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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스타 어게인!-65화 (65/220)

65화

우리집에선 주말 저녁 8시만 되면 재밌는 풍경이 펼쳐졌다.

“어머. 벌써 8시가 다 되었네?”

“벌써? 그러면 얼른 준비해야 되는 거 아니야?”

아빠가 말한 준비라는 게 특별한 건 아니었다. 바로 엄마가 TV 앞으로 향하는 것.

8시가 되기 전 엄마가 서둘러 TV를 틀었다. 화면에선 광고가 나오고 있었고. 오른쪽 위에는 주말 연속극 제목이 작게 떠 있었다.

그런 엄마를 보면서 내가 이런 질문을 했었다.

“엄마. 저 드라마가 그렇게 재밌어요?”

나랑 아빠와 야외 나들이를 가는 날을 제외하면. 가능하면 꼬박꼬박 주말 연속극을 챙겨보셨으니까. 심지어 저녁을 먹다가도 소리라도 들어야 한다면서 틀었다.

그러한 엄마의 주말 드라마 사랑은 내가 배우가 된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러엄. 물론 엄마는 우리 서준이가 나오는 드라마가 세상에서 제일 재밌어. 그런데 가끔은 저런 내용의 드라마도 재밌단다.”

“정말요? 지금 하는 것도 저번에 끝난 거랑 비슷한 내용이잖아요.”

“우리 서준이 말도 맞긴 한데 조금 다르단다. 저번 건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대가족들의 이야기였다면. 이번에는 남편의 배신으로 혼자가 된 주인공의 이야기거든.”

대가족 첫째 딸로 태어나 이혼한 주인공의 새로운 사랑 이야기와, 변호사 남편의 바람으로 이혼당한 애 엄마의 새 시작 이야기의 차이가 대체 무엇인지 잘 모르겠지만. 엄마는 정말 즐겁게 보셨다.

가끔 지켜보면 아빠도 은근슬쩍 엄마 옆자리에 앉아서 같이 대화를 나누면서 보셨고. 나도 그 사이에 끼어들어 같이 보았었다.

엄마는 매번 한 작품이 끝나고, 다른 작품이 시작할 때마다 그게 그것 같은 내용이라며 한마디 했지만. 정작 저녁 8시가 다가오면 약속이라도 한 듯 다시 소파 앞에 앉곤 했다.

그 덕분에 서도현이 대본을 건네주었을 때. 나는 그것이 주말 드라마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삼촌. 이거 50부작인 걸 보면 주말 드라마네요?”

“잘 아는구나?”

“네. 엄마, 아빠랑 주말마다 같이 보거든요.”

“그러면 더 설명이 쉽겠네.”

서도현 역시 내게 이 대본들을 건네면서 이런 말을 덧붙였었다.

“지금 하고 있는 주말 연속극이 끝나면 들어갈 예정인 작품이고. 서준이 네게 금동이 역할이 들어왔다.”

서도현이 건네준 대본의 제목은 [재벌가 금동이]. 그중에서 금동이 역할이 들어왔다는 건.

“주인공이네요?”

“그렇지. 평일 드라마였다면 아직 어린 서준이 네게 주인공을 주기 힘들지 몰라도. 주말 연속극이기에 가능한 시도지.”

그랬다.

극을 이끌어가는 메인 중심인물들이야 금동이의 엄마와 새로운 인연이겠지만. 어쨌거나 제목부터 금동이를 박아두고 간다는 건 비중이 제법 크다는 뜻이었다.

지금까지 내가 해왔던 작품들의 캐릭터들보다 더욱더.

“50부작이면 제법 긴 촬영이 되겠네요.”

“서준아. 이게 비록 지금까지 해왔던 작품들과 다르게 세트장 촬영이 많고. 또 극의 느낌도 많이 다르겠지만. 지금 서준이 네가 찾는 조건들에 가장 부합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저 말은 사실이었다.

당장 내 손에 들린 [재벌가 금동이]만 하더라도 엄마의 입맛에 딱 맞는 내용이 들어 있었으니까.

죽음의 비밀, 그걸 둘러싼 재벌가의 갈등. 사랑과 배신, 그리고 이어지는 복수와 새로운 사랑. 아주 혼돈과 혼란의 도가니탕이 아닐 수 없었다.

