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마님 안마하신다 222화
“…너 한하 팬 그만뒀냐?”
“아뇨? 그럴 리가요.”
황 실장의 말에 최성현은 곧바로 답했다.
“요즘 경기까지 챙겨 보진 않지만, 그래도 야구 팀 중에 누굴 응원하냐 하면 전 항상 한하 팬이죠.”
아무래도 몇 시간씩 이어지는 경기를 매일 챙겨 보기는 힘들어 주요 장면만 찾아보거나 뉴스로 소식만 접하고 있지만… 그건 단지 시간에 여유가 없어서일 뿐, 딱히 팬심이 사그라진 것은 아니었다.
어렸을 때부터 응원해 온 정이 있다고나 할까.
지금 그가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 팀은 프리미어리그의 에버튼 FC였지만, 가장 애착이 가는 팀은 언제나 KBO의 한하 호크스였다.
“그럼… 응원하는 팀의 성적이 좋으면 좋아해야 하는 거 아니냐? 상식적으로.”
“아니, 그야 당연히 좋죠. 그렇긴 한데…….”
최성현은 황 실장 쪽으로 내밀고 있던 스마트폰을 아래로 내리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기쁜 기색과 애매한 표정이 한데 섞여 있는, 그런 묘한 인상이었다.
“제가 살면서 한하가 이렇게 잘나가는 걸 본 적이 그리 많지 않아서, 좀 낯설기도 하네요. 시즌 초반에 힘 다 쓰고 망하는 건 아닌가, 걱정되기도 하고.”
한하 호크스는 솔직히 말해, 오랫동안 리그에서 하위권에 머무르던 팀이다. 팬들의 입장에서도 승리보다 패배가 더 익숙한 느낌이라고 할까.
설령 두 자릿수의 연패를 하더라도, ‘뭐 그럴 수도 있지’라고 넘어가는 것이 한하의 팬인 것이다.
물론 한하가 항상 최하위권에만 있었는가, 하면 그건 또 아니다. 가을 야구에 나간 적도 몇 번 있다.
하나 그럴 때도 한하는 정말 치열하게 기어 올라와 시즌 막바지에 자리를 차지하는 느낌이지, 무난하게 순위를 먹는 그런 느낌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렇게, 시즌 초중반부터 3위의 자리에 안착해 있다니. 팬으로서 정말 기쁜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뭔가 어색한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뭐… 그럴 수도 있겠네.”
황 실장은 적당히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는 말투로 말했다. 다만, 표정 한구석에 애매한 느낌을 감추지는 못하고 있었다.
‘3위도 그렇게 엄청 높은 성적은 아니지 않나?’
물론 좋냐, 안 좋냐를 따지면 좋은 성적이다. 어쨌거나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간다는 뜻이니까 말이다.
하나 이렇게까지 호들갑을 떨 만한 성적인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시즌이 진행되다보면 얼마든지 뒤바뀔 수 있는 성적이다. 애당초 시즌 초반부에는 순위가 워낙 자주 바뀌어서 큰 의미가 없기도 하고.
지난 시즌 후반쯤부터, 특히 선수들이 강태한에게 안마를 받고 난 이후로 한하가 엄청나게 큰 폭으로 성장을 해낸 것은 사실이다.
다만 그렇다고 그 차이가 아직까지도 이어지고 있는가, 하면 그것도 좀 애매한 느낌이다.
이번 시즌부터는 다른 팀에서도 천마안마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전체적으로 상향 평준화가 이뤄졌으니까.
실제로 어쨌거나 위에는 두 팀이나 있고, 자세히 보면 바로 아래에 있는 팀들과도 그렇게 큰 차이가 있지는 않았다. 말하자면 언제든 뒤바뀔 수 있는 위치라고나 할까.
“실장님, 지금 고작 3위로 유난 떤다고 생각했죠?”
“어? 어… 아니?”
얘가 기감인가 뭔가가 트이더니, 이제 사람 생각까지 읽어 내는 걸까. 애써 태연한 목소리로 답했으나, 황 실장의 얼굴은 화들짝 놀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아니는 무슨. 얼굴에 다 써 있구만.”
