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 안마하신다-248화 (248/286)

천마님 안마하신다 248화

“그러고 보니까 캘리버 씨는 이제 괜찮으십니까?”

그렇게 함께 식사를 하며 담소가 이어지고 있던 와중, 베네릭이 조심스러운 말투로 물었다. 그는 캘리버의 눈치를 살짝 살펴보고는 질문을 보강하듯이 말을 덧붙였다.

“예전에 듣기로는 재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 병원에서도 회복이 어렵다는 말을 들었다… 이런 이야기들이 오고 갔었던 걸로 아는데 말이죠.”

“뭐, 확실히 그랬었죠.”

얼핏 실례가 될 수도 있는 질문이었으나.

캘리버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물 한 모금을 마셨다. 그러고는 담담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하면 저도 마음의 준비를 해 놓은 상태였으니까요. 재활 훈련을 계속 하기는 했지만, 리그에 복귀할 수 없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었죠.”

미식축구는 부상 하나 없이 선수 생활을 이어 나가더라도, 나이를 먹기 시작하고 피지컬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자연스레 은퇴 이야기가 나오는 동네다.

물론 어느 스포츠가 그렇지 않겠냐마는, 미식축구는 유독 그 정도가 심하다. 경기 자체가 기본적으로 과격하고, 몸에 지장이 생길 수밖에 없는 수준의 충격량을 지속적으로 받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물며 절름발이 신세에 손조차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선수라면 두말할 필요도 없다.

설사 재활에 성공하여 어느 정도 활동이 가능해지더라도 현역 수준의 피지컬을 되찾지 못한다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캘리버의 선수 생활은 뇌진탕으로 필드 위에 쓰러졌었던 그 순간, 사실상 끝이 났었던 셈이다.

이건 캘리버뿐만 아니라 팀의 모두가 짐작하고 있었던 부분이다. 단지 그 사실을 냉정하게 입에 담을 수 없어 외면하고 있었을 뿐.

“그때 많이 힘들었겠네요.”

“그랬죠. 지금 생각해 보면, 계속 재활 훈련을 했었던 것도 그런 이유였던 것 같아요. 이거라도 안 하면 내가 버틸 수가 없다. 본능적으로 알았던 거죠.”

운동을 하고 땀을 흘리면, 적어도 그동안은 근심과 걱정들을 잠시 잊어버릴 수 있다. 스태프들은 그런 그의 모습을 근성이라고 평가했으나, 정작 캘리버 본인에게는 현실을 외면하는 수단이었던 것이다.

“뭐 지금에 와서는 다 옛날 일이지만요.”

캘리버는 오른팔에 살짝 힘을 줘서 근육을 만들더니, 굽혔다 펴기를 두어 차례 반복했다. 이렇게 멀쩡한 몸으로 되돌아오게 되다니. 새삼스럽지만, 참으로 감회가 새로운 일이었다.

“아직도 신기하단 말이죠. 미국 전역의 병원을 돌아다녀도 호전이 없었는데, 안마 몇 번에 이렇게까지 좋아졌다는 게 말입니다.”

그 말에 동감하듯, 베네릭과 이보르 둘 다 고개를 끄덕였다. 이 테이블에 앉아 있는 세 사람 모두가 천마안마의 효과, 아니 효험(效驗)을 맛본 이들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이젠 현역 시절보다 몸이 더 좋아진 것 같습니다. 원래 선수 활동을 하면서 생겼던 증상들도 싹 사라졌거든요.”

“그런 것 같긴 합니다. 어제 운동하고 있는 것만 봐도 장난이 아니시던데.”

이보르는 지난날 피트니스 클럽에서 봤던 캘리버의 모습을 떠올리며 말했다.

당시 캘리버는 턱걸이를 하고 있었는데, 한참을 쳐다보고 있어도 땅에 발 한 번이 닿지를 않았다. 주변에 사람들이 하나둘씩 몰려들어 구경을 하기 시작한 것은 덤이고 말이다.

“보니까 등 근육 한번 제대로 자랑을 하시더라고.”

“아, 그건 왓튜브 촬영 때문에 좀… 평소보다 오버를 한 느낌이 있습니다. 요즘 같이 다니고 있는 친구가 한 명 있는데, 왓튜버거든요.”

“종종 같이 계시던 그 한국분이요?”

베네릭이 누군지 알겠다는 듯이 말하자 캘리버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처음엔 천마안마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같이 촬영을 시작한 건데, 이것저것 콘텐츠들을 찍다 보니 장기 투숙을 하는 중에도 지루하지 않게 잘 지내고 있네요.”

“오호… 콘텐츠라.”

그런 캘리버의 말에 베네릭이 관심을 보였다.

