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스타 어게인!-63화 (63/220)

63화

입소문의 시작은 개봉 첫날 첫 타임 관객이 나오고 나서부터였다.

- 여러분. 최근 들어 스트레스받는 분들 계시면 그냥 영화관 가서 ‘금괴 소동’ 예매하세요. ㅋㅋㅋㅋ

└ 어떰? 재밌음? 평론가 평이나, 시사회 후기들이 다 좋긴 한데. 막상 코미디 하나 보자고 영화관까지 가자니 좀 귀찮은데.

└ 갈 만한 가치가 있어요. ㅋㅋㅋ 특히나 차 배우 팬이라면 꼭 가세요. 깨알 같은 시선 강탈 개그가 끝내줌.

└ ㄹㅇ? 우리 엄마 서준이 팬인데. 한번 모시고 가야되나? 마침 추석이기도 하고. 우리집은 제사를 안 지내서 집에서 티비만 봄.

└ 그러면 가세요. 저도 엄마 모시고 다녀왔는데. 그냥 영화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빵빵 터졌어요.

└ 나도 강력 추천. 확실히 우지혁 감독표 코미디도 웃긴데. 이번에 ‘금괴 소동’의 배우들이 겁나 웃겨. ㅋㅋㅋ

└ 특히 차서준이 뒤에서 보여주는 슬랩스틱들이 시선 강탈 제대로 함. 설마 여기서 신파 나오나? 할 때쯤에 다시 한번 웃겨줌. ㅋㅋㅋ

첫 회차로 관람한 사람들의 후기가 속속 올라오기 시작한 것.

“서준아. 다들 엄청 재밌다고 하네?”

“그럴 줄 알았어요. 짜잔! 하준아 여기 봐라. 우루루루~”

정작 내 관심은 ‘금괴 소동’에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가 아니었다.

지금은 신생아 바운서에 누워 나를 보며 까르륵하고 웃음을 터트리는 동생의 반응이 더 중요했다.

저 웃음만 보면 모든 걱정이 사르르 녹는 기분이었다.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아 울어 젖힐 때면 난리가 나곤 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런 반응들이 나올 줄 알았어요. 시사회 끝나자마자 감독님이 이번에는 제대로 터질 거 같다고 말씀하셨거든요.”

“정말?”

“네. 그전까지는 부정 탄다고 조심하셨는데. 모든 시사회에서 사람들 반응이 엄청 좋았거든요.”

처음에는 말을 아끼던 우지학 감독이었다. 괜히 김칫국을 사발째 드링킹을 했는데. 정작 관람객들의 반응이 시큰둥하면 속이 쓰릴 테니까.

내부 시사회, 언론 시사회까지도 침착함을 잃지 않던 우지학 감독은. VIP 시사회의 사람들 반응을 보고 나서야 입가에 미소를 되찾았다.

지금도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사람들의 후기를 보았음일까. 핸드폰을 보는 엄마의 눈동자에 아쉬움이 어려 있었다.

“아쉽네. 아빠랑 같이 서준이 손잡고. 서준이가 찍은 영화를 보러 가면 참 좋았을 텐데.”

“저도 아쉬워요. 엄마랑 아빠랑 마음껏 웃을 수 있는 영화인데. 영화관에서 다른 사람들이랑 다 같이 웃으면 더 재밌잖아요.”

“우리 서준이랑 팝콘도 먹으면서?”

신생아 바운서를 흔들어주면서도. 말하는 엄마의 얼굴에서는 아쉬움이 떠날 줄 몰랐다.

다른 사람도 아닌. 아들인 내가 나온 영화를 영화관에서 보지 못한다는 사실이 못내 아까운 모양.

이제 겨우 눈을 뜨고 가족을 알아보는 동생을 두고서 영화관에 다녀온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제가 동생 보고 있을 테니까. 아빠랑 다녀오세요.”

내가 가슴을 탕탕 치며 당당하게 말했지만. 아쉽게도 엄마는 괜찮다며 고개를 저었다. 아직 1살인 동생을 두고 나갈 수 있을 리가 없긴 했다.

