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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 미발견 지역에서 꿀 빱니다-66화 (66/69)

< 추락(3) >

추락(3)

“하아······ 여기가 대체 어디야? 지구인 건 확실해 보이는데······.”

나는 한숨을 푹 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황무지와 영어 표지판······.”

대략 느낌이 온다.

미 대륙 어딘가의 사막 같다.

“정수. 네가 항상 고향에서 신기한 물건들을 가져오길래 어마어마하게 좋은 곳인 줄 알았는데······ 이게 뭐야? 지평선 너머까지 황무지밖에 안 보이는데?”

제임스는 주위를 둘러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나는 머리가 복잡해져서 대답하지 못했다.

98층의 주민인 제임스가 지구에 올 수 있을 줄이야······.

이로써 다른 건 몰라도 98층의 마왕군이 0층, 즉 지구를 침공하려는 의도는 확실해졌다.

그리고 123레벨의 제임스마저도 통과할 정도로 큰 포탈을 열었다는 건, 침공의 강도가 점점 세지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다만, 내 머릿속을 어지럽히고 있는 건 그 거대한 위협보다도······ 당장 눈앞에 있는 제임스였다.

“······미치겠네.”

제임스를 어떻게 98층으로 보내지?

각성자가 아닌 사람은 탑의 층을 오고 가는 게 불가능하다.

더군다나 제임스가 사는 곳은 무려 98층이지 않은가? 전 세계 등탑자 중에서 오직 나만이, 우연적인 이유로 도달한 미지이다.

제임스가 물건도 아니고, 내가 들고 갈수도 없는 노릇인데······.

골머리가 아프다.

그런데, 내 마음은 요만치도 몰라주는 제임스가 갑자기 나를 끌어당겼다.

“정수! 저길 좀 봐!”

“왜요? 무슨 일인데요?”

“저쪽에, 마수들이 떼를 지어 달려가고 있다.”

아, 맞다.

너무 당황스러운 나머지 잠시 잊고 있었는데, 마수들과 흑마법사들을 쫓아 온 거였지?

절대, 내가 발을 헛디뎌서 이렇게 된 게 아니다.

우리보다 먼저 포탈을 통과한 마수와 흑마법사들은 도로를 따라서 달리고 있었다.

그 끝에는 도심이 있었다.

도시를 사냥감으로 포착한 것이다.

“정수. 네 고향 구경은 저 녀석들을 처리한 뒤에 하지.”

제임스가 몸을 풀며, 쏘아져 나갈 준비를 마쳤다.

하긴. 보지 못했다면 모를까, 저 녀석들을 놔둬서도 안 된다.

일단 저놈들 먼저 처리한 뒤에, 제임스를 돌려보낼 방법을 생각해봐야지.

“알겠어요. 좀 도와주세요.”

“좋아! 가자고!”

그 말과 함께, 제임스는 미사일처럼 쏘아져 나갔다.

콰아앙!

“어어? 제, 제임스! 같이 가요!”

나는 제임스의 뒤를 따라 빠르게 내달렸다.

하지만, 점점 벌어지는 격차.

내가 숨을 헉헉대자, 제임스가 외쳤다.

“정수! 먼저 갈게! 저놈들 놓치면, 대장님이 불같이 화를 낼 테니까 말이야!”

“잠시만요! 제임스, 제임스!”

제임스는 그 말만을 남겨둔 채, 다시 한번 가속했다.

콰아아앙─!

그의 발돋움에 아스팔트 도로가 뭉개진다.

순식간에 멀어져, 점처럼 보이는 제임스.

젠장, 따라잡을 수가 없잖아!

이게 제임스의 진심인가?

123레벨의 전력 달리기는 흡사 제트기와 맞먹는 속도였다.

결국, 나는 제임스를 놓쳤다.

텔레포트까지 썼는데도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몇 초 뒤.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쿠구구······.

“뭐, 뭐지? 지진인가?”

다시 몇 초 뒤.

저 멀리, 마수 떼가 내달리던 곳에서 먼지구름이 피어올랐다.

퍼어엉!

“미친······.”

그건, 지진이 아니라, 제임스가 검을 휘두른 것이었다.

나와 대련할 때처럼 설렁설렁 휘두른 것이 아니라, 진심을 담은 검격.

정말, 땅을 가른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강력한 일격에 마수 떼가 휘말렸다.

땅이 갈라진 곳에 마수 떼 일부가 떨어져 내렸고, 남은 마수들이 다급히 멈춰 섰다.

