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화
연사모 형들에게 기쁜 일들이 생겼다. 그중 하나는 김우승의 드라마에 대한 것이었다.
시작도 전부터 주연급 배우의 음주운전 사고라는 대형 악재가 터졌던 드라마 ‘꿈속의 당신’이었지만. 그 자리에 김우승이 합류하게 된 덕분에 순조로운 스타트를 끊을 수 있었다.
- 연사모의 일원인 배우 김우승. 음주운전 사고로 하차한 강성도 대신 ‘꿈속의 당신’에 합류.
- ‘너에게 다시’ 이후 오랜만에 배우로 돌아온 김우승. 어떤 연기를 보여줄지 관심 집중.
- “이번에도 서준이에게 배우고 있습니다. 좋은 연기 보여드리겠습니다.” 오랜만에 서준맘으로 등장한 배우 김우승의 인터뷰.
└ 맞지. 김우승이 원래 원조 서준맘이었는데. ㅋㅋㅋ 연말에 상 타고서 서준이를 울부짖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3년이 지났네요.
└ ㅇㅈ 그나저나 신기하네요. 김우승이 인터뷰에서 자신의 연기 선생님을 차 배우라고 하는 걸 보면. 보통은 부끄러워서라도 숨길 것 같은데.
└ 차 배우가 은인이나 다름없는데 당연함. 발연기로 유명하던 아이돌 출신 김우승을 데리고서. 배우 김우승을 만든 사람이 우리 차 배우였잖아. 이번에도 차 배우에게 배웠다니 좋은 연기 보여줄 듯?
└ 솔직히 우리 차 배우 연기하는 거 보면 미친 듯이 잘함. 심지어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인정도 받았잖아. 여태까지 보여준 것들을 보면 어떻게 9살 아역 배우의 필모겠냐고. ㄷㄷ
└ 이번에 음주운전 터지면서 ‘꿈속의 당신’ 안 보려고 했는데. 김우승 나온다고 하니 1화 정도는 한 번 봐야겠네요.
다행히 김우승의 투입 효과는 좋았다. 한동안 잊혔던 김우승의 별명 ‘서준맘’이 재조명되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사로잡은 것.
덕분에 숨넘어가기 직전까지 몰렸던 제작진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고 들었다.
그 결과.
- ‘꿈속의 당신’ 1화 시청률 12.3%. 우려 속 순조로운 출발.
- 김우승 효과? 다시 한번 차서준에게 배우고 있다는 김우승의 연기에 사로잡힌 시청자들.
- ‘꿈속의 당신’ 2화 시청률 14.9%. 철부지 부잣집 도련님인 줄만 알았던 김우승의 숨겨진 반전 매력.
1, 2화 시청률이 예상보다 잘 나왔다. 제작진 측에서 10% 초반의 출발임에도 뛸 듯이 기뻐한 이유는.
└ 어? 김우승 때문에 호기심으로 1화 봤는데. 생각보다 내용이 재밌는데요? 무엇보다 김우승의 캐릭터가 정말 좋아요. 연기는 더 좋고요.
시청자들에게 이런 반응이 터져 나왔기 때문이었다. 1화에 비해 껑충 뛰어오른 2화 시청률만 보더라도 알 수 있는 사실.
그렇게 갑작스럽게 합류했지만. 시청자들을 사로잡는 뛰어난 연기를 선보이는 김우승에 대한 칭찬이 자자하고 있을 때.
“형. 거기서 그런 표정을 지으면 될까요? 안 될까요?”
“아, 안 되지 않을까?”
정작 김우승은 시무룩한 얼굴로 내 앞에서 레슨을 듣고 있었다. 저 표정은 마치 ‘이거 서준이가 6살 때 비슷한 경험을 많이 했던 거 같은데···’를 말하고 있었다.
허나 저 모습에 마음이 약해져선 안 된다. 더 많은 시청자들을 TV 앞으로 데려오기 위해선. 김우승이 지금보다 더 뛰어난 연기를 선보여야만 했다.
