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화
시작은 사소한 오해에서부터였다.
-야! 너가 다 먹어버리면 어떡해.
-어어?
어린 친구 둘이서 동전을 모아 산 떡꼬치. 한 명씩 돌아가면서 한 줄씩 빼먹기로 했는데. 실수로 끊어내지 못하고 홀라당 입으로 넣어버린 것.
-너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니야? 내가 돈도 더 많이 냈잖아. 1000원 중에 700원이 내 돈이었던 거 몰라?
-저번에는 내가 더 많이 냈었잖아. 그때도 너가 더 많이 먹었어!
사소한 다툼이었다. 하지만 과거의 잘못까지 꺼내와 싸우기 시작하는 두 친구.
결국.
-너랑 다신 안 놀 거야.
-나도 너 싫어 이제. 절교하자고!
사소한 것으로 시작해 절교를 선언해버린 두 친구. 학교에서도 서로 모른 체를 해버린다.
하지만.
-···심심해. 그래도 내가 먼저 절대 사과 안 할 거야.
매일 학원까지도 같이 다니던 친구와 싸우고 난 뒤 허전함을 느끼게 된 지훈. 멀어진 친구의 빈자리가 자꾸만 크게 느껴지는데.
친구란 무엇일까. 또 이렇게 계속 혼자서 지낸다는 건 얼마나 슬픈 일일까. 친구의 빈자리에 많은 것을 느끼는 지훈.
-아빠. 아빠는 친구랑 싸우면 어떻게 화해해?
결국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아빠에게 전화를 해서 화해하는 법을 가르쳐달라고 하는데.
-어른이 되면 정말 싸우고 다신 안 봐? 헉, 그러면 나 얼른 호준이에게 사과할래.
어른들의 친구 사이에는 싸우고 다신 안 보는 일도 있다는 아빠의 말에 화들짝 놀라는 지훈.
그제야 떠오르는 친구가 자신에게 더 많이 양보했던 순간의 기억들.
사과에는 타이밍이 중요하다는 걸 듣고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고.
그렇게 다시 만난 두 친구. 그런데 각자의 손에 떡꼬치가 포장된 봉투를 들고 있는데.
-미안해. 아빠에게 들었는데. 나중에 어른이 되고 나면 아무리 친한 친구여도 싸우다가 멀어지고. 다신 안 볼 수도 있대. 그런데 난 그건 싫어.
-나도 미안해. 정말 실수로 그런 거야. 나 엄마한테 말해서 용돈도 더 받게 되었어. 그러니까 앞으로 하나씩 사서 나눠 먹자.
상영 순서가 ‘흔들린 우정’이 가장 마지막이었기에 상영관에 불이 들어온다.
“사총사 초등학생 친구가 감독으로 만들었다던데. 생각할 것도 많고 중간중간 깨알 개그도 재밌네?”
“나도 깜짝 놀랐어. 우정에 대해 어린아이의 관점과 어른의 관점을 교차해서 보여준다는 게 꽤나 괜찮은데?”
관람객들의 입에서 가장 많이 나온 건. 역시나 가장 마지막 순서에 나왔던 사총사의 ‘흔들린 우정’이었다.
친구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현직 초등학생의 입장에서. 20분이란 짧은 시간 동안 꽤나 흥미롭게 풀어낸 영화였으니.
*
어린이 감독 영화제에서 현역 배우와 함께 대화를 나누는 시간. ‘배우와 함께하는 토크’에 배우로 참석하게 된 나였다.
사실 영화제에 작품으로 참석한 내가 이런 프로그램에 참여해도 되는지 물어본 결과. 무조건 환영이라는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작년에는 참석한 사람이 별로 없었다고 했는데. 올해는 의자도 꽉 차서 저 뒤에 잔뜩 서 있어야만 할 정도였다.
“자, 여기까지가 앞으로 여러분들이 배우나 감독을 꿈꾼다면 준비해야 할 것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혹시 질문 있는 친구 있나요?”
내가 준비한 말들을 다 끝나고. 질의응답 시간을 갖겠다는 말과 동시에 아이들이 너도나도 손을 번쩍 들었다.
아마 내가 참석한다는 소식을 미리 들었는지. 아예 질문할 내용까지 수첩에 적어 온 친구들도 보였다.
“거기 빨간 모자를 쓴 친구. 네네. 그 친구요. 마이크 좀 전해주시겠어요.”