문제는.

“이게 대체 왜 재밌는 건데.”

재미가 있었다.

그것도 아주 많이.

만약 내가 진짜 7살 꼬맹이였다면 난해하다며 고개를 저었겠지만. 어른의 시점으로 봤을 땐 쉬지 않고 달리는 폭주 기관차 같았다.

주말 드라마들이 뻔한 내용으로도 기본 시청률 20프로 이상에. 대박이 터지면 40프로 가까이 나올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시청자들을 빠져들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는 거다,

특히나 서도현이 내게 추천을 해줄 정도라면. 그 흡입력이 더 뛰어나단 뜻이었고.

고민은 며칠이었지만 결정은 간단했다. 나는 핸드폰을 들어 서도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서준아?

“삼촌. 추석 잘 보내세요. 그리고 우리 연휴가 끝나면 만나서 저번에 주신 대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

-그럴래? 서준이 너도 엄마, 아빠. 그리고 동생이랑 추석 연휴 잘 보내고. 그다음 날에 보자.

“네!”

전화를 끊은 나는 방을 나섰다. 거실에는 TV 재방송을 보고 있는 엄마가 있었다.

“엄마.”

“응?”

내가 엄마를 부르자. 동생이 누워있는 신생아 바운서를 흔들던 손을 멈추고 나를 바라본다.

“재방송으로 다시 보는 거예요?”

TV에선 어느덧 후반부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주말 연속극이 나오고 있었다. 오늘이 평일이니 다시보기로 보는 셈이다.

“아니. 우리 하준이가 저 날 너무 울어서. 엄마가 결국 이틀 동안 다 못 봤어.”

그렇게 말하는 엄마의 얼굴에선 제법 피곤함이 엿보였다. 어쩔 수 없는 것이 동생이 새벽에도 시도 때도 없이 울어버렸다.

“드라마 끝나면 제가 하준이 돌볼 테니까. 방에 들어가 조금 주무시고 나오세요.”

“괜찮아. 엄마는 서준이랑 하준이랑 같이 있으면 피곤함이 싹 사라지는걸?”

말은 그렇게 했지만. 졸음이 밀려오는지 하품을 하는 엄마였다.

동생은 엄마가 다시 흔드는 바운서 안에서 세상 편안한 얼굴로 잠이 든 상태였다.

그런 엄마를 보니 이런저런 생각이 떠오른다.

김도경 시절에는 단 한 번도 장편의 주말 연속극이나, 막장이 섞인 작품에는 일절 해본 적이 없었다. 소중한 상품의 가치가 망가지길 싫어하는 당시의 가족들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차서준으로 눈을 뜬 뒤.

나는 참 많은 새로운 것들을 경험했으며. 또 그 과정에서 이전 생에는 알지 못했던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

무엇보다.

피곤한 눈으로도 즐겁게 주말 연속극을 보고 있는 엄마가 보이지 않는가.

“엄마?”

“응?”

“사랑해요.”

“엄마도 우리 서준이 사랑해.”

나를 안아 등을 쓰다듬어주는 엄마의 손길을 느끼며 결정을 내렸다.

피곤함에도 꼬박꼬박 다시보기로 챙겨보는 주말 드라마.

그런 주말 연속극에 내가 나온다면?

아마 엄마를 깜짝 놀라게 만들 선물이자, 기쁘게 만들 수 있음이 분명했다.

또 김도경 시절에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주말 연속극에서 새로운 연기에 대한 재미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서준아. 하준이가 형을 너무 좋아하던데?”

“정말요? 엄마가 안 보이면 엄마 데려와 달라고 엄청 울기만 하던데.”

“아니야. 엄마랑 둘이 있다가도. 서준이 네 목소리만 들려오면 방긋 웃어.”

정말이었다.

내 목소리를 들었음인지. 어느새 똥그란 눈을 초롱초롱하게 뜬 동생이었다.

“뺘!”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면서 나를 향해 두 팔을 바동바동거린다. 그런 쪼고만 손을 내가 잡아주자.

“꺄아!”

기쁜지 방긋 웃음을 터트리는 동생이었다.

“서준아.”

“네?”