“아니야. 하준이가 엄마 없으면 또 울잖아.”

“그건 맞아요. 어떻게 형인 내가 옆에 있는데 그럴 수 있지?”

무엇보다.

동생이 엄마 껌딱지였다.

지금처럼 내가 엄마 옆에서 우루루 하고 놀아주면 좋아하다가도. 오랫동안 엄마가 보이질 않으면 마구 울곤 했다. 섭섭하게.

“그래도 서준이가 많이 도와줘서. 엄마도 한결 편하단다. 주변 이야기를 들어보면 쉴 시간도 없이 힘들다고 했거든.”

“정말요? 제가 도움이 되었어요?”

“그러엄. 거기에 하준이가 형이라고 서준이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안 보이면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면서 형만 찾아요.”

“헤헤. 저도 동생이 너무 좋아요.”

이제는 어떻게 동생을 돌봐야 하는지 조금은 감이 오는 상태였다. 물론, 엄마처럼 동생의 울음소리에서 어떤 걸 원하는지 구분하지는 못했다.

아무리 들어도 똑같은 울음소리인데. 엄마는 그 안에서 어떤 걸 원하는지 정확하게 캐치해냈다.

“그러면 영화는 나중에 VOD로 나오면 가장 먼저 봐요.”

“그럴까? 아빠랑 서준이랑. 그리고 하준이까지 해서 다 같이 볼까?”

“네! 편의점에서 팝콘도 파니까. 영화관 기분을 내게 팝콘도 사 와서 먹어요.”

“그래. 그러자.”

내 말에 그제야 엄마가 방긋 미소를 지었다. 허나 한 가지 문제가 더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반응들이 너무 좋아서. VOD로 나오려면 한참은 걸릴 것 같아요.”

그랬다.

관람객들의 반응이 차가워 일찍 영화가 내려간다면. 집에서 하루라도 빨리 ‘금괴 소동’을 만나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본 ‘금괴 소동’에 대한 반응이 뜨거웠다.

이대로라면 다음 주 추석 연휴 스코어에 따라서. 최소 몇 달은 영화관에서 내려오지 않을지도 몰랐다.

*

영화 ‘금괴 소동’의 첫 성적표가 나왔다.

“개봉 첫날 스코어 28만 명이라. 축하한다, 서준아.”

“오히려 삼촌이 축하받아야 하는 거 아니에요? 삼촌이 제게 시나리오를 가져다주셨잖아요.”

“녀석.”

내가 공을 돌리자 서도현이 웃음을 터트린다.

“주변에다가 꼭 해야 된다고 시나리오 추천해준 사람이 바로 삼촌이라고 소문내고 다녔어요.”

“그건 잘했다. 원래 좋은 건 동네방네 소문을 내야지. 꽁꽁 숨긴다고 누가 알아주는 게 아니거든.”

“맞아요. 저번에 신준철 선생님도 우리 회사에 대해 넌지시 물어보시길래, 배우에게 있어 최고의 회사라고 엄청 자랑도 했었어요.”

“잘했다, 잘했어.”

‘금괴 소동’의 개봉 첫날 관객 동원은 28만 4,361명. 다음 주에 추석 황금연휴까지 있다는 걸 감안하면 기뻐할 만한 출발이었다.

시작도 시작이지만 그보다 더 눈여겨 볼만한 지표가 있었다. 바로 예매 점유율이 계속해서 높아지고 있다는 것.

“무엇보다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는 게 기대할 만한 상황이지.”

“맞아요. 지금 실시간 검색어도 그렇고. 각종 커뮤니티에 사람들이 금괴 소동에 대해 이야기 나누기 바빠 보여요.”

“지금 예매율만 보더라도 알 수 있지. 나름 경쟁작이라고 불린 ‘그날의 기억’이 반응이 좋지 않으니 말이다.”

그랬다.

