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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 미발견 지역에서 꿀 빱니다-65화 (65/69)
  • < 추락(2) >

    추락(2)

    나는 센티넬과 삐약이를 허리춤의 큼직한 가죽 주머니에 넣은 뒤, 여관을 뛰어 내려갔다.

    마침 그 타이밍에 클라크와 제임스가 출동 준비를 마치고 움직이고 있었다.

    “윌리엄, 그러면 저희가 자리를 비우는 동안 마을의 치안을 부탁합니다.”

    “알겠네. 걱정하지 말게나.”

    나는 다급하게 경비대원들을 향해 뛰어가며 외쳤다.

    “잠시만요! 클라크, 제임스 저도 같이 가요!”

    그 소리에, 클라크와 제임스가 동시에 나를 보며 눈이 커졌다.

    제임스가 나를 향해 다가와 물었다.

    “정수! 너도 가겠다고? 우리가 어딜 가는 진 알고 있는 거야?”

    “네. 흑마법사 추적하러 숲에 가는 거 아니에요?”

    “그걸 알면서도······ 거길 따라가겠다고?”

    제임스가 말을 마치지 못하고 난감해하자, 클라크가 다가오며 고개를 저었다.

    “정수. 지금 숲은 위험해. 잔당이라고 할지라도, 강력한 흑마법사라면 우리 경비대원들의 실력으로도 위험할 수 있어.”

    “하지만, 저도 명예 경비대원이잖아요. 그리고, 저한테 놈들을 추적할 방법이 있어요!”

    클라크와 제임스, 그리고 이번에는 윌리엄의 눈까지 커졌다.

    “흑마법사를 추적할 방법이 있다고?”

    “대체 그게 뭔가?”

    나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제 친구가 숲의 주인 중 하나인 자이언트 스위티 베어거든요.”

    “뭐?”

    “새 친구를 소개할게요. 짜잔!”

    나는 주머니에서 삐약이를 꺼내 내밀었다.

    그런데, 잠시 삐약이와 나를 번갈아 보던 클라크와 제임스가 이마를 움켜쥐었다.

    “하······ 정수! 그건 곰이 아니라, 병아리라고 부르는 거야! 이제 검술이 아니라 단어 공부 먼저 시켜야겠군!”

    “그 병아리 이름을 스위티 베어라고 부르기로 한 건가? 크하하하! 내가 본 것 중, 가장 작고 귀여운 스위티 베어구만!”

    내 말이 그렇게 미덥지 않은가?

    상황이 급한 나머지 설명을 빼놓았을 뿐인데, 다들 이렇게까지 비웃다니!

    화딱지가 나기도 하고, 상황이 급하니 나는 삐약이를 바닥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삐약이, 변신 해제!”

    병아리 변신 비약은 일종의 저주다.

    나는 저주 시연자고.

    즉, 내 의지가 저주의 상태를 바꿀 수 있다.

    퍼어엉!

    어마어마한 양의 연기와 함께, 삐약이가 다시 거대한 스위티 베어로 돌아왔다.

    “크워어어!”

    그 모습을 본 클라크와 제임스가 화들짝 놀라더니, 검을 뽑아 들었다.

    챙, 채쟁!

    “이, 이게 뭐야! 숲의 주인이잖아!”

    “제임스! 대응한다! 이 녀석! 마을까지 기어들어 오다니!”

    제임스가 스위티 베어를 향해 뛰쳐나가며 검을 휘두르자, 스위티 베어가 앞발을 휘둘러 검을 막았다.

    카아앙!

    “크으, 이 녀석! 저번에 네 녀석이 긁고 간 등에 풀독이 올라서, 아직도 간지럽잖아!”

    “크웡, 크워엉!”

    “뭐라는 거야?”

    “쿠워어엉!”

    나는 주머니에서 센티넬을 꺼냈다.

    말이라도 통하면, 싸울 필요가 없다는 걸 알 수 있겠지.

    “곰이랑 사람들의 말을 통역해줘.”

    ─넵! 알겠습니다.