“크워어어!”

“캬오오!”

진격을 저지당해 성난 마수 떼가 울부짖으며, 제임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꽤 많네! 하지만······ 흡!”

제임스의 검을 횡으로 길게 그었다.

훙──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허공을 베었을 뿐.

투두두두!

성난 마수들이 제임스를 향해서 달려들었다.

마치 버팔로 무리가 사람을 짓밟기 직전인 듯이, 위험천만한 광경이다.

나는 머리가 쭈뼛 서는 기분에, 제임스를 향해서 소리쳤다.

“제임스! 피해요! 제임······ 어?”

하지만 내 외침은 이내 의문으로 바뀌었으니······.

픽, 피비빅!

그리고 의문은 곧, 경악으로 바뀌었다.

제임스를 향해 달려가던 마수들이, 정확히 반으로 갈라지며, 바닥을 뒹굴었으니까.

나는 달려가는 것도 멈춘 채, 멍하니 서서 그 장면을 바라보았다.

“헐······.”

딱 두 합이다.

저 많은 마수를 제압하는 데 검을 휘두른 횟수 말이다.

제임스가 레벨이 아무리 높다고 해도 경비대원들 중에서 가장 레벨이 낮은데다, 종종 보이는 쫌생이 같은 모습 때문에 종종 잊고 지낸다.

제임스가 레벨 123의 압도적인 강자라는 사실을.

“와······.”

나는 한동안 넋을 놓고 제임스가 벌인 흉악한 광경을 둘러보았다.

크레이지 호넷 무리를 잡기 위해서 온갖 고생을 다 했는데······ 제임스는 그보다 강력한 것들을 이토록 쉽게 쓸어버렸다.

생각해보면, 크레이지 호넷을 비교적 쉽게 잡을 수 있었던 이유도 윌리엄의 마법을 빌려왔기 때문이었지.

새삼스레, 내 스승들이 얼마나 대단한 존재들인지 깨달았다.

“어?”

내가 정신을 차린 건, 저 멀리서 흙먼지를 뿜으며 내달려오는 오프로드 차량 다섯 대 때문이었다.

다섯 대 전부, 보닛에는 회색 주먹 모양의 마크를 달고 있었다.

“잠깐. 저 차에 달린 마크는······ 젠장!”

이거 어쩌면, 귀찮은 일에 엮일 수도 있겠어.

나는 빠르게 제임스를 향해 내달렸다.

그리고, 오프로드 차량보다 빠르게 제임스와 합류할 수 있었다.

“헉, 헉! 제임스!”

“아, 정수. 도착했군. 네 고향은 걱정하지 말라고! 흑마법사 놈들까지 싹 처리했으니까 말이야. 그런데, 네 고향은 조금 이상해. 몸이 마음대로 안 움직인다고 해야 하나?”

“네?”

“몸이 좀, 많이 무거워진 것 같은데?”

제임스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리저리 몸을 움직였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빨리 여길 벗어나야 해요.”

“어? 대체 왜?”

“저기 달려오는 쇳덩이들 보이죠? 여긴 저 인간들 영토일 거예요.”

“그래? 근데 뭐가 문제야? 우리가 문제를 해결해 줬잖아. 어이! 여기라고! 여기 사람들은 신기한 마차를 타고 다니는구만! 우리도 태워주지 않을까?”

젠장, 이 지역 치안 담당 길드와 마주치면 일이 복잡해질 텐데.

하지만 내 걱정을 모르는 제임스는 속 좋게 차량을 향해 손을 흔들어댔다.

내가 온 힘을 다해 끌어당겼음에도, 제임스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왜 이렇게 무거운 거야!

그나저나 제임스는 NPC인데, 저쪽에서 알아보면 어떻게 설명하지······ 싶었는데, 제임스의 머리 위에 레벨 표시가 없다?

이유가 뭐지?

지금 추측할 수 있는 건 탑에서 내려왔다는 것 하나다.

혹시 뭔가 연결 같은 게 끊기기라도 한 건가?

그때, 수백 미터 밖에서 멈춘 차량에서 누군가 내렸다.

거구의 백인 남자다.

그 뒤로 수많은 사람이 차에서 내렸다.

거구가 그들에게 무어라고 말하며 손짓하더니······ 땅을 박찼다?

쿵! 쿵!

그는 단숨에 백여 미터를 점프해서, 우리 앞에 당도했다.