“여기선 내면의 상처를 자신도 모르게 여주인공에게 슬쩍 내보이는 장면이잖아요. 그러면 다시 철부지 컨셉을 잡기 위해 화들짝 놀라면서 능청스럽게 넘겨야죠. 거기서 분위기를 잡으면 당장 내면의 상처를 시청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을지언정. 캐릭터의 매력이 무너지게 되는 거예요.”
“···그래. 무슨 말인지 서준이 네 말을 들으니까 좀 알 것 같다. 지금 바로 다시 해봐도 될까?”
“네!”
김우승의 시선이 슬쩍 내 머리 위에 있는 빨간 모자를 향했다 내려간다.
사실 3년 전에 트라우마를 극복한 김우승이기에 이런 방법까지 쓸 필요는 없었다. 그 뒤로 연사모 형들과 어울리면서 실력이 부쩍 늘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캐릭터를 분석하고. 또 촬영을 준비할 시간이 너무나도 빠듯했다. 심지어 지금 연습하고 있는 대본도 어제 받은 상황.
“좋아요! 바로 그거에요 형!”
“그래? 어때? 방금 전보다 훨씬 나아졌지?”
“네! 그러면 바로 다음 장면으로 가요.”
“응?”
잠깐 쉬자고 할 줄 알았나 본데. 어림도 없다.
김우승이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덕분에 초반의 악재를 이겨내고 성공적인 출발을 할 수 있었다.
문제는.
작가도 시청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김우승의 분량을 늘려버린 것. 그 덕분에 촬영 하루, 이틀 전에서야 대본이 완성되는 상황이 발생해버렸다.
일명 쪽대본 촬영이 되어버린 셈. 허나 실시간으로 올라가는 시청률 때문에 누구 하나 싫은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그 결과 다음 촬영까지 대본을 분석하며 준비할 시간이 촉박해져버렸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PD님. 방금 장면은 잘 좀 부탁드려요. 형에게 세게 말하긴 했지만. 이게 내일 있을 촬영을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거든요.”
“걱정 마요. 차 배우가 우리 소하에 얼마나 많은 도움들을 줬는데. 요즘 차 배우 덕분에 사람들이 본방 사수하겠다고 난리도 아니에요. 내가 진짜 문제 생기지 않도록 잘 편집할게요.”
내 조심스러운 요청에 이주연 PD가 그런 걱정은 하지도 말라는 듯 눈을 찡긋한다.
보통은 편집은 PD 고유의 권한이기에 인상을 찌푸릴 만도 했지만. 눈앞에 활짝 웃는 이주연 PD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었다.
아역 배우 차서준이 나올 때마다 시청률이 껑충 뛰었는데. 당분간 김우승 분량에 내가 항상 같이 나오게 되었으니.
방금 전처럼 내가 말하지 않았어도. 이주연 PD가 알아서 잘 처리했을 것이 분명했다.
“역시 우승 씨가 차 배우랑 있을 때 캐릭터가 확 산다니까. 방금 장면도 방송에 나가면 시청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거 같은데요?”
“정말요? 감사합니다. 저도 집에서 엄마, 아빠랑 소하 엄청 재밌게 보고 있어요.”
그랬다.
지금 나는 김우승과 함께 ‘소소한 하루’ 촬영을 같이하고 있었다.
이제는 아역을 넘어 연기 괴물로 인정받고 있는 배우 차서준이었다. ‘너에게 다시’ 때부터 김우승의 연기를 내가 봐줬다는 사실이 알려진 바.
이번에는 드라마 촬영 전부터 차서준에게 배우고 있다면서 김우승이 인터뷰까지 했었다.
나는 아예 사람들이 김우승의 드라마에 더욱더 많은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소소한 하루’에 출연까지 결심한 것이다.
“자, 우승이 형. 저기 카메라가 드라마 촬영장에 있는 카메라라고 생각하고 다음 장면 가요.”
이렇듯 김우승은 내 연기 레슨과 바쁜 촬영 일정들을 소화하고 있었다.