    센티넬이 우리에게 푸른 빛을 쏘았고, 곧 스위티 베어의 말이 번역되어서 들렸다.

    “크워엉! 크웡, 크워엉! (나도 네가 못 먹게 한 꿀통 때문에 사흘 밤낮을 굶었다! 밉다!)”

    “엇! 깜짝이야. 네가 말하는 거냐? 오냐, 말 한번 잘했다. 남의 밥줄을 끊어 놓는 걸 보고만 있으라고? 이제는 아주 마을까지 기어들어 올 줄이야! 오늘은 그냥 못 보낸다!”

    “크워어엉! (원래 강한 놈이 밥을 더 먹는 거다!)”

    어째, 말이 통해도 싸울 생각인가 본데?

    그리고, 내 예상대로 스위티 베어의 앞발과 제임스의 검이 순식간에 몇 번이나 움직이며 부딪쳤다.

    내가 제대로 다 보지 못할 속도로.

    캉, 카가가강!

    불꽃이 튀고, 거센 바람이 불며 금방이라도 날아갈 것만 같았다.

    이대로는 안 돼!

    “그만! 그만! 제임스! 제 친구라고 했잖아요!”

    “친구? 이 녀석이?”

    내 말을 들은 제임스가 잠시 검을 멈추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스위티 베어를 다시 병아리로 만들었다.

    “삐약이, 변신!”

    퍼어엉!

    “삐약!”

    내가 손을 내밀자, 녀석은 타박타박 걸어 내 손바닥 위로 올라와 털썩 주저앉았다.

    제임스를 계속 째려보면서 말이지.

    제임스는 녀석이 째려보는 건 안중에도 없는 듯,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세상에, 정수! 이제는 하다하다 숲의 주인까지 길들이는 거야? 그것도 병아리로 만들다니······ 대체 어떻게 한 건데!”

    물론 제임스뿐만 아니라, 같이 삐약이가 변신하는 걸 본 클라크와 윌리엄도 다가와 삐약이를 이리저리 뜯어보았다.

    “호오. 숲의 주인까지 병아리로 만들 줄이야. 이런 건 살면서 처음 보는데?”

    “맙소사, 정수! 어떻게 한 건가? 새로운 형태의 마법인가? 흐음, 마나의 흐름은 느껴지네만 마법과는 다른 것 같은데······.”

    뭐, 신기하긴 하지.

    “아무튼,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침입자를 추적해줄 숲의 주인이 필요하다면서요? 어쩌다가 2층에서 들었어요.”

    내 말에, 클라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숲의 주인이 있다면, 추적이 원활하겠지. 그 친구가 정말로 우리를 돕기로 한 거냐?”

    “삐약!”

    “네네, 저랑 계약했거든요.”

    세 사람은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눈치였지만, 더는 캐물을 시간이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면······ 잘 부탁하지. 병아리 경?”

    클라크가 삐약이에게 손가락을 내밀었고, 삐약이가 그 위에 날개를 얹었다. 임시 동맹의 악수였다.

    “좋아, 한 시가 급하니까 바로 출발하자고! 정수, 되도록 우리에게서 떨어지지 말게.”

    “알았어요. 윌리엄! 다녀올게요!”

    “그래! 다녀오면, 꼭 통역 마법은 어떻게 한 건지 알려주게!”

    윌리엄의 배웅을 받은 우리는 북쪽 숲으로 향했다.

    숲으로 들어온 이후에는, 삐약이의 변신을 해제한 뒤, 등에 타서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다.

    “크워어엉!”

    녀석의 네발로 땅을 박차자, 양쪽으로 나무들이 엄청난 속도로 지나간다. 나는 나뭇가지에 걸리지 않게 자세를 낮췄다.

    쿵쿵쿵쿵!

    숲 끝의 소실점이 순식간에 커지고, 이내 다른 소실점을 향해서 쏘아진다.

    웬만한 말보다 몇 배는 빠르고······ 승차감은 최악이야!

    “크하하하! 이 녀석, 생각보다 빠르구만!”

