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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 안마하신다-35화 (35/286)

<천마님 안마하신다 35화>

‘으음, 선생님이라고 그러더니···’

처음 강태한과 마주쳤을 때, 생각했던 느낌과 전혀 다른 인상에 오재윤은 조금 실망했다.

그의 머릿속에 있는 강태한의 이미지는 전적으로 최태준의 묘사에 근거하여 만들어진 이미지였다.

약간 나이도 지긋하고, 은거기인 같은 비범함이 느껴지는···

한 분야에 오랫동안 종사해온 숨은 달인 같은 인상.

반면 실제로 마주친 강태한은 훤칠하고 몸도 좋은 건장한 이십대 청년이었다.

물론 이쪽도 제법 안마를 잘 할 것 같은 인상이긴 했지만···

그래도 생각하고 있던 인상과는 상당히 거리가 먼 것도 사실이다.

‘···아니, 그것도 아닌가?’

하지만 강태한과 눈을 마주한 순간, 오재윤은 자기가 느꼈던 첫 인상을 뒤집을 수밖에 없었다.

사람의 눈에는 살아온 깊이가 담긴다.

그 안에 담긴 깊이를 살펴보면, 단순히 지내온 세월의 길이뿐만 아니라 어떤 마음가짐으로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도 어렴풋이 알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점쟁이마냥 뭐든지 알아낼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이 사람이 진짜배기인지 허풍쟁이인지, 가벼운 사람인지 진중한 사람인지 정도는 알 수 있는 것이다.

헌데 이 남자는 그 깊이를 헤아릴 수가 없다.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는커녕, 그 세월의 길이조차 짐작하는 게 쉽지 않다.

단지 그 분위기에서 외모와 다른 연륜을 느낄 수 있을 뿐.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나이가 많을 지도 모르겠다.’

일단 최태준이 이 사람을 선생님이라고 칭한 이유는 알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오재윤은 얌전히 침대 위에 몸을 뉘였다.

“혹시 따로 불편한 곳은 있는지?”

“아, 양쪽 손목이랑 어깨, 그리고 무릎 쪽도 요즘 시큰거리는 게 영 불편하네요. 좀 부탁드립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곳에 찾아온 목적을 잊지는 않는다.

오재윤은 아까 전부터 미리 생각해두고 있었던 부위들을 입에 담았다.

“흐음··· 손목과 어깨, 무릎이라.”

강태한은 그가 말한 부위들을 천천히 되새기며 침대로 다가왔다.

그리고 강태한의 손이 등 위에 올라온 순간, 오재윤은 등을 누르는 뜨끈하면서도 묵직한 감각을 느꼈다.

‘···이게 뭐지?’

사람의 손이라기보다는 마치 적당히 달궈놓은 돌을, 그것도 큼지막한 돌덩이를 올려놓은 듯한 온기와 무게감이다.

헌데 그 느낌이 불편하기는커녕 오히려 편안하게 느껴졌다.

압박감을 중심으로 몸의 긴장이 느슨하게 풀리는 느낌이라고 할까···

오재윤의 몸이 자연스레 침대 위에 힘없이 늘어졌다.

“보기엔 그보다 더 급한 부분이 있는 것 같은데.”

한편, 그 사이에 몸 상태의 파악을 마친 강태한은 두 손을 각각 그의 양쪽 허리에 놓았다.

“그러니 일단은 이쪽부터 풀어두도록 하겠네.”

손으로는 양쪽 허리를 단단하게 붙잡고, 두 엄지손가락은 중앙에 위치한 척추까지 뻗는다.

그리고 그 위에 뭉쳐있는 허리근육을 지압하는 순간.

“흐끄어윽!”

한하 호크스의 선수들에겐 결코 들려줄 수 없을 비명소리와 함께, 오재윤의 등이 완만한 포물선을 그리며 가볍게 튕겨 올랐다.

* * *

피로로 인해 근육이 굳거나 뭉쳐있을 때, 사람은 해당 부위에 불편함을 느낀다.

평소와 다르게 뻐근하다든가, 뻣뻣하다든가, 그런 가벼운 증상들이 몸에 이상이 있음을 알려온다.

여기서 더욱 상태가 심각해진다면, 아예 해당 부위에서 통증이 느껴지거나 미세한 경련까지도 일어날 수 있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도 더 오랜 시간이 지난다면?

어느 순간부터는 오히려 통증이 느껴지지 않는다.

뭉친 근육은 여전히 그대로 방치되어있지만, 몸과 감각이 그 상태에 적응을 해버려 별다른 증상을 느끼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단지 예전보다 몸이 좀 불편해졌다고 느낄 뿐.

