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 뮤-지하의 고향은 영역 경계 너머에 있었다
178. 뮤-지하의 고향은 영역 경계 너머에 있었다
“뮤. 너, 도대체 어디서 왔던 거냐? 이쪽 맞아?”
영역의 경계.
상위 격의 존재들이 서로 부딪히고 있다는 곳으로 향하던 중.
도현은 뮤-지하의 소원을 이루어주려 했다.
그래서 뮤-지하의 옛 기억을 더듬어 그가 지나온 길을 거슬러 올랐다.
그런데 막상 가다보니 결국 도착한 곳이 상위 격이 지배하는 영역의 경계.
다시 말해서 뮤-지하는 과거 다른 상위 격의 지배 영역에서 이쪽으로 넘어 왔다는 이야기다.
“뮤-지하는 굉장합니다. 어떻게 하급 초인의 수준에서 상위 격의 영역을 넘었을까요?”
세이안도 믿기 어렵다는 표정을 지었다.
= 나는 그저 차원을 유랑했을 뿐이다. 워지하드로부터 멀어져야겠다는 생각만 했었지.
뮤-지하도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그 역시 자신이 다른 상위 격의 영역에서 이쪽으로 넘어왔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던 것이다.
“물고기를 잡을 때 그물을 쓰지.”
그 때, 도현이 엉뚱한 소리를 해서 세이안과 뮤-지하의 이목을 모았다.
“그런데 물고기 그물의 코가 항상 촘촘한 것은 아니야. 때로는 그물코가 넓어서 작은 물고기들은 자유롭게 드나들곤 하지.”
“그러니까 당시의 뮤-지하는 그물로 잡을 필요도 없는 잔챙이였다는 말씀이군요?”
= 세이안. 그게 사실일 거 같긴 하지만 듣기엔 기분이 좋지 않은데?
“내가 말한 게 아니라, 마스터께서 하신 말씀이거든?”
= 그걸 네 멋대로 해석했지.
“그래서 뭐? 내 해석이 틀렸다고?”
세이안과 뮤-지하가 습관처럼 투닥거렸다.
도현은 자신의 권속들은 어째서 친근감을 이런 식으로 표현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권속들의 성향은 주인을 닮거나 혹은 주인의 바람을 쫓아간다는 사실은 생각지 않고.
“그만 싸워. 어쨌거나 저 앞쪽은 이쪽과는 다른 상위 격의 영역이야.”
= 저길 지나올 때에는 그걸 느끼지도 못했습니다.
“그물망이 넓어서 알지도 못하고 지나온 거지.”
= 마스터까지 그렇게 말씀을 하십니까?
“뭐, 맞는 말씀인데. 하하하.”
“어쨌건 그 워지하드와 함께 있었던 곳이 여기서 멀지 않다고 했었지?”
= 네. 마스터. 별로 멀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놈이 뮤, 너를 제물로 삼으려 했고?”
= 네, 마스터.
뮤-지하는 그 당시를 떠올린 듯, 화난 표정으로 대답하며 한쪽 방향을 노려봤다.
그가 워지하드를 스승 삼아서 초인으로 성장한 차원이 있는 방향이었다.
“생각해보면 초인을 제물로 삼는 수련법 따위는 나도 들어본 적이 없거든.”
“그건 그렇습니다.”
= 저도 워지하드로부터 도망친 후로, 그런 수련법에 대해서 알아봤지만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 그런데 그 이유를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지 않아?”
= 영역을 다스리는 상위 격의 차이 때문이겠지요.
뮤-지하는 곧바로 대답을 내 놓았다.
도현이 추측하는 것과 일치하는 대답이었다.
“그래. 저 쪽의 상위 격은 그런 방식의 수련을 허가하거나 권장하는 것이겠지. 하지만 이쪽은 최대한 상위 초인이 하위 초인을 겁박하지 못하게 하는 쪽이고.”
그렇게 말하며 도현은 다시 한 번 융이 말했던 ‘상위 존재의 덕분’이라는 말을 떠올렸다.
나름 괜찮은 성장 환경을 만들어 주었다는 것이, 비교 대상인 상위 격을 확인하고 나니 실감이 되는 것이다.
만약에 도현이 뮤-지하와 같은 환경에서 수련을 시작했다면, 워지하드 같은 놈의 제물이 되었을 수도 있다.
“저 쪽은 수련자들 사이의 약육강식이 만연한 세상이란 말이지. 그에 비하면 이쪽은 좀 선을 지키는 편이고.”
= 마스터의 표현을 빌리자면 정파와 사파 같은 느낌인 것 같습니다.
“뮤, 너는 또 언제 내 머릿속에서 무협까지 찾아봤어?”
