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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 안마하신다-247화 (247/286)

천마님 안마하신다 247화

“자,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다들 수업 듣느라고 고생하셨어요.”

그렇게 시간이 지나, 수업도 끝이 났을 때.

최성현은 꾸벅 고개를 숙여 수강생들에게 인사를 건네고는 천천히 강습실을 나섰다. 처음 들어왔을 때보다는 비교적 자연스러운, 살짝 여유가 느껴지는 발걸음이었다.

“으하아아.”

허나 그렇게 보이는 건 겉모습뿐이었는지, 복도로 나오자마자 최성현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가슴에 손에 올린 채 한차례 숨을 고르더니, 서둘러 자리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잘했나? 잘한 것 같기는 한데.’

그동안 동료 안마사들에게 이것저것 알려 준 적이 많기는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같이 배우는 입장에서 조언을 해 주는 상황일 뿐이었다. 이렇게 사람들 앞에 서서 본격적으로 가르치는 건 오늘이 처음이다.

긴장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경험이 부족하다 보니 자신을 객관화시키기도 어렵다. 오늘 수업이 그럭저럭 괜찮았는지, 다소 애매한 수준이었는지 스스로 판단하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아… 처음에 말 좀 더듬었던 거 다 티 났겠지?”

복도를 걸어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한 최성현.

안쪽의 사무실에 들어선 그는, 새하얀 가죽 소파에 털썩 주저앉으며 혼잣말로 한탄을 내뱉었다. 당장 신경 쓰이는 부분들만 해도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래도 수업 내용 자체는 생각해 놨었던 대로 다 말한 것 같기도 하고… 이게 그나마 다행인가.’

그렇게 소파에서 한동안 멍을 때리던 최성현은, 한차례 얼굴을 쓸어 올리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냉장고를 열고 손님용 음료수를 하나 꺼내 뚜껑을 땄다. 그때쯤이었다.

“오, 우리 학원장님! 여기 계셨구만?”

닫아 놨던 문이 열리더니, 익숙한 얼굴이 한 명 안으로 들어왔다. 다름 아닌 황 실장이었다.

“…실장님이 여기 왜 있어요?”

“나? 너 보러 왔지! 우리 학원장님의 첫 수업이라는, 역사적인 순간을 말이야. 하하하!”

황 실장은 장난스레 웃음을 터트리며 과장된 제스처를 취했으나, 최성현은 거기에 반응하는 대신 고개를 돌려 시간을 먼저 확인했다. 한참 천마안마가 영업을 하고 있을 시간이었다.

“가게는 비워 놓고 와도 되는 건가?”

“비워 놓기는 무슨. 일하는 사람이 나 혼자냐?”

“아니, 그런 말이 아니라.”

놀리는 기색이 역력한 말에 최성현은 툴툴거리는 반응을 내비쳤고, 그에 황 실장은 피식 웃음을 흘리며 답했다.

“뭐 안마원 쪽도 일이 없지는 않지만, 지금 당장 중요한 건 이곳 아니겠냐. 확인할 일도 있고, 겸사겸사 너 잘하고 있나 보려고 왔지.”

천마안마의 안마는 강태한이 담당한다면, 사무적인 업무의 대부분은 황 실장이 담당한다. 비록 눈에 잘 띄는 일들은 아니지만, 만약 그가 없었다면 많은 부분에서 불편을 겪었을 것이다.

다만 천마안마는 이미 자리를 잡아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중이고, 때문에 업무도 바쁘거나 급한 것 없이 일상적인 것이 대부분이다.

반면 이곳은 이제 막 개업을 한 상황. 아무래도 이것저것 처리해야 할 업무들도 있고, 일이 많을 수밖에 없다. 신경을 쓰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어쨌거나, 수업하는 거 잘 봤다.”

때문에 안마원 쪽 일들은 다른 직원들에게 맡겨 놓고, 잠시 이곳에 와 있었던 것. 황 실장은 장난기 섞인 미소를 지으며 넌지시 말했다.

“무슨 수업을 같이 들은 것처럼 말하네요.”

“같이 들었는데? 중간부터긴 했지만.”

“뭐야, 진짜로요?”