“안녕하세요! 저는 중성초에서 온 김우민이라고 합니다. 제 꿈이 배우인데. 배우에게 발음이 정말 중요한가요?”
“당연하죠. TV 속 드라마에 나온 배우가 웅얼웅얼 알아들을 수 없는 발음을 한다면. 과연 그 배우의 연기에 시청자들이 집중할 수 있을까요? 미래에 배우를 꿈꾼다면 지금부터 또박또박한 발음과 발성을 연습해야 합니다.”
“네! 답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질문에 답변을 들은 김우민 어린이가 앉자. 저요! 저요! 하는 병아리들의 합창이 들린다.
이번에는 내가 질문을 받는 것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넘길 생각이었다. 지금 무대 위에 앉아있는 사람은 나 혼자가 아니었으니.
“이번에는 타임슬립에서 강록으로 뜨거운 사랑을 받았던 박우형 배우에게 물어볼 사람 있나요?”
원래는 나 혼자 참석하는 일정이었지만. 어차피 집에서 휴식이나 취하고 있을 형들을 데리고 온 참이었다. 끝나고 맛있는 걸 사주겠다며 꼬셔서.
연사모 형들도 같이 참석이 가능하냐는 질문을 던지자마자. 관계자들뿐만 아니라, 소식을 들은 참가자 학부모들도 엄청 좋아하며 반겼다.
미래에 연예인이나 감독이 꿈이 아이들에게 최고의 롤모델이 소통하는 시간을 갖겠다고 한 것이니.
심지어 난데없이 아이돌이 되고 싶다며 김우승에게 질문을 던진 친구도 있었다.
“그러면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다들 꿈을 포기하지 말고 미래에 좋은 감독님이나 배우가 되셨으면 좋겠어요.”
무대 위에서의 일정이 끝나고. 나는 연신 ‘어린이 감독 영화제’ 관계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받아야만 했다.
특히나 작년에 이 코너를 준비했던 관계자는 울먹이는 얼굴로 연신 고맙다며 내 손을 잡았다.
“차 배우. 정말 고마워요. 사실 작년에 너무 휑해서 실망하는 친구들도 많았거든요. 그런데 올해는 진짜 발 디딜 틈 하나 없이 인기가 엄청났어요. 다 차서준 배우가 도와준 덕분입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작년에 영화가 상영할 때 참가자 친구들이나, 가족, 지인들이 전부였는데. 올해는 내 팬부터 관심을 가지고 찾아온 사람들 덕분에 성황이라고 했다.
어린이 감독 영화제가 실시간 검색어에도 오르고. 또 사람들이 잔뜩 몰려온 덕분에 관심이 더욱더 솟구치고 있다면서. 관계자들이 함박웃음을 잃지 않았다.
그리고.
사총사들이 처음으로 만든 영화 ‘흔들린 우정’에 대한 후기들이 속속 올라오기 시작했다.
[우리 차 배우가 사총사 친구들이랑 찍은 영화 보고 옴.]
어린이 영화제는 처음 가봤는데. 생각보다 규모도 크고 사람도 바글바글했음.
일단 우리 차 배우의 이번 20분짜리 단편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면.
제목부터가 심상치가 않았지. ‘흔들린 우정’이라니. 설마 여자 때문에 두 친구의 우정이 흔들린다는 건가? 이런 생각도 했었는데.
막상 보니까 어린 친구 사이의 우정이 뭘까? 고민에 관한 내용이었음.
잠시 감정이 상해 싸운 어린 두 친구가 다시 화해하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랄까. 그 과정에 어른들의 우정이란 무엇일까 고찰하는 감독의 생각도 정말 좋았음.
차 배우의 연기는 명불허전 차 배우였고. 의외로 사총사 친구인 김도윤이라는 아역 배우의 연기도 정말 좋더라.
앞으로도 저 두 배우가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좋은 케미를 보여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이번 주 일요일에 영화제가 폐막이니 시간 되시는 분은 한 번 가보기를 추천함.
PS : 차 배우랑 친구인 아역 배우 김도윤의 콩트 때문에 실컷 웃었음. ㅋㅋㅋ
└ 이거 맞음. 솔직히 아직 어린 친구가 만든 영화다 보니 아쉬운 부분이 없진 않았지만. 초등학생이라는 걸 감안하면 꽤나 괜찮은 작품이었음.