‘금괴 소동’이 처음부터 끝까지 관객들을 작정하고 웃기려는 코미디 영화라면. ‘그날의 기억’은 말 그대로 한국형 신파 영화였다.

“안 그래도 너무 억지 눈물을 빼려고 한다는 평론가 평도 봤어요.”

“그걸 봤어?”

사실 찾아서 본 게 아니라. ‘금괴 소동’의 사람들 반응을 보려고 이것저것을 찾아보고 있었는데. 두 영화의 극명한 반응 대비라면서 올린 글 때문에 보게 되었다.

└ 이제 저런 억지로 관객들 눈물을 뽑아내려는 감성팔이 영화는 그만 만들어야 됨.

└ ㅇㅈ 내가 내 돈으로 영화표 사서 스트레스 풀러 들어갔는데. 오히려 역으로 잔뜩 스트레스만 받고 나오는 기분이었음.

└ 뻔한 타이밍에 뻔한 OST, 웅장한 음악이 나오는 순간에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눈물이 아니라 실소만 나오더라. ㅋㅋㅋㅋ

└ 하필이면 상대가 대놓고 끝까지 웃기려는 ‘금괴 소동’이라 더 그럼. 즐거운 추석 때 가족들이랑 눈물 빼러 영화관 가고 싶겠냐고.

└ 덕분에 다음 주부터는 ‘금괴 소동’ 상영관이 더 늘어날 듯? 지금도 메인 시간대에는 자리가 없어서 보질 못함.

저런 말들처럼 반응이 좋지 않았다.

“아마 추석 연휴 스코어를 보고서. 상영관 수가 변동될 가능성이 높다.”

“아마 더 늘어날 거 같아요.”

추석 연휴까지야 확보한 스크린 수를 지킬 수 있을지 몰라도. 그 이후부터는 서도현의 말처럼 상영관의 수가 변할 터였다.

“그리고 공약들은 어떻게 하기로 했어?”

“아.”

깜박하고 있었다.

원래는 가볍게 사진만 찍을 예정이었다. 그런데 언론 시사회를 하는 과정에서 난데없이 공약들이 생겨버렸다.

정확하게는 우지학 감독도 아니었고, 이현아도 범인은 아니었다.

바로 김정범. 고사 때부터 심상치 않은 기색을 보이던 김정범이 결국 사고를 치고 말았다.

“정범 선배님 때문에 하기로 했어요.”

“첫 번째 공약 관객수가 200만이었나?”

“···눼. 맞아요.”

“보자, 지금 기세라면 추석 연휴가 지나면 해야겠는걸?”

당장 첫 번째 공약은 200만 관객을 돌파 시 ‘춤추기’였다.

본인 혼자 춘다고 했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테지만. 다른 사람도 아닌 나와 이현아, 그리고 배우들과 같이 추겠다고 한 게 문제였다.

심지어 500만 돌파 시 관객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는 커피 나눔 이벤트를 하겠다고 했다. 그것도 200만 공약인 춤을 같이 하고 싶어 하는 팬들과 춤도 추겠다면서.

“그래도 공약에 대한 반응들은 좋았으니.”

“맞아요. 거기에 공약이 어떻든 간에 지금 영화가 터져서 분위기가 엄청 좋아요.”

물론 나 역시 영화가 대박 나면 웃으면서 할 수 있는 공약들이었다.

“조금 있다가 모여서 백만 돌파 감사 사진을 찍기로 했어요.”

“다음 주가 추석 연휴니까. 그 이상도 미리미리 찍어둬도 될 것 같다.”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끝난 다음 주제는 바로 차기작이었다.

“서준아, 너는 다음 작품을 언제부터 준비하고 싶니? 요즘 서준이 널 찾는 감독님들이 제법 생겨서.”

언제 시작하자는 말이 아니다. 충분한 휴식을 취한 뒤 언제부터 차기작을 검토하고 싶냐는. 내 의사를 묻는 말이었다.

“바로요.”

“응?”

바로 하고 싶다는 내 말이 의외였음일까. 예상치 못한 답변을 들은 서도현의 고개가 이쪽을 향한다.