“뭐야. 균열 신고를 받고 왔는데, 몬스터가 싹 다 뒈져있잖아? 등탑자들인가?”

선글라스를 낀 구릿빛 피부에 근육질의 남자가 건들건들 걸어온다.

등탑자들은 기본적으로 말이 통한다.

다른 언어를 쓰더라도 시스템이 자동 통역을 해주는 것이었다. 센티넬이 곰의 말을 통역해주는 것처럼.

그런데 저 사람은······ 설마설마했는데 미국의 세계 랭킹 9위, 아이언 피스트 데니 브라운이잖아?

무투에 특화된 스킬을 지닌, 육체계 최강자다!

순간 얼어붙은 나 대신, 제임스가 손을 흔들며 앞으로 나아갔다.

“당신들이 이곳의 주민들인가? 마수와 흑마법사는 우리가 대신 처리했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당신들을 해치진 못할 거야.”

그 말에, 데니의 이마에 돋은 핏줄이 꿈틀거렸다.

“이 나를······ 상처 입힌다고? 저런 들짐승들이?”

젠장, 데니 브라운은 쇠도 찢어내는 힘으로 몬스터를 패 죽이는 거로 유명하지만, 더러운 성격 때문에 더 유명한데!

특히나 그의 형이 미국 거대 기업의 총수이고, 형의 아내가 미국 하원 의원이다.

집안 자체가 권력의 중심에 있는 만큼, 이 인간은 눈치 안 보고 깽판을 치곤 한다지.

그런 성격을 좋아하는 미국인들도 상당하고.

데니는 제임스를 향해 걸어가다가, 나를 보더니 눈이 살짝 커지며 비틀린 미소를 지었다.

“오! 이거 뭐야, 드래곤 마스크잖아!”

그는 과장되게 웃으며 내게 다가왔다.

아니야. 오지 마.

“가짜 아니지? 진짜 드래곤 마스크지?”

“······.”

“당신, 진짜로 98층인가?”

“······.”

“아니지? 인류가 돌파한 마지막 층이 62층인데 혼자서 98층일 리가 없잖아?”

나는 무어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서, 입을 열지 못했다.

데니는 계속해서 말을 쏟아냈다.

“과묵한 편이네. 그런데 여기는 어쩐 일이냐? 우리 영역인데.”

“······.”

“이제는 옆에 로빈까지 달고 다니는 걸 보니, 본격적으로 배트맨이 되기로 한 건가? 근데, 로빈의 갑옷 디자인이 왜 이렇게 구닥다리 같아? 장비 맞춰줄 돈도 없나?”

익살스러운 동작에, 비꼬는 말투.

대놓고 시비를 걸어오고 있었지만, 참아야 한다.

여기서 저 녀석과 부딪치면 좋을 게 하나도 없으니까.

“제임스. 내가 좋게 얘기할 테니까, 여기 가만히······.”

하지만, 제임스의 표정이 싸늘했다.

“정수. 내가 이곳 문화를 잘 몰라서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지만, 우리에게 시비 거는 거 맞지?”

“제, 제임스!”

“구해줘도 시비를 거는 녀석은 처음이군. 그리고 나는 로빈이 아니라 제임스다.”

제임스가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 데니의 앞에 섰다.

데니가 제임스보다 머리 두 개는 더 컸지만, 제임스는 굴하지 않았다.

그리고······.

“어이, 덩치. 우리는 방금 거대한 위협을 제거했다. 그런데 이런 대접이라니······ 이곳은 은혜를 이렇게 갚나?”

“은혜? 우리는 시간이 돈이야. 출동만 해도 돈이 들어가는데, 네놈들 때문에 우리가 얼마를 손해본 줄 아나?”

데니가 콧방귀를 끼더니 제임스에게 한 걸음 다가왔다.

“이상한 옷이나 입고 다니는 촌뜨기. 은혜라고 했나? 나한테 은혜를 줄 수 있는 사람은 부모 말고는 없어. 드래곤 마스크의 사이드킥이라고 입을 함부로 놀리나본데, 내가 누군지 모르나?”

데니가 위협적으로 으르렁거리며 제임스의 가슴을 주먹으로 툭 쳤다.

아니, 치려고 했다.

제임스가 그의 손목을 붙잡았다.

데니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하? 상황 파악이 안 되나 보네. 내 앞마당에서 내 심기를 건드리다니.”

나는 데니의 왼손을 봤다.