└ 나 이거 보려고 새벽부터 나가서 줄 서서 표 구할 수 있었어. 제목 그대로 어린아이들의 우정에 대한 꽤나 유쾌한 영화였다고 생각해. ㅋㅋㅋ
└ 맞지. 특히나 우리 차 배우가 며칠 전까지 타임슬립에서 강록을 연기해서 더 재밌게 봤음. 강록이던 차 배우가 초딩이 되어서 친구와 투닥투닥하는 게 웃음 포인트였지.
└ 이게 사총사의 흔들린 우정이 가장 마지막에 나와서. 어쩔 수 없이 출품한 영화들 다 봤는데. 유치하면서도 꽤나 신선했음.
└ 맞아요. 솔직히 초등학생들이 만들었으니 다 별로지 않을까? 이런 선입견이 있었는데. 꽤나 신선한 내용들이 있어서 내년에도 갈 거 같아요.
확실히 이번에도 ‘차서준 효과’가 제대로 터졌다. 차서준 때문에, 또는 호기심에 들렀던 사람들 중에서 내년에도 방문하겠다는 이들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어린이 감독 영화제가 진행되는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영화제의 꽃은 뭐니뭐니 해도 시상식이었다. 그 시상식에 ‘흔들린 우정’ 팀인 사총사들도 참가했다.
어린이 영화제이지만 처음 자신의 작품으로 도전한 최지환인지라 얼굴에 긴장감이 역력해 보였다.
“서준아. 나 떨려.”
“걱정하지 마. 다들 평가가 좋았잖아. 특히 첫날에도 좋았다는 말을 많이 들었고.”
“맞다! 서준이 말을 들으니까 조금 자신감이 생기는 것도 같아!”
영화제 시작 첫날. 참가자들도 함께하는 첫 상영 시간 때. 배우 차서준을 응원 차 참석했었던 연예인들도 시사회 느낌으로 함께 관람했었다.
어린 참가자들을 응원하는 이벤트 느낌으로. 상영이 모두 끝난 이후 각 작품들에 대한 소감 한마디씩 부탁했었다.
어느 작품이 가장 많은 칭찬을 받았냐고? 이건 굳이 물어볼 필요가 있을까.
“일단 출연자들의 연기를 빼놓고도. 지환이 네 영화에 담긴 내용이 가장 좋았대.”
“저, 정말?”
“어. 우형이 형도 그 말을 하더라. 제법 미래가 기대되는 친구라는 말을 전해달라고.”
“대박대박!”
박우형의 말을 전해주자. 얼굴에 남아있던 긴장감마저 날려버린 최지환이 방방 뛰며 기뻐한다.
“나도 우리 작품이 대상을 받을 거라고 생각해.”
“···나도 그래.”
옆에 앉아있던 김도윤과 하지우 역시 같은 생각을 한 모양.
현재 활동 중인 배우가 출연했다는 사실을 제외하고도. 내용적으로 가장 호평을 받은 작품이 바로 최지환 ‘흔들린 우정’이었다.
내가 시나리오를 보자마자 재밌겠는데? 이런 생각이 들게 만들었으니까.
“···경쟁 부분 단편 영화 대상 수상작은 흔들린 우정입니다.”
역시나 예상대로 대상 수상은 우리 사총사의 ‘흔들린 우정’이 차지하게 되었다.
영화제가 모두 끝난 후.
“자자! 내가 열심히 모은 용돈 가지고 왔어! 서준이 차를 타고 이동하기로 했으니까. 이거 가지고 가서 너네가 먹고 싶은 거 다 사줄 수 있어!”
처음 약속했던 출연료의 지급을 위해 사총사는 식당으로 향했다. 돈 대신 출연료로 돈가스, 그것도 치즈돈가스 세트를 받기로 약속했었던 우리였다.
정작 우리가 향한 곳은 바로 사총사들이 가장 많이 갔었던 돈가스 가게였다.
“여기보다 훨씬 비싸고 맛있는 곳 가도 되는데!”
최지환이 대상까지 받아 너무 고맙다며 더 비싼 곳을 가도 된다고 했지만. 우리가 입을 모아 원한 곳이 바로 여기였다.
기쁜 일이 있을 때마다 우리끼리 모여서 축하를 해주던 의미 있는 곳이었으니까.
