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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 안마하신다-249화 (249/286)

천마님 안마하신다 249화

“오, 이게 누구야. 우리 최 원장님 아니야?”

천마안마의 안마사들을 위한 휴게실 안.

방금 막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온 강태한은, 소파에 앉아 있는 최성현을 보고서는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최성현은 슬쩍 고개를 들어 올리더니, 엄지손가락으로 본인을 가리키며 물었다.

“최 원장이면, 혹시 나 말하는 거냐?”

“그렇지. 여기 최 원장이 너 말고 또 누가 있겠어.”

“에휴. 원장은 무슨…….”

최성현은 피식하고 헛웃음을 터트리더니, 늘어지듯이 소파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그 모습에 강태한은 미소를 지으며 자연스레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왜, 오늘 수업하는 게 힘들었어?”

“안 힘들 수가 없지. 긴장도 엄청 됐고, 애초에 이런 걸 해 보는 게 처음이기도 했고. 그래서 낯설고…….”

당연하지 않냐는 듯이 말하는 최성현. 가만히 그 말을 듣고 있던 강태한은 싱긋 웃으며 넌지시 말했다.

“근데 그런 것치고 표정은 나쁘지 않은데?”

“…음, 그러냐?”

최성현은 잠시 말을 머뭇거리더니, 이내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 또한 동감하고 있는 부분인 모양이었다.

“사실 힘들긴 했는데, 뭐… 그리 나쁘지는 않았어.”

과연 강의를 잘하기는 한 건가, 이상하게 보이지는 않았을까. 그런 의문들을 가졌던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적어도 그런 의심들은 하지 않고 있다.

이유는 단순했다.

수업이 끝난 이후 수강생들의 질문을 받는 과정에서, 그들이 얼마나 집중해서 열심히 들었는지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와… 시범으로 하신 건 그냥 약식으로만 보여 주신 거구나. 이런 거 그냥 알려 주셔도 됩니까?’

‘앞으로 다른 수업에도 계속 나오시는 거죠?’

‘다음 번 원장님 수업, 꼭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최성현은 당시의 기억을 떠올렸다.

수업을 마치고 사무실에 황 실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을 때, 박의성이라는 사람이 질문을 하러 찾아왔었다.

처음에 질문을 하러 찾아온 건 그 한 명뿐이었으나.

누군가 질문을 하는 모습을 보고 다른 사람이 찾아오고, 그걸 보고 또 다른 사람이 찾아오기를 반복, 나중에는 아예 인파가 형성되어 거의 추가 수업 같은 분위기가 되어 버렸었다.

비록 여기저기서 질문이 들어오는 바람에 정신이 없기는 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기쁜 마음이 더 컸다. 질문의 대부분이 강의에 깊은 관심을 기울었어야 할 수 있는, 그런 내용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냥 나쁘지 않은 수준이 아닌 것 같은데?”

“그래, 임마. 내심 뿌듯하더라.”

캐묻는 강태한의 말에 최성현은 머쓱하게 웃음을 흘렸다. 열정적인 질문 공세 덕분에 의심이 걷히자, 거기에는 일의 보람과 만족감이 남아 있었다. 최성현은 쑥스러워하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사실, 솔직히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내가 잘 해 나갈 수 있을지 자신이 좀 없었는데… 적어도 열심히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벌써부터 잘하고 못하고를 따지는 것은 너무 이른 결론이겠으나, 앞으로 열심히 해 나갈 수 있을지 정도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적어도 이 일을 해 나가는 보람은 이미 느껴 봤으니까 말이다. 그런 최성현의 모습에 강태한은 팔짱을 끼며 말했다.

“내가 말했잖아. 생각보다 할 만할 거라고.”

“그러게. 네 말대로다.”

당연한 말이지만, 강태한이 최성현에게 학원장의 자리를 준 것은 그냥 준 것이 아니다. 개인적인 친분으로 인한 낙하산도 아니고, 맡길 만한 사람이 딱히 없어서 적당하게 세워 놓은 것도 아니다.

최성현이라면 충분히 이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그의 그릇에 대한 확신이 있었고, 능력적인 부분도 기간 내에 갖추게 만들 자신이 있었기에 아카데미를 설립한다는 계획도 진행시킨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충분히 만족스러운 수준이다.

물론 결과를 왈가왈부하기에는 너무 이른 시기일 수도 있겠으나, 때로는 첫 단추가 꿰어지는 것만 봐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때가 있는 법이다. 적어도 강태한에게는 그러했다.

“아, 그러고 보니 매일 가게에서 해 왔던 수련은 이제 어떻게 할래?”

