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화
영화 ‘금괴 소동’의 개봉 1주차가 지났을 무렵의 누적 관객수는 2,732,824명. 이 숫자가 보여주는 의미는 크게 두 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는 영화가 대박 신호를 보내고 있다는 것.
“우리 손익분기점이 얼마라고 했지?”
“2백만 넘으면 손익분기점 돌파요.”
영화 제작비와 홍보비까지 포함된 ‘금괴 소동’의 손익분기점은 2백만. 그 손익분기점을 돌파한 것이다.
중요한 건 그 손익분기점을 넘어선 시점이 고작 개봉한 지 일주일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 심지어 내일부터는 황금 추석 연휴의 시작이었다.
“최고네. 손익분기점을 개봉 1주일 만에 넘어섰다고?”
“거기서 끝이 아니에요. 이제 내일부터 추석 연휴 시작이잖아요. 그런데 우리 영화 입소문도 끝내줘요. 예매율도 장난 아니래요, 지금 올 매진이래요. 대박!”
“안 그래도 주변에서 영화 재밌게 봤다는 연락이 끝도 없이 오더라고. 오랜만에 내가 나온 영화가 제대로 터질 것 같다면서.”
나날이 퍼지는 입소문을 본인도 들었는지. 김정범이 실실 새어 나오는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나 이번 영화로 다시 재도약 성공했잖아. 이거까지 잘 안되었으면 들어오는 시나리오 박살났을걸?”
평소 가벼운 농담 때문에 가벼워 보일 수도 있는 김정범이었지만. 촬영 과정에 있어 임하는 자세만큼은 진심이었다. 괜히 우지학 감독의 요청에 몇 번이고 달린 게 아니다.
이제 와서야 웃으면서 말하긴 했지만. 2연속 실패에 전작을 아주 국밥처럼 말아먹은 게 컸었다. 손익분기점 5백만 대작에 관객수 2백만을 간신히 넘겼었다.
배우 본인의 잘못은 아니었으나, 이미지 타격은 불가피했었다. 그 위기를 이번을 통해 무사히 넘기다 못해 기회까지 잡은 셈.
“이제 그 이미지는 완전히 털어내신 거 아니에요?”
“아마 그러지 않을까? 지금도 같이 하자면서 감독님들 연락이 계속 오는데. 다 우리 서준이 덕분이지.”
그렇게 김정범이 배우 하나와 농담을 주고받는 사이. 한쪽 구석에서 핸드폰으로 예매율을 확인하던 누군가가 툭 하고 말을 꺼냈다.
“우리 이러다 기록 세우는 거 아니에요?”
“쉿. 벌써부터 괜히 그런 말 하다가 부정 탈지도 몰라.”
비록 역대급 관객수 증가 추이는 아니더라도. 제작비 대비 흥행은 역대급 반열에 들어갈 것이 확실시되었기 때문이었다.
그 기록은 고스란히 주연 배우의 필모가 된다. 그러니 위기의 상황까지 내몰렸던 김정범이 어찌 정신 나간 사람처럼 웃지 않을 수 있을까.
고개를 홱홱 돌리던 김정범의 눈이 한곳에 멈춘다. 그리고 그곳엔 애써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눈동자를 굴리던 내가 있었다.
“크. 우리 복덩이 일로 오렴. 한번 안아보자. 행운을 조금 더 나눠 받아야겠다.”
“괜찮아요! 저 여기 있을래요.”
“안 오면 내가 가면 되지!”
도망은 의미 없었다. 김정범이 짧은 내 다리보다 긴 다리를 몇 걸음 성큼 움직이지도 않고 붙잡았으니까.
“서준이 덕분에 우리 영화가 시작부터 홍보를 아주 제대로 했잖아. 난 그때부터 느낌이 왔다니까. 감독님도 그렇지 않았어요?”
김정범이 슬쩍 운을 띄우자. 기다렸다는 듯이 우지학 감독이 거들기 시작했다.
