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신시아는 사도가 된 이후 자신에게 동생이 있다는 사실을 철저하게 숨겼다.
사도는 물리적인 힘으로도, 정치적인 힘으로도, 심지어 종교적인 힘으로도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존재.
그런 신시아가 사람 하나 숨기는 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덕분에 동생의 존재를 알고 있는 것은 웨어울프들과, 세계정부의 상층부뿐.
심지어 개중에서 그 동생이 다나라는 것을 아는 이들은 그녀가 사도가 되기 전부터 함께하던 가문의 핵심인사들 뿐이었다.
사도인 리처드 카이만조차 신시아의 동생이 정확히 누군지 모르고 있었으니 이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아가씨. 모시러 왔습니다.”
다나를 찾아온 것은 군용 차량에 탑승한 3명의 카르텔 소속 웨어울프였다.
웨어울프는 기본적으로 동족에게 가족 같은 유대감을 느꼈다.
개중에서도 우두머리인 신시아에 대한 웨어울프들의 충성심은 절대적이었다.
마약 카르텔 소속의 범죄자들이 평생 처음 보는 다나에게 의문도 불만도 없이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반면 다나는 같은 웨어울프인 그들을 보고서도 별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다.
‘왤까?’
이러한 차이점 덕분에 다나도 신시아에게 반대할 수 있었던 것이지만, 자신만 다른 건 역시 이상하긴 했다.
-누누이 말하지만 고작 말실수 따위로 일을 그르치는 일은 없도록 하세요.
다나는 티타니아의 말에 정신을 차렸다.
어차피 그녀가 중요한 정보를 발설하겠다 싶으면 붙여둔 정령이 손을 쓰리라.
그러나 안전장치가 있다고 해서 그녀의 손에 쥔 핵 발사 버튼이 무의미해지는 건 아니었다.
성좌가 이기면 핵전쟁보다 더 많은 사람이 죽을 테니까.
“언니가 보낸 건가요?”
“맞습니다. 가주께서는 지금도 아가씨의 안위를 걱정하고 계십니다.”
“글쎄요. 그건 어떨까 싶지만 어차피 제가 돌아가라고 해도 그럴 생각은 없으시겠죠? 여기서 소란 피우지 말고 가서 이야기하죠.”
“잘 생각하셨습니다. 일단 보는 눈이 있을 수 있으니 저희 아지트로 가시죠.”
웨어울프들은 차를 이용해 다나를 안내했다.
플레이어의 신체능력이라면 차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으나, 장거리 이동을 생각하면 탈것은 여전히 유효했다.
도보로 이동하려면 다 같이 뛰어다녀야 했지만, 차로 이동하면 운전자 한 사람만 교대로 앉아있으면 되니까.
물론 그렇다고 해도 탑에선 상당히 비싼 물건임에는 매한가지.
탑 안에서 이러한 기름 먹는 하마를 굴리고 있다는 건 그만큼 카르텔의 힘이 막강하다는 뜻이었다.
‘이것도 가문에서 불법적인 일로 번 돈으로 산 거겠지.’
다나는 안타까움을 느끼며 커뮤니티 기능을 통해 남태수에게 귓속말을 넣었다.
[다나: 웨어울프들이랑 마주쳐서 일단 따라가게 됐어요. 잠깐 아재 혼자서 스테이지 깨고 계세요.]
[남태수: 야 그럼 나는? 숙소 구한다고 너한테 포인트 다 몰아줬잖아. 나 지금 빈털터리라고.]
[다나: 다 큰 성인이면 알아서 좀 해봐요.]
[남태수: 저기요? 다나 씨? 왜 이러세요. 이러시는 이유가 있을…….]
다나는 조용히 메시지 창을 닫았다.
차량이 향한 곳은 스테이지 외곽지역의 새하얀 건물이었다.
다나는 탑 이후 태생이었으나, 그 건물만은 알아볼 수 있었다.
“백악관?”
“예, 워싱턴에 있는 그거 맞습니다. 탑에서 불러올 수 있는 현실의 건물 중에 벙커까지 저렇게 잘 되어있는 건물이 드물어서요.”
클랜 간에 싸움이 벌어지면 초인적인 힘을 지닌 플레이어들이 쳐들어온다.
평범한 빌딩은 스킬 폭격을 버틸 수가 없었으므로 벙커를 비롯해 각종 설비가 필요했는데, 그런 의미에서 백악관은 안성맞춤이었다.
