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화
세대교체
해리 케인, 이카르디, 뭘러 등 여러 월드클래스 공격수들과 맞대결한 경험이 있는 상욱이나 그가 느끼기에 호날두는 이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선수였다.
점프력, 슈팅, 드리블, 승부욕 등 축구 선수가 가져야 할 모든 능력을 한계치에 이르는 선수.
역사상 최고의 피니셔란 말을 왜 달고 있는지 알 것 같았으나, 상욱은 조금도 겁나지 않았다.
“네놈이 요새 황제라고 떠들고 다닌다며?”
후반전이 시작되자마자 피치 위에 서 있는 호날두가 그를 보며 이죽거린다.
“그 칭호가 너한테 얼마나 과분한지 알려 주마.”
“아니- 난 황제 같은 게 아냐.”
“뭐 네놈이 붙인 게 아니면 고작 네 조국에서 널 위해 만들어 준거겠지.”
비웃으며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기 직전의 호날두 앞에서 똑같이 이죽거려 주었다.
“축구의 신이지. 고작 황제 같은걸로 무시하지 마.”
기가차다는 듯 혀를 차는 호날두를 보며 진지하게 말하는 상욱.
“증명해 줄 테니까 기다려.”
***
“이반, 덴절.”
상욱이 팀의 양 풀백 페리시치와 둠프리스에게 다가간다.
“빌드업이 힘들면 어떻게든 패널치 라인까지 크로스만이라도 올려.”
1:2. 스코어도 밀리고 있는 상황인데 경기력마저 상대에게 압도당하고 있는 상황. 인테르가 이기기 위해선 2가지 중 하나라도 앞서 나가야 할 것이다.
“수비 쪽에서 프레싱이 너무 심해서 크로스가 정확하지 않을 거야. 그래도 괜찮겠어?”
“개똥 같은 크로스도 내가 정확하게 맞추니까 괜찮아.”
동료들을 보며 씩 웃어 보이는 상욱의 모습에 둠프리스와 페리시치가 미소를 띄며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다.
“이렇게 믿음직할 수가 없군.”
***
[둠프리스가 빠르게 돌파해 나갑니다만 케디라와 칸셀루가 동시에 수비합니다. 공간이 전혀 주지 않는 유벤투스네요!]
[현 유벤투스의 수비는 이탈리아를 넘어 유럽 전역에서도 탑클래스로 꼽힐 만한 수준입니다.]
쉴 새 없이 뛰어다니던 둠프리스가 중원의 도움을 받아 겨우 오른쪽 터치라인 끝에서 공을 몰고 질주한다.
[둠프리스 크로스 재빠르게 올려 봅니다만- 받아 줄 선수가······ 아아아아!]
수비벽에 맞혀 냅다 골대만 보고 찬 허약하기 짝이 없는 크로스.
공이 유베 수비 발에 떨어지기 직전에 미친 듯 크로스 궤적 안으로 뛰어 들어가던 상욱이 이내 떨어지는 공에 자신의 머리를 갖다 댄다.
[진이! 어! 이런 세상에! 믿어지지 않습니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인가요? 진 혼자만 두 배의 속도로 움직이는 것 같습니다! 저 선수만 부스터를 쓰면서 경기하고 있는 것 같아요!]
너무도 갑작스럽게 들어간 골에 유베 선수 몇몇은 아직 골이 들어간 것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으며, 골키퍼 부폰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허탈하게 골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골은 그저 진의 스피드만 칭찬할 게 아닙니다. 저 묘기에 가까운 오프더볼 좀 보세요. 저건 노력으로 이룰 수 있는 경지가 아닙니다]
재능, 감히 정점에 이르는 재능만이 가능한 영역이다.
***
후반 50분.
2:2 동점에 성공한 상욱은 굳이 호날두에게 가서 도발하지 않았다. 아직 축구의 신이라고 말한 것에 대한 증명을 다 하지 않았기에 그는 곧바로 자리로 들어와 파트너 라우타로 마르티네즈에게 다가간다.
“라우타로.”
“으, 으응.”
오늘 경기 아무런 활약도 못해 상심한 라우타로가 괜히 상욱의 눈치를 보자 답답했던 상욱이 그에게 버럭 짜증을 낸다.
“진짜 병신처럼 이러고 있을 거야?”
오늘 경기 유베의 강력한 수비진에 위축되어 있던 라우타로의 실력을 끌어낼 생각이었다.
“네가 진짜 호날두보다 못하다고 생각해?”
“······뭐? 내가 어떻게 저런 사람이랑······.”
“레알 시절이면 몰라도······.”
이 대목에서 상욱은 그에게 바짝 다가가 상대의 손을 붙잡고 웃으며 읊조린다.