“서준이가 고사 지내기 전부터 팬들에게 홍보를 해서 실시간 검색어 1위도 오르고. 나도 그때부터 우리 서준이가 행운의 부적이란 걸 알고 있었지.”
어느새 우지학 감독의 입에서도 서준이 앞에 ‘우리’라는 수식어가 붙기 시작했다. 사실 우지학 감독이 ‘우리 서준이’라고 부른지가 좀 되긴 했다.
촬영 초기 애드리브로 표정 연기를 선보였던 그날. 뭔가 묘한 시선으로 날 보던 그때 이후부터 우지학 감독이 ‘우리 서준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었다.
“자, 이제 주인공들이 다들 모인 거 같으니까. 슬슬 공약을 이행할 준비를 해야지?”
내일부터 시작되는 추석 연휴를 앞두었음에도 이렇게 모인 이유.
그것은 두 번째에 있었다. 바로 김정범이 2백만 공약으로 내걸었었던 ‘춤추기’ 이게 원인이었다.
개봉 일주일 만에 2백만을 돌파한 지금. ‘춤추기’ 공약을 지키기 위해 배우들이 이 자리에 모인 것이다.
흐름을 탄 영화 덕분에 그 누구 하나 인상을 찌푸리는 사람이 없었다. 아, 속으로 삼키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바로 나. 동생과 우루루 까꿍 놀이를 하기도 바쁜데 잡혀 왔으니.
“현아야. 넌 어째 좀 자신이 있어 보인다?”
“오빠. 나 한 때 홍대 여신이라고도 불렸던 사람이야. 이 웨이브 안 보여?”
끼가 없으면 연예인이 될 수 없다. 반대로 말하자면 이 자리에 있는 이들 모두가 끼가 넘치는 사람들이란 뜻.
특히나 주연 배우였던 이현아는 특히나 더 그랬다. 어째서 김정범이 ‘춤’을 공약으로 내걸을 때 웃었는지 몰랐는데. 방금 보여준 몸놀림을 보니 알겠다.
“서준아. 너 오늘 잘 못 추면 앞으로 영영 평생 따라다니는 흑역사 영상 생긴다?”
또 한 가지.
저 공약을 던졌을 때 날 생각하고 던졌다는 걸. 아직 7살 꼬맹이인 내가 꿈틀꿈틀하며 춤을 추는 영상을 남겨두겠다는 것. 김정범의 목표는 그것이었다.
내가 알기론 김정범도 춤을 잘 추는 편은 아니었을 텐데. 나를 골려주겠다는 일념 하나로 물귀신 작전을 펼친 것이다.
같이 꿈틀거리는 영상을 추억으로 남겨도 재밌겠다는 생각도 했을 테고. 악의적인 의도가 아닌 짓궂은 장난이었다.
“이거 서준이 영상 또 사람들에게 쫙 퍼지면. 우리 다음 공약도 금방 할지도 모른다? 서준이 네가 행운의 부적이니.”
이미 따로 언급하지 않아도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그리고 서서히 퍼지고 있는 입소문들이 알고 있었다.
영화 ‘금괴 소동’의 대흥행 지분에 아역 배우 차서준의 역할이 아주 막대하다는 것을.
애초에 내가 없었더라면 시작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기 힘들었을 터였다. 우지학 감독이 말하는 행운의 부적이 마냥 농담만을 아니었다.
“오빠. 그래서 무슨 춤을 추려는 건데? 우리 5백만 넘으면 커피 나눠주면서 팬들과도 춰야 한다면서.”
“아니. 5백만이면 당연히 덩실덩실 춤을 춰야 되는 거 아니야?”
“으휴. 그걸 함께하길 원하는 팬들이랑 같이 춘다는 게 문제지. 냅따 지르면 어떡해. 춤도 잘 못 추는 사람이.”
말은 그렇게 김정범을 타박하면서도. 이현아의 웃음기 담긴 시선이 슬쩍슬쩍 이쪽을 향한다.