“여기 치즈돈까스가 내가 먹어본 곳들 중에서 가장 맛있어.”
“나도. 그리고 우리 기쁜 일이 있을 때마다 여기 모여서 사진도 같이 찍었잖아. 그래서 여기가 좋아.”
“···맞아.”
평소라면 ‘정말? 나도 그래!’ 하고 외쳤을 최지환에게서 반응이 없다. 그저 고개를 숙인 채 얼굴을 가리고 있을 뿐.
설마 우나?
“고마워. 나를 위해서 출연을 결심한 서준이랑 도윤이. 그리고 촬영 내내 열심히 도와준 지우도. 정말 고마워 얘들아.”
이런. 지금까지 꾹꾹 눌러왔던 감정이 이제야 터졌는지. 최지환이 두 팔로 열심히 눈가를 문지르며 말한다.
“나 앞으로도 더 열심히 노력할 거야. 이번에 너네와 함께 촬영을 해보면서 정말 많이 배우고 느꼈거든. 나중에 내가 진짜 감독님이 되면. 너네 처음 약속한 거 잊지 말고 꼭 출연해줘야 돼!”
애써 눈물을 삼키며 말하는 최지환을 보면서.
“당연하지. 나중에 감독님이 되면. 다른 대본, 시나리오 다 제쳐두고 지환이 작품을 최우선으로 선택할게.”
“나도나도! 그때에는 꼭 서준이랑 나란히 주연을 할 수 있도록. 훌륭한 배우가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할 거야.”
“···나도 꼭 데뷔해서 너네랑 같이 특별 출연을 하고 싶어.”
이러다가 주문한 돈가스 세트가 나오기도 전에 눈물바다가 될지도 몰랐다.
“우리 사총사의 첫 작품이 영화제에서 대상도 탔으니까. 축하 기념으로 주말에 여행 갈래? 우리끼리 말고 어른들도 다 같이 해서.”
내 말에 눈가가 붉어지려던 사총사들의 시선이 나를 향한다. 정말? 너무 좋아! 이런 감정을 담은 채로.
“부모님들이 선약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최대한 시간을 맞춰서 한번 가보자. 회사에서 계약한 풀빌라가 있거든.”
“정말?”
당연히 거짓말이다. 회사에서 계약한 풀빌라가 있을 리가. 다만 내가 낸다고 하면 고개부터 저을 친구들이기에 선의의 거짓말을 한 것이다.
“어때?”
“좋아!”
“나도 좋아.”
“···가고 싶어.”
사총사가 처음으로 함께한 영화 ‘흔들린 우정’의 최고의 마무리였다.
*
사총사들이 참가한 ‘어린이 감독 영화제’가 성공적으로 끝이 났다. 그 성공에는 ‘흔들린 우정’이 대상을 받았다는 사실이 포함되었다.
형평성에 대해선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예선을 통과한 작품들은 영화제 내내 상영된 이후 ‘어린이 감독 영화제’ 홈페이지에 모두 공개되었으니까.
└ 배우들의 연기력이 압도적인 걸 빼더라도. 확실히 사총사들이 만든 영화 내용이 재밌네요.
└ ㅇㅈ 주우정 감독이 특별 심사위원이 되고. 또 사총사 영화가 대상을 받아서 살짝 걱정하긴 했는데. 이렇게 다 공개가 되니 괜찮을 거 같아요.
└ 감독을 한 친구가 재능이 있어 보여요. 영상을 보니까 배우들을 화면에 담을 줄 아는 것 같고. 또 내용도 단순히 친구들의 우정이 아닌 어른들의 시선과 비교하는 부분도 흥미롭고요.
└ 차 배우 인성 미쳤어요! 영화제 기간 내내 스태프들에게 고생 많다며 사진도 함께 다 찍어줬어요. 사인도 해주고. 힘내라고 간식도 사주고. 저 이번에 스태프 하면서 차 배우 팬 됐어요!!!
이렇듯 모두가 납득을 할 만한 결과를 보여준 우리 사총사였다.
그렇게 별문제가 없이 지나가는 줄 알았는데. 정작 예상치 못한 곳에서 일이 터졌다.
[(단독) 차서준과의 의리를 보여준 어린이 감독 영화제에서 피어오른 핑크빛 사랑. 김우승-김청아 커플 탄생?]
뜬금없이 연애설이 터졌다.
그것도 김우승의 연애설이.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