“아무튼 공간은 넉넉하니 아가씨께서 머무시는 동안 답답할 일은 없을 겁니다.”
이윽고 도착한 백악관에서 다나는 웨어울프들의 안내를 받아 지하로 들어섰다.
이동하는 중에도 같은 클랜원으로 보이는 여러 플레이어들을 마주쳤는데, 그들은 하나같이 다나에게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그러는 와중 다나의 시선을 잡아끄는 이들이 있었다.
“저들은?”
웨어울프 플레이어만 한가득인 이곳에선 오히려 순수 인간 플레이어가 더 눈에 띄었다.
“예비군입니다. 아직 축복을 받을 만큼의 충성심을 증명하지 못한 놈들이지요. 노예와 같은 놈들이니 하인으로 부리시면 됩니다.”
다나와 눈이 마주친 노예 플레이어는 황급히 시선을 피했다.
과하게 주눅 든 모습.
웨어울프들의 클랜에서 인간은 그저 선택받지 못한 떨거지일 뿐이었다.
“뭔가 상태가 안 좋아 보이는데…….”
주눅 든 것과는 별개로 노예 플레이어들은 어딘가 상태가 안 좋아 보였다.
“그건 제가 설명 드리지요.”
기척 없이 갑작스럽게 바로 옆에서 들려온 소리.
말을 걸어온 것은 백의를 걸친 중년 남성이었다.
다나는 그의 ID를 확인하고 의문에 빠졌다.
‘이 사람은 웨어울프가 아닌데?’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아가씨. 저는 이곳에서 신약개발을 담당한 맥스웰이라고 합니다.”
“신약개발?”
“예를 들자면 이런 겁니다.”
맥스웰은 인벤토리에서 캡슐 형태의 약 하나를 꺼내 노예 플레이어에게 던졌다.
노예는 호들갑을 떨며 캡슐을 겨우 받아내고는 명령을 기다리는 개처럼 맥스웰을 바라보았다.
“먹어라.”
인벤토리에서 나왔다는 것은 순수하게 탑의 아이템만을 이용해 만들어낸 약이라는 뜻.
노예가 약을 집어삼킨 순간, 다나는 두 눈을 부릅떴다.
“크르르륵……!”
가래가 끓는 목소리와 순식간에 충혈 된 두 눈, 그리고 목을 매단 것처럼 길게 빼문 혀.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다나를 놀라게 만든 것은 순식간에 2배 이상 증폭된 플레이어의 마력이었다.
“혀를 빼무는 모습 때문에 행맨이라 이름 붙인 약입니다. 본가의 지원 아래 전투자극제로 개발 중인 약이지요.”
맥스웰과 웨어울프들은 탑이라는 외부와 차단된 공간에서 인체실험을 진행하고 있었다.
* * *
베르나데트의 클럽에 자리 잡은 성진은 웨어울프들과 연결되어 있을 것이 분명한 약의 출처부터 캐보기로 했다.
“너희들은 그저 클럽 사업만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부터 갑자기 약이 돌기 시작했다 이거군?”
“그래요. 이것 때문에 우리도 골치 아프다고요.”
플레이어가 벌 수 있는 포인트는 한정적.
약에 포인트를 다 꼴아 버리는 약쟁이가 많아지면 그만큼 술이 덜 팔리는 법이었다.
베르나데트로서도 눈엣가시 같은 일이었으나, 세계정부가 얽혀 있을 것이 분명한 일에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게다가 이번 약은 평범하지 않아요.”
“평범하지 않다?”
“플레이어들은 독에 저항력이 있는 데다, 힐러의 정화나 고급 포션을 이용하면 후유증이나 금단증상까지 모두 치료돼요. 때문에 탑 내부에서 유통되는 약은 플레이어가 되기 전부터 약에 절어 있던 놈들이 취미로 하는 정도였단 말이에요.”
약에 절어 있는 상태가 ‘상태이상’이 아니라 ‘정상적인 상태’로 여겨질 정도로 맛이 간 놈들이 아닌 이상, 플레이어가 중독될 일은 없다는 뜻.
“하지만 요 근래 유통되는 행맨이라는 약은 멀쩡한 플레이어까지 중독시키고 있어요.”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목적이라면 탑 내에 마약을 퍼뜨려봐야 별 도움이 안 된다.
탑 내의 인구수는 지구상의 70억 인구에 비하면 극소수.
