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화
얼마 전 차서준의 팬클럽을 달구는 영상 하나가 올라왔다.
[팬들과의 만남을 준비하는 차 배우의 모습들]
그 영상을 본 팬들의 반응은 뜨거울 수밖에 없었다. 팬들과의 만남을 위해 손수 열심히 준비하고 있는 차서준의 모습들이 영상에 담겨있었으니까.
└ 와, 이번 팬미팅은 역대급인 거 같은데요? 연차를 쓰는 한이 있더라도 무조건 가야겠네요. 꼭 추첨에 당첨되었으면 좋겠어요. ㅠㅠ
영상을 본 팬들에게서는 이런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이번 차서준 팬미팅은 역대급 경쟁률을 기록하게 되었다.
심지어 서울에 있는 400석 규모의 대형 상영관을 대여했음에도 불구하고. 추첨에서 떨어졌다면서 아쉬운 글들이 수도 없이 올라왔을 정도.
그런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서 팬미팅 티켓에 당첨된 사람이 있었다.
“엄마. 나밖에 없지?”
“당연하지. 엄마한테는 역시 우리 딸밖에 없어. 고마워 시율아.”
바로 팬클럽의 유명 네임드 팬인 ‘금동이맘’의 딸이자, 데뷔 때부터 차서준의 열렬한 팬이 된 김시율이 그 주인공이었다.
차서준 팬미팅에 당첨되었다는 소식을 전했을 때. 수화기 너머 그녀의 엄마가 얼마나 기뻐하던지.
심지어 어제 아침부터 버스를 타고 서울에 올라온 참이었다. 퇴근 후 데리러 가겠다는 김시율의 말에도 괜찮다면서. 설레는 기분을 마음껏 만끽하고 싶다나.
“근데 엄마. 아빠는 어쩌고?”
“지금 네 아빠가 중요하니? 오히려 너 보러 서울에 간다니까 더 좋아하더라. 집에 친구들 불러도 되냐고 하던데. 으휴 네 아빠는 언제 철이 들런지 몰라.”
잠깐 고향집에 홀로 남은 아빠가 걱정되었으나. 이어지는 엄마의 말에 안도의 숨을 내쉴 수 있었다.
“그래도 네 아빠 혼자 있으면 또 밥 굶을까 봐. 데워 먹으라고 곰국이랑 카레 만들어두고 왔어.”
매번 아빠와 티격태격하긴 해도 사랑하는지라 다 준비해놓고 온 모양. 심지어 하나도 아닌 두 개나 만들어 놓고 온 엄마였다.
“딸. 잠깐만 기다려봐. 전화 하나만 하고 들어가자.”
김시율이 팬미팅 장소인 영화관에 도착함과 동시에 엄마는 어디론가 바쁘게 전화부터 걸었다.
“준희 엄마. 나 지금 어딘지 알아? 글쎄 우리 딸이 이번에 금동이 팬미팅에 당첨된 거 있지? 맞아맞아. 그 경쟁률 엄청났다는 팬미팅. 그래서 지금 금동이 보러 서울에 왔다니까.”
“어, 엄마?”
대학 졸업 후 첫 월급으로 현금과 선물을 드렸을 때에도 저 정도로 기뻐하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얼마나 신이 났으면 옆집 아줌마에게 전화까지 걸어서 연신 자랑을 멈추질 못했다.
차서준을 보러 간다는 사실에 뛸 듯이 기뻐하는 엄마를 보면서. 이걸 좋아해야 하는지, 아니면 섭섭해야 하는지 고민에 빠진 김시율이었다.
“알지알지. 우리 금동이 사인이랑 사진 많이 찍어서 갈 테니까. 내려가면 연락할 테니 만나게 우리집으로 와.”
사실 조금 걱정이 되긴 했다. 지금도 차서준 팬클럽에서 가장 유명한 네임드 팬 중 하나인 ‘금동이맘’이 누구던가.
바로 눈앞에서 연신 미소를 감추지 못하는 그녀의 엄마였다.
혹여나 엄마가 팬미팅 도중에 손을 번쩍 들고 ‘서준아! 여기 금동이맘 왔어!’ 하고선 소리 지르지 않을까 걱정까지 될 정도였다.
온라인에서 활동하는 ‘금동이맘’은 그 정도의 열정과 활동력을 보여주고 있었으니까.
허나, 섣부른 걱정이라는 걸 모르는 김시율이었다. 그녀도 엄마의 핸드폰을 직접 보기 전까지 엄마가 ‘금동이맘’이라는 사실을 까마득하게 몰랐으니까.
아직 친하게 지내는 옆집 아줌마인 준희 엄마도 그 사실을 모른다는 걸 김시율은 알지 못했다.
“엄마. 근데 어제 올라올 때부터 들고 온 그건 뭐야?”
안 그래도 어젯밤부터 궁금하던 차였다. 대체 무슨 보물이라도 숨겨놓은 것처럼 꽁꽁 숨긴 커다란 쇼핑백 하나를 가져왔으니.