    “그러게 말입니다! 말 대신 곰을 타고 싸우면 막을 놈이 없겠는데요?”

    한 손으로 삐약이의 털을 움켜쥔 제임스와 클라크는 몸이 허공에 뜰 때마다, 마치 로데오를 즐기듯이 웃어댔다.

    필사적으로 양손으로 매달린 채, 멀미를 참느라 죽을 것 같은 나와는 다르게 말이지.

    그렇게 한참을 달리던 중······.

    “크워엉! 크워워웡! (여길 넘어가야 해! 느껴진다! 절벽 위, 동굴 안에 불길한 힘을 가진 침입자가 있어!)”

    “여길······?”

    삐약이가 고개를 끄덕였지만,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여긴 길이 아니잖아!!”

    우리 앞에, 끝이 잘 보이지도 않는 높은 절벽이 있었으니까. 못해도 사오십 미터는 되어 보인다. 거의 빌딩이나 다름없다.

    “삐약아, 네 등에 타고 갈 수는 없어?”

    “크웡! 크워엉! (나는 무거워서 못 올라가!)”

    결국, 우리끼리 알아서 올라가야 한다는 건데······.

    이걸 맨몸으로 오를 수 있을까? 웬만한 클라이밍 선수도 힘들 것 같은데.

    그러나, 경비대원들은 쉬운 일이라는 듯 풀쩍 뛰어올라 절벽을 오르기 시작했다.

    “올라야 하면, 오르면 되지.”

    “이 정도 절벽쯤이야.”

    순식간에 절벽을 오르기 시작하는 클라크와 제임스.

    아니, 풀 무장을 하고도 저길 올라갈 수 있단 말이야?

    괴물 같은 인간들······.

    내가 잠시 망설이자, 제임스가 바닥을 내려보며 씩 웃었다.

    “정수! 못 오르겠어? 고작 이 정도 절벽을?”

    “크하하하! 제임스! 제자 교육을 너무 설렁설렁한 거 아니야?”

    “아무래도 돌아가면 특훈시켜야겠습니다!”

    경비대원들은 그렇게 말하며 웃어댔다.

    저게 장난이라는 걸 알아도, 은근히 열 받는단 말이지.

    “아뇨! 오를 수 있어요!”

    “하하! 정수, 이번 일이 끝나면 이런 절벽쯤 가볍게 오를 수 있게 해줄 테니까, 객기부리지 말라고!”

    “그래! 우리가 먼저 올라가서 로프를 내려줄 테니까 말이야!”

    나는 절벽 꼭대기를 노려보며, 심호흡했다.

    그리고······.

    “텔레포트.”

    우우웅!

    시야가 한순간에 반전하며, 눈앞에 절벽 꼭대기가 보인다.

    나는 몸이 떨어지기 전에 절벽 꼭대기를 잡아 올랐다.

    꼭 절벽을 타고 올라가란 법은 없잖아?

    나는 절벽 아래를 바라보며, 미소를 머금고 외쳤다.

    “클라크, 제임스! 저 먼저 염탐하고 있을게요! 삐약이랑 같이 오세요!”

    클라크와 제임스는 황망한 표정이었다.

    “엇! 대체 어떻게!”

    “정수! 정수, 안돼! 혼자 가는 건 위험하다고!”

    “괜찮아요! 들키지 않을 방법이 있어요!”

    잠입은 내 전문이라고.

    몸을 돌리자, 저 멀리 동굴 입구가 보인다.

    나는 그림자 은신을 사용해서,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사방이 어둠이라서 그림자 은신을 사용하기 딱 좋은 곳이다.

    녀석들의 수준이 아무리 높아도, 내가 먼저 공격하지 않는 이상 녀석들이 먼저 눈치채기는 힘들 거다.

    그렇게 동굴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다 보니, 웬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말로 여기에 숨은 모양인데.

    나는 숨을 죽이고 소리에 집중했다.

    분신을 보내자, 더욱 선명하게 들리는 목소리.