게다가 중독도 안 되니 힘들게 약을 들여 봐야 세계정부에 찍히기만 하는 것.
플레이어들을 중독시켜 이리저리 부리고 싶은 거라면 탑에 들어가기 전에 중독시키는 편이 훨씬 쉬웠다.
“카르텔 놈들이 탑에서만 나오는 재료로 뭔가 이상한 걸 만들어낸 모양인데, 우린 그런데 얽히고 싶지 않았다고요.”
“행맨이라고 했나? 기업 소속 클랜이라면 분명히 샘플을 구해놨겠지?”
베르나데트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인벤토리에서 약 하나를 꺼내주었다.
“이러다 사도끼리 싸우는데 새우 등 터지는 건 아닌지 몰라…….”
성진은 베르나데트의 투덜거림을 무시하고 캡슐을 열어 내부의 가루를 손가락으로 찍어 혀에 가져다 댔다.
“다, 당신 미쳤……?”
“이거라면 확실히 플레이어들에게도 통하겠군.”
성진이라고 해서 약이나 의학적 전문지식이 풍부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약이 혀에 닿자마자 마력이 반응하는 모습을 보니 대강의 효과는 알 수 있었다.
‘일종의 산공독 계열인가. 마력의 진정, 이완 효과를 부분적으로 이용해 오히려 마력폭주를 일으키다니 머리 좀 썼군.’
그래 봐야 성진의 마력 통제력을 넘어설 정도는 아니었기에 약효는 순식간에 제압되었다.
“약효가…… 안 듣네?”
베르나데트는 그런 성진을 바라보며 멍청히 중얼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 행맨을 먹은 녀석들은 직업이나 종족을 따지지 않고 예외 없이 맛이 갔다.
성진처럼 맛보고도 멀쩡한 경우는 처음인 것.
‘사도라 그런가?’
베르나데트는 그렇게 오해했으나, 실상은 간단했다.
플레이어들은 탑의 시스템으로 힘을 손에 넣어 가진 힘에 비해 마력을 다루는 능력이 전무했다.
반면 행맨은 마력을 조종하는 계열의 약물.
제대로 된 마법사라면 가볍게 이겨낼 수 있는 약물임에도 플레이어들은 레벨의 고하를 막론하고 죄다 중독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지구상에 이런 약을 만들 수 있는 건 사도뿐이겠지.”
탑을 통해 이계의 문물을 접한 지구인들은 마력의 존재를 느낄 수 없었다.
마력에 작용하는 행맨은 무조건 사도의 입김이 닿아 있는 약이란 소리였다.
“재미있군.”
‘행맨은 단순한 마약이 아니라 전투를 위한 마약이다.’
이미 세계정부를 만들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사도가 이런 약을 만드는 이유가 뭘까?
사도들이 지구에서 무슨 짓을 하고 있든 신경 쓰지 않고 탑에 집중하려던 성진이지만, 이번 건 꽤나 흥미가 일었다.
이건 마치…… 싸움을 준비하는 것 같았으니까.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한번 알아보도록 할까. 준비해라 베르나데트.”
“뭐, 뭘요?”
“기왕 센트럴 시티에서 장사를 시작한 거 정점을 노려봐야 하지 않겠나. 클랜전이다.”
베르나데트를 바지사장으로 삼아 센트럴 시티를 점령하고, 사도와 관련된 클랜들을 뿌리째 뽑아낸다.
“너를 이곳의 왕으로 만들어주마.”
“아니 그게 무슨…….”
성진이 불과 광채의 새로운 사도나, 그에 준하는 인물이라 생각하고 있는 베르나데트로서는 울고 싶은 지경이었다.
사도들끼리 밥그릇 싸움이라도 하나 본데, 자신 같은 작은 클랜이 그 사이에 끼어서 살아남을 수 있을 리가 없었으니까.
‘잘 생각해야 한다. 여기서 줄을 잘 서야 해.’
베스트는 어디에도 끼지 않고 콩고물만 주워 먹는 것.
이러면 나중에 누군가에게 복수당할 일도 없다.
그러나 성진이 자신을 콕 찍은 이상 발을 빼는 것은 불가능.
‘그렇다면 확실하게 줄을 서서 불과 광채의 이름으로 보호받아야 해.’
“철저히 준비하겠습니다!”
베르나데트는 성진의 낚싯줄을 대차게 물어삼켰다.
또 한 명의 인생이 뒤집어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