“모르는 척해 주는 건 줄 알았는데, 진짜로 모르던 거였나? 중간쯤에 뒷문으로 몰래 들어와서 들었잖아. 문 쪽 맨 뒷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황 실장의 말에 최성현은 어이가 없는 표정을 지었다. 황 실장이 그랬다는 것도 그렇지만, 자기가 그걸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것도 어이가 없었던 탓이다.

긴장한 상태로 수업을 하고 있었던 탓인지 누가 들락거렸는지도 제대로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하아… 그래서, 어땠어요?”

다만, 어찌 보면 오히려 잘된 일일지도 모른다. 최성현은 짧게 한숨을 내쉬고는 넌지시 물었다.

“뭐가?”

“저 오늘 한 수업이요. 괜찮았어요?”

스스로 판단을 내리기 힘들 때는,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면 그만이다. 최성현은 질문을 건네고는, 조심스레 황 실장의 눈치를 살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리 자신이 있는 편은 아니었다.

“오늘? 잘했잖아.”

“…잉? 그, 그래요?”

“어. 사람들도 대개 집중하는 편이었고.”

다만 황 실장의 반응은 최성현의 예상과는 다른 것이었다. 좀 놀리거나 아쉬운 소리가 나올 줄 알았는데, 담담한 목소리로 칭찬이 나온 것이었다.

“솔직히 너보다 경력이 많은 사람도 꽤 있었잖아. 나이는 뭐 말할 것도 없고. 그래서 분위기가 좀 어수선할 줄 알았는데… 그런 것도 없더라.”

그리 바람직한 태도는 아니지만, 아무래도 사람은 상대방이 자기보다 못하다고 여겨지면 살짝 무시하거나 깔보는 성향이 있다.

그것은 강의를 진행하는 강사라 해도 마찬가지다. 아니, 오히려 누군가를 가르쳐야 하는 입장이기에 더 깐깐한 잣대가 적용될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최성현은 강의를 하기에 그리 유리한 입장은 아니다. 이 바닥 경력이 그리 긴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나이가 많은 것도 아니었으니까.

때문에 황 실장은 내심 걱정을 하고 있었고, 사실 몰래 수업에 들어가 봤었던 것도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들어갔었던 건데…….

“다들 열심히 듣고 있더만 뭐. 너도 긴장을 좀 하긴 했지만, 하려는 말은 다 하는 것 같았고.”

그게 괜한 우려였다는 듯이 강의실 내부의 분위기는 상당히 훌륭한 편이었다.

의외였던 것은, 경력이 꽤 많이 쌓여 있는 베테랑들일수록 오히려 최성현의 수업에 집중을 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원래는 ‘저런 놈이 날 가르친다고?’라며 불만스러워할 거라고 예상했었는데 말이다.

특히나 중간에 최성현이 잠깐 시범 삼아 혈을 잡는 법을 보여 줬을 때, 그때의 집중력은 장난이 아니었다.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복권 번호를 알려 준다고 해도 그렇게 집중을 하진 않았을 것 같을 정도다.

“이번에도 태한 씨가 말한 대로였지, 뭐.”

“태한이요? 태한이가 뭐라고 했는데요.”

황 실장은 담담한 목소리로 답했다.

“수강생들 뽑을 때, 내가 그랬었거든. 이미 경력이 많이 쌓여 있는 사람들은 너랑 우리 안마사들이 가르치기 어렵지 않겠느냐고.”

“…그래서요?”

“태한 씨는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고 하더라. 경력만 있고 실력이 없는 사람이면 그럴 수도 있는데, 실력도 갖추고 있는 사람은 오히려 못 들어서 안달이 날 거라고 말이야.”

경력이 많은 사람일수록 더 절실할 거라나.

그리고 실력이 없는 사람은 애초에 면접에서 강태한이 떨어트렸다. 당시의 황 실장은 이해하지 못하고 그러려니 했었지만, 이렇게 수업 상황을 보니 무슨 말을 했었던 건지 대강 이해할 수 있었다.

“어쨌거나, 수업이 완벽하지는 않았어도 네가 걱정을 할 정도는 아니었다는 거지.”

“휴우… 그래요?”