어제 그녀를 위한 선물인 줄 알고 뜯어보려다가 손등까지 찰싹 맞았었다. 열심히 포장해온 걸 왜 망가트리냐는 혼남과 함께.
대체 뭔가 했더니.
“이거? 우리 금동이 줄 선물. 팬미팅에 갈 수 있다는 전화를 받고서. 어제 엄마가 서울 올라오면서 급하게 산 선물이야. 우리 금동이가 받고 좋아하겠지?”
차서준에게 주려고 선물을 준비한 모양이었다. 그런 풍경은 비단 그녀의 엄마에게만 보이는 게 아니었다.
오늘 차서준을 보기 위해 온 팬들의 손에 들린 선물들이 제법 보였다. 특히 금동이 팬으로 보이는 분들이 그랬다.
“아이고.”
잠시 머리가 지끈거린 김시율이었지만. 이내 입장하기 시작한 줄을 보면서 설렘이 점점 차오르기 시작했다.
잠시 후.
준비된 무대 위에 차서준이 올라왔다.
‘아, 이래서 콘서트장이 아니라 영화관에서 한다고 했구나.’
가깝다. 특히나 앞자리에 당첨된 김시율의 눈에 차서준의 표정이 선명하게 보일 정도였다.
팬미팅 준비 영상을 이미 몇 번이나 본 김시율로서는. 차서준이 왜 콘서트장이 아닌 상영관을 팬미팅 장소로 선택했는지 알 수 있었다.
빈자리 하나 없이 꽉 찬 좌석을 보더니 차서준이 방긋 웃으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안녕하세요. 배우 차서준입니다. 오늘 저를 보러 멀리서 와주신 많은 팬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씀부터 드리고 싶어요. 고맙습니다.”
어느새 자신을 소개하는 멘트에 아역 배우라는 말 대신 배우라는 말을 쓰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듣는 사람들의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건. 지금까지 차서준이 보여준 연기력과 성공적인 결과물들 때문이었다.
무대에 오른 차서준을 보던 엄마가 김시율의 어깨를 툭툭 건드리며 속삭인다.
“어머어머. 우리 금동이 9살이 되더니 키도 쑥 자라고 얼굴도 더 잘생겨졌네. 딸도 어디 가서 금동이 같은 남자친구 구해와 봐 좀.”
“엄마···. 차 배우 9살이야. 나 잡혀가.”
“얘는 무슨 말을 그렇게 하니. 당연히 금동이가 더 자라서 딸만큼 나이를 먹었을 때를 말한 거지.”
안 그래도 엄마가 한동안 금동이에 빠져서 연애 좀 하라는 소리가 줄어서 좋았었는데.
또다시 시작되려던 엄마의 잔소리는 다행히도 곧바로 시작된 차서준의 노래에 막혔다.
“사실 오늘 팬미팅에 오신 분들을 확인했었는데. 금동이 팬으로 오신 분들이 많으시더라고요. 그래서 이 노래를 준비했어요.”
차서준의 말이 끝나고. 곧바로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응?”
“어머어머. 금동이가 역시 노래 부를 줄 안다니까.”
전혀 예상치 못한 전주가 흘러나오자 옆에 앉은 엄마의 어깨가 들썩들썩했고. 김시율은 멍하니 들을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이 노래가 왜 나와? 이런 반응이 나오기 충분한 노래였으니까.
“차 배우가 트로트를 부른 적이 있었나? 방송에서도 한 번도 못 본 것 같은데.”
그랬다.
지금 상영관 스피커를 통해 들려오는 노래는 바로 트로트였던 것이다.
“사랑에 나이가 뭐가 중요해~”
차서준의 말처럼 금동이 팬으로 온 분들이 많았는지. 후렴구를 따라 ‘중요해!’를 외치는 목소리들이 터진다.
특히 김시율의 옆에 앉은 그녀의 엄마는 마치 콘서트장에라도 온 것처럼 열성적으로 따라 부르고 있었다.
“딸. 우리 금동이 트로트도 정말 맛깔나게 부른다. 그냥 트로트 가수 해도 되겠어.”
정말이었다. 차서준이 노래를 잘한다는 것쯤은 이미 ‘목소리’와 음악 방송들을 통해 알고 있었지만. 심지어 트로트까지 잘 부를 줄이야.
‘대체 우리 차 배우가 못 하는 게 뭐지?’
김시율은 이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
이번 팬미팅을 준비하면서 팬들에게 지금까지 부르지 않았던 색다른 노래를 들려주고 싶었다.
팬미팅 추첨에 당첨된 명단을 봤는데. 확실히 ‘재벌가 금동이’를 통해 내 팬이 된 분들이 제법 있었다.
특히 팬클럽에 올라온 글들을 보니. 지방에서 사는데 금동이를 보기 위해 전날부터 올라가겠다는 글들이 보였다.
어떤 노래를 불러야 할까 고민하던 중. 생각지도 못한 정답을 엄마를 통해 찾을 수가 있었다.
“엄마. 금동이 팬으로 오는 분들에게는 어떤 노래를 부르면 좋아할까요?”
“왜? 이번 팬미팅에는 금동이 팬들이 많이 오시니?”