그 또한 이제 막 장기 투숙을 시작하는 입장. 다만 딱히 일정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안마를 받는 것도 일주일에 한 번씩이기에 평소에는 심심하던 참이었던 것이다.

“평소에 촬영을 하면 어떤 것들을 합니까?”

“글쎄요. 어디 핫한 식당에 가서 먹방을 한다든가, 다른 곳에선 하기 힘든 경험을 해 본다든가, 잘 안 알려진 관광지를 간다든가.”

캘리버의 말이 이어질수록 베네릭은 더욱 관심이 깊어지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한편, 두 사람의 대화를 조용히 듣고 있던 이보르가 넌지시 말했다.

“근데, 오늘은 에드윈 씨가 안 보이시네요.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으신가요?”

캘리버는 혼자서 한국에 온 게 아니다. 팀의 헤드 코치이자 그의 전속 코치인 에드윈도 함께 한국에 왔고, 같이 머무르며 함께 행동을 하곤 했었다.

“일이 있다기보단… 여기서 할 일을 다한 셈이죠. 원래는 반쯤 보호자의 역할로 있었는데, 이제 보호가 필요한 입장은 아니니까.”

“아하.”

그것도 그렇다. 몸에 문제가 있던 시절의 캘리버는 본 적이 없지만, 그가 본 캘리버는 적어도 보호자가 붙어 있을 필요가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땅에 발 한 번 내리지 않고 턱걸이를 백 번도 넘게 할 수 있는 사람이니까 말이다. 이보르는 납득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팀에서도 호출이 있었나 봐요. 자세한 일의 경위를 좀 듣고 싶다나.”

“일의 경위요?”

“제가 정말로 회복이 된 건 맞는지, 보고서로 제출한 내용들이 전부 사실인지… 뭐,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좀 꼭 해 달라고 했나 봐요.”

“흐음… 하긴, 그럴 만도 하죠.”

그 말에 이보르는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직접 이야기를 듣기 전에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 이보르 또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심정이었다. 그 또한 한국에서 안마를 받고 왔던, 강주완이나 고드윈의 말을 처음에는 믿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오히려 바로 믿는 쪽이 이상하기는 하지.”

“내 말이 그 말이야.”

“그렇죠.”

옆에서 한마디 거드는 베네릭의 말에 다른 두 사람도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이야 강태한의 솜씨에 의심이 없는 세 사람이었으나, 그렇다고 이게 일반적인 일이냐고 하면, 그건 또 아니었으니까.

* * *

“흐음… 그러니까.”

조용한 분위기의 사무실.

그곳의 가장 안쪽 자리에 앉아 있던 남자는, 테이블에 올라온 서류를 다시 한차례 훑어보며 침음을 삼키더니,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동안 보고서에 올린 내용들은 전부 사실이다. 그리고 마지막 보고서가 올라오고 일주일이 지난 지금, 실제 상태는 훨씬 더 양호하다…….”

그는 들고 있던 서류를 살짝 아래로 기울이고, 고개를 들어 테이블의 맞은편을 쳐다보았다. 거기에는 다름 아닌 에드윈 코치가 앉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렇게 말하고 있는 건가?”

“예. 전부 사실입니다.”

“흐음.”

그는 다시 한번 침음을 흘리고는, 또다시 보고서를 훑어보기 시작했다. 이미 몇 번이고 확인한 내용이었지만, 이번에도 그는 애매한 표정으로 좌우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허허, 이것 참. 나는 아무리 보고 또 봐도 도저히 믿기가 어려운 이야기인데 말이지.”

이윽고 그는, 마이애미 헤비나이츠의 감독을 맡고 있는 알베르토 올리버는 이마를 한차례 쓸어 올리며 말했다. 이걸 어떻게 믿을 수 있겠냐는 듯, 살짝 장난기가 섞여 있는 목소리였다.

“생각해 봐, 에드윈. 우리가 캘리버의 치료에 신경을 안 쓴 게 아니잖아. 대충한 것도 아니고. 그렇지?”

“그렇죠.”

알베르토의 말에 그는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마이애미 헤비나이츠는 부상을 입은 팀의 에이스, 캘리버 스미스의 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했었다. 이는 생색이 아니라 지극히 객관적인 사실이었다. 캘리버 본인도 인정을 할 정도로 말이다.

미국에서 민간인이 이용할 수 있는 의료 시설 중 최고 수준의 시설들을 돌아다녔으며, 팀에서도 정보 수집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그만큼의 지원을 이미 해 줬었기에, 스태프 사이에서는 이미 사실상 결론이 나온 상황이었다. 캘리버 스미스가 더 이상 선수 활동을 할 수 없다고.

“물론 넌 거기에 완전히 동의하진 않았지만… 너도 가능성의 이야기를 하는 것뿐이었지. 그렇잖아?”