“하하… 솔직히 그렇게 생색을 낼 정도의 성적은 아니잖아? 순위가 별 의미가 없는 시기이기도 하고.”
황 실장의 말에 최성현은 작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고는 팔짱을 끼며 넌지시 말했다.
“하긴, 실장님은 유니콘즈 응원했었죠.”
“유니콘즈 응원하는 게 왜?”
최성현은 납득이 간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부유한 자는 빈곤한 자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고 유니콘즈는 대부분의 시즌에서 1위를 지켜 내는, 명실상부한 리그 최상위권 팀이다. 두 팬덤 사이에서는 여러모로 격차가 있을 수밖에 없다.
당연한 일이다. 한하 팬들의 소원인 가을 야구, 포스트시즌 진출마저도 유니콘즈의 팬들에게는 그냥 연례행사일 뿐이니까 말이다.
“됐어요. 유니콘즈 응원하는 사람이 한하 팬의 마음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승리라는 개념에 있어서의 빈부 격차.
어차피 설명한다고 해서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최성현은 씁쓸한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 * *
“흐음…….”
우거진 초목으로 둘러싸여 있는 산속 깊은 곳.
등산객은 물론이거니와 심마니도 좀처럼 발을 디디지 않을 것 같은 이곳에, 한 남자가 바위에 걸터앉은 채 침음을 흘리고 있었다.
‘대충 이 주변에 있을 것 같기는 한데.’
그 남자는 다름 아닌 강태한.
주변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게 가벼운 옷차림을 하고 있는 그는, 잠시 발걸음을 멈춘 채 주위를 살피고 있는 중이었다.
다만 주위를 살펴보고 있는 것은 눈이 아니었으며, 그가 찾고 있는 것도 물질적인 것이 아니었다.
발을 타고 주변으로 뻗어져 나가고 있는 그의 기감. 그리고 그 기감으로 찾고 있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이 주변의 산들을 잇고 있는 용맥(龍脈)의 존재였다.
‘…찾았다.’
기(氣)라는 것은 본래 자연에 존재하는 것이다.
공기처럼 허공을 떠돌기도 하고, 사람을 비롯한 모든 생명에 생기(生氣)라는 형태로 깃들어 있기도 하며, 땅속에 깃든 정기가 큰 줄기를 이뤄 강처럼 흐르기도 한다.
거기서 후자의 것을 일컫는 말이 지맥(地脈).
그중에서도 산을 따라 흐르는 지맥을 용맥(龍脈)이라 부르며, 용맥에서는 일반적인 지맥들보다 더욱 정순하고 짙은 농도의 정기가 흐르기 마련이다.
하지만 결국 기의 농도가 옅은 현대에서는 지맥의 규모가 작을 수밖에 없고, 흐르는 양도 빈약할 수밖에 없다. 절대적인 기의 양 자체가 적은 것이다.
흐르는 물이 부족하면 굵은 강줄기도 작은 천으로 전락하고, 끝에 가서는 말라붙어 버리는 법이다.
더군다나 그런 곳에 사람들의 발길까지 자주 들락거리게 된다? 애써 기껏 모아 놓은 영기마저도 흐트러지기 마련이다.
물론 이 주변은 다르다.
신준호와의 인연으로 알게 되어, 이전부터 강태한이 꾸준히 영약과 약초를 캐 오고 있는 이곳.
계룡산과 칠갑산의 맥이 이어져 있어 두 영산의 기운이 어우러지는 곳이며, 사람의 발길 또한 거의 닿지 않아 영기가 충만하게 모이는 곳이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영원히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산은 강태한이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넓었고 아직도 절반가량은 손도 대지 못했지만, 이 또한 언젠가는 고갈될 것이 분명했으니까.
그래서는 곤란했다.
일신(一身)의 무력을 되찾겠다는 목적은 이미 달성했으나, 아직 영약은 필요했으니까. 약차를 담글 것도 필요했으며, 안마사들의 영기를 보충해 줄 수단 또한 필요했다.