“이제 영화도 개봉했는데. 혹시 다음 작품 생각해둔 거 있니?”

어제는 아빠가 물어보시더니. 엄마도 내 차기작이 궁금했던 모양이다. 내게 부담을 주기 싫어 물어보지 않았지만. 내가 방에서 대본들을 살펴본다는 사실을 알고선 물어보는 것이다.

“엄마는 제가 다음 작품으로 어떤 걸 하면 좋아요?”

엄마는 단 1초의 고민하는 시간도 가지지 않은 채.

“엄마는 우리 서준이가 행복하게 할 수 있는 거면 돼. 그게 드라마든, 영화든. 엄마는 항상 우리 서준이를 응원하거든.”

가슴이 따뜻해지는 미소로 날 안아주면서 말했다.

이런.

“빠아! 빠!”

자기만 빼놓고 엄마가 나를 안아주자. 동생이 몸을 바둥거리며 자기도 안아달라는 듯 칭얼댄다.

“이런. 우리 하준이도 형을 응원하는구나?”

“엉!”

저건 대답이 아니라 엄마의 형을 따라 한 듯싶다. 엄마의 품에 안기면서도 고개가 나를 향한다. 마치 나도 빨리 일로 와서 같이 안아달라는 듯이.

동생이 생기니 집에만 있어도 시간이 가는 줄 모를 정도였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 옹알옹알 반응하고. 또 방긋 웃어주는 얼굴이 너무 예뻤으니까.

이런 동생이 클 때까지 쉴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육아에 조금 지쳐 보이는 엄마를 응원하고 싶다는 생각이 더 컸다.

“서준아. 엄마는 서준이가 어떤 걸 해도 다 응원해요. 알았지?”

“네!”

그래.

하자.

*

황금 추석 연휴가 지나고. ‘금괴 소동’의 2주차 성적이 나왔다.

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금괴 소동’의 배우들과 감독이 한 자리에 모였다. 이제 그다음 백만 단위의 돌파 감사 사진을 찍어야 하니.

“미쳤네. 미쳤어. 몇 명이라고? 5백만?”

“그건 그저께 넘었고요. 어제부로 5백 6십만 돌파했대요.”

“정말?”

“네. 이제 연휴도 끝났으니 이전처럼 폭발적인 성장세는 누그러들겠지만. 그래도 여전히 예매율 1위에요.”

이미 연휴 내내 하루하루 성장세에 시끌시끌했었다. 지금 같은 추세라면 7백만 돌파도 확정적이라는 뜻이니.

그리고 5백만을 돌파했다는 말은.

“커피 이벤트 언제가 좋을까요?”

공약으로 내걸었던 커피 나눔 이벤트를 해야 된다는 뜻이었다. 거기까지는 별문제가 없었다. 이런 기쁜 소식에 그 정도 수고야 아무것도 아니었으니까.

문제는.

“으아! 내가 미쳤지. 대체 왜 거기서 그런 공약을 걸어가지고!”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털썩 주저앉아 세상 무너진 표정을 짓고 있는 김정범에게 있었다.

“힘내세요.”

“오빠. 힘내. 그러니까 마음을 곱게 써야지. 서준이 골려주려다가 아주 흑역사 제대로 박제하셨어.”

저번 2백만 공약으로 실천했었던 딩기리딩 춤. 그걸 커피 이벤트에 찾아온 팬들과 같이 추기로 했단 사실이 떠오른 것이다.

“그래도 그거 조회수 엄청 잘 나왔던데?”

“후우. 이번에 또 하고 나면 사람들에게 또 박제되겠지?”

“당연한 걸 입 아프게 왜 물어봐. 우리 서준이 봐. 사람들이 오빠 덕분에 새로운 재능을 찾았다면서 엄청 기뻐하던데. 오빠한테 고맙대.”

한 번 더 KO. 그런 김정범의 좌절과 상관없이 이벤트 날짜가 정해졌다.

*

“삼촌. 이거 엄마가 삼촌 가져다주래요.”

내 차기작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찾아간 장소는 회사가 아니었다.

“어머니께 고맙다고 전해줘. 안 그래도 이번에 본가에 갔다가 잔소리를 엄청 듣다가 도망쳐서 먹을 게 없었거든.”

