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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 미발견 지역에서 꿀 빱니다-67화 (67/69)

< 몰래 온 손님(1) >

몰래 온 손님(1)

그림이 이상해졌다.

내가 아이언 피스트를 일격에 날려버려?

나는 가만히 있었는데 왜 저런 추론이 나오는 거야?

먼치킨 이미지가 덧씌워져서 그런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공격했다고 생각하는 건가?

─시민들은 이번 일로 각성자계의 ‘뉴클리어 웨폰’으로 불리는 드래곤 마스크가 미국을 적대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 섞인 목소리와 함께, 아이언 피스트에게 진상 규명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아이언 피스트의 형인 스틸 브라운 그룹의 CEO 존 브라운은 본 사건은 당사와 아무런 연관이 없다며······─

“좆됐다.”

하필이면 나랑 아이언 피스트가 싸운 거라고 착각할 줄이야.

나는 다급하게 스마트폰을 열어서 혹시 모를 추적을 방지하기 위해서 유심을 뺀 뒤, 프리 와이파이를 연결했다.

─콜로라도에 나타난 드래곤 마스크, 세계 랭킹 9위를 일격에 날려 버리다.

─참혹하게 기절한 미국의 카우보이. 압도적인 격차를 실감하다.

─드래곤 마스크, 현지 길드와 마찰. 그 이유는?

─드래곤 마스크의 등장으로 등탑계 최강국으로 부상하는 한국.

인터넷을 켜자마자 보이는 기사 제목들.

나는 이마를 짚고는 스크롤을 내렸다.

댓글조차 가관이었다.

─드래곤 마스크 그는 신이야.

└랭킹 9위를 일격에 날릴 정도로 강한 줄은 몰랐다; 세계 랭킹 1위도 데니 브라운을 일격에 날리는 건 힘들지 않을까? 드래곤 마스크님, 여태까지 제 댓글은 고양이가 썼습니다.

└검거 완료. 곧 드래곤 마스크가 집으로 찾아갑니다.

“환장하겠네, 정말.”

나는 인터넷을 끄고 마른세수를 하던 중, 시선이 느껴져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유소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몇 명 있었지만, 다행히도 그들은 우리에게 큰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런데 싹 다 외국인들이네.

당연했다. 아이언 피스트가 있는 이곳은 미국이니까.

“잠깐, 그럼 나 지금······.”

불현듯, 현실적인 문제가 떠올랐다.

“불법 입국한 거야?”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른다.

본의 아니게 범법자가 되다니!

아냐, 그럴 순 없어.

“정수. 괜찮나? 상태가 많이 안 좋아 보이는데?”

“아, 제임스······ 잠시만요. 지금 문제가 좀 있는데, 내가 어떻게든 해볼 테니까 잠시 쉬고 있어요.”

“알았어. 필요한 게 있으면 말만 해달라고.”

제임스는 벤치에 앉아 느긋하게 햇살을 즐겼다.

“정수 너희 동네는 날씨가 좋군. 풍경도 이국적이야.”

젠장, 나도 저렇게 속 편하게 쉴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집에는 대체 어떻게 돌아가지?

그때, 나를 도와줄 수 있을 만한 사람이 떠올랐다.

“아! 강무진!”

국가 기관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여기서 조용히 꺼내줄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지갑 속에서 강무진의 명함을 꺼냈다.

“보안 연락처는 뒷번호부터 입력하면 된댔지.”

정부 핵심 요원답게 보안 통신망이 있었다.

일전에 만났을 때, 명함의 FAX 번호를 거꾸로 입력하면 된다고 들었다.

나는 주유소의 공중전화로 강무진의 보안 통신망에 전화를 걸었다.

처음에는 웬 여자가 받더니 오늘 영업이 끝났다는 생뚱맞은 소리를 했다.

이 역시도 보안의 일종일 터.

“저······ 아르바이트 지원해서, 사장님과 통화하고 싶은데요.”

분명히 이게 암호랬지.

이내 회선이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고.

─강무진이다.

“아, 청장님! 잘 지내셨죠? 저······ 김정수입니다.”

─아니. 잘 지내고 있을 것 같나? 드래곤 마스크가 콜로라도에 나타나서 난리를 쳐서 비상이다. 혹시 알고 있나?

순간 숨이 턱, 막혀왔다.

하지만 여기서 강무진이라는 동아줄을 놓칠 수는 없지.