손바닥이 펴지며 그의 팔뚝이 힘이 들어갔다.

저거, 뺨을 치려는 거다!

젠장, 일 났네!

“제임스!”

나는 다급하게 둘 사이로 끼어들어, 말리려 했다.

물론, 내가 걱정한 건 제임스가 아니라······.

콰아앙!

제임스의 가벼운 손짓.

하지만 공기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눈앞에서 데니 브라운이 사라졌다.

그는 백여 미터를 날아가, 저 멀리 늘어서 있던 차량을 깔아뭉갰다.

애초에 데니 브라운의 레벨은 팔십 후반에서 구십 초반대일 테니, 상대가 안 된다.

쿠구구구······.

미치겠네.

“하아······ 젠장. 제임스!”

“어어? 가볍게 밀 생각이었는데, 왜 이렇게 쉽게 나가떨어져?”

제임스는 손가락을 꿈틀거리며 당황이 역력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 정수. 이거 실수야. 그런데 너도 그렇고, 여기 사람들은 다 약골인가?”

“하······.”

“근데, 나도 몸 상태가 너무 좋지······ 않군.”

털썩.

설상가상으로, 제임스가 갑자기 실 끊어진 인형처럼 쓰러져 버렸다.

“제임스! 제임스! 젠장!”

우리를 향해 차를 몰고 다가오는 아이언 피스트 길드원들.

나는 녀석들을 피해, 제임스를 업고 뛰었다.

따라 잡히면 일이 배로 복잡해진다!

텔레포트의 쿨타임이 돌 때마다 사용하면서 거리를 벌렸고, 반나절을 쉬지 않고 뛰었다.

“허억, 허억. 이제야 안 따라오네. 아, 진짜 죽겠다.”

중간중간 꿀물을 마시면서 체력을 회복했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잡힐 뻔했네.

“끄으, 정수······.”

“아, 제임스. 정신이 좀 들어요?”

“그래. 몸이 왜 이렇게 무거운가 했는데, 마나가 회복되지 않아. 마나 농도가 낮은 건가? 젠장. 그렇다고 쓰러지기까지 할 줄이야.”

역시 마나 농도 때문이었다.

내가 지구에 있을 때는 골골거리다가 98층에 올라간 이후로 멀쩡해진 것과 반대의 효과겠지.

“제 고향이 조금 척박하긴 하죠. 조금만 더 가면 쉴만한 곳이 있는 것 같으니까, 조금만 버텨요.”

“그래. 이제 걸을 수 있을 것 같으니, 직접 가지.”

제임스는 비척거리며 일어나 걸었다.

그렇게 30분쯤 더 걷자, 주유소가 눈에 들어왔다.

혹시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까 봐 갑옷을 벗은 후, 후드를 눌러썼다.

안으로 들어가자, TV에서 뉴스가 흘러나왔다.

데니와 대화할 때처럼, 영어가 자동으로 번역되지는 않았으나 대충 알아들을 수는 있었다.

─오늘 오후. 콜로라도의 국립공원 근처에 생긴 균열. 이곳에, 드래곤 마스크와 그의 동료로 추정되는 이가 나타나, 순식간에 몬스터를 처리한 것으로 보입니다.─

대체 누가 찍은 영상이지?

화질이 좀 구리네.

천만다행히도 제임스의 얼굴은 각도 때문에 교묘하게 가려져 보이지 않지만, 내 특유의 갑옷 때문에 정체를 숨길 수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다음이었다.

─드래곤 마스크의 동료와 랭킹 9위, 아이언 피스트 사이에 마찰이 생긴 것으로 보입니다.─

설마······.

─카메라에 담기지 않을 속도로 아이언 피스트가 튕겨 나가고, 드래곤 마스크의 동료가 쓰러집니다. 한 네티즌의 제보로 올라온 이 영상은 현재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어?

순간 식은땀이 흘러내린다.

사막 한가운데에서 찍힌 영상.

먼 거리를 클로즈업했기 때문에 화질이 좋지 않고 심하게 흔들린다.

짧은 격투. 쓰러지는 제임스와 날아간 아이언 피스트. 그리고, 홀로 서 있는 나.

이거, 오해하기 딱 좋은 상황 같은데.

아니나 다를까.

─평소 행실로 미루어, 아이언 피스트가 먼저 드래곤 마스크의 동료를 공격하지 않았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그 직후 드래곤 마스크가 반격한 듯합니다.─

아니야!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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