알베르토 감독의 말에 에드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거기에 동의하지 않은 것은 어디까지나 그의 신념적인 부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선수가 포기하지 않으면, 코치 또한 포기하지 않는다는 신념에서 말이다.

캘리버의 선수 생활은 사실상 끝이 났다.

스태프 모두가 인정했던 부분이고, 굳이 이쪽 업계의 사람이 아니라도 그의 상태를 보면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그런 상황이었다. 그랬는데…….

“그런데 어떻게 완치가 될 수 있냐는 말이야.”

“뭐… 우리한테 안 좋은 이야기는 아니잖아요?”

“그런 건 아니지! 나야 당연히 좋지 않겠어? 우리 팀의 에이스 쿼터백이 돌아오는 건데.”

알베르토는 과장된 몸짓으로 제스처를 취하며 말했다. 이탈리아계 미국인에 어울리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이해할 수 있는 상식선이라는 게 있잖아. 죽은 우리 할머니가 살아 돌아온다면? 당연히 기쁘겠지! 하지만 상식적으로 그게 말이 안 되잖아? 이해하기 전까지는 납득하기가 어렵겠지.”

그는 동의를 구하듯이 에드윈을 한동안 빤히 쳐다보았고, 에드윈은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베르토는 조그맣게 한숨을 내쉬었다.

“…약물 검사는, 해 봤고?”

“보고서에 같이 나와 있을 겁니다. 뭐 공식 테스트에 비하면 약식입니다만… 솔직히 약물과는 연관이 없습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캘리버 성격.”

“알지, 나도 잘 알지…….”

약물이라면, 특히 몸에 지장이 가는 약물이라는 죽어도 몸에 대지 않으려는 것이 캘리버다. 심지어는 미식축구 선수 대부분이 이용하는 진통제도 어지간해서는 사용하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그럼 정말 몸 좀 몇 군데 꾹꾹 눌러 줬다고 그게 다 나았다는 말이야?”

“몸 좀 몇 군데 누른 게 아니라, 마사지요.”

“그래, 마사지.”

의아한 표정으로 묻는 알베르토의 말에, 에드윈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뭐 일단… 마사지만으로 완치가 된 건 아닙니다. 나름 혹독한 재활 훈련을 병행하기는 했죠.”

“…환자 기준으로? 아니면 자네 기준으로.”

“제 기준으로 봤을 때죠.”

그렇다면 운동 강도가 제법 만만치 않았다는 뜻이기는 하다. 알베르토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에드윈의 이야기를 마저 들었다.

“다만 마사지의 영향이 절대적인 것도 사실입니다. 보고서에도 나와 있는 내용이지만, 안마를 받을 때마다 몸 상태가 눈에 띄게 좋아졌거든요.”

그 말에 알베르토는 슬쩍 시선을 내리깔아,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보고서를 쳐다보았다. 마침 해당 내용이 적힌 페이지가 맨 위에 올라와 있었다.

“…마사지가 아니라 사실은 뭐 사이보그 시술이라도 하고 있는 거 아냐?”

“뭐 그럼… 귀국할 때 적발이 되든가 하겠죠. 공항에서 금속 탐지를 하고 있지 않습니까.”

“뭘 또 흰소리에 진지하게 답하고 있어.”

에드윈의 말에 알베르토는 미소를 지으며 웃음을 흘렸다. 그러고는 오른손으로 턱을 괴며 말했다.

“결론을 내리자면, 우리의 에이스 캘리버는 한국의 신비로운 마사지 마스터를 만나 부상 은퇴의 위기에서 벗어났다. 뭐 그런 건가?”

에드윈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조금 거창하게 부풀린 느낌이 있기는 했지만, 내용 자체에는 틀림이 없었다.

“그럼 할 일은 하나뿐이네.”

알베르토는 실소를 머금으며 입을 열었다.

“뭡니까?”

“그 사람을 팀으로 한번 모셔 와야지.”

그렇게까지 뛰어난 솜씨를 가진, 아니 신기(神技)를 가진 사람이 있다면, 분명 다른 선수들에게도 뭔가 도움을 줄 수 있지 않겠는가.

“응, 나야, 알베르토. 바로 기획부 쪽에다 연락해서, 빠른 시일 내로 손님 한 분 섭외하고 모셔 올 수 있도록 하라고 해. 조건은… 음. VVIP로.”

그렇게 결론이 나온 즉시, 알베르토는 수화기를 들고서 연락을 하더니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NFL의 팀들은 감독의 힘이 꽤 센 편이며, 마이애미 헤비나이츠는 그중에서도 감독 재량의 폭이 넓은 편이다. 그리고 알베르토는 한번 생각이 들면 빠르게 일을 진행하는 타입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