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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 안마하신다-34화 (34/286)

<천마님 안마하신다 34화>

“흐음···”

강태한은 가볍게 팔짱을 끼고 천천히 주위를 둘러봤다.

지금 그가 앉아있는 곳은 자동차의 운전석.

그리고 차는 신준호가 말했던 바로 그 산타페였다.

너무 낮은 가격에 물건에 하자가 있는 건 아니냐고 반쯤 농을 꺼내자, 신준호는 ‘그럴 게 아니라 직접 보러 가지.’라며 곧바로 차가 있는 곳으로 강태한을 데려왔다.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5년 됐는데 이 정도면 상태가 엄청 양호한 거 아닌가?’

굳이 거절할 이유도 없었기에 일단 운전석에 앉아 내부를 살펴보고 있는 중이었는데··· 그렇게 많이 타지 않았다더니, 주행거리도 4만 킬로가 안 된다.

차 외부에 먼지가 좀 쌓여있어 지저분하긴 했지만, 그건 단지 오랫동안 세워둬서 쌓여있는 것일 뿐.

적어도 겉으로 보기엔 아무런 문제가 없는 차량이었다.

“이걸 딜러들이 후려치려고 했다고요?”

“하하··· 그렇지, 뭐.”

이런 양품을 후려치려 든다면 양심에 털이 박혀도 한참 박혀있는 것이리라.

물론 애당초 없는 말을 지어낸 것이었기에, 신준호의 시선이 강태한의 눈을 피해 옆으로 슬쩍 피해갔다.

‘선행으로 맺어진 인연은 복을 불러온다더니···’

이미 그의 생각을 얼추 파악하고 있던 강태한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그날 계룡산에서 마주친 사고 현장으로부터 이어진 인연.

그때 강태한은 별 생각 없이 지나쳤을 수도 있었지만, 만약 그랬다면 영약도, 지금의 이런 선물도 받지 못했을 것이다.

“시동도 한 번 걸어 봐도 되겠습니까?”

“안 될 거 뭐 있나. 그냥 한 바퀴 돌아봐.”

부르르릉···

시동버튼을 누르자, 엔진이 부드러운 소리를 내며 움직였다.

오래됐다기보다는 길이 잘 들어있는 듯한 반응이었다.

‘내부에도 그리 큰 문제는 없어 보이는군.’

강태한이 자동차의 구조를 잘 알진 못했지만, 그래도 안쪽의 순환에 문제가 있는지, 아니면 순조롭게 이뤄지고 있는지 정도는 기감으로 대충 알 수 있다.

별다른 마찰음이나 충돌 없이 각 기관들이 매끄럽게 움직이는 걸로 보아, 아무래도 관리가 잘 되어 있는 것은 겉뿐만이 아닌 모양이었다.

‘그럼 어디···’

핸들에 슬쩍 손을 올리고, 주차기어를 풀면서 오른발로 지그시 엑셀을 밟는다.

부드럽게 주차장을 빠져나온 차량은 좁은 골목을 지나, 곧이어 도로 위에 올라섰다.

“오오··· 그래도 운전을 자주 해봤었나보네?”

그렇게 시간이 조금 지났을까.

조수석에 앉아있던 신준호가 넌지시 말을 건넸다.

적당히 시가지를 돌아보는 과정.

짧다면 짧은 길이지만, 중간에 좁은 골목길을 빠져나오는 솜씨도 그렇고 부드러운 가속과 코너링만 봐도 운전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허나 강태한의 대답은 신준호가 예상하지 못한 의외의 대답이었다.

“아뇨. 면허 따고 처음 잡아보는 건데요.”

“···음? 언제 땄는데?”

“육십··· 아니, 육년 전쯤이죠.”

라고 말을 마치는 순간, 차량이 급커브 구간에 들어섰다.

속도도 줄이지 않고 그대로 과감하게 코너링에 들어가는 차량.

헌데, 약간의 관성만 느껴질 뿐 차체는 아무런 이상 없이 부드럽게 커브를 마쳤다.

신준호는 손에 쥔 페트병의 내용물마저 좌우로 가볍게 떨리기만 하는 것을 보며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근데 생각보다 할 만하네요. 역시 몸으로 익힌 건 잘 잊어버리지 않는다니까요.”

굉장히 여유로워 보이는 표정의 강태한.

말 그대로 육십년 만에 잡아보는 핸들이었지만, 몇 번 핸들을 돌리고 엑셀을 밟아본 것만으로 대부분의 기술과 감각은 이미 통달한 참이다.

차폭도 핸들감도, 시야도 모든 게 자기 신체의 연장선인 것처럼 자연스럽고 어려울 것이 없다.

“그래··· 그러게. 엄청 잘하네.”

한편, 신준호는 살짝 굳은 표정으로 조수석 위에 달린 보조 손잡이를 붙잡았다.

운전에 숙달된 장롱면허의 거침없는 운전···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의 조합에, 뭐라도 붙잡고 있을 것이 필요했다.

* * *

“후으으으···”

목욕탕에 들어간 한 중년의 남자가 길게 탄식을 뱉었다.

