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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 안마하신다-223화 (223/286)

천마님 안마하신다 223화

“이름을 몇 번 본 적이 있기는 한데…….”

김세후는 지도에 찍혀 있는 ‘천마안마’라는 글자를 쳐다보며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다. 솔직히 말해, 그녀는 평소 안마원에 별 관심이 없는 편이었다.

딱히 몸에 이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좀 피곤해서 몸이 뻐근해지더라도 소속사 내에 고용된 안마사분이 따로 계신다. 굳이 다른 안마원이나 안마사를 찾지 않아도 무료로 안마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굳이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었던 상황.

특히나 배우나 연예인의 입장에선 아무 가게나 들락거리기가 어려운 탓도 있었다.

허나 그럼에도 천마안마라는 단어는 어디선가 본 기억이 있다. 아마 SNS에서 봤었던가. 주변 연예인들의 잡담 중에 오간 적도 있는 듯하다.

“하지만 이렇게 유명한 곳이었을 줄이야.”

별 관심이 없는 분야임에도 이야기가 들려온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그만큼 해당 분야에서 높은 인지도를 갖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때문에 어느 정도 인기가 많을 것이라, 그렇게 추측은 하고 있었는데…….

전화로 한번 문의를 해 보려니 계속 통화 중인 게 무슨 은행 고객센터 수준이었고, 예약 어플을 켜고 보니 예약을 잡는 것 자체가 상당히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특히나 유세아가 말한 천마 코스 같은 경우에는 세 달 뒤에나 예약이 가능한 수준. 그것도 평일 때의 이야기고, 주말 예약은 사실상 거의 반년 뒤쯤에나 자리를 찾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런 상황에서 당장 며칠 안의 예약 자리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굳이 따지자면 취소된 자리를 구하는 것 정도? 허나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였고, 설령 그렇게 자리가 난다 하더라도 다른 손님과의 경쟁으로 예약을 쟁취해야 하니 더욱 어려운 일이다.

다만 그럼에도 이렇게 빌딩 앞까지 찾아온 것은, 어쨌거나 예약 자리를 구했다는 것. 그녀가 자리를 구할 수 있었던 건 순전히 유세아 덕분이었다.

‘그럼… 내가 예약해 놓은 자리가 하나 있는데, 나 대신에 네가 들어가. 그렇게 하면 되겠다.’

그녀가 예약해 둔 자리를 김세후에게 양보해 줬으니까. 이미 예약 현황을 확인한 터라 부담스러웠으나, 유세아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선뜻 권했다.

‘언니, 정말 제가 가도 돼요?’

‘나는 상관없어. 어차피 태한… 아니, 원장님한테 이미 자주 받기도 했고.’

사실 유세아의 입장에선 그럴 만도 했다.

강태한과는 자주 만날 수 있는 입장이고, 그때마다 종종 안마를 해 주곤 했었으니까. 어딘가 불편한 곳이 있으면 자기가 말을 하지 않아도 어느새 다가와 안마를 해 주는 강태한이다.

말하자면 따로 안마를 받을 수 있다고 할까.

그렇게 알아서 풀어 주는 만큼 몸에 불편한 곳도 딱히 없고, 솔직히 말하자면 ‘안마를 받으려’ 예약을 해 둔 게 아니라 ‘강태한과 한 번 더 만나려고’ 예약을 잡아 놓은 쪽에 가까웠다.

그렇게까지 절실한 느낌은 아니라고 할까

물론 굳이 예약을 잡아 뒀었던 만큼 유세아에게도 나름 의미가 있고 꽤 기대도 하고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뭐, 생판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주변 지인이 필요로 한다면 양보해 주지 못할 것도 없다. 특히나 김세후라면 더더욱 그렇다.

김세후에게 유세아가 본받고 싶은 선배이듯, 그녀에게도 김세후는 친한 동료이자 예쁜 후배였으니까.

‘세아 언니한테는 어떻게 보답을 해야 하나…….’

허나 김세후의 입장에서는 그런 배경을 당연히 알 수 없다. 그녀가 보기엔, 그냥 이토록 얻기 힘든 자리를 선뜻 양보해 준 것으로 보일 뿐이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 그녀도 몇 개월 전부터 미리 예약을 해 놓았던 것이리라. 그걸 이렇게 내주다니, 정말 바닥이 보이지 않는 선의라 할 수 있으리라.

‘그만큼 만족스러웠으면 좋겠네.’

그렇게 양보로 받아 낸 기회인 만큼, 그만큼의 만족도가 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떠올리며, 김세후는 빌딩 안쪽으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 * *

“어떻게, 식사는 입에 좀 맞으셨습니까.”

라이너 빌딩 안쪽에 위치해 있는 라이너 호텔.

