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화
이나윤은 작년에 이어 올해도 ‘어린이 감독 영화제’ 스태프로 지원했다. 결과는 경력직이니 당연히 합격.
영화제가 시작되기 전 참석한 OT에서. 이나윤은 깜짝 놀랄 만한 소식을 듣게 되었다.
“나윤아. 차서준이 우리 영화제에 참가하는 소식 들었어?”
“헐. 차서준? 그 타임슬립에 나왔던 그 차서준 말하는 거야?”
“응. 지금 그것 때문에 난리도 아니래.”
“맞지맞지. 이건 어린이 달리기에 육상선수가 나온 거나 마찬가지니.”
친구의 말을 듣고 나니. 이나윤은 그제야 OT에 참석한 스태프들의 인원이 작년보다 훨씬 많다는 사실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서 올해는 사람이 이렇게 많았구나.”
“규모도 작년보다 훨씬 클 거래.”
“정말?”
안 그래도 처음 ‘어린이 감독 영화제’에 지원했을 당시. 이나윤은 생각보다 아기자기한 규모에 조금 실망도 했었다.
말 그대로 모두가 함께하는 축제가 아닌. 참가자들과 관계자들만 참여하는 행사라는 성격이 강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도 지원한 이유는. 미래의 감독님과 배우를 꿈꾸는 아이들이 너무나도 귀여웠기 때문이었다.
“혹시 차서준이랑 사진도 찍을 수 있을까?”
“힘들지 않겠어? 다른 배우도 아니고 차 배우라고 불릴 정도잖아. 탑급 연예인이나 마찬가지인데 안 해주지 않을까?”
“그렇겠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함께 합격한 친구와 대화를 나누면서도. 스태프로 활동하더라도 차서준을 가까이서 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었다.
그 정도 위치의 연예인이라면 딱딱 정해진 스케줄만 소화하고 떠나버리는 것이 보통이었으니까.
작년에 섭외로 왔었던 잘 안 알려진 배우들도 정해진 일정만 하고선 휑하니 가버렸다.
“아마 작년보다 사람이 더 많이 올지도 몰라. 힘들 수도 있으니 각오해야 된대.”
“정말? 그러면 마음 단단히 먹고 와야겠어.”
나름 단단히 마음을 먹은 이나윤이었지만. 그 각오가 조금 부족했다는 걸 영화제 시작 당일이 되어서야 알 수 있었다.
“헐. 저게 다 기자들이랑 사람들이야?”
“깜짝이야. 작년이랑 비교하면 완전히 딴 세상이네.”
스태프로 참석한 이나윤과 친구는 입이 떡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작년에는 고작 기자 몇 명과 참가자 가족들이 오는 정도에 불과했었는데. 오늘 그녀들의 눈앞에 보이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상태였으니.
“저기 줄 보이지?”
“응.”
“저 줄이 차서준 나오는 영화 티켓을 예매하려고 기다리는 줄이래.”
“오늘 평일인데?”
사실 차서준의 인기가 대단하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뜨거운 반응을 가져올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었다.
정식 영화도 아닌. 초등학생들이 만든 20분짜리 단편 영상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하지만.
정작 이나윤과 친구를 경악하게 만드는 일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는 걸. 잠시 후 두 사람은 알게 되었다.
“헐. 저기 다 진짜 배우들이야? 이래서 한참 전부터 기자들이 쫙 깔린 거구나.”
“대박이다. 차서준이 촬영장에서 잘한다는 소문은 듣긴 했는데. 정말 이런 곳에도 응원차 다들 왔네.”
연사모로 알려진 배우 박우형, 김정범, 김우승은 물론이고. 그 외 차서준과 함께했었던 유명 배우들이 차서준을 응원 겸 참석했다.
그 덕분에 작년에는 섭외로 잘 알려지지 않은 배우 두세 명이 전부였던 레드카펫 위에. 정말 대규모 영화제라도 된 것처럼 화려한 스타들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애들이 엄청 좋아한다.”