마치 서준이의 흑역사 탄생 과정을 두 눈 똑똑히 지켜봐야지. 이런 느낌의 시선을 담아서.
이 사람들이 진짜.
“무슨 춤을 출 거예요?”
내가 입을 열기만을 기다렸던 걸까. 김정범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어떤 춤을 생각해왔는지 말한다.
“요즘 유행하는 딩기리딩 춤이라고 알아? 이걸 요렇게, 이렇게 움직이면서 웨이브를 주는 춤인데.”
김정범이 삐걱거리는 몸을 열심히 흔들며 뭔가를 표현하려고 한다.
알다마다. 안 그래도 유치원에서 애들이 보여줬거든. 사총사들도 어디서 보고 왔는지 시간이 날 때마다 내 앞에서 이리저리 흐느적거렸었다.
“그거 우리 서준이에겐 좀 어렵지 않을까? 다른 춤은 어때?”
“에이, 쉬운 춤을 고르면 공약을 건 의미가 없죠. 감독님도 같이 하실래요?”
은근슬쩍 물귀신 작전을 펼치려는 김정범의 말에 우지학 감독이 화들짝 놀라며 손을 젓는다.
“아냐아냐. 이 나이 먹고 그렇게 웨이브를 타다간 어디 하나 부러져. 우리 관객수 5백만을 돌파하면 팬들과 커피 나눔 행사를 해야 하는데. 병원에 있을 순 없잖아.”
그렇게 2백만 공약에 대한 춤은 몸을 웨이브 주면서 흔드는 딩기리딩 춤으로 결정되었다.
오히려 못 출수록 사람들의 반응이 좋다는 김정범의 강력한 주장에 통과된 것이다.
“자, 서준아. 내가 시범을 보여줄 테니까. 잘 보고 기억했다가 따라 하면 돼. 알았지?”
이현아가 반달처럼 휜 눈으로 날 보며 몸을 흔들기 시작한다. 곧 따라 할 내 모습을 상상하니 웃음을 감출 수 없었던 모양.
하지만.
“어?”
“응?”
“어라?”
이현아를 따라서 웨이브를 타기 시작한 날 보던 사람들의 입이 멍하니 벌어진다. 마치 예상치도 못했던 복병을 마주한 사람들 마냥.
“이렇게 하면 되죠?”
“···어어. 그렇게 하면 되는데. 아니, 되면 안 되는데. 왜 되는 거지?”
특히 김정범이 세상의 종말이라도 목격한 사람처럼 현실부정을 시작했다.
방금 전까지 재밌는 장면 촬영을 앞둔 우지학 감독 같은 표정이었는데. 지금은 국밥을 말아먹었을 당시의 표정을 재현 중이다.
“우리 얼른 찍어요. 저 집에 가서 동생 돌봐야 돼요.”
“이러면 나가린데. 이러면 나만 당하는 건데.”
영혼이 빠져나가는 사람처럼 중얼거리기 시작한 김정범. 그 이유는 곧이어 시작된 공약 촬영에서 알 수 있었다.
“푸하하. 오빠, 그게 뭐야? 저기 서준이 웨이브 타는 거 안 보여? 반만이라도 좀 따라 해 봐. 이렇게 하라고. 그렇지 서준아?”
“맞아요. 이거 이렇게, 이렇게 하면 엄청 쉬운데.”
“아씨, 연습할 때는 잘 됐는데. 왜 안 되지?”
나름 연습을 하고 왔는지 김정범이 열심히 꿈틀꿈틀 몸을 흔들어 본다.
만약 내 춤선이 엉망이었다면 나름 코믹한 춤 중에서도 괜찮았을 텐데.
“자, 다시 보여드릴게요. 현아 누나가 이렇게 하면 된다고 했어요. 이렇게, 이렇게.”
내가 그루브하게 몸을 흔들며 말하자.
“아, 진짜.”
김정범이 인상을 구긴 채 꿈틀꿈틀 애써 따라 해 보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그 모습들은 우지학 감독의 손에 들린 카메라에 모두 담기고 있었다.