*
연사모 형들에게 생긴 기쁜 일 중 다른 하나는 박우형에 관한 것이었다.
각종 시사회 때부터 반응들이 좋았던 박우형의 영화가 드디어 개봉했다. 특히나 열연을 보여준 박우형에 대한 극찬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형. 축하해요.”
“고맙다.”
아무래도 감독부터 영화 내용까지 상업성보다 예술성을 추구한 작품이었다. 박우형 본인 역시 손익분기점만 넘으면 충분하다는 말을 했을 정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우형의 표정이 밝은 건. 영화가 개봉되고 난 뒤 쏟아지고 있는 반응들 때문이었다.
[배우 박우형의 매력을 느낄 수 있었던 영화]
차 배우가 왜 박우형을 만난 이후로 연사모를 결성했는지 알 수 있는 영화였음.
솔직히 말해 ‘폭군의 세자’ 이후 박우형의 연기가 정형화되었다고 생각했거든?
아무래도 이환 신드롬이라는 말까지 들었을 정도로 인기가 어마어마했으니까. 그 뒤로도 그런 류의 연기만 한다고 생각했었음.
그런데.
이번 영화를 보니까 비로소 ‘배우 박우형’이 보이더라. 소하에 나와서 일장 연설을 하는 게 마냥 대본이 아니라. 연기를 향한 박우형의 진심임을 알 수 있었음.
└ ㅇㅈ 솔직히 이번 영화가 흥행하지 못할 거라는 걸 알면서도 찍었다는 게 놀랍더라. 박우형이 진짜 연기를 사랑하는 듯.
└ 소하에 나와서 했던 이야기들만 보더라도 알 수 있어요. 진짜 연사모에서 가장 연기에 진심인 사람이 박우형임.
└ 심지어 평소에는 과묵하다고 소문났잖슴. ‘연기’에 관해 이야기 할 때에는 수다쟁이가 따로 없는데. 평소에는 단답으로만 대화한다는 말이 있음. ㅋㅋㅋㅋ
└ 이번 영화를 통해 박우형의 연기력이 재조명받은 거 같아서 기분이 좋네요. 폭군의 세자 이후 소속사에서 자꾸 커리어 관리하려는 것 같아서 별로였는데.
└ 저는 영화관에서 3번이나 봤어요. 진짜 보면 볼수록 빠져드는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임. 차기작이 너무 기대가 돼요.
이런 반응들이 터져 나온 것이다. 자신의 연기에 대한 진심을 사람들이 알아주기 시작했는데. 박우형의 입가에 미소가 떠날 이유가 없었다.
매 작품마다 성공하면야 좋겠지만. 박우형같이 연기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배우들에게 있어선. 하고 싶은 연기를 한다는 것이 더 기쁠 터였다.
“지금 추세로 봤을 땐. 정말 손익분기점도 무난하게 넘길 거 같은데요?”
“안 그래도 그 이야기가 나오더라.”
바로 직전에 초대박이 터진 내가 찍은 ‘목소리’와 박우형의 영화가 가진 차이점은 간단했다.
주우정 감독이 나와 버스킹을 하면서 상업성을 위한 시나리오 수정 작업을 많이 했다면. 이번 박우형의 영화는 철저하게 감독이 담고 싶은 메시지에 집중했다.
그 결과 평론가들과 관람객들의 극찬이 이어지고 있었다. 박우형 본인도 상업적인 성공보다 그 부분에 만족하고 있는 모양이고.
“그나저나 서준이 너 요즘 가수로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는 소문이 들리던데?”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지만. 박우형도 그 소식을 접했는지 내게 묻는다.
“그게 그렇게 되었어요. 애니메이션 주제곡만 부른 거니까 가수 활동은 아니고요.”
나도 몰랐다. 내가 부른 ‘동동이 친구들’의 새 시즌 주제곡이 이 정도로 뜨거운 사랑을 받을 줄은.