황 실장의 말에 최성현은 재차 한숨을 내쉬었다. 다만 근심에 차 있었던 방금 전의 것과 달리, 이건 안도의 의미가 담긴 한숨이었다. 그 반응에 황 실장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게 긴장하고 있었냐?”

“그럼 긴장이 안 되겠어요? 그냥 강사도 아니고 학원장인데.”

살짝 짜증 섞인 대꾸에 황 실장은 실소를 터트렸다. 불만스레 말하는 것치고는 제법 성실하게, 그것도 꽤 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뭐 어쨌거나, 학원장으로서 열심히 하고 이따가 저녁에 가게에서 보자고.”

“하아… 좀 지쳤는데.”

“네가 한다고 한 거잖아. 예약까지 잡혀 있으니 이제 와서 무를 수도 없다고?”

황 실장의 말에 최성현은 늘어지듯 소파 등받이에 등을 기대며 긴 숨을 내쉬었다.

이제 이곳의 학원장이 되었으나, 그렇다고 안마사를 그만둔 것은 아니다. 이곳에서의 일정이 끝나면 또 저녁에 안마 예약이 잡혀 있는 최성현이었다.

“앞으로 학원 일 있는 날은 쉴래요.”

“그래그래. 예약받은 날까지는 다 하고 말이야.”

“그럼 두 달은 못 한다는 거잖아요…….”

조그맣게 한숨을 내쉬는 최성현.

똑똑.

그쯤, 누군가 또다시 문을 두드렸다.

“누구세요?”

[실례합니다. 수강생인 박의성이라고 합니다.]

“…아, 네.”

생각지 못한 방문인 탓일까, 한 박자 늦게 나오는 최성현의 대답이다.

“어떤 일이시죠?”

[저, 다른 게 아니라. 아까 보여 주셨던 시범에 대해서 질문할 게 있는데, 혹시 시간을 좀 내주실 수 있나 해서요.]

최성현은 살짝 놀란 눈으로 황 실장을 쳐다봤다. 그 눈을 마주 보며, 황 실장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내가 잘했다고 했잖아.”

질문은 수업의 반응이 좋았다는 지표 중의 하나다. 듣는 사람이 집중을 하지 않으면, 질문할 것도 없으니까 말이다.

[곤란하시면 다음에 알려 주셔도 괜찮습니다만.]

“아, 아닙니다, 아닙니다. 잠시만요!”

의외의 상황에 잠시 벙쪄 있던 최성현이었으나, 그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며 문고리를 향해 걸어갔다. 그의 얼굴은 짙은 화색을 띠고 있었다.

* * *

“…야, 저기 좀 봐 봐.”

“왜?”

“저기 앉아 있는 사람, 베네릭 브라운 아냐?”

라이너 호텔의 레스토랑 홀.

점심과 저녁에는 푸짐한 만찬이 그리고 아침에는 조식에 어울리는 가벼운 메뉴들이 뷔페식으로 차려지는 공간이다.

지금은 호텔의 손님들이 조식을 즐기는 시간.

다만, 식당 안쪽을 오고 가는 손님들의 시선은 유독 한 테이블에 집중되어 있었다. 다름이 아니라 그곳에 앉아 있는 손님, 베네릭 브라운 때문이었다.

“그냥 비슷한 사람 아니야?”

“그렇다기에는 얼굴이 너무 비슷해. 분위기도.”

“그런가……?”

“그러고 보니 SNS에서 본 적 있는 것 같아. 지금 한국에서 머무르고 있는 중인 것 같다고.”

일상적인 복장을 하고 있긴 했으나, 명색이 할리우드 스타인 만큼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 수밖에 없다.

다만 그 시선 속에서도, 베네릭은 태연한 모습으로 신문을 보며 본인의 식사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야, 내가 좀 구석 자리에 잡으라고 했잖아.”

그러던 와중, 누군가가 그의 맞은편에 접시를 내려놓으며 퉁명스레 말했다. 베네릭은 상대방의 얼굴을 흘낏 쳐다보더니, 다시 신문을 읽으며 말했다.

“이보르, 네가 한번 봐 봐. 구석에 자리가 있나.”