춤은 못 춰도. 연습과 최종 버전은 자기가 찍고 싶다고 나섰다. 아마 상황이 이렇게 흘러갈 거라고 어느 정도 예상했던 모양.
“푸하하. 오빠. 이거 영상 공개되면 진짜 사람들에게 입소문 쫙 퍼지겠다.”
“즈응흐르그.”
그러게 왜 사람을 골려주려고 그래.
나 역시 꿈틀거리는 김정범을 보며 마음껏 웃었다.
그날 저녁.
영화 ‘금괴 소동’의 2백만 달성 기념 공약 이행 영상이 올라왔다.
한 사람이 먼저 시작하고. 차례대로 다음 주자들이 참여하며 단체 춤을 추면서 마무리라고 했다.
먼저 김정범이 나와 몸을 꿈틀거리자.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김정범 왜 저럼? 기자들이 미끼 던졌을 때 당당하게 자기가 먼저 공약 말한 거 아님? 춤추겠다며. 저게 어떻게 춤이야?
└ 심지어 요즘 유행하는 딩기리딩 춤인데. 저건 꿈틀거린딩 춤인 거 같은데? ㅋㅋㅋㅋ 열심히 집중한 표정이랑 꿈틀거리는 몸이 상반되어서 겁나 웃김.
└ 지금 이현아가 다음 주자로 합류해서 추는데. 하필이면 춤선이 좋아서 더 극명하게 비교되는 듯. ㅋㅋㅋ
└ 그나마 다른 배우들이 못 춰서 어찌어찌 밸런스가 맞아 가는데. 센터가 김정범이라 웃기네. ㅋㅋ
└ 우리 서준이 차례는 언제지? 왠지 서준이도 김정범처럼 꿈틀꿈틀해서 엄청 웃길 거 같은데.
└ 아마 그러지 않겠음? 코미디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답게 공약 이행 춤으로도 웃겨주네. ㅋㅋㅋㅋ
사람들의 폭소가 제대로 터졌다. 김정범을 시작으로 이현아, 조연 배우들이 차례로 합류하여 몸을 흐느적거렸고.
영상의 가장 마지막에 합류한 사람은 바로 차서준이었다. 보던 사람들은 차서준은 또 얼마나 못 출까 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키보드에 손을 올렸는데.
└ 어?
└ 응?
└ 뭔데?
└ 이거 변순데?
└ ㅋㅋㅋㅋㅋㅋㅋ 실화임?
차서준의 춤을 본 사람들이 멍하니 감탄사만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모두의 예상을 깨버리는 춤선을 영상 속의 차서준이 보여주고 있었으니까.
└ 지금 서준이 잘 추는 거 같은데요?
└ 같은데요? 가 아니라 진짜 잘 추는데? 김정범 옆에서 웨이브 타고 있는 이현아랑 비교해 봐도 안 꿀리는데?
└ 이거 웃기려고 한 거 아니었음? 솔직히 자기 춤 못 추는 거 알고 있는 김정범이 공약 걸었을 때 차서준 노리고 물귀신 작전 한 거라 생각했는데. ㅋㅋㅋ
└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간 듯. ㅋㅋㅋㅋㅋ 차서준 등장하니까 김정범 표정 보소. 세상 무너진 표정이네. ㅋㅋㅋ
└ 개웃기네. 우리 서준이 흑역사 한번 만들어보려다. 본인의 흑역사 영상 만들어버렸네. 그보다 우리 서준이 끼 실화임? 못 하는 게 대체 뭐지?
나는 그런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서 낄낄거렸다. 영상 속의 김정범 표정이 너무 맛있어서.
“뺘아!”
“응? 하준이 시끄러웠어?”
핸드폰 소리가 거슬렸는지 칭얼거리는 동생을 달랜 뒤.
“어디 다시 한번 볼까.”
나는 이번에 서도현이 추가로 가져다준 대본을 다시 꺼냈다.
제목엔 [재벌가 금동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