    “크으으······ 크으······ 이런 곳까지 몰릴 줄이야······.”

    “조금만 더 버텨라. 곧 포탈을 열 것이니.”

    나는 그림자 속에 숨어든 채 조금 더 전진해, 녀석들이 보이는 곳까지 다가갔다.

    【Lv.78 흑마법사 다리오】

    【Lv.81 흑마법사 베텔】

    꽤 높은 레벨의 흑마법사들이었다.

    물론, 나에 비하면 높다는 거지, 경비대원들이 도착하면 아무것도 아닌 녀석들이다.

    그런데, 포탈은 대체 무슨 이야기지?

    나는 괜히 숨을 죽이며 녀석들의 이야기를 엿들었다.

    다리오라는 흑마법사가 심장을 부여잡은 채, 침을 흘리며 말했다.

    “몸에 너무 많은 마기가 침투했습니다. 이대로는 오래 버틸 수 없습니다.”

    “어차피 이 상태로는 흑마법을 사용하지 않아도 석 달이면 심장이 터져 죽는다. 그러니, 우리의 활로는 이것뿐이다.”

    “크흐흐······ 제물을 바쳐서 마수로 다시 태어나는 것.”

    마수로 다시 태어난다고?

    인간이?

    “그래. 그분의 마음에 든다면, 우리는 인간을 초월한 존재가 될 것이다. 마나를 더 짜내라! 0층의 세계로 통하는 강력한 포탈을 열고, 더 많은 제물을 바치기 위해!”

    ······0층?

    녀석들이 마나를 불어넣으면 불어넣을수록, 녀석들이 밟고 선 마법진이 붉게 빛난다.

    그리고, 그 빛에, 어둠 속에 가려져 있던 것들의 모습이 얼핏 보였으니······.

    늑대의 다리와 문어의 다리 등, 인간이 아닌 동물의 신체를 달고 있는 데다가, 군데군데 핏줄이 돋고 눈알은 터질 듯 튀어나온 끔찍한 몰골의 흑마법사들.

    그리고······.

    “크르르르······.”

    “케르륵······.”

    흉흉히 눈을 빛내고, 금방이라도 먹잇감의 목을 물고 흔들어 찢어낼 듯, 침을 질질 흘리는 마수 군단이.

    “드라우스 님께서 우리를 다시 거두어, 새 생명을 주시리라!”

    베텔이라는 흑마법사가 마나를 짜내며, 누군가를 찬양하듯 손을 높게 들어 올렸다.

    그런데······ 드라우스? 드라우스라면, 세 개의 균열을 만들어냈던 균열 유도자잖아!

    “그러면 아까 말한 0층이······.”

    내가 경악하는 그 순간.

    흑마법사들이 마나를 불어넣은 마법진이 강하게 빛나며, 포탈이 열렸다.

    그래. 내가 지구에서 보았던, 검붉은색의 불길한 그 균열이었다.

    설마······ 저거 설마······.

    “가라! 가서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파괴하고 찢어, 너희의 주인께 바쳐라!”

    “크와아앙!”

    “캬르르륵!”

    균열이 열리고, 마수들이 포탈을 향해 내달렸다.

    젠장, 어떡하지? 놈들의 음모가 완성되기 직전인 게 분명한데.

    마수들의 레벨도 나보다 높지만, 가장 큰 문제는 저 흑마법사들이다.

    싸울 준비가 되지 않은 지금, 저런 놈들을 홀로 막으려 한다면 분명히 나의 필패.

    클라크와 제임스를 기다려야 하나?

    하지만, 내 고민은 부질없었다.

    그 짧은 사이, 모든 마수가 포탈을 타고 넘어간 뒤, 흑마법사들도 포탈을 타고 넘어갈 준비를 마쳤으니까.

    “우리도 들어간다.”

    “예!”

    저 포탈이 어디로 연결되는 건지는 몰라도, 저놈들까지 보낼 순 없다!

    드래곤 아머가 있으니, 이판사판이다!

    우우웅, 철컥!