나는 심호흡을 하고, 말을 이었다.

“그······ 알죠. 잘 압니다. 제가 지금 같이 있어서요······ 그런데, 저희가 어쩌다 보니까 불법 입국을 한 것 같아요. 혹시 도와주실 수 있나요?”

*

강무진은 잠시 말이 없다가, 내 위치를 물었다. 추적을 방지하기 위해서 GPS는 끄라고 당부한 뒤 특정 지점을 안내해줬다.

어딘지 모를 한적한 창고 단지였다.

나는 근처 상점가에서 마스크와 선글라스를 2개씩 샀다.

나도 쓰고 제임스한테도 쓰게 했다.

“세상이 어두워 보이는데, 무슨 마법이지?”

“잔말 말고 벗지 말아요.”

잠시 후, 흑인과 백인이 한 명 나타나서 내 이름을 불렀다. 강무진이 보낸 이들인 듯했다.

강무진이 심어둔 블랙 요원 같은 걸까? 하지만 한국인이 아니라 현지인들인 걸 보면 정부 요원은 아닌 것 같은데······.

“차에 타시오.”

그들도 각성자로 보였는데, 나에게 별다른 질문을 하진 않았다.

그렇게 가시방석에 앉아 조용히 귀국하려고 했고, 반쯤 성공할 뻔했다.

옆에서 방방 뛰는 제임스만 없었다면.

“정수! 저건 대체 뭐야! 화려하게 빛이 나는데, 마법인가?”

“하아. 그건 간판이에요. 마법도 아니고요.”

“여긴 건물들이 다 높군! 귀족 나리들이 사는 곳인가? 여기는 분명 수도겠어!”

“아니에요. 각 층의 주인이 다 다른 공동 주거 시설이거든요.”

놀이동산에 온 어린아이마냥 세상 모든 걸 궁금해하는 제임스.

이에 우리를 안내해주던 이들의 이상한 눈치로 이어지는 건 당연했다.

무슨 원리인지 모르겠지만, 제임스는 지구인들과 의사소통할 수 있었다. 그것도 언어 제약 없이.

아마도 NPC에게 내재된 탑의 마법 같은 게 아닐까?

어쨌든 그래서 저 방정맞은 입을 다물게 할 필요가 있었다.

“제임스! 조금만, 조금만 조용히 해주세요. 여기 사람들은 시끄러운 걸 그다지 안 좋아하거든요.”

“아, 그래? 흠. 재미없는 친구들이군. 하지만, 그 문화에 맞추는 수밖에. 엇! 정수, 근데 저건 뭐지?!”

나는 오늘 검을 뽑은 적도 없는데, 왜 이렇게 피곤한 거지?

젠장, 빌어먹을 흑마법사놈들······ 그놈들만 아니었으면, 이렇게까지 일이 꼬이지는 않았을 텐데.

아무튼, 그렇게 긴 시간이 지나고 우리는 한국인들 그러니까 강무진이 보내준 진짜 정부 요원 두 명을 만날 수 있었다.

“김정수 님. 맞으십니까?”

“아, 네네.”

“일행까지 두 분이시죠?”

“네, 맞습니다.”

그런데 제임스를 살피는 모양새가 심상치 않다.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얼굴은 안 보일 텐데······ 대체 왜 그러는 거지?

그러더니, 얼굴을 굳힌 요원들이 제임스를 향해 다가가, 조용히 속삭였다.

“이런 강한 기운······ 분명히, 드래곤 마스크시겠죠. 걱정하지 마십시오. 오늘 본 얼굴은, 평생 모른척하겠습니다.”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대체 이게 무슨 개소리야?

제임스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나는 제임스인데?”

요원들은 서로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다가, 자기들끼리 속삭였다.

“이렇게까지 하는데, 우리도 모른척하는 게 예의겠지.”

“그래. 모르는 척하자고. 조국의 영웅이신데.”

지구로 내려온 뒤로 제임스의 머리 위에 레벨이 표시되지 않았다.

다만 압박감 같은 묘한 기분은 풍긴다.

그런 기운 때문에 제임스가 드래곤 마스크라고 착각하다니······ 이걸 감이 좋다고 해야 할지, 안 좋다고 해야 할지······.

아무튼, 이곳에서 나갈 수 있다는 게 중요한 거지.

자기들끼리 착각을 마친 요원들은 헛기침을 몇 번 하고는 나에게 다가와 말했다.