그냥 나이를 먹어서 예전 같지 않나보다, 젊을 때랑은 역시 다르구나 하면서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정말로 상태가 안 좋아진 근육들은 정작 본인이 인지를 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오재윤에게는 이곳, 척추를 감싸고 있는 허리 근육들이 바로 그런 부위였다.

“꺼허윽, 어억.”

한 번 더 지압이 들어가자, 오재윤의 입에서 단말마 같은 신음이 새어나왔다.

본인도 그럴 리는 없으리라 생각하지만, 마치 허리를 기준으로 상반신과 하반신이 끊어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건 좀 아플 수밖에 없겠군.”

딱딱해지다 못해 아예 뼈처럼 만져지는 수준.

보아하니 적어도 십 년, 아니 그 이상의 세월 동안 굳어있던 근육이다.

아마 그동안 이곳을 통해서는 통각조차 거의 느껴지지 않았을 것이다.

허나 지금은 이곳의 혈을 뚫어내고 딱딱하게 굳어있는 근육들을 풀어내고 있었으니···

지금 이건 이 자체로 하나의 커다란 통각세포라고 봐도 무방했다.

당연히 아플 수밖에.

“조금만 참아보게.”

허나 어쩌겠는가.

이런 건 어차피 살살 문지르기만 해도 상당한 통증이 뒤따른다.

이럴 땐 한 번에 확 풀어버리는 것이 오히려 손속에 자비를 두는 셈이다.

“서, 윽, 선, 끄흑.”

선생님. 허리가 너무 아픕니다.

일단은 허리는 내버려두고 손목이랑 어깨를 먼저 봐주시면 안 됩니까?

그런 뜻이 담긴 말을 하고 싶었지만, 머리가 새하얘지는 통증에 번번이 말이 끊어지고 마는 오재윤이다.

그는 강태한의 지압에 따라 허리를 튕기며 짧은 비명만 틈틈이 내뱉을 뿐이었다.

그렇게 반쯤 정신을 놓은 상태로 몇 분이 지났을까.

이제 움찔거리는 반동도 미약해져갈 때쯤.

‘···어?’

순간, 오재윤은 허리에서부터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물줄기를 느꼈다.

마치 오랫동안 메말라있던 냇가에 물이 트이는 것처럼···

시원하게 적셔지고 스며드는 그런 감각이었다.

허리의 혈도를 방해하고 있던 커다란 근육 덩어리가 풀어지자, 척추의 혈류 또한 그만큼 강해지고 원활하게 흐르기 시작한 것.

척추는 신체의 기둥이라 할 수 있는 몸의 중심이다.

막혀있던 혈류가 그곳을 타고 온몸으로 쭉쭉 뻗어나가는 느낌은···

마치 혈관을 통해 전류가 흐르는 것처럼 짜릿한, 쾌감에 가까운 감각이었다.

“으후우···”

이윽고 오재윤의 입에서 작은 한숨이 새어나왔다.

방금 전까지 고통으로 가득 차있던 목소리와 정 반대되는, 쾌감에 한껏 젖어있는 목소리였다.

‘너무 시원해.’

단지 허리의 한 지점을 지압했을 뿐인데, 그 쾌감이 온몸을 따라 흘러들어온다.

이 느낌을 뭐라 설명해야할지 모르겠다.

그저 ‘시원하다’라는 상투적인 표현이 자기도 모르게 머릿속에 떠올랐을 뿐이다.

오재윤의 노곤하게 풀린 입가에 해맑은 미소가 떠올랐다.

‘그건 그렇고 허리가 이렇게 안 좋았었나···’

처음에는 왜 애꿎은 허리를 박살내놓나 싶었는데, 이렇게 풀어주고 나니 알 것 같다.

사실은 지금의 이 시원한 상태가 정상적인 것이고, 그동안 자신의 상태가 그만큼 안 좋았던 것이다.

단지 몸이 거기에 익숙해져 인지를 못하고 있었을 뿐.

“이제 좀 참을 만한가보군.”

“아, 이거 너무 시원합니다.”

오재윤은 훨씬 환해진 얼굴로 대답했다.

혈도가 풀렸다는 것은 그만큼 근육도 풀어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딱딱하게 굳어있던 덩어리도 이제 거의 다 풀어진 참이었기에, 오재윤의 목소리에도 꽤 여유가 돌아와 있었다.

그 감탄어린 반응에, 강태한 또한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다음 건 좀 더 강하게 가도 되겠군.”

“···뭐요?”

마치 방금 것과 비슷한 고통이 한 번 더 있을 거라는 말처럼 들리지 않는가.

순간 흠칫 놀라 자기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는 오재윤이었지만, 그보다도 강태한의 지압이 더 빨랐다.

“꺼허어업!”

척추와 맞닿아있는 허리의 중심부.