그렇기에, 강태한은 요 근래 주변의 다른 산을 돌아다니며 용맥을 찾고 있는 중이었다. 보다 정확히는, 용맥의 흐름에 조금씩 수정을 가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쪽도 잔가지가 좀 많군그래.’
기의 흐름은 곧잘 물의 흐름으로 비유되고 실제로도 비슷한 점이 많지만, 결정적인 부분이 다르다.
물은 가만히 내버려 둬도 나중에는 하나의 줄기로 합쳐져 흐르지만, 기는 아니다. 통제 없이 방치해 두면 사방팔방으로 뻗어져 나가며 흩어지는 것이다.
용맥 또한 마찬가지.
기운이 뻗어져 나갈 곳이 한정되어 있어 마음대로 뻗쳐 나가진 않지만, 그래도 수 갈래에서 많게는 수십 갈래까지 나뉘는 형태를 띠게 된다.
아무래도 비효율적일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할까.
이렇게 새어 나간 영기가 다른 방식으로라도 도움이 되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일정량 이하의 영기는 다른 용맥에 합류하지 못할 경우 그냥 의미 없이 흩어지고 사라질 뿐이다.
무림에서는 기의 절대적인 양 자체가 많았으니 별 상관이 없었으나, 현대에서는 안 그래도 부족한 영기가 쓸데없는 곳으로 분산되어 낭비되는 셈이다.
그렇기에.
“대충… 여기쯤인가.”
한번 손을 본다.
강태한은 바위에 앉은 상태로 살짝 다리를 올렸다가, 가볍게 한번 땅을 내리찍었다. 그와 동시에 쿠웅, 하는 굵직한 울림으로 땅이 흔들렸다.
땅에 일시적으로 충격을 가해 지맥을 흔드는 절차.
물론 이 정도로 대단한 일이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자극이 가해지기는 하지만, 이 정도 충격은 단지 호수 위에 돌멩이를 던져 파동을 일으키는 수준에 불과하다.
하나 이걸로도 약간의 틈은 생긴다.
그리고 그 정도면 충분하다.
지맥에 자극이 가해지며 생긴 틈 사이로 강태한은 자신의 기운을 자연스레 침투시켰다. 그러곤, 잔가지들의 방향을 하나씩 쳐 내기 시작했다.
맥 자체를 끊어 낼 필요는 없다.
단지 그쪽으로 흐르기 어렵게만 만들어 놓으면 그만이다. 그러면 해당 방향의 흐름은 자연스레 약해지고,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도록 유도되는 것이다.
그렇게 일련의 과정을 거치고 난 후.
“…후우.”
바위에 걸터앉은 채 왼쪽 발을 땅 위에 내려놓고 있던 강태한은, 가볍게 기지개를 피며 발을 떼어 냈다. 그가 목표한 바를 이뤄 낸 후였다.
“이걸로 이쪽 부근은 얼추 마무리됐나.”
주변 일대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선에서 용맥의 수정을 마무리한 강태한. 이렇게 오늘 하루 손을 봐 놓은 산혈(山穴)이 벌써 일곱 군데다.
영기의 흐름을 사방으로 분산시키던 잔가지들을 정리하고, 주요 용맥의 흐름을 가로막고 있던 탁기도 싹 다 걷어 놓은 상황. 이걸로 목적지까지의 흐름은 더욱 원활해졌다고 볼 수 있으리라.
‘아직 깔끔하게 정리해 놨다고 보긴 힘들지만…….’
당연한 말이지만, 지맥이라는 것은 간단하게 손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강태한이 행한 것은 일종의 편법에 불과한 것이고, 이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선 앞으로 몇 차례의 보완이 더해져야 하리라.
하지만 어찌 됐든 강태한이 원하는 대로 지맥의 흐름은 바뀌었고, 보완이 필요하다면 앞으로 보완을 하면 그만인 이야기다. 강태한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엉덩이를 털어 냈다.
“어이, 강 선생! 어디 있어!”
그때쯤, 멀찍이 떨어진 길가 쪽에서 강태한을 찾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태한은 소리 없이 숲을 빠져나온 다음, 그 주변에서 입을 열었다.
“저 여기 있습니다.”
“아잇, 뭐야! 소리 하나 없어서 깜짝 놀랐네!”