    드래곤 아머를 장착하는 것과 동시에 그림자에서 뛰쳐나갔고, 흑마법사들을 향해 검을 휘두르려는 순간.

    내 기척을 눈치챘는지, 녀석들이 마법을 쏘아대고, 문어 팔과 늑대 팔을 휘둘러댔다.

    나는 자세를 낮추며 그 공격들 가까스로 피해냈고, 공격은 벽을 때렸다.

    쾅, 콰아앙!

    쿠르르······.

    동굴이 무너져내리기 시작하며,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너흰 못 가, 이 새끼들아! 곧 경비대원들이 올 테니 포기하시지!”

    “젠장! 쥐새끼가 있었군!”

    “다리오! 상대할 시간 없다! 포탈로 몸을 던져라!”

    “예!”

    녀석들이 포탈로 몸을 던지며, 내 머리 위로 검은 구체를 쏘아냈다.

    콰아앙!

    그 구체에 맞은 천장이 무너지며 나를 깔아뭉개려 했다.

    “크윽!”

    나는 몸을 던져 바닥을 굴렀다.

    그리고,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어?”

    한쪽 발이 포탈에 걸쳐졌고, 나를 빨아들이는 강력한 인력이 느껴졌다.

    “으아악! 난 왜 이렇게 자꾸 발을 헛디디는 거야?”

    벗어나려고 해보았으나, 내 힘보다 강한 힘이 나를 서서히 끌어당겼고, 하체가 다 빨려 들어간 순간.

    “정수! 젠장, 이게 무슨 일이야!”

    클라크와 제임스가 동굴 입구에 도착했다.

    “제임스!”

    “금방 꺼내줄게!”

    제임스가 바닥을 박차며 내게 손을 뻗었다.

    “안 돼! 오지 마세요!”

    내 경고를 무시하고 제임스가 달려왔다.

    그리고······.

    “어어어? 이게 왜! 으아악! 정수!”

    제임스까지 포탈에 끌려서 날아오며, 간신히 바닥을 잡고 버티던 내 투구를 차버렸다.

    카앙!

    “커헉! 끄아악! 제임스, 오지 말라고 했잖아요!”

    결국 포탈 안으로 완전히 빠져버렸다.

    고오오오!

    끝도 없는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 같다.

    계속해서 몸이 빙글빙글 돌아,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땅인지 구분되지 않는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고.

    콰아앙!

    나는 땅에 처박혔다.

    전신에 느껴지는 저릿한 충격에, 나는 호흡을 다듬고 온몸을 이리저리 비볐다.

    “크으으······ 아이고, 갑옷 없었으면 죽었겠네.”

    하지만 직후, 하늘에서 떨어진 무언가······ 아마도 제임스로 보이는 물체가 나를 강타했다.

    콰아앙!

    “커헉!”

    다시 바닥을 구르다가 간신히 일어나 고개를 털자, 시야가 돌아왔다.

    “아이고, 삭신이야. 끄응······ 대체 여기가 어디야?”

    “제임스!”

    “아, 정수! 다행이다! 무사했구나!”

    제임스가 옷에 묻은 흙먼지를 탁탁 털어내며, 나를 향해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다행이다. 제임스도 멀쩡해 보이네.

    나는 한숨을 푹 내쉬고, 주위를 돌아보았다.

    “그런데, 여긴······.”

    황무지. 선인장. 그곳을 가로지르는 아스팔트 도로가 지평선까지 이어진다.

    군데군데 보이는 표지판들.

    낯설지만, 익숙하다.

    저 멀리 달리고 있는, 자동차로 보이는 물체.

    “서, 설마······ 0층이······.”

    내가 식은땀을 흘리자, 제임스가 다가와 물었다.

    “정수, 여기가 어딘지 알아? 덥고 황무지가 늘어선 걸 보니까, 톨른과 가까운 것 같지는 않은데.”

    나는 혼란스러운 정신을 붙잡으며, 제임스에게 말했다.

    “여긴······ 제 고향이에요.”

    흑마법사들이 연 포탈.

    그건, 지구와 연결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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