그러다 문득 생각이 난 듯, 강태한이 물었다.

요 근래 휴일만 빼놓고 계속 가게에 남아 같이 해 왔었던 수련. 최성현이 학원장으로서 어지간한 상황에는 대처할 수 있도록, 그 정도 실력을 갖추게 하기 위해 강태한이 어거지로 진행시켰던 일과다.

덕분에 최성현의 기감은 폭발적으로 성장했고, 단전에 나름 내공이라 부를 수 있을 만한 정도의 기(氣)도 모아 냈다.

지극히 단편적인 생각을 무의식적으로 방출시킨 것에 불과했고, 아직 의도해서 사용할 수도 없기는 하지만, 어찌 됐든 혜광심어(慧光心語)를 사용한 전적도 있고 말이다.

“피곤하면 굳이 계속 안 해도 되긴 하거든.”

말하자면, 이미 충분한 목표치에 도달했고 목적 또한 훌륭히 달성한 상황이다. 더 이상 강행군을 이어 나갈 필요는 없는 것이고, 강태한도 굳이 강요를 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그거?”

다만 최성현의 대답은 빨랐다. 당연한 일이 아니냐는 듯, 고민하는 기색도 없이 곧바로 입을 열었다.

“당연히 계속해야지. 이제 좀 뭔가 보이기 시작하는, 그런 느낌적인 느낌인데.”

역시.

자기가 사람 보는 눈이 그렇게 나쁜 편은 아니다.

기대한 대로 나오는 최성현의 대답에, 강태한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두어 차례 고개를 끄덕였다.

* * *

“뭐야, 태한 씨. 아직 퇴근 안 했어?”

그로부터 시간이 좀 지난 후.

문을 열고 들어온 황 실장의 질문에, 강태한은 슬쩍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성현이한테 물어볼 게 좀 있어서요. 일도 생겼고.”

“일? 무슨 일.”

“같이 가게에 남아서 연습하던 거, 계속하려고요.”

“아하…….”

황 실장은 짧은 감탄사를 내뱉으며 자리에 앉았다.

“열심이구만. 수업을 해 보니 의욕이 더 생긴 건가?”

“뭐 그런 부분도 없지 않아 있겠지만… 그런 게 아니어도 계속할 것 같기는 했어요. 피곤해하면서도 의욕이 없었던 적은 딱히 없었거든요.”

하긴, 그게 최성현에게 어울리는 모습이기는 하다. 황 실장은 피식하며 실소를 흘리더니, 그 말에 동감하듯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뭐 어쨌거나 마침 잘됐네.”

그러고는 강태한을 쳐다보며 넌지시 말했다. 그에게 볼일이 있는 듯한 뉘앙스의 목소리였다.

“왜요. 무슨 일이라도 있어요?”

“무슨 일이라고 할 것까지는 아니고, 그냥 사적으로 물어보고 싶은 게 하나 있었거든.”

황 실장은 무릎에 팔꿈치를 올려놓고 앞으로 살짝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이제 얼마 안 남았잖아. 이번 분기 휴가.”

“그렇네요. 이제 얼마 안 남았죠.”

강태한은 테이블 위에 있는 달력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답했다. 직원 복지의 일종으로 천마안마에서 일하는 모두가 쉬는, 말하자면 가게에서 자체적으로 마련해 놓은 연휴 기간이다.

“근데 왜요?”

“딱히 계획 없으면, 같이 놀러 가자고 할까 했지. 지금 성훈 씨랑 안마사 몇 명이랑 같이 해서 낚시 겸 캠핑이나 갈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거든.”

황 실장은 히죽 웃으며 말했다.

“좀 오래되긴 했지만, 성훈 씨한테 캠핑카가 하나 있거든. 반쯤은 고물이지만 그래도 제법 유용해.”

“오… 그래요? 그건 몰랐네.”

캠핑카라. 거기에는 확실히 흥미가 있다. 강태한이 관심을 보이자 황 실장은 등받이에 등을 기대며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지난번에 듣기로 태한 씨도 캠핑이 취미라 했었고, 낚시도 되게 잘하는 것 같고… 저번에 갔던 영국 리조트에 비할 바는 못 되겠지만, 그래도 다 같이 가면 제법 재밌지 않을까 해서 말이야.”

“그런 자리, 원장이 따라가면 욕먹지 않나요?”

“뭐 어때, 오히려 더 좋지. 원장님한테 이것저것 심부름시킬 기회이기도 하고 말이야.”