“당연하지! 어린이 영화제에 참가하는 애들 꿈이 다 감독이랑 배우인데. 저기 다 있잖아.”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헐. 특별 심사위원에 주우정 감독님 이름이 올라왔는데?”
“대박. 이번에 상을 타는 애들은 무려 베를린에서 상을 받은 감독님이 심사한 거네.”
작년과 비교하면 마치 천지개벽이라도 한 수준이었다. 농촌 마을이 신도시로 바뀌어 있는 걸 보는 느낌이랄까.
“이게··· 작년의 그 어린이 영화제라고?”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성대하고 화려해진 규모를 보면서. 이나윤은 멍하니 한마디를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
작은 규모이지만 영화제라는 타이틀을 건 만큼. ‘어린이 감독 영화제’에도 참가자들이 걷는 레드카펫과 포토존이 설치되어 있었다.
서도현의 말처럼 배우 차서준의 참가를 싫어하는 사람보다 반기는 이들이 훨씬 많았다.
일단 당장 준비된 포토존 앞에 진을 치고 있는 기자들과 참가자 가족들만 보더라도 알 수 있는 사실.
“지석아. 웃어야지.”
“하나야. 스마일!”
“엄마 여기에 있어!”
얼음이 되어버린 자식들을 위해 저쪽에서 부모님들이 열심히 소리치고 있었다.
작년에는 저 자리에 기자는 몇 없고. 대부분 참가 학생들 학부모가 핸드폰을 들고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말 그대로 대포 카메라를 든 기자들이 연신 셔터음을 울리고 있었다. 아마 기사 제목엔 ‘배우 차서준과 함께 영화제에 참석하는 어린 학생들.’ 이렇게 달리겠지.
“여기 잠깐만 봐주세요.”
“차 배우. 친구들과 포즈 한 번 부탁드립니다.”
“이번에는 살짝 미소 지어주세요.”
그것은 우리 사총사 역시 마찬가지. 개인이 아니라 팀 단위로 포토존 위에 섰기에 얼음이 되어버린 애들이었다.
가뜩이나 나와 함께 올랐기에 기존 앞선 팀들보다 훨씬 오랫동안 사진을 찍어야만 했다.
“우와. 근데 지우는 어떻게 왔어? 오늘 연습 있는 거 아니야?”
“···회사에서 가도 된대. 가서 사진 찍을 때 이상한 사진 안 나오게 포즈만 잘 잡으래.”
다른 사람도 아닌 배우 차서준과 함께 참석하는 ‘어린이 감독 영화제’였다. 지금처럼 기자들이 몰려들 거라는 걸 예상한 소속사에서 당연히 보낸 것.
나중에 하지우가 데뷔할 때 유용한 자료로 써먹을 수 있을 터였다. 물론 그때가 되면 나도 하지우의 응원을 아끼지 않을 테지만.
잠시 포토타임을 가진 뒤에는 간단한 질문을 주고받는 순서가 있었다. 예상대로 사총사팀의 순서가 오자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그중에서 사람들의 웃음을 터트리게 만든 질문이 나오기도 했었다.
“이번 영화제에 출품하면서 차서준 배우와 김도윤 배우를 섭외하셨는데요. 출연료를 어떻게 하셨는지 최지환 감독님께 궁금합니다.”
나와 김도윤에게만 질문이 쏟아지다가. 갑작스럽게 자신에게 질문이 들어오자 최지환이 화들짝 놀란다.
내가 편안하게 말해도 괜찮다며 마이크를 넘겨주자. 잠시 우물쭈물하던 최지환이 이내 기운을 되찾고 말하기 시작했다.
“그게···. 사실 도윤이도 그렇지만. 서준이의 몸값이 너무 비싸서 섭외할 때 걱정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서준이가 우정 할인을 해준 덕분에 치즈 돈까스 세트로 협의를 봤습니다!”
저 말이 끝남과 동시에 웃음바다가 터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어찌 귀엽지 않을까. 당장 ‘타임슬립’에서 회당 얼마, 광고비로 몸값이 얼마. 이런 기사만 쓰던 기자들인데.