이 부근에 한 곳이 뭉쳐있으면, 척추를 따라 그 위와 아래에도 비슷하게 뭉쳐있는 부위가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곳들은 아직 아까와 마찬가지로 뼈처럼 단단하게 굳어있는 상태.

그곳을 지압하는 순간, 처음과도 같은, 아니 그보다도 더욱 강렬한 자극에 오재윤의 허리가 다시 한 번 꺾였다.

“아, 허리를 마치고 나면 아까 말했던 어깨랑 손목도 한 번씩 보기는 할 테니, 걱정하진 말게.”

그러는 와중, 강태한이 가볍게 덧붙이듯이 말했다.

고객의 요청에 되도록 부응하려하는 서비스 정신이 담겨있는 목소리였다.

* * *

‘이제 슬슬 감독님이 일어나실 시간인가.’

최태준은 스마트폰의 시계를 확인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었다.

장인코스의 수면시간은 최대 한 시간.

이제 막 한 시간이 지난 참이었으니, 이제 잠에서 일어나 거짓말 같은 몸의 변화를 체감하고 있을 때다.

‘이러실 줄 알았지.’

강태한의 장인코스는 삼십 분의 안마와 한 시간의 회복수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오재윤은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뭐하러 여기서 잠을 한 시간이나 자냐며 바로 나올 거라고 했었지만, 최태준은 이렇게 될 걸 예상하고 있었다.

안마로 온몸을 노곤하게 풀어놓은 다음, 기절하듯이 잠들어 맛보는 꿀맛 같은 단잠.

이걸 어떻게 거절할 수 있겠는가.

특히 안마를 받고 난 직후에는 더더욱 참기 힘들 수밖에 없다.

그렇게 몇 분 정도 지났을까.

아니나 다를까, 개운하다 못해 얼굴이 반들반들해진 오재윤 감독이 안쪽에서 걸어 나왔다.

마치 어디서 며칠은 푹 쉬다가 나온 사람 같은 모습이었다.

“어, 태준아. 미안하다. 오래 기다렸어?”

오재윤의 말에 최태준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이렇게 될 줄 몰랐다면 모를까, 이미 알고 있었기에 별 상관없는 부분이었다.

“아뇨. 저도 안마 받다가 아까 나와서 괜찮아요.”

역시 강태한의 장인코스와 비교할 바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제법 시원하게 풀어주는 맛이 있는 꽤 만족스런 안마였다.

최태준은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그보다, 감독님은 어떠셨어요?”

“···야, 좋더라.”

짧고 담백한 대답이었지만, 그 목소리와 어조에는 아직 남아있는 황홀함이 묻어나왔다.

오재윤은 자신의 허리 뒤쪽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내가 처음 생각했던 대로 어깨랑 손목 같은 데를 풀어달라고 했었거든? 근데 ‘보기에 더 급한 부분이 있어 보이는데’ 하면서 여기를 딱 짚는 거야.”

덕분에 머리가 새하얘지는 고통을 느껴야했지만···

모든 게 끝나고 잠까지 푹 자고 나온 지금은 그저 세상 편안할 뿐이다.

부드럽게 움직이는 허리가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였으니까.

“지금 이 느낌을 뭐라 표현해야될지 모르겠다. 그냥, 한 십 년 정도 젊어져서 나온 것 같아.”

적어도 본인이 느끼기에는 과장이 아니었다.

이렇게 온몸이 가벼워지고 활력이 흐르니, 말 그대로 십 년 정도는 젊어진 기분이 드는 것이다.

“심지어 지금 눈높이도 다르다니까.”

뭉쳐있던 허리가 풀어지니 휘어있던 척추도 올곧게 펴지고, 그러다보니 실제로 잠깐 사이에 키도 미세하게 자라있는 오재윤이다.

눈높이가 다르다는 말이 마냥 과장은 아닌 것이다.

“제가 뭐랬습니까. 과장 하나 안 붙였다고 했죠?”

오재윤의 말에 최태준은 피식 웃음을 터트리며 맞장구를 쳤다.

자신도 비슷한 경험을 겪어봤기에, 지금 어떤 체험을 하고 있는지 대충 짐작이 갔다.

“그래서, 어떻게 하시기로 했어요?”

“뭘 말이냐?”

“강태한 선생님이요. 솜씨가 제법 괜찮으면 구단에도 한 번 부르겠다, 뭐 그러지 않으셨어요? 이야기하고 나온다고 하셨으면서.”

“···아, 맞다.”

정작 안마가 끝난 뒤에는 침대에 늘어진 채 고개만 끄덕였던 오재윤이다.

뒤늦게 떠올린 본래 목적에, 그는 자기도 모르게 이마 위에 손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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