그 안쪽에 위치해 있는 이태리 레스토랑에서, 누군가가 강태한에게 넌지시 말을 걸었다. 강태한은 그를 바라보며 싱긋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너무 잘 먹었네요. 만족스럽습니다.”

“만족하셨다니 다행이네요.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전 식사를 대접받았을 뿐인데요.”

그는 다름 아닌 호텔의 총지배인 곽상영. 그가 강태한에게 감사 인사를 건네자, 강태한은 머쓱한 표정으로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그 말마따나 이 자리는 곽상영이 강태한을 초대하여 식사를 대접하는 자리일 뿐이었다. 둘 중 누군가가 감사를 한다면, 그건 아마 강태한의 몫이리라.

“게다가… 이렇게 저희 직원들까지 초대해 주시고.”

그러면서 강태한은 슬쩍 주변 테이블을 둘러보며 말했다. 주위에는 안마사를 비롯한 천마안마의 직원들이 가득 둘러앉아있었다.

선약이 있는 인원을 제외하면, 지금 출근해 있는 모든 인원이 이곳에서 같이 식사를 한 것. 그들 또한 강태한과 함께 초대를 받아 이곳에 온 상황이었다.

“사실상 곽 지배인님께서 천마안마 회식을 시켜 준 셈이나 다름없는 거지.”

“그것도 호텔 레스토랑에서 말이죠.”

옆에 앉아 있던 황 실장이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입을 열자, 맞은편에 있던 최성현도 입을 열었다.

점심부터 호텔 이태리 레스토랑에서 다 같이 모여 식사라. 꽤나 호화롭다고 할 수 있으리라.

“게다가 요즘 여기 좀 유명해진 것 같더라고요.”

“맞아요. 예전이랑 많이 달라졌다고 하던데.”

“하하… 그렇습니까. 열심히 한 보람이 있네요.”

살짝 띄워 주듯이 말을 하는 두 사람. 그 말에 곽상영은 쑥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웃음을 흘렸다. 두 사람이 듣기 좋은 말을 꺼낸 것은 사실이었으나, 마냥 없는 말을 지어낸 것은 아니었다.

“사실은 저번 달쯤부터 대대적으로 개편을 한번 했는데, 다행히 호평을 받고 있기는 합니다.”

헤드셰프를 바꾸고, 인력도 보충하고, 인테리어도 한번 손을 봤다. 이는 비단 이곳뿐만 아니라 다른 식당, 객실, 시설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 이유는 단순했다.

본사에서 새로운 예산이 대폭 할당되었기 때문.

페르모 가이드 3성에 오르긴 했으나, 천마안마 덕분에 받은 평가이자 호텔 자체의 수준은 아무래도 부족한 편이라는 내부 분석이 나온 탓이었다.

사실 그게 자연스러운 것이긴 했다.

애초에 라이너 호텔은 최고급 호텔을 목표로 만들어진 곳이 아니라, 여의도 인근에 비즈니스 겸 휴양 목적으로 찾아오기 좋은 곳을 콘셉트로 만든 호텔이었으니까.

다만 어찌 됐거나 페르모 가이드 3성을 받고 많은 주목도 받게 되었으니… 페르모 3성에 준하는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호텔 자체에 투자를 좀 더 늘리자는 것이 본사의 결정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 또한 다행히 성공적이어서, 호텔에 대한 평가도 나날이 좋아지는 중이었다. 그렇다 보니, 이곳의 총지배인인 곽상영의 표정이 밝아 보이는 것도 새삼스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게다가… 강 선생님 덕분에 호재도 좀 생겨서.”

“저 말입니까?”

“예. 그, 얼마 전에 캘리버 선수와 에버튼 FC 선수분들이 안마원에 찾아오지 않았습니까?”

“…그렇죠?”

캘리버는 지난번 횡단보도에서의 인연으로 만나 도움을 줬던 외국인이고, 에버튼 FC 선수들은 불과 며칠 전에 단체로 찾아왔었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는 강태한.

그 반응에 곽상영은 빙긋 미소를 지으며 살짝 신이 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캘리버 씨도, 에버튼의 선수분들도 모두 저희 호텔에 숙소를 잡으셨거든요. 특히 캘리버 선수랑 이보르 선수는 장기 투숙을 하고 계시고요.”

이번에도 강태한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 보니 확실히 그럴 만도 하다. 캘리버는 치료 기간이 오래 걸려 한국에 머무르는 상황이고, 에버튼 FC 선수들은 다들 영국으로 돌아갔지만 이보르는 명상에 조언을 얻기 위해 좀 더 남아 있기로 했다.

그들이 어디에 숙소를 잡았는지는 듣지 못했다.