“동생 때문에 조금 천천히 하고 싶다더니.”

저 말도 맞았다.

처음 동생인 하준이가 태어났을 당시. 나는 한동안 차기작을 쉬었다 들어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육아를 하다 보니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엄마가 동생 때문에 제가 나온 영화를 보러 가지 못하신다고 엄청 아쉬워하더라고요.”

내 말이 끝남과 동시에 서도현이 알겠다는 표정을 짓는다. 역시나 단번에 무슨 의민지 알아차린 모양.

“그러면 차기작으로 드라마를 하고 싶다고?”

“네.”

“왜? 삼촌 생각에는 차라리 조금 더 쉬었다가 영화도 나쁘지 않은 거 같은데.”

서도현의 말이 정론이긴 했다.

차라리 쉬는 기간을 가지면서 엄마, 동생과 함께 더 같이 지내다가 차기작으로 영화를 하는 편이 좋을 테니까.

이번 ‘금괴 소동’을 통해 영화감독들에게 배우 차서준을 제대로 어필한 나였다.

“서준이 네가 이번 영화에서 좋은 연기력을 보여준 덕분에. 다른 감독님들이 같이 하고 싶다면서 연락이 많이들 오고 있거든.”

“저도 좋긴 한데. 앞으로도 제가 할 작품들은 많잖아요. 그래서 지금은 즐겁게 할 수 있는 걸 하고 싶어요.”

굳이 영화가 아닌 드라마를 하고 싶은 이유. 그것은 육아에 지친 엄마에게 힘을 주기 위해서였다.

아무래도 신생아를 키운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기인 동생에겐 밤낮 구분이 없었다. 새벽에라도 갑자기 우렁차게 울어버렸으니까.

내가 돕는다고 노력은 하고 있지만. 동생의 작은 울음소리에도 마치 연결이라도 된 것처럼. 자다가도 달려오는 엄마였다.

“무엇보다 동생 때문에 지친 엄마를 웃게 해주고 싶어요.”

이유를 설명하자 서도현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부터 열심히 필모를 쌓아갈 필요는 없지. 다른 배우였더라면 이번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설득했을 텐데.”

“저니까요?”

“그래. 다른 배우도 아닌 서준이 너니까 괜찮다고 하는 거다.”

확실히 서도현은 좋은 사람이다.

흐름을 타고 나가자가 아닌. 나를 믿고서 지금은 천천히 가도 된다고 한다.

아무리 7살의 아역 배우가 신들린 연기를 보여준다 한들. 단독 주연으로 작품이 만들어질 순 없었다.

드라마든, 영화든 제작하는데 있어 한두 푼이 들어가는 일이 아니었으니까.

몇몇 투자자들이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을 노린다곤 하지만. 그건 언제까지나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해두고 도박수를 던지는 거다.

“나중에 서준이 네가 주연을 맡을 수 있는 나이가 되기 전까지는 하고 싶은 것들을 마음껏 하는 편이 좋겠지.”

저 말이 내가 서도현을 선택한 이유였다.

“안 그래도 서준이 네가 이런 말을 할까 싶어 하나 봐둔 게 있는데.”

응?

“이거 읽어보고 흥미가 생기면 삼촌에게 말하렴.”

서도현이 시놉시스와 1, 2화 대본을 내게 건네주었다. 받은 시놉시스를 확인하던 내 눈동자가 멈춘다.

이건?

“삼촌. 이거 주말 드라마네요?”

“그래. 서준이 네가 찾는 조건들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들어 할 것 같으면서도. 삼촌이 추천해줄 만한 것으로 골랐다.”

다른 사람도 아닌 서도현의 입에서 추천이라는 단어가 나온 작품이다.

그 말은 서도현의 눈을 통과한 작품이라는 뜻.

“지금 봐도 될까요?”

“그래. 배우 본인의 의견이 가장 중요한 법이니까.”

나는 서도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재빨리 대본부터 펼쳤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