“지금 호날두는 이빨 다 빠진 호랑이일 뿐이야. 아니, 어쩌면 호랑이였던 적도 없었을지도 모르지.”
씩 웃어 보이던 상욱은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라우타로의 곁에서 사라진다.
“네 자신을 믿어 라우타로. 그래도 모르겠다면 날 믿어. 네 옆에는 역사상 최고의 선수가 될 남자가 있잖아.”
뒤돌아가는 상욱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라우타로가 조용히 피식거린다.
“하, 하하······ 진짜 오만한데 젠장, 전혀 허세라고 느껴지진 않아.”
상욱의 이야기를 들은 라우타로는 이전과는 다르게 공격적으로 상대 진영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라우타로가 간만에 공을 잡습니다. 오늘 경기 인테르의 공격 전개가 어려운 건 라우타로 선수의 부진 때문이기도 하겠습니다.]
[그렇죠, 공격의 첨병 역할을 하고 진의 공격을 보좌하는 역할을 하는 선순데 오늘은 유베의 수비에 막혀 고전하고 있습니다.]
상대 진영에서 무리한 돌파를 시도하던 라우타로가 보누치에게 공을 뺏긴다.
[보누치가 전방으로 길게- 어! 진이 패스 차단했습니다! 아니 대체 언제 저까지 갔나요!?]
상대 패스를 차단한 상욱은 곧 긴장한 표정의 라우타로에게 빠르게 스루패스를 전달한다.
“할 수 있어! 라우타로!”
상욱의 절규와 가까운 외침과는 다르게 유베 수비수들은 별다른 걱정 없이 그를 마크하러 다가간다.
라우타로가 좋은 선수임은 분명하나 보누치와 키엘리니는 세계 최고의 수비수들이며, 아직 그가 상대하기엔 버거웠다.
피지컬과 노련한 수비력이면 어린 공격수의 공쯤은 당연히 탈취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유베 수비수은 갑작스런 그의 활약에 놀란다.
“이, 이익! 나도 할 땐 하는 스타일이라고!”
[라우타로가 수비수 정면, 와아! 그대로 힘으로 밀고 나갑니다! 그 키엘리니가 떨어져 나갔네요!]
[라우타로는 경기장 안에서 모든 걸 쏟아 붇는 선수입니다! 목숨을 걸고 따라 들어가는 선수를 대체 어떻게 막습니까!]
황소(El Toro)라는 애칭을 괜히 받은 것이 아닌 듯 라우타로는 저돌적으로 상대 수비와의 몸싸움에서 이를 악물고 이겨 낸 뒤 앞으로 돌진한다.
그가 키엘리니를 떨쳐 내자마자 순식간에 유베 미들진과 수비진이 그를 둘러싸나 라우타로는 이런 상황이 익숙한 듯 좁은 지역에서 빠르게 드리블해 치고 나간다.
[압박에도 절대 넘어지지 않습니다! 신장은 작은데도 정말 탄탄한 선수네요!]
[대단히 저돌적입니다! 그래도 앞으로 좀 더 나가야 할 텐데요!]
어떻게 상대 진영까지 공을 몰고 오긴 했으나 상대 수비들에게 가로막혀 드리블을커녕 슈팅할 각도마저 보이지 않는다.
“타로! 여기로!”
라우타로가 포기하기 직전, 대체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상욱이 그를 보며 미친 듯 외친다.
[라우타로 진 쪽으로! 발리이이이이! 아!]
[역전! 진! 해트트릭이에요! 인테르의 환상적인 공격 연계가 팀을 역전으로 인도합니다!]
득점에 성공한 상욱은 곧장 라우타로에게 달려가 그를 비행기 태우며 미친 듯 환호한다.
“씨발! 내가 뭐랬어!? 할 수 있다고 했잖아!”
[이번 골은 물론 진의 환상적인 발리슛이 있었으나 라우타로 선수를 칭찬하지 않을 수가 없겠죠?]
[그럼요, 오로지 끈기 하나로 수비를 벗겨 내고 어시스트까지 기록한 건 정말 대단한 겁니다! 진과 라우타로! 이야 엄청난 콤비가 탄생한 것 같아요!]
3:2.
인테르 서포터 석에서 대단한 환호가 터지고 상욱은 팬들을 보며 웃으며 지나가더니 이내 홈 팬들 앞으로 다가가 전반에 호날두가 했던 도발을 그대로 돌려준다.
“Cristiano, who?”
도발에 분노한 호날두가 욕설을 내뱉으며 상욱 쪽으로 달려오나 혹여나 퇴장이라도 당할까 팀원들이 그를 말린다.
그리고 애초 본인이 먼저 시작한 도발이라 할 말도 없었다.
“지금 실컷 웃어 둬. 아직 경기 안 끝났으니까.”