“크흠, 큼! 우리는 미국 탑 0층의 이동 포탈을 통해서 한국의 탑으로 돌아갈 겁니다. 조용히 저희를 따라오시면 됩니다.”

모든 탑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나는 고개를 숙이며 제임스를 이끌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제임스, 가요.”

돌아갈 방법이 없어서 어떻게 하면 좋은가 했는데, 다행이다.

우리는 요원들의 차를 타고 탑으로 향했고, 꼬박 하루를 더 달려 탑에 도착할 수 있었다.

탑 입구로 들어가면서, 요원들이 물었다.

“마나 스톤을 이용해 포탈을 이용하는 방법은 아십니까?”

“아, 네. 0층 워프존에서 지역명이 적혀 있는 포탈에 마나 스톤을 들고 들어가면, 해당 지역의 탑 0층으로 이동할 수 있는 거였죠?”

비행기보다 몇십 배는 더 비싼 값을 치러야 하지만, 어마어마한 속도로 지구 곳곳을 넘나들 수 있기에 등탑자들이 종종 쓰는 포탈이다.

“잘 알고 계시는군요. 마나 스톤은 입구에서 저희가 드릴 겁니다. 물론, 신원 확인은 거치지 않을 거고요.”

그래도 요원들이 귀환 과정을 상세하게 설명해주어서 그런지, 되게 마음이 놓이네.

긴장이 풀리니 더 피로한 기분이다.

하지만, 피로한 나와 달리 제임스는 지치지도 않는지 입을 쩍 벌렸다.

그리고 나한테 속삭였다.

“세상에! 이렇게 거대한 탑이라니. 제국 수도에서 본 종탑보다 훨씬 크군. 정수, 이건 무슨 탑이지?”

“하아. 빨리 따라오기나 해요. 두고 가기 전에.”

제임스의 반응에 잠시 이목이 쏠리긴 했지만, 요원들이 교묘하게 우리를 가려주는 덕에 무사히 탑에 들어올 수 있었다.

─타워에 입장하셨습니다. (미국-2)

미국 탑의 0층 마을에는 등탑을 도전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미국은 국토가 넓어서 3개의 타워가 있는데, 여기에만 해도 사람이 이토록 많다니······ 괜히 등탑계 최강국이 아니다.

자 여기서 중요한 관건이 하나 있다.

제임스가 탑이 ‘워프’ 기능을 이용해서 98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가, 그것이 문제였다.

그걸 확인하는 방법은 간단했다.

워프존에 들어갔을 때, 눈앞에 ‘웨이포인트’가 뜨는가.

탑에서는 각 층에 도착할 때마다 ‘웨이포인트’가 찍힌다.

제임스는 98층 출신이니까 웨이포인트가 찍혀 있을지도 모르지.

이내 워프 게이트가 보였다.

흔히 1층 입구라고 부르는 곳.

한국과 마찬가지로 길드 연합이 지키고 있었지만, 요원들이 이미 손을 써놨는지 쉽게 통과됐다.

그렇게 워프존에 들어오자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웨이포인트】

【98층】

당연하게도, 내가 갈 수 있는 층은 딱, 이거 한 개.

나는 제임스를 바라봤다.

“제임스, 눈앞에 뭐가 떴죠? 글자요.”

나는 속으로 ‘제발!’을 외치면 물었다.

하지만.

“······응? 글자가 눈앞에 왜 떠?”

······제임스는 역시, 해당이 안 되는 모양이었다. 탑을 올라가는 건 ‘각성자’만 가능한데, 탑의 존재는 각성자로 치부하지 않나 보네.

젠장······ 이러면 아무래도 탑을 오르지는 못할 것 같은데?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인 건, 탑과 탑 간의 워프 이동은 마나 스톤이라는 돈 잡아먹는 동력원을 쓰긴 하지만, 1층에 오르지 못하는 비각성자도 이용할 수 있다는 거다.

그래서 종종 비각성자인 부자들이 이동 수단으로 쓰기도 한다지.

워프존 안쪽으로 긴 복도가 펼쳐졌고, 양쪽으로 여러 개의 문이 쭉 늘어서 있고, 각 문 앞에 국기가 부착되어 있었다.

일단, 제임스를 집으로 데려가서 다시 98층으로 올려보낼 방법을 찾아야 하겠지?

그런 고민을 하고 있던 차, 앞서 나가고 있던 요원들의 말에 정신을 차렸다.