농담처럼 ‘우는 아이를 어떻게 달래야 할까요?’라는 질문이 올라오면. ‘동동이 가자를 들려주세요.’라는 답변이 매크로처럼 달릴 정도였다.
한 가지 다행이라면 애니메이션 노래이기에 내 목소리만 유행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저번 공약처럼 어디 방송에 나가 ‘동동이 가자’를 부를 일은 없었지만. 집에서 동생들에게 하루에도 몇 번씩 불러주고 있었다.
“지금도 다음 시즌 노래 제안이 들어와서 고민 중이에요.”
“왜? 하면 되지.”
“동생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불러달라고 조르고 있거든요. 이러다가 저 노래 부르는 인형이 되어버릴지도 몰라요.”
말은 이렇게 해도 흔쾌히 수락할 터였다. 하준이, 하윤이가 너무 좋아했으니까.
*
‘타임슬립’의 김학영 PD와 김은중 작가는 캐스팅 관련 의논을 위해 만났다.
이미 완결까지 대본이 나온 상태. 또 김은중 작가는 이번이 입봉작인 이상 캐스팅 권한은 감독에게 넘어간 상황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드라마란 혼자서 만들어가는 게 아니라. 감독과 작가가 함께 완성해나간다는 지론을 가진 김학영 PD였다.
“참으로 소문들도 빨라요. 안 그래요 작가님?”
확실히 베테랑 연출답게 김학영 PD는 김은중 작가를 대함에 있어 편안한 분위기를 만든다.
“어떻게 한참 전부터 10월에 편성된 드라마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고서 연락들을 그리하는지.”
“그러게 말입니다.”
김학영 PD의 말을 들으며 김은중 작가가 쓰게 웃었다. 숱하게 돌린 대본을 보고도 자신에게 연락 한 번 없었던 지난 3년이었다.
그런데.
아역 배우 차서준과 배우 박우형이 출연을 결정했다는 소식이 알려진 뒤. 김학영 PD의 전화기가 그렇게 불이 나고 있다고 했다.
심지어 입봉작 작가인 자신에게도 소속사를 통해 출연 의사를 내비친 배우들이 여럿이었다. 김학영 PD에게 잘 좀 말해달라면서.
“작가님은 혹시 대본을 쓰시면서 생각해둔 배우들이라도 있으신지?”
김학영 PD가 김은중 작가에게 생각해둔 배우라도 있는지 물었다.
지난 3년간 누구보다 오랫동안 ‘타임슬립’에 애정을 쏟은 사람이 김은중 작가다.
대본 속에 담긴 장면들을 최고로 뽑아내려면. 작가가 상상하면서 쓴 배우들을 고려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터였다.
자신이 직접 확인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그때 다른 배우를 찾아도 될 테니까.
“사실 따로 어떤 배우를 떠올리면서 인물을 쓴 적은 없습니다.”
김은중도 보조 작가로 오랫동안 지낸 사람이었다. S급 주연 배우들이 가지는 이름의 힘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리고 오늘 미팅에 오기 전 차서준과도 관련 이야기를 미리 나눠둔 참이었다.
“감독님. 괜찮으시다면 이렇게 가보는 건 어떨까요?”
“어떻게요?”
“오디션으로 철저하게 배역에 맞는 이미지를 보여주는 배우들로 캐스팅하는 겁니다.”
김은중 작가의 말에 김학영 PD가 묘한 미소를 짓는다. 마치 시작도 전부터 감독과 작가의 생각이 통하는 걸 보니 대박이 날 것 같다는 표정을 지은 채.
“이거. 우리 생각이 좀 통하는 걸 보니 이번에 진짜 대박 나려나 봅니다. 그러니까 작가님의 말씀은.”
차서준의 말이 맞았다. 이미 김학영 PD는 오디션을 염두에 두고 있을 거라고 했었으니까.
소문을 듣고서 김학영 PD에게 연락들이 쏟아지고 있는 상황. 아예 판을 벌려서 배역에 맞는 배우들을 뽑으면 될 터였다.
“최고의 배우들로 최고의 드라마를 만들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