= 제가 어떻게 마스터의 머릿속을 헤집겠습니까. 그저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된 것일 뿐이지요.
“뮤-지하. 그거 나한테도 공유 좀······.”
“하아. 하여간 실없는 놈들.”
도현은 권속들의 장난스러운 언행에 짧게 한숨을 쉬며 멀리 텅 비어 있는 허공을 바라보았다.
차원과 차원 사이.
그 빈 공간을 뚫고 반대편에 있는 차원을 보는 것이다.
“마스터, 넘어갈 수 있겠습니까?”
세이안이 뮤-지하와의 장난을 멈추고 도현의 옆으로 다가와 물었다.
“못 갈 건 없겠지.”
도현은 영역을 넘는 것에 큰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그럼 저희도 갈 수 있겠군요?”
“왜? 혼자선 못 가겠어?”
“그야 당연하지 않습니까. 자그마치 합일 경지의 상위 격이 막아 놓은 곳인데요.”
세이안과 뮤-지하의 경지는 융합.
아직 합일의 경지에는 오르지 못한 상태다.
그런 세이안과 뮤-지하가 영역의 경계를 느끼고 있었다.
아울러 절대 지나가서는 안 된다는 강력한 의지도 함께.
“링크나 그 아래의 초인들도 지금은 오갈 수 없을 거 같은데.”
뮤-지하는 하급 초인의 경지에서 자유롭게 영역을 넘어왔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예 왕래가 막혀 있었다.
= 마스터, 이쪽에서 가는 것만 막혀 있는 것이 아닐까요?
문득 뮤-지하가 자신이 영역 경계를 지나온 경험을 떠올리며 새로운 의견을 내어 놓았다.
“음, 그건 모르겠네. 이쪽 상위 격이 쳐 놓은 그물 때문에, 반대쪽 상위 격의 대응은 알아볼 수가 없어.”
도현은 고개를 저었다.
= 마스터, 하급 초인들도 넘어가지 못하게 해 놓았는데, 어떻게 마스터께선 넘어갈 수 있다고 하시는 겁니까?
조금 전에 도현이 영역 경계를 넘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던 것을 떠올렸는지 뮤-지하가 물었다.
어차피 도현만 넘어갈 수 있다면 권속들이야 문제될 것이 없다.
권속들이야 도현의 아크 차원에 머물다가 도현이 불러낼 때에 나가면 그만이니까.
“그물코 이야기를 했었잖아. 내 몸집을 작게 줄이면 그물을 통과하는 것이 어렵지 않지. 그게 아니면 문어처럼 좁은 곳을 비집고 지나갈 수도 있는 거고.”
= 몸집을 줄이다니요?
“설마 하급 초인보다 더 미약한 수준으로 스스로의 경지를 낮추실 생각이십니까?”
도현의 말에 뮤-지하와 세이안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게 뭐? 내 힘을 그냥 아크로 몰아 두는 것 뿐인데.”
“하지만······.”
“겉으로 보기에 약해진다고 그게 사실이 되는 것도 아닌데 걱정은······.”
= 그래도 마스터께서 스스로를 미약한 존재로 만드시는 것이 불안한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저희는 마스터의 권속입니다.
“괜찮다니까. 마음만 먹으면 아크의 힘을 곧바로 끌어낼 수 있는데 무슨 걱정이야. 지금은 그냥 영역 경계를 지날 때까지 본체의 수준을 초인 직전까지 낮추려는 것 뿐이야.”
도현은 그렇게 말을 하고는 슬쩍 몸을 움직여 가까운 차원으로 이동했다.
차원 사이의 빈 공간은 융합의 경지 정도는 되어야 버틸 수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초인도 못 되는 경지로 몸을 바꾸었다가는 그대로 가루도 남기지 못하고 소멸될 것이다.
그래서 가까운 차원으로 이동할 필요가 있었다.
* * *
“크하하하하. 거기 서라!”
도현은 오랜만에 차원 회랑을 열었다.
그것도 이쪽 상위 격의 영역에서 저쪽 상위 격의 영역으로.
그것은 도현이 합일 경지에 올라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지만, 그렇게 열린 차원 회랑은 워낙 좁고 가늘었기 때문에 강력한 힘을 지닌 존재는 들어갈 수 없었다.
과거 지구가 차원 전장을 통해서 시험을 받을 때에도 차원 회랑엔 힘이 강한 존재일수록 더 많은 페널티를 받았었다.
이번에 도현이 연 차원 회랑도 그와 같은 이치가 작용했는데, 그것은 이쪽 상위 격이 영역 경계에 세워 놓은 결계 때문이었다.