허나 이 빌딩 20층에 천마안마가 있고 그 아래에 꽤 괜찮은 대형 호텔이 존재한다면, 그곳에 머무르는 것이 자연스럽고 합리적인 선택이 될 것이다.

“흐음… 그런데요?”

“덕분에 자연스레 홍보가 되었다, 이런 말이죠. 게다가 요즘에는 프로야구 구단에서도 자주 찾아오시고요.”

특정 유명인이 어느 호텔에 머무른다는 것은, 그 자체로 꽤나 큰 홍보가 된다. 단순히 유명인을 따라가는 심리뿐만 아니라, 그 사실 자체로 일정 수준 이상의 퀼리티가 보장된다는 느낌이니까.

그럼에도 호텔들이 ‘누가 머무르다 갔다’라고 동네방네 떠들지 않는 것은, 그보다 개인정보를 유출하지 않는다는 신뢰를 더 우선시하기 때문일 뿐이다.

허나 해당 유명인이 스스로 ‘나 어디에 묵고 있다’라며 알리고 홍보를 해 준다면?

그 인물이 뭔가 논란이 있는 인물이 아닌 이상, 호텔 측에서는 따로 홍보비라도 쥐어 주고 싶을 정도로 반가운 일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캘리버 선수와 에버튼 FC 선수들의 투숙은 라이너 호텔에 정말로 많은 홍보 효과를 가져다주고 있었다.

캘리버는 간간이 올리는 왓튜브 영상들을 통해서 간접 홍보를 톡톡히 해 주고 있었고, 에버튼 선수들은 얼마 전까지 호텔에서의 일상들을 SNS에 하나하나 올려 주고 있었으니까.

툭 까놓고 말하자면, 억 단위의 홍보비를 준다고 해도 해 줄까 말까 한 수준이다. 근데 유명인들이 호텔에 머무르는 것도 모자라 자발적으로 홍보까지 해 준다?

이건 말 그대로 호박이 넝쿨째 담을 넘고 들어오는… 아니, 꿀단지가 알아서 굴러 들어오는 일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그에 비하면 이건 정말 약소하고도 약소한 보답이니, 부담 없이 생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이곳에 있는 강태한 덕분이다.

물론 곽상영은 본인이 운영하는 호텔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허나 그 유명인들이 이곳에 찾아온 이유는, 그냥 오로지 천마안마 덕분이다. 그 정도는 어렵게 생각하지 않아도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그러니 고마움을 느끼는 것도 당연한 일.

아니, 단순히 고마운 마음을 떠나서 반드시 잡아야 하는 협력자이기도 하다. 곽상영은 싱긋 미소를 지으며 깍듯한 인사를 건넸다.

“아, 그러고 보니 디저트는 무엇으로 하시겠습니까? 제가 말씀드리긴 뭣하지만, 이번에 들어온 파티시에의 솜씨가 제법 훌륭합니다.”

그러다 문득 생각났다는 듯, 곽상영은 옆에 있던 웨이터에게 손짓을 하며 말했다.

곧바로 메뉴판을 들고 다가오는 웨이터. 다만, 강태한은 슬쩍 시간을 확인한 다음에 정중하게 거절을 표했다.

“죄송하지만, 그건 다음에 먹도록 하겠습니다.”

“아… 올라가 보셔야 하는군요.”

“네. 게다가 이번에 오는 손님은, 제 지인이 따로 부탁한 사람이라서요.”

“그렇다면, 다음에 다시 대접하도록 하겠습니다.”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며 싱긋 미소를 짓는 강태한. 그런 그에게 곽상영 또한 미소를 짓고는, 길을 터 주며 가볍게 인사를 건넸다.

“다른 분들은 천천히 드시고 올라오세요. 아직 시간이 그렇게 촉박한 건 아니니까요.”

강태한은 그 말을 남기고 먼저 식당을 나섰다. 그로부터 잠시 후, 잠시 정적이 흐르는 공간 속에서 황 실장이 넌지시 입을 열었다.

“원장이 먼저 일어나면 누가 천천히 먹어…….”

“에휴, 내 말이요.”

천천히 디저트까지 먹고 올라오라고 말을 남긴 강태한이었으나, 그 말을 그대로 듣는 사람은 없었다.

물론 강태한이 평소 직원들을 압박하거나 핀잔을 주는 스타일은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그와 반대되는 스타일이다.

하지만 그래서 이런 상황일 때 오히려 염치와 양심이 찔린다고 해야 할까, 잘해 줄 때 더 잘하자는 분위기가 깔려 있다고 해야 할까…….

“그, 지배인님, 덕분에 맛있게 먹었습니다.”

“다들 일어나시게요?”

“하하, 예, 뭐…….”

결국, 디저트는 다음 기회로 미루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천마안마 일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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