 건가. 아가씨라고 봐주면서 상대할 수준이 아니로군.’

평범한 사람이라면 그대로 절명할 위력의 발차기였다.

맥스웰은 어지럼증을 느끼며 외쳤다.

“주술사! 달부름이다!”

인공적으로 달을 불러오는 주술사 스킬.

날씨를 바꾸는 주술사의 필드스킬은 특정 몬스터에게만 유효한 비주류 스킬이었으나, 웨어울프 파티에서는 전투용 필살기나 다름없었다.

“진짜로 합니까? 아가씨를 상대로?”

“저 검기를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오나? 50레벨 이상의 플레이어를 상대한다고 생각해라!”

그러는 사이에도 다나는 시간을 끌기 위해 덤벼드는 민첩 직업 플레이어들을 일합에 무력화하며 거리를 좁혀오고 있었다.

“비켜, 방해야.”

닿는 것을 모조리 분해해 버리는 저 광검은 2차 전직 이전의 49레벨들 사이에선 치트키나 다름없는 위력을 발휘했다.

“달이여!”

하늘이 없는 실내.

스킬로 불러낸 달은 환경의 제약을 무시하고 월광을 뿜어냈다.

달이 뜨자 웨어울프들은 순식간에 반인반수로 변신했다.

몸뚱이가 부풀어 오르며 가죽이 두꺼워지고 털이 돋아났다.

주둥이가 길어지고 발톱과 이빨이 자라나며, 장비하고 있던 아이템 또한 체형에 맞게 변화했다.

아이템이 아닌 옷가지는 그대로 찢어져 바닥으로 떨어졌으나, 다나는 그런 걸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여기서 이성을 잃을 순 없어. 집중해!’

끓어오르는 마력의 목줄을 붙잡고 의식의 밑바닥으로 처박는다.

진짜 달이 아닌 스킬로 형성된 인공달.

마력을 조절할 수 있는 다나는 웨어울프의 야수화에도 저항해냈다.

“크르르르……!”

반면 다른 플레이어들은 야수화를 마치고 거대해진 몸집으로 다나를 둘러쌌다.

이성이 사라진다고 멍청해지는 것은 아니다.

이성 대신 살아난 그들의 사냥본능은 무리를 유지하며 눈앞의 사냥감을 노리도록 만들었다.

휙!

다나는 예고 없이 뒤에서 달려든 웨어울프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콰악!

그러나 검기가 서린 검조차 웨어울프의 발톱을 단번에 잘라내지 못하고 반쯤 파고든 상태로 붙잡혔다.

‘마력을 억누르느라 집중력이 떨어졌나? 검기가 무뎌졌어.’

그녀는 적에게 꽂힌 검을 뽑아내느라 시간을 쓰는 대신, 미련 없이 검을 놔 버렸다.

그에 따라 무기를 잃은 다나를 향해 다른 웨어울프가 덤벼들었지만.

푸욱!

어느새 인벤토리에서 두 자루의 검을 꺼내든 다나는 검기를 입혀 웨어울프의 두 눈을 찔렀다.

“뼈나 발톱은 안 베여도 살과 가죽은 여전히 벨 수 있어.”

“뭐하고 있는 거야! 동시에 공격해!”

맥스웰이 그 모습을 보며 외쳤지만 웨어울프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정확히는 움직이지 못했다.

좁은 실내.

몸집이 불어난 웨어울프들은 동시에 다나를 노릴 수 없게 되었다.

다나는 원래 힐러였는지 움직임이 둔한 웨어울프의 다리 사이로 슬라이딩에 포위망을 빠져나왔다.

이어서 놈들이 달려들 방향을 한쪽 방향으로 제한한 뒤, 앞에서부터 한 놈씩 차례대로 발골했다.

서슴없이 인간이었던 존재들의 뼈와 살을 발라내는 그 모습에 웨어울프들도 섣불리 덤벼드는 대신 거리를 유지하기 시작했다.

-…… 생각보다 능숙하시네요?

“인간보다 몬스터가 훨씬 상대하기 편하니까.”

상대를 벨 때 주저함을 덜 수 있으니 오히려 싸우기 수월했다.

49레벨의 웨어울프는 신체능력만 따지면 60레벨 이상이었으나, 다나의 기량은 그것을 뛰어넘고 있었다.

“네 덕에 검기를 계속 쓸 수 있는 것도 크고.”

-칭찬해달라고 물어본 건 아니거든요?

스물에 가깝던 웨어울프는 순식간에 다나의 손에 쓰러졌다.

마지막으로 주술사였던 웨어울프를 쓰러뜨리자 달부름이 사라지며 모두들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맥스웰은 도망치지도 못하고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나는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말도 안 돼. 31레벨 스펙으로 어떻게……?”

“서로 칼과 이빨을 겨눈 사이에. ‘어떻게’ 같은 문제가 중요해?”

3분도 안 되는 시간 만에 60레벨급 전력인 49레벨 웨어울프 스물이 31레벨 광전사 하나에게 당했다.

다나는 쓰러진 이들 사이에서 검에 묻은 피를 털어냈다.

“검귀…….”

그러한 귀기 서린 모습에 쓰러져 있던 웨어울프 하나가 아연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고요한 실내에서 그 말은 모두에게 들렸다.

카르텔의 범죄자들이 자신보다 어린 다나에게 하는 말로는 이상할지도 모르지만, 이 순간 모두가 그 말에 공감했다.

그러는 사이 뒤늦게 새로운 인원이 몰려왔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연구를 위해 파견한 약물 코디네이터 맥스웰과 달리, 쭉 센트럴 시티의 클랜을 관리해온 카르텔 간부.

실질적인 백악관의 주인이 그곳에 나타났다.

그나마 멀쩡한 부하를 붙잡고 상황을 전해 들은 그녀는 맥스웰을 향해 말했다.

“아가씨를 상대로 달부름까지 쓰다니, 미친 거냐?”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면 위험……!”

시에라는 듣지 않겠다는 듯이 맥스웰의 말을 잘랐다.

“아가씨는 클랜의 운영방침에 이의를 제기하셨고, 늑대의 방식으로 증명하셨다. 그럼 문제는 없겠지?”

시에라는 그렇게 말하며 맥스웰을 노려보았다.

‘멍청한 놈. 그렇다고 본가의 아가씨를 죽이려 들어? 어차피 잠깐 머물다 갈 사람인데. 대충 머무는 동안에만 하자는 대로 해주면 되는 일을!’

조직을 운영하는 중간관리자로 오랫동안 센트럴 시티에 있었던 시에라는 불편한 상황도 유연하게 넘기는데 도가 튼 인물이었다.

‘저 망할 새끼가 아가씨를 죽이기라도 했다면 상상도 하기 싫군.’

“손님맞이에 예의범절이 부족했던 점을 용서하십시오. 저 멍청한 촌놈들은 나중에 제가 교육하도록 하겠습니다, 아가씨.”

시에라는 순식간에 상황을 정리했다.

다나의 전투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선 최선에 가까운 방식이었다.

다나로서도 이러한 상황에선 검을 집어넣을 수밖에 없었다.

“불편하셨던 부분들은 전부 수정하겠다고 약속드리지요. 일단은 피로 더러워지셨으니 씻고 좀 쉬시는 게 좋겠습니다.”

다나는 그렇게 늑대들을 때려눕히며 백악관에 입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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