“이곳이 한국으로 가는 워프 게이트입니다. 마나 스톤을 쥐고 통과하면 끝이죠.”

요원들이 나에게 두 개의 큼직한 마나 스톤을 넘겨주었다.

“제임스. 들었죠? 마나 스톤을 쥐고 들어가면 돼요.”

“알았어.”

제임스가 먼저 마나 스톤을 쥔 채로 게이트를 넘어갔다.

좋아! 그래도, 제임스를 한국으로 보낼 수 있다면 일단 98층으로 돌려보낼 방법을 고민할 시간은 번 셈이다.

나는 마나 스톤을 쥔 채, 제임스의 뒤를 따랐다.

【마나 스톤을 소모해, ‘대한민국’으로 이동합니다.】

우우웅.

그렇게 마나 스톤을 소모해서 한국의 탑 0층으로 돌아온 뒤.

요원들은 우리를 0층의 안전구역에 데려다주며 말했다.

“청장님의 지시에 따른 안내는 여기까지입니다. 저희는 이만.”

“감사합니다. 청장님께 안부 전해주세요.”

저 멀리 사라지는 요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으려니, 제임스가 덥수룩한 턱수염을 쓸며 물었다.

“정수. 우리는 이제 어디로 가지? 여기가 너의 고향인 남부라면, 톨른까지 족히 한 달은 넘게 걸릴 텐데, 더 빠른 길은 없나? 그간 지켜보니, 너는 길어도 일주일이면 왕복하는 것 같던데?”

나는 잠시 주저하다가, 한동안 지구에서 지내게 되어버린 제임스에게 진실을 알려주기로 했다.

“제임스. 잘 들어요. 사실, 여기가 제 고향이 맞긴 하지만······ 사실은 다른 차원이에요. 저는 우리가 들어온 이 탑을 이용해서 제임스가 살던 98층으로 갔던 거였고요.”

“뭐라고? 그게 정말인가?”

“네, 충격이실 거 압니─”

“오오, 세상에! 다른 대륙도 가본 적이 없는데, 다른 차원에 와 있다니!”

제임스는 환호했다.

“크! 짜릿한데! 이거, 대장님께 말씀드리면 꽤 배 아파하시겠는데? 으하하! 차원 여행이라니, 동화에서 볼법한 걸 겪어보니 낭만 있고 좋군!”

“······.”

“거기다, 다른 차원이면 경계근무도 안 서도 되잖아! 나 이번 주 야간 투입이었는데 잘 됐군!”

나는 잠시 상황 파악을 위해 눈을 깜빡거렸다.

지금, 다른 차원이라는 말에 좋아하는 거야?

나는 기뻐하는 제임스를 보며, 당황했다.

“어······ 제임스?”

“어쩐지, 그간 너무 말이 안 되긴 했지. 생전 처음 보는 아티팩트와 음식 하며, 상식이 조금 뒤틀린 것 같은 모습까지. 다른 차원에서 왔다면, 그 모든 게 이해돼.”

제임스는 낙담하는 것 대신 낙관하며 혼자 그간 의문으로 남았던 것들을 끼워서 맞추며 스스로 뿌듯해했다.

어째, 이 상황을 즐기는 것 같기도 하고······.

긍정적이라서 다행인가?

아니, 내가 휘말리면 안 되지!

나는 고개를 세차게 젓고는 제임스의 양팔을 붙잡으며 말했다.

“아무튼, 제임스! 저는 이 탑을 이용해 98층에 갈 수 있지만, 제임스는 안 돼요.”

“아, 그래? 왜?”

“우리 고향 사람이 아니면 위로 가는 포탈을 이용할 수 없어요. 그런 구조로 만들어진 곳이거든요.”

“흠······ 뭐, 자네 세계에는 신기한 게 많으니, 금방 돌아갈 방법이 생기겠지.”

긍정적인 건지 태평한 건지 모르겠네.

“아무튼, 방법을 찾을 때까지 우리 집에서 지내실래요?”

“흑마법사 잡다가 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원. 뭐, 나에게 선택권이 없는 것 같으니 어쩔 수 없지. 가족들이 불편해하지 않는다면, 나는 환영이야.”

“다들 좋은 사람들이니까 환영해줄 거예요.”

어쩐지, 뜻밖의 객식구가 생겨버렸다.

다만······ 123레벨짜리 괴물이라는 게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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