탕의 물로 가볍게 세수까지 한 그는, 잠시 온기의 여운에 젖었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여기 탕도 꽤 괜찮네.”

“그렇죠? 그리고 이렇게 낮에 오면 이게 또 각별하더라고요.”

그 말에 옆에 있는 청년이 맞장구를 쳤다.

한하의 감독 오재윤과 투수 최태준.

두 사람은 현재 서울의 한 사우나에서 대낮부터 목욕을 즐기고 있는 중이었다.

“근데 이거 미안해서 어떻게 하냐.”

“뭐가요?”

“쉬는 날인데, 감독이랑 단 둘이 이렇게 사우나에 왔으니까 말이다.”

서울에서 시합을 마치고 갖는 휴일.

전날 시합도 이겼겠다, 이미 여기저기 놀러 간 선수들이 많다는 걸 감독도 알고 있다.

최태준은 헛웃음을 터트리며 어깨를 으쓱였다.

“미안하시면 오늘 받기로 되어있는 안마 예약, 그거 저한테 양보해주시면 되는데.”

“뭐? 이 녀석이···”

감독이 괘씸하다는 듯이 흘겨보자, 최태준은 하하, 웃음을 터트리며 뒤쪽에 등을 기대앉았다.

그러곤 대수롭지 않다는 목소리도 말했다.

“뭐 저도 오기 싫었으면 안 따라왔죠. 사우나도 하고, 안마도 받고··· 물론 강태한 선생님한테 받으면 더 좋겠지만.”

이곳 안마샵의 유명세는 전부 강태한에게서 비롯된 것이라 봐도 무방하겠지만, 그래도 저번에 왔을 때 안마샵의 시설 자체도 꽤 괜찮은 편이었다.

나름 규모도 있고 시설관리도 깔끔하다고 할까.

물론 강태한의 장인코스와 비할 바는 아닐 것이라 생각되지만, 그래도 사우나를 즐기고 피로를 풀기에는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확실히, 너 많이 편해졌구나.”

“예? 아. 제가 너무 편하게 있었나요?”

감독의 말에 순간 흠칫하는 최태준.

그러자 오히려 오재윤이 깜짝 놀라며 손을 저었다.

“이놈이 사람 이상하게 만드네! 그런 식으로 편한 거 말고, 네··· 그 뭐냐, 마음가짐 같은 거, 그런 게 편해진 것 같다고!”

예전에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여러모로 위태로워 보이는 느낌이 있었다.

처음 프로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겪는 충격을, 노력과 훈련만으로 극복하다보니 거기에 집착하게 된 경우라고 할까···

지금처럼 가볍게 농담을 던지는 것도, 얼마 전에는 상상도 못할 그런 모습이었다.

“그냥 뭐, 짐을 좀 내려놓은 거죠.”

남들의 기대를 모두 만족시킬 필요는 없다.

그걸 깨달은 순간, 최태준의 선수생활은 큰 전환점을 맞이했다.

적어도 오랜 슬럼프를 극복할 수 있었으니까.

“여기 강 선생님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정신적인 부분도 그랬지만, 엉망이 되어있던 몸도 거의 원상복귀가 된 느낌이었으니까요. ···아, 물론 감독님한테는 더 많은 도움을 받았고요.”

뒤늦게 감독의 시선을 의식한 최태준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자, 오재윤의 입에서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됐다, 임마. 나랑 코치가 그렇게 쉬라고, 쉬라고 말할 때는 귓등으로도 안 듣더니.”

“에이, 죄송한 일이긴 한데··· 그때 주변에서 하는 말들은 그냥 위로 차 건네는 말처럼 들리더라고요. 쉬어도 쉬는 것 같지 않기도 했고···”

최태준이 조금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흐리자, 오재윤은 작게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그 심정이 무엇인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잘 풀렸으니 다행인 일.

오재윤은 화제를 돌렸다.

“그래서, 그 강 선생님인가 뭔가 하시는 분이 그렇게 손맛이 끝내준다는 말이지?”

“예. 그리고 이제 감독님은 그 손맛이 끝내주는 선생님한테 안마를 받는 거고요. 혹시 어디 불편하신 데 있으세요?”

“나는 따지고 보면 내가 받으려고 온 게 아니라 실력을 보러 온 거니까, 굳이 내가 불편한 델 받을 필요가 없지.”

오재윤이 양손으로 지압하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그가 이곳에 온 건 일종의 사전답사다.

강태한의 솜씨가 정말로 그렇게 뛰어난지, 뛰어나다면 선수들의 컨디션 관리에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을지, 그걸 알아보기 위해 온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 중요한 건 자신의 몸을 얼마나 케어해줄 수 있느냐가 아니다.

선수들이 자주 다치는 손목, 어깨, 무릎, 이런 곳들을 얼마나 잘 봐줄 수 있는 지가 중요했다.

“···근데 감독님은 거기에 부상이 없잖아요?”

의문스레 묻는 최태준의 말.

그 말을 들은 오재윤이 혀를 차며 핀잔을 줬다.