처음 사총사들이 만든 영화로 톱스타 차서준이 받은 출연료가 치즈 돈까스. 그것도 세트 메뉴라니.
“우와. 나 엄청 신기해. 아직 가보지는 못 했지만 꼭 연말 시상식에 온 것 같은 기분이야.”
“나도나도! 아까 질문을 받았을 때 숨이 확 막혔는데. 서준이랑 도윤이 덕분에 답변을 잘 할 수가 있었어!”
“···대단해.”
포토존에서 내려온 사총사들이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와글와글 떠든다. 저 모습들을 보니 퍽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어린이 감독 영화제’에 참석하겠다고 어린이 턱시도까지 입고. 또 내가 다니는 샵에도 들렀다 왔더니 더 귀엽다.
“서준이 넌 영화제 기간 동안에 엄청 바쁘지 않아?”
“아마 그럴 것 같아. 영화제에서 준비한 일정들 중에서 몇 개를 나가기로 해서.”
이번 어린이 감독 영화제에 참가한 아이들은 모두 꿈을 가지고 참가한 상태였다. 미래에 감독이 되고 싶다거나, 또 배우가 되고 싶다거나.
그런 친구들에게 작은 조언 정도를 해줄 수 있다면. 아이들에게 있어 정말 좋은 추억이 될 것이다. 나 역시 그럴 테고.
“일단 배우와 함께하는 토크에 나가기로 했어. 우리 첫 번째 상영은 참가자 관계자들끼리 본다고 했지?”
“응! 조금 있다가 상영관으로 가면 된다고 했어!”
그 전에 해야 할 일도 있었다. 영화제라고 부르기엔 조금 규모가 작은 어린이 영화제였다. 그럼에도 자리를 빛내주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이 있었으니까.
“나 저쪽에 와준 형, 누나들을 좀 보러 가야되는데. 너네도 같이 갈래?”
“그래도 돼?”
“···괜찮아?”
김우승이야 자주 봤다지만. 나머지 연사모 형들은 한두 번 잠깐 본 적이 전부였던 애들이었다.
“당연히 괜찮지. 대신 가는 길에 카메라가 엄청 찍을 테니까. 혹시나 이상한 사진 안 나오게 조심해야 돼.”
“알았어!”
어린이 감독 영화제에 참석한 연예인들을 위한 공간에 제법 많은 이들이 모여 있었다.
“서준이다!”
“서준이 친구들이구나. 본선 진출 축하한다.”
“이야. 턱시도 입으니까 완전 연예인인데?”
내가 사총사 친구들과 등장하자 다들 축하의 인사를 건네며 반겼다.
“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다음에 저도 꼭 시사회 있으면 갈게요. 정말 감사드려요!”
그렇게 한 명 한 명 감사의 인사를 하고 나니. 가장 마지막 순서에는 연사모 형들 차례가 되었다.
응? 그런데 그 형들 사이에 이상한 사람 하나가 껴 있었다. 정확히는 왜 여기에 있지? 이런 생각이 들게 만드는 사람이.
“청아 누나? 왜 저쪽에 타임슬립 형들이랑 같이 안 있고 여기 있어요?”
“아. 마침 여기 우승 씨가 연사모 형들을 소개해주겠다고 해서.”
아까 타임슬립 배우들이 모여 있던 자리에 김청아가 없어서 안 온 줄 알았는데. 김우승이 데리고 형들을 만난 모양.
“서준아. 우승이 쟤 이상해. 오늘 자꾸 헤실헤실 웃는 게 뭔가 마음에 안 들어. 기분 나빠.”
예리한 헛탐정 김정범도 저 두 사람 사이에 묘한 기류를 느꼈는지. 내 귓가에 속삭이며 투덜거렸다.
“형들. 그리고 누나. 오늘 와주셔서 감사해요. 덕분에 참가한 친구들도 정말 기뻐했어요.”
“뭘. 우리 서준이를 위해서 당연히 와야지.”
“인정.”
어린이 감독 영화제 측에서 한 가지 아이디어를 내었다.