“이해해요.”

이해한다고? 이런 표정을 짓고 있는 서도현을 보며 나는 잠깐 웃었다. 그 웃음을 보더니 서도현이 툭 던진다. 마치 그 범인을 알겠다는 듯이.

“서준아, 도윤이가 삼촌에 대해서 무슨 말 했니?”

“아니요.”

했다.

외삼촌이 추석에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얼른 아무나 잡아서 데려오라고 엄청 구박을 받았다고.

방금 서도현의 말처럼 구박에 못 이겨 점심을 먹자마자 도망쳤다고 들었다. 못난 아들 대신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손주에게 음식들을 바리바리 싸주셨다는 이야기도 함께.

그 이야기를 서도현에게 할 수는 없지.

“점심 아직 안 먹었지? 같이 먹을래?”

“네. 삼촌 혼자 먹으면 맛이 없잖아요.”

“서준이가 뭘 좀 안다니까. 잠시 거기 앉아서 기다려. 마침 선물로 좋은 고기 하나가 왔거든.”

서도현이 실없는 농담을 던지며 내가 가져온 음식들을 데우기 시작했다.

철저하게 자기 관리를 하는 서도현이다. 성공한 소속사 대표. 그런 서도현에게 접근하려는 사람이 없을 리가 없었다.

주말인 오늘 집에 있는 건. 아마 다시 바쁜 회사 일을 시작하기 전에 휴식을 취하기 위함일 터였다.

“맛있네. 어머님께 정말 맛있게 먹었다고도 전해주렴.”

“네! 삼촌이 구워준 고기도 맛있어요.”

서도현이 나를 위해 소고기를 구워줬다. 확실히 선물로 들어온 고기라서 그런지 입에서 살살 녹았다.

“그래. 재벌가 금동이를 하겠다고?”

“네. 좀 막장스럽긴 한데. 확실히 재밌었어요.”

“그렇지. 거기에 감독도, 작가도 확실히 검증된 사람이기도 하고.”

50부작이다. 서도현이 내게 검증되지 않은 초보 작가의 작품을 추천할 리가 없었다.

“그러면 조만간 자리 한 번 갖기로 하고. 광고는 어떻게 할래?”

“조건이 좋은 건 할래요.”

동생이 태어났다. 직접 만나기 전까지는 몰랐는데. 그 반짝반짝이는 눈동자에 비치는 나를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동생한테 좋은 것들을 해주고 싶어서요.”

형으로서 최고의 것들만 해주고 싶다고. 그러기 위해선 광고 추가는 필수였다. 어차피 하루하루 달라지는 인기를 고려해서 단기 계약만 하고 있었으니까.

“잘 생각했다. 마침 삼촌이 서준이 네가 좋아할 만한 것들로 추려봤거든. 모레 회사로 오면 보여주마.”

“네!”

“얼른 더 먹어. 잘 먹어야 쑥쑥 크지.”

*

- 영화 ‘금괴 소동’ 관객수 5백만 돌파 공약 이행. 훈훈하고도 웃음이 넘쳤던 그 현장.

└ ㅋㅋㅋㅋ 김정범 표정이 너무 맛있다.

└ 나는 김정범도 웃겼는데. 서준이의 또 다른 재능을 발견한 것 같아서 놀랐음. 우리 차 배우 못하는 게 대체 뭐임?

└ 노래는 못하지 않을까? 그거까지 잘하면 너무 사기캐릭이지.

└ 5백만 공약이었는데. 저거 하는 날에 벌써 6백만 넘었음. ㄷㄷ

└ 우리 차 배우 흥행력 미쳤네. ‘너에게 다시’, ‘폭군의 세자’. 그리고 ‘금괴 소동’까지. 그냥 러브콜 쏟아지고 있겠는데?

그렇게 공약 이행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뜨거운 가운데.

└ 3연타 대성공으로 우리 차 배우한테 작품들 엄청 들어갔을 텐데. 차기작으로 뭐 한다는 말 없어요?

슬슬 배우 차서준의 차기작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차 배우, 아역 배우 차서준. 조만간 차기작으로 팬들을 찾아뵐 것.]

배우 차서준의 차기작 관심에 대한 불을 지피는 기사가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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