“야, 그냥 그쯤이 뻐근하다고 하고 받아보는 거지. 실제로 부상을 입진 않았어도, 어떤 식으로 하는 지는 대충 알 수 있지 않겠냐?”

“뭐··· 감독님이 그렇게 말씀하신다면야.”

강태한 선생님이라면 그런 거짓말은 바로 꿰뚫어보실 것 같았지만···

그래도 일단은 감독의 말에 적당히 맞장구를 치는 최태준이었다.

* * *

[태한 씨 한국 날씨는 어때요? 여긴 완전 폭우 ㅠ]

[여긴 별 일없이 맑습니다.]

[부럽네요. 놀러오면 모를까, 촬영으로 오면 이쪽 동네는 진짜 불편하기만 하다니까요.]

그 아래에는 짤막하게 생긴 토끼가 주저앉아 엉엉 우는 이모티콘이 덧붙여져 있었다.

강태한은 유세아의 카톡을 보다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저번 만남 이후, 유세아가 이런 식으로 안부를 묻는다든가 일상 이야기를 하는 카톡이 잦아졌다.

지금은 해외 로케이션 때문에 태국 쪽의 어느 섬에 가있다는 모양.

‘왠지 모르게 무림 시절 생각이 나는군.’

그때도 멀리 떨어져있는, 혹은 서로의 입장 때문에 쉽게 만날 수 없게 된 벗들과 서신을 주고받곤 했었다.

물론 그땐 여건상 반년에 한 통씩 오가기도 힘들었지만 말이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은 새삼 편리하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그 사이에 산이나 바다가 있을지언정 이렇게 곧장 전달할 수 있으니까.

강태한은 입가에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유세아의 카톡에 답장을 보냈다.

카톡!

그때 강태한의 스마트폰에 알림이 울렸다.

이번에는 유세아의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카톡이었다.

[아저씨. 조만간 친구 만나러 서울에 가는데, 그때 말한 시간대면 언제 가도 상관없나요?]

다름이 아니라 얼마 전 조원호의 골프연습장에서 만났던 채은비 양이다.

강태한은 잠시 생각에 빠졌다가 답장을 보냈다.

[편할 때 오세요. 은비 씨가 온다고 하면 언제든 시간 비워둘 테니까.]

이 경우에는 자기가 초대를 한 셈이니 그게 맞다.

물론 7시 이후에 온다는 전제조건은 지켜줘야겠지만 말이다.

[ㅋㅋ 뭐에요. 이상한 작업 멘트 같음.]

···이게 왜 작업멘트 같다는 거지?

잠시 뒤 도착한 채은비의 답장에, 강태한은 미간을 좁힌 채 고개를 갸웃거렸다.

“야, 누구랑 카톡을 그렇게 열심히 하냐?”

그때 일을 마치고 돌아온 최성현이 강태한의 옆에 앉았다.

강태한은 최성현에게 보이지 않도록 스마트폰의 각도를 슬쩍 돌려놨다.

“친구랑 손님.”

강태한의 솔직한 진술이었지만, 최성현은 의심을 거두지 않은 표정으로 얼굴을 가까이 내밀었다.

“아닌데··· 내가 보기에 이 느낌은 달달한 분홍빛의 느낌이야. 누구랑 썸타고 그런 거 아니냐?”

“하하하.”

최성현의 말에 강태한이 마른 웃음을 터트렸다.

무공을 갈고 닦는 데에만 집중하긴 했지만, 그가 보낸 세월이 무림에서만 육십 년이다.

사람의 마음에 관해선 제법 보는 눈이 있다고 자부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그런 건 전혀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라.”

강태한은 확신이 담긴 목소리로 말할 수 있었다.

본인이 연애 감정에 둔감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완전히 배제해놓은 자신감!

그는 아직 의심을 거두지 않는 최성현을 자리에 남겨둔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냐?”

“나갈 준비 해야지.”

슬슬 손님이 찾아왔을 시간이다.

강태한은 짧은 대답을 남기고 문 앞으로 걸어갔다.

“아, 강 선생님! 손님 오셨습니다.”

“알겠습니다. 몇 번 방이죠?”

“3번방에 계십니다.”

때마침 안으로 들어오고 있던 직원에게 방 번호를 전달받고, 강태한은 고개를 끄덕이며 밖으로 나섰다.

강태한의 장인코스용으로 따로 배정된 네 개의 방.

그 중 세 번째 방으로 들어간다.

그 안으로 들어서니,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한 손님이 침대에 앉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선글라스라.’

실내에서 선글라스를 착용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가 있을 것이다.

눈에 어떤 의료적 조치를 받았거나, 혹은 자신의 정체를 감추고 싶어 하거나.

누굴까.

만약 선글라스를 끼지 않았다면 별 생각 없이 지나갔겠지만, 오히려 그것이 강태한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아하.’

남자의 정체를 떠올리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야구 팀 한하 호크스의 감독 오재윤.

인터넷 뉴스의 스포츠 기사에서 몇 번 봤었던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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