황 실장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낄낄 웃음을 흘리며 말했고, 강태한은 싱긋 미소를 지었다. 다만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권유해 주셔서 감사하지만, 못 갈 것 같아요.”

“아, 그래? 뭔가 따로 계획이 있었나 보네?”

“예. 오랜만에 아버지랑 여행이나 갈까 해서요.”

그 말에 황 실장은 과장된 목소리로 짧은 감탄을 터트렸다.

“캬, 효자네, 효자. 아버지 참 좋으시겠다.”

“뭘 또 요란하게 그러세요.”

“효자 맞지 뭐. 그래서 어디로 가는데?”

“아버지가 저번에 해외에 한번 가 보고 싶어 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저번에 저 혼자 영국 다녀왔을 때도, 말하진 않으셨지만 내심 그런 눈치셨고.”

말로 직접 말씀을 하신 적은 없지만, 에둘러서는 몇 번 언급을 하신 적이 있다. 강태한은 머쓱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렇다고 제가 여행 좀 보내 드리냐고 그러면 딱히 생각 없다고 말씀하시고… 그래서 이번에 같이 다녀오게요.”

좀 더 정확히는, 당신께선 아들과 같이 해외여행을 가고 싶어 하시는 것 같았다. 평소에는 별 생각 없다고 했으면서, 정작 강태한이 같이 가자고 제안을 했을 때는 넙죽 받아들인 것을 보면 말이다.

“흐음… 근데 아직 계획은 없고?”

“네. 사실 미국 쪽을 생각하고 있긴 했거든요. 아버지가 라스베가스를 한번 꼭 가 보고 싶다고 하셔서.”

라스베가스라 하면 사막의 보석이라 불리는, 미국에서 제일 화려하다고도 할 수 있는 도시다. 황 실장은 두어 차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근데 하필 그날 비행기표가 애매하더라고요. 다른 공항들은 표가 좀 있는데, 라스베가스까지 가는 데에만 일정을 한참 써야 하는 수준이고요.”

“아. 그럴 때가 종종 있지.”

일찍부터 준비를 하면 이런 일이 거의 없지만, 중요한 비행기표가 없어서 여행 계획이 초기화되는 일이 종종 있다. 황 실장은 자기 일처럼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여행사 쪽 지인들한테 좀 물어볼까? 미리 잡아 놓은 표가 있거나 좀 복잡하더라도 환승 루트가 따로 있는 경우도 있거든.”

“그렇게 해 주시면 저야…….”

그때쯤이었다.

우우웅, 우우웅!

바지에서 울리는 진동음.

강태한은 진동을 끄기 위해 스마트폰을 슬쩍 꺼냈다가, 화면에 띄워진 이름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흐음… 그냥 전화를 거실 만한 분은 아닌데.”

“이 시간에 누군데?”

“에드윈 씨요. 그 왜, 캘리버 씨랑 같이 다니던 코치분 있잖아요.”

“에드윈… 아아, 그 키 크고 우락부락하신 분?”

천마 코스를 받은 건 아니지만 안마를 받으러 종종 왔었고, 호텔의 피트니스 센터에서도 두어 차례 마주친 적이 있었다. 기억을 떠올려 낸 황 실장이 물었다.

“근데 그 사람 미국으로 돌아간다고 하지 않았나?”

“그랬죠.”

“그런데, 그 사람이 왜?”

“글쎄요. 지금 물어보면 되겠죠. 통화 좀 할게요?”

일을 하고 있는 중이라면 바로 끊었겠지만, 지금은 업무를 모두 마치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중이다. 강태한은 눈짓으로 황 실장에게 양해를 구하곤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아, 강 선생님. 혹시 지금 통화 괜찮으십니까?]

한국에선 다소 늦은 시간이라는 걸 본인도 알고 있었는지, 에드윈의 목소리는 꽤나 조심스러웠다. 다만 강태한은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말씀하세요.”

[감사합니다, 통화를 길게 하기 좋은 시간은 아닐 테니… 빠르게 말하겠습니다.]

그는 한차례 목을 가다듬고는 곧바로 입을 열었다.

[다른 게 아니라, 혹시 관광도 하실 겸 미국으로 출장을 나오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하루… 아니, 반나절만 시간을 내주셔도 충분합니다만.]

“미국 출장 말입니까?”

[예. 시간만 내주시면, 저희 쪽에서 모든 준비를 다 해 놓겠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말이죠.]

강태한은 잠시 말을 멈추고는, 신기해하는 표정으로 한차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안 그래도 미국 여행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있던 참이었던 탓이다.

“…일단 자세히 들어 보죠.”

그는 관심이 생긴 목소리로 넌지시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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