“그래도 비교적 구석진 자리가 있잖아. 이렇게 한가운데에 있는 자리에 앉아서 시선을 끌어야겠냐고.”

남자, 이보르 깁슨은 주변을 보라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며 말했다. 그러자 베네릭은 어깨를 으쓱이며 담담한 말투로 말했다.

“구석에 앉는다고 우리한테 투명 망토가 씌워지는 건 아니잖아, 친구. 구석에 앉았다고 우리를 사람들이 못 알아본 적이 있나?”

“아니, 뭐… 그야 그렇기는 한데.”

틀린 말은 아니다. 평소 사람들 눈을 피해 구석 자리에 앉기는 하지만, 그래도 항상 알아보는 사람은 있었던 탓이다.

“하아. 이럴 줄 알았으면 다른 곳에다가 방을 구하라고 하는 거였는데.”

“아니지. 네가 그렇게 말했어도 여기다가 자리를 잡았겠지. 안마를 받으려고 한국에 남은 건데, 천마안마로 갈 때 여기보다 더 좋은 숙소가 있겠냐고.”

이보르는 뭐라 말을 꺼내려다, 이내 삼키고는 머리를 긁적였다. 확실히 틀린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영화 관련 스케줄로 한국에 방문했었던 베네릭 브라운. 본래라면 진즉에 귀국을 하고도 남았겠으나, 그는 앞으로 한 달가량을 더 이곳에서 머무르기로 결정한 상태였다.

그 이유는 단순했다.

천마안마에서 안마를 받기 위해서.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오랫동안 안고 있었던 불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곳에 남아 있는 중이었다.

“그래서, 병원에서는 뭐라더냐? 오늘 결과 나왔지?”

“확실히 좋아졌다고 하더라. 미국에서 보내 준 지난 검사 결과에 비해선 말이지. 좀 자세하게 말해 줄까?”

“아니… 괜찮아.”

베네릭의 말에 이보르는 천천히, 그러면서도 단호한 말투로 거절을 표했다.

비록 먼저 물어보긴 했으나, 그건 친구에 대한 걱정이지 친구의 생식기능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듣고 싶었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적어도 이제 막 아침 식사를 하려는 지금은 말이다.

“오, 두 분도 지금 식사하시는 겁니까?”

“아, 캘리버! 오랜만이네요.”

화제를 돌리려던 찰나, 때마침 나타난 이에게 이보르는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마찬가지로 이곳에서 장기 투숙을 하고 있는, NFL의 프로 미식축구 선수 캘리버 스미스였다.

“혹시 합석해도 괜찮겠습니까?”

“물론이죠!”

대화의 분위기를 한번 환기시키려는 참이었기에, 이보르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거리며 캘리버가 앉을 의자까지 직접 빼 주었다.

“캘리버 씨는 베이컨을 참 좋아하시네요.”

“후후. 미국인은 아침에 무조건 베이컨 세 장 씩은 먹어 줘야죠. 아, 혹시 티슈 좀 주시겠습니까? 오는 길에 우유를 살짝 흘렸거든요.”

“그러고 보니 어제는 괜찮으셨습니까? 사우나에서 좀 힘들어 보이셨는데.”

“아이, 당연히 멀쩡했죠. 그 정도 땀 좀 흘렸다고 안 괜찮으면 덩치값 못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런 것치고는 현기증이 좀 나신 것 같던데?”

다만 세 사람 사이에서는 특별한 상황이라기보다는 일상적인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었다. 사이 자체가 제법 가까운 느낌이라고 할까.

본래라면 각자의 일이 바빠 마주칠 일이 거의 없었을 세 사람이다. 각자의 활동 영역이 다르고, 베네릭과 이보르도 서로 친구이긴 하지만 베네릭이 미국으로 떠난 이후로는 별로 만난 적이 없었으니까.

“혹시 이따가 시간 좀 되십니까? 이 친구랑 같이 여의도 공원으로 산책이나 살짝 다녀올까 하는데, 괜찮으면 같이 가시죠.”

“아, 저야 당연히 좋죠. 몇 시에 갑니까?”

허나 천마안마라는 공통된 용건을 가지고 이곳에 머무르게 된 지금, 세 사람 사이에서는 자연스레 인연이 깊어져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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