“네. 특히 금동이 팬인데. 지방에서 전날 올라와 숙소까지 잡는다는 분들도 보였어요.”
“음. 아무래도 금동이 팬이라면 나이가 제법 있을 테니까. 트로트 어떠니?”
그렇게 첫 곡으로 정해진 노래가 트로트였다. 김우승의 집에 있는 노래방 기계를 쓰기 위해 찾았는데.
“어? 서준이 너 트로트도 정말 잘 부르는데?”
“그러게요. 나 왜 잘 부르지?”
“너도 같이 놀라면 어떻게 하냐.”
듣고 있던 김우승도. 그리고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부르던 나도 놀랐다.
나 왜 잘 불러?
다른 방송에서 한 번이라도 불렀던 노래들보다. 이번 팬미팅에서 처음 들려줄 수 있는 특별한 노래를 찾다가 트로트 재능을 발견한 것이다.
그 결과가 지금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특히나 ‘재벌가 금동이’를 통해 팬이 된 연세가 있는 팬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금동아!”
“한 곡 더!”
“금동이 사랑해!”
확실히 분위기를 띄우는데 있어 신나는 노래만큼 좋은 게 없었다. 특히나 한국인이라면 어깨를 들썩일 수밖에 없는 트로트라면 더욱더.
방금 전까지 차분하던 분위기를 날려버린 채. 내 노래에 신이 난 팬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팬클럽에 공개된 영상처럼. 오늘은 제가 직접 이 자리에 오신 분들을 위해서 오랫동안 준비했어요. 부디 저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어요.”
정말로.
사실 노래를 부르기엔 영화관보다 콘서트장을 대여하는 것이 더 좋고. 또 더 많은 팬들과 함께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상영관에서 팬미팅을 한 것은 스크린 앞 무대와 좌석들의 거리가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조금 있다가 영화 ‘목소리’도 여기 온 팬들과 함께 관람하기로 한 이유도 있었고.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까. 한 분 한 분 표정까지 다 보여서 정말 좋아요. 오늘 정말 즐거운 시간 함께 보내요!”
차서준을 보기 위해 멀리서도 찾아온 팬들을 위한 팬미팅을 시작하는 나였다.
*
[오늘 다녀온 차 배우 팬미팅 후기]
일단 소감부터 말하면 너무 좋았다.
왜 토요일 오후부터 시작하나 했는데. 진짜 밤늦게서야 끝나버림. 그 정도로 알찼음.
게다가 전문 MC 대신 우리 차 배우가 직접 진행까지 손수 다 했음. 조금이라도 더 팬들이랑 소통을 많이 하고 싶다고.
금동이로 팬이 되신 분들도 많이 왔고. 그래서인지 특별히 다른 어떤 곳에서도 부르지 않았던 트로트까지 처음으로 불러줬음. 근데 진짜 끝내주게 잘 부름. ㅋㅋ
이번에도 팬들을 위해 준비한 선물들이 있었는데. 직접 하나하나 다 손으로 사인까지 해서 줬음. 감동 ㄷㄷ
사실 매번 여기서 후기들만 보다가 직접 다녀오니까. 다음에도 꼭 추첨에 뽑혀서 또 가고 싶음.
PS : 배우 팬미팅이 아니라 무슨 콘서트에 온 줄 알았음.
└ 다녀온 사람들 말이 하나같이 엄청 만족했다는 거네. 나도 꼭 가고 싶었는데. ㅠㅠ 거의 콘서트나 마찬가지일 정도로 노래 엄청 많이 부르고. 팬미팅도 엄청 길었다던데. 마지막에 영화도 같이 보고.
└ ㄹㅇ 끝내줬음. 심지어 진행까지 우리 차 배우가 혼자 다 하더라. 중간중간 팬들이랑 소통하겠다며 위쪽으로도 오고. 거기 있던 팬들 다 행복사 했음. ㅋㅋㅋ
└ 우리 차 배우 팬미팅 유명하잖아. 딱 대관료랑 경비 정도만 티켓비로 받고. 나머지 팬들을 위한 선물은 다 차 배우가 따로 준비하는 걸로. ㄹㅇ 팬들을 위해 하는 혜자 팬미팅임.
└ 후기들 보다 보니. ‘금동이맘’님도 가셨다던데. 혹시 보신 분 있나요?
└ 응? 금동이 팬으로 보이는 분들이 제법 많이 오긴 했는데. 거기 금동이맘처럼 극성으로 보이는 분은 없었는데? 인터넷에서만 그렇게 활동하시나 봄. ㅋㅋㅋㅋㅋ
└ 이번 팬미팅에는 항상 주던 선물들 말고도 직접 사인한 포토 카드도 줬다는데. 그거 사진이 하나하나 다 다르다던데. 너무 갖고 싶다. ㅠㅠ
좋다. 대만족을 했다는 팬들의 후기에. 반응들을 살펴보던 내 입꼬리가 점점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때였다. 팬클럽 후기들을 보고 있던 내 핸드폰에 전화가 울린 건.
“네. 감독님. 아, 오디션 일정 정해졌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