다 와서는 인기척을 좀 낼 걸 그랬나.
머쓱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이는 강태한. 다만 중년의 남성은 별일 아니라는 듯 손을 휘휘 젓고는, 털털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뭐 다른 건 아니고, 슬슬 해질 때니 하산해야지.”
“그래야죠.”
강태한의 고개를 끄덕이며 답하자, 남자는 엄지손가락으로 산 아래쪽을 가리키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온 김에 저녁까지 먹고 가. 내가 말하기는 뭣하지만, 우리 와이프 음식 솜씨가 제법 훌륭하다고.”
“흠… 실례가 되지 않을까요?”
“아이, 실례는 무슨.”
남자는 그러면 섭하다는 듯 손을 저으며 말했다.
“내가 강 선생한테는 멧돼지 고기도 얻어먹었는데, 저녁 한 끼 대접한다고 실례라고 하면 안 되지. 필요하면 방도 내줄 수 있어! 하하하.”
남자의 웃음소리에 강태한은 머쓱하게 웃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신준호가 아무리 가진 땅이 많다고 해도 이 일대의 모든 산을 소유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타인의 사유지를 마음대로 들락거릴 수는 없는 법. 그냥 조용히 돌아다닐까, 하는 생각까지 떠올린 강태한이었으나…….
그 부분은 별 문제 없이 해결되었다.
모든 산이 신준호의 소유인 건 아니었으나, 그의 인맥은 그 이상으로 널리 뻗어져 있었으니까.
게다가 지난번 멧돼지를 잡았을 때 부른 사람들이 다 요 부근 사람들이었는지, 다들 강태한을 기억하고는 생각 이상으로 살갑게 대해 주는 중이었다.
‘그 멧돼지 한 마리가 이런 데서 도움이 되는구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앞장서서 걸어가는 산 주인. 그 뒤를 따라 걸으며, 강태한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흘렸다.
* * *
세상에 날로 먹는 다이어트는 없다.
한 번이라도 제대로 다이어트를 해 본 사람이라면, 아니면 광고 한마디에 혹해서 수차례 시행착오를 겪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내용이다.
한참 인지도를 쌓아 올리고 있는 신인 여배우, 김세후 또한 잘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무슨 다이어트가 좋다더라, 하루에 세 번 약만 챙겨 먹으면 된다더라, 이렇게 하면 숨만 쉬어도 살이 빠진다더라… 향간에 떠도는 수많은 다이어트 방식.
그것들은 전부 거짓이다.
물론 개인의 체질에 더 적합하고 효율적인 방식은 있을 수 있다. 누군가는 정말 숨만 쉬어도 살이 빠질 수도 있다.
하나, 자신과 같은 평범한 체질의 사람은 결국 눈물과 땀이 동반해야만 다이어트를 할 수 있다. 그것이 그녀가 내린 결론이었다.
하지만 얼마 전.
김세후는 충격적인 광경을 눈앞에서 목도했다.
자기가 목표하고 있는 이상적인 외모의 선배 배우, 유세아. 그녀가 김밥 천국에서 세 개의 메뉴를 차례차례로 비워 내는 충격적인 모습을!
‘뭐라고 해야 되나… 먹어도 잘 안 찌는 체질?’
그리고 그녀는 본인의 체질이 바뀐 것 같다고 하며 그렇게 말했었다. 거짓말 같은 이야기였다.
체질이 왜 체질(體質)이겠는가.
선천적으로 타고 나는 것이니까 체질인 것이다. 손바닥 뒤집듯이 바꿀 수 있는 게 아닌 것이다. 그런 말을 그대로 믿을 정도로 그녀는 어리석지 않았다.
…하지만.
그게 만약 정말로 가능하다면.
나도 먹고 싶은 걸 마음대로 먹으며 살 수 있다면.
“…여기인가?”
그 혹시나 하는 마음이, 그녀를 이곳으로 이끌었다.
그녀는 유세아가 찍어 준 지도의 위치를 확인하고, 다시 한번 앞에 보이는 건물을 살펴보았다. 다름이 아니라 천마안마가 위치한 라이너 빌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