초인 이상의 경지는 영역을 넘어갈 수 없게 해 놓은 결계가 도현이 만든 차원 회랑에도 영향을 준 것이다.
하지만 도현은 스스로의 경지를 초인이 되지 못한 상태로 만들었고, 그 상태로 겨우겨우 차원 회랑은 넘었다.
만약 아크 마스터가 아닌 다른 초인들이었다면 이런 시도 자체를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들이 아무리 경지를 낮춘다고 해도 결국 연결된 차원의 근원이 있기 때문이다.
자신과 동화된 근원과의 연결을 완전히 끊는다는 것은 곧 스스로 지금까지 쌓은 수련 경지를 포기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러니 굳이 영역 경계를 넘기 위해 그런 짓을 하는 경우는 없다고 봐야 한다.
그럼에도 영역 경계에 있는 차원들에선 반대 쪽 영역과 연결되는 차원 회랑이 심심찮게 열렸다.
이유는 당연히 뭔가 얻는 것이 있기 때문인데, 문제는 그렇게 열린 차원 회랑으로 초인들이 오가는 것이 아니라 상인들이 오간다는 것이다.
영역과 영역을 오가는 상인들이 존재하며 그들을 위해 차원 회랑을 열어주는 서비스까지 있는 상황이라니.
어쨌건 그게 영역 경계를 넘으려는 도현에게 나쁜 소식은 아니었기에 도현도 부담없이 차원 회랑을 열어 영역 경계를 넘은 것인데.
“오자마자 강도를 만나?”
운이 이렇게도 없을까 싶은 마음에 도현은 살짝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그랜드 마스터급의 산성병사 십인대 한 부대를 소환했다.
푸화화화화홧!
도현의 몸에서 짙은 황토 먼지가 뿜어져 나오고, 그것이 뭉쳐서 산성병사를 만들었다.
“어어어? 이거 뭐야?”
“씨발, 실력자다!”
“재수없네. 몇 죽게 생겼군.”
“쳐!”
“죽여!”
그런데 도현이 십인대장을 포함해서 산성병사를 열한 기나 소환했음에도 강도들은 물러나지 않았다.
숫자가 비슷하긴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 무력 시위라면 멈칫거릴 만도 한데.
도현은 강도들이 도대체 무엇을 믿고 저러나 싶었다.
그런데 막상 달려드는 강도들의 실력을 확인하니 그럴만도 하다 싶다.
“여긴 그랜드 마스터가 흔한가?”
강도들이 하나같이 정신 에너지를 쓸 수 있는 그랜드 마스터의 경지다.
차원에 따라서 다르지만 차원 교류가 일어나지 않은 하급 차원에는 그랜드 마스터가 없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차원간 교류가 시작된 후에도 그랜드 마스터의 탄생은 드물다.
그랜드 마스터가 곧 초인으로 갈 수 있는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강도질을 하러 나온 놈들 열세 명이 모두 그랜드 마스터라니.
“여기 경지 인플레가 심한 거 같은데?”
도현은 고개를 흔들며 다시 산성병사 십인대 하나를 더 소환했다.
푸화화화화확!
“어? 씨발?”
“뭐야?”
“지랄! 튀어!”
“도망쳐!”
그러자 반응이 뜨겁다.
산성병사와 격렬하게 맞붙어 싸우던 강도들이 곧바로 태세전환을 했다.
그들은 열한 기의 산성병사가 다시 모습을 드러내자 곧바로 도주를 감행했다.
도현은 그 신속한 태세 전환에 놀라면서도 그냥 보내줄 마음은 생기지 않았다.
“모두 잡아!”
굳이 말이 필요 없지만 도현의 강력한 의지를 받은 산성병사들이 곧장 강도들을 뒤쫓았다.
그리고 얼마 후, 열세 명의 강도들 중에서 넷이 생포되어 도현의 앞으로 끌려왔다.
“쯧, 흑영을 불러냈으면 더 쉬웠을 걸.”
도현은 놓친 강도들을 아쉬워하며 생포된 강도들 앞으로 나섰다.
“자, 나는 별로 자비가 없는 놈이야. 그러니까 곱게 죽을 건지, 험하게 죽을 건지 알아서들 결정해라. 응?”
도현의 말에 강도들의 눈동자에 절망감이 가득 들어찼다.
“아, 그래도 조금이라도 희망을 주는 게 좋겠지? 누구든 내가 마음에 드는 정보를 주는 놈 하나는 살려준다. 다른 차원에서 살게 되겠지만.”
그런 강도들에게 도현이 동아줄 하나를 던져 주었다.
그리고 그 동아줄을 잡기 위한 강도들의 처절한 몸부림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