나 때문에 많은 연예인들이 얼굴을 비추러 온다는 사실을 듣고선. 원하는 이들에 한해 본선 진출작 상영을 보고 코멘트를 부탁한 것.
그 멘트 하나하나가 더 많은 관심을 만들어낼 수 있기에. 오늘 참석한 이들 모두가 흔쾌히 수락했다고 들었다.
“형들도 보고 가실 거예요?”
“당연하지. 여기서 만난 인연도 있으니 다 같이 뒤풀이하기로 했어. 너도 오늘 일정 다 끝나면 와서 얼굴 비추고 가. 널 위해서 와준 사람들이니까.”
“네. 일정 끝나는 대로 갈게요.”
저렇게 말하니 정말 VIP 시사회라도 열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어쨌거나. 오늘 나를 위해 온 이들이니만큼. 다들 이것도 인연이라면서 저녁 뒤풀이를 약속한 모양. 그렇다면 당연히 참석해야지.
“그러면 조금 있다가 야외 상영관에서 봐요.”
“그래.”
사총사가 처음으로 함께한 영화 ‘흔들린 우정’으로 참석한 어린이 감독 영화제의 시작이었다.
*
올해 최고의 드라마라 평가받을 정도로 뜨거운 사랑을 받았던 ‘타임슬립’이었다.
그런 ‘타임슬립’의 주인공이었던 차서준이 참석한 ‘어린이 감독 영화제’에 관심이 쏠리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 차 배우 섭외비 이야기 들으셨나요? 저 그거 영상으로 보다가 귀여워서 한참 웃었어요.]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치즈 돈까스 세트라니. 아직 초등학생인 사총사 친구에게 있어선 정말 비싼 출연료였겠네요.
└ 저거 영상으로 보고 빵 터짐. ㅋㅋ 그냥 친구끼리 우정으로 출연을 결심했다는 대답이 나올 줄 알았는데.
└ 아무리 절친인 사총사 사이라도 출연료는 확실하게 해야지. 암 그렇고말고. 당장 우리 차 배우 드라마 회당 출연료가 얼만데.
└ 거기에 절친 디스카운트 하면 치즈 돈까스 세트면 적절했네요. ㅋㅋㅋㅋ 거기에 영화 제목이 ‘흔들린 우정’임. 너무 궁금해서 미칠 거 같아요.
└ 지금 오시면 안 돼요. 저 주말 피하려고 연차 써서 왔는데 줄 서도 자리가 없어서 못 봤어요. ㅠㅠ
└ 차 배우 효과 끝내주네요. 저 영화제가 검색해도 나오는 것도 별로 없고. 작년에는 그냥 행사 정도 규모의 영화제였던 거 같은데. 올해는 진짜 영화제 급으로 관심을 받네요.
특히나 탑급 배우로 올라선 배우 차서준의 출연료가 많은 관심을 받았다.
6살 데뷔 이후부터 시상식에 올라 소감을 말할 때마다 언급되었던 사총사 친구들이었다. 그런 친구의 꿈을 위해 우정 출연을 결심한 셈이니.
특히 종영된 지 며칠 지나지도 않은 ‘타임슬립’ 덕분에 더 많은 이목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우와. 사람 진짜 많네. 일찍 나왔으니 다행이지 못 볼뻔했네. 그렇지 엄마?”
“그러게. 우리 딸 덕분에 금동이가 사총사들이랑 만든 영화를 다 보게 되었네. 고마워 딸.”
배우 차서준의 오랜 팬인 김시율이 그 자리에 빠질 리가 없었다. 그녀는 팬클럽의 네임드 팬 금동이맘인 엄마와 함께 어린이 감독 영화제를 찾았다.
이른 아침부터 줄을 선 덕분일까. 아슬아슬하게 티켓을 받을 수 있었다. 5분만 늦었더라도 매진으로 받지 못할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흔들린 우정? 과연 무슨 내용일까.”
시간이 되어 김시율이 엄마와 함께 상영관 좌석에 앉자.
“시작하네.”
사총사가 함께 만든 첫 영화 ‘흔들린 우정’이 포함된 본선 진출작들이 상영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