유유히 지나가는 상욱을 죽일 듯 노려보며 중얼거리는 호날두. 상욱은 이런 그를 그저 웃으며 바라본다.
“당연히 아직 안 끝났지. 아직 골 더 넣어야 하니까 기다려.”
후반 74분.
미친 듯 들어가던 골 폭풍이 잠시 잔잔해지고 난 뒤 경기는 백중세로 이어진다.
후반전 아무런 활약도 하지 못한 호날두는 어떻게든 승리를 위해 무리해서 돌파했으나, 이는 오히려 팀 공격에 악효과만 날 뿐이었다.
[피아니치가 위로 올라가면서- 모이스 킨에게 빠르게 연결하는데요!]
[아! 고딘의 손에 맞습니다. 유벤투스의 프리킥 찬스. 당연히 호날두가 차겠죠?]
오늘 경기 승부의 흐름을 한 번에 바꿀 수 있는 찬스에 호날두가 이를 악물고 프리킥을 준비한다.
[호날두 준비하구요! 찹니다! 아······ 네, 수비벽 맞고 나옵니다.]
호날두가 찬 프리킥이 다소 허무하게 수비벽을 맞고 튀어나오자 인테르는 곧바로 역습을 시작한다.
[비러 역습으로, 좋아요! 바렐라가 공 잡아서 곧장 진에게 연결합니다!]
[진! 받아서 올라갑니다! 와······ 정말 너무 빠르네요! 그대로!]
경기가 끝나감에도 전반전과 비슷한 속도로 돌파해나가는 상욱. 이대로면 4번째 골이 들어갈 것이 확실한 상황에서 달려 나온 케디라가 그에게 백태클을 날린다.
[아! 백태클! 이건, 이건 퇴장 줘야죠! 이건 아닙니다!]
[진이 잘 피해서 부상을 안 당한 거지 이건 큰 부상으로 이어질 수도 있었습니다!]
이를 보고 득달같이 달려온 주심은 더 볼 것도 없다는 듯 바로 레드카드를 내밀고, 케디라 역시 순순히 인정하는 듯 조용히 피치 위를 빠져나간다.
[네, 당연히 퇴장입니다! 유벤투스는 이제 선수한 명이 빠진 채로 경기합니다!]
퇴장과 동시에 프리킥 찬스까지 얻은 인테르.
[30M 거리에서 진이 프리킥을 준비합니다. 월드컵 독일전에서 환상적인 프리킥 골을 보여 준 적 있었는데요. 진이 찹니다!]
공은 수비벽을 살짝 넘어 공중에 떠 있는 동안에서 지속적으로 회전하며 골대 오른쪽 끝 구석으로 빨려 들어간다.
부폰이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으며 팔을 뻗었으나 이미 공은 그물 안으로 들어갔다.
[슛! 들어갑니다! 진! 진의 엄청난 프리킥 골! 스코어 4:2!]
[이런 거죠! 이런 겁니다! 왜 자신이 새로운 축구황제인지 제대로 증명해 내는 진입니다!]
이번엔 손가락 4개를 펼치며 그라운드 안을 천천히 도는 상욱과 이 모습이 현실인가 싶어 계속 눈을 비벼대는 콘테 감독.
그리고 실력 부족과 세월의 무상함에 애꿎은 팀원들만 닦달하는 호날두.
그러나 이미 경기는 완전히 기울었다.
[이제 세대교체라는 말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세계 최고의 스코어러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아니라 진으로 말이죠!]
후반 85분.
긴장 풀린 인테르의 수비진을 사이를 뚫고 마투이디가 뜬금없는 중거리 슛을 성공시켜 한 점 더 따라오긴 했으나 이미 경기는 끝을 향하고 있었다.
오로지 상욱만 막고 나머지 선수들은 공격에 투입한 유벤투스였으나, 오히려 상욱에게 과도하게 신경 쓰다가 빠르게 돌파한 페리시치를 막지 못해 오히려 실점을 내준다.
[진 4골, 인테르 유벤투스에 5:3 승!]
[콘테 “진은 역사상 최고의 선수가 될 것.”]
[2골 넣고도 굴욕, 호날두 신경질적으로 퇴장]
5:3.
역사적인 승리에 모든 이탈리아 언론들이 상욱과 인테르를 극찬하는 기사를 내고 상욱은 곧 리그 최고의 슈퍼스타로 발돋움했다.
그리고 언론들은 상욱에게 새로운 별명을 지어 주었다.
[grande asiatico(위대한 아시안)]
그리고 상욱의 시선은 이제 챔피언스 리그로 향해 있었다.
2018-19 챔피언스리그
D조(PSG/인테르/맨체스터 유나이티드/잘츠부르크)
< 위대한 아시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