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아직 리그 초반이긴 합니다만, 이번 경기가 끝나면 올 시즌 스쿠데토의 행방을 대략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시즌 전에는 많은 전문가들이 이번에도 유벤투스의 리그 8연패를 예상했었습니다만, 인테르의 선전이 대단합니다.]
그와 동시에 그라운드 위로 올라오는 아시안 스타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해설.
[지금 인테르의 상승세는 저 선수 덕분이라고 할 수 있죠.]
[그렇습니다, 진. 리그 5경기에서 9골 4도움. 벌써부터 득점왕이니, MVP 얘기가 나오는 걸보면 저 선수의 실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을 겁니다.]
진, 라우타로, 페리시치, 바렐라. 인테르의 코어 선수들이 하나씩 그라운드로 들어오자 유베의 홈구장 알리안츠 스타디움의 원정석이 들썩인다.
“부숴 버려! 진!”
“진! 너만 믿는다! 토리노 얼간이들을 박살 내!”
홈팀에 비해 압도적으로 적은 수를 가진 인테르 원정 서포터들이나 그 열기만큼은 홈 서포터들을 압도하는 듯하다.
데르비 디탈리아(Derby d‘Italia)
영어로 이탈리아 더비(Derby of Italy) 부르며 양 팀 간의 라이벌리는 100년이 넘는 클럽의 역사만큼 대단히 치열하다.
특히 올 시즌은 역사상 최초로 리그 8연패를 꿈꾸는 유벤투스와 이를 필사적으로 저지하려는 인테르 간의 대결로 더욱 뜨겁게 달아올랐다.
[네- 유벤투스 선수들이 입장합니다.]
디발라, 보누치, 케디라 등 리그를 주름잡는 스타들이 나타나자 홈팬들의 환호에 커지고, 가장 뒤에 세계 최고의 슈퍼스타가 나타나자 이들은 열광하다 못해 광분한다.
“Siuuuuuuuuu!”
호날두의 트레이드마크 세리머니를 따라 하며 환호하는 유베 서포터들. 이번 시즌 상욱이 엄청난 활약을 보이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나 홈팬들의 관심은 포르투칼의 슈퍼스타에게 향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올 시즌 5경기 6골, 리그 적응기도 필요 없는 역대 최고의 선수 중 하나입니다.]
[진과 호날두! 인테르와 유벤투스! 올 시즌 우승 행방을 알아볼 경기가 지금 펼쳐집니다.]
***
전반은 인테르가 우위를 점했다.
측면에서부터 강력한 압박으로 상대를 쥐어짜는 인테르는 조직력을 중심으로 약한 전방 압박을 구사하는 알레그리의 유베를 정확하게 저격했다.
페리시치와 둠프리스.
인테르의 양쪽 풀백은 끊임없이 유베의 수비진으로 침투해 들어갔고, 전반 시작 10분 채 지나지 않아 기회를 만든다.
[페리시치가 상대 진영 깊숙이 공을 몰고 들어옵니다. 진 쪽으로 크로스! 아! 기회예요!]
페리시치의 긴 크로스를 상대 골라인 끝에서 받은 상욱은 뒤 상대팀 주장 키엘리니를 헛다리짚기로 벗겨 낸 뒤 그대로 다리를 꼰 라보나 크로스를 날린다.
[라보나로 크로스! 라우타로 달려듭니다아아아!]
[아! 골대 살짝 비켜 갑니다! 진의 완벽한 크로스에 이은 라우타로의 헤더! 170밖에 안 되는 선수가 저렇게 높게 뛰네요!]
마투이디, 케디라는 이제 나이가 많고 피아니치는 압박 능력이 좋은 편이 아니다.
인테르는 이런 점을 이용해 유베의 중원을 강력히 압박했고, 점점 더 많은 기회를 가져갔다.
점유율은 7:3까지 벌어진 상태에서 인테르의 중앙수비 슈크리니아르가 빌드업하며 위로 올라오더니 전방으로 길게 공을 연결한다.
[전방을 길게 찔러 줍니다. 유벤투스 중원이 벌어진 상태에서 그렇죠! 진이 잡습니다!]
공을 잡자마자 그에게 달라붙는 키엘리니의 다리 사이로 공을 길게 보낸 상욱은 그대로 본인이 가장 잘하는 치고 달리기를 시전한다.
[제로백! 오늘은 5초인가요, 3촌가요!]
보누치와 마투이디가 함께 달려드나, 상욱은 순식간에 이들을 뿌리치고, 동시에 수비진이 돌아오기도 전에 페널티 라인 앞으로 다가온다.
[부폰이 나옵니다만 오른발! 들어갔습니다!]
[세리에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데뷔전을 치룬 선수의 득점입니다! 진! 부폰이 아무것도 못했습니다!]
[본인이 왜! 호나우두의 재림이라 불리는지 또 한 번 증명해 냅니다! 이번 시즌 유럽리그 득점 1위! 챔피언을 경기 시작 10분 만에 침묵시킵니다!]
알레그리 감독은 바보가 아니다.
전상욱의 파괴력을 누구보다 잘 알았던 그는 대단한 수비력의 보누치와 리그 탑 수비형 미드필더 마투이디를 상욱의 전담으로 붙였으나 다 소용없는 일이다.
“저, 저 정도 스피드를 가진 공격수는 어떻게 막아야 하는 거지?”
축구 실력이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다. 상욱의 속도는 알레그리가 생각한 ‘상식’이라는 범위를 아득히 넘어선 수준이었으며, 상욱을 위해 고안해 낸 수비 전술이 한순간에 휴지조각이 됐다.
어처구니없는 공격에 경악을 금치 못한 알레그리.
“독일이나 잉글랜드 놈들이 죄다 무너진 이유가 있었군······.”
충격에 빠진 얼굴로 상욱의 세리머니를 멍하니 바라보던 그는 이내 자신감 있는 목소리로 말한다.
“그래도 이 경기는 우리가 이긴다.”
***
압도적.
인테르의 경기력은 그야말로 압도, 그 자체였다.
센시-브로조비치-바렐라로 구성된 인테르의 젊은 중원은 상대에게 좀처럼 주도권을 내주지 않았다.
안 그래도 중원 때문에 경기가 풀리지 않는데 진짜 유베가 힘들어 하는 건 따로 있었다.
[진이 오른쪽 터치라인에서 안쪽으로 파고 들어갑니다! 수비 파고 들어오는데 어림도 없죠!]
마치 뱀처럼 공을 양발로 교차시키며 수비를 위해 들어오는 선수들을 넘어트리는 상욱. 오른쪽 터치라인 끝에 있던 그는 순식간에 수비수들을 제친 뒤 페널티 라인까지 전진한다.
[그대로 감아 찹니다아! 부폰이 간신히 선방합니다!]
[방금 골이 들어갔다면 유벤투스는 오늘 경기가 대단히 어려워졌을 뻔했습니다!]
스피드도, 개인기도, 슈팅도. 상욱은 다른 선수들보다 아예 다른 차원에서 경기하는 듯했으며, 실제로 상욱이 공을 잡기만 하면 관중석에서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알레그리 감독을 포함한 유벤투스 선수들은 오늘 경기에서 진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
전반 27분,
왼쪽 페널티 라인에서 공을 잡은 호날두는 오른쪽으로 달려드는 수비수를 보자마자 왼쪽으로 틀면서 제치고, 이번엔 왼쪽에서 뛰어오는 수비수를 오른쪽으로 꺾어서 벗겨냈다.
그는 순간 빠르게 달려가 앞에 있는 만주키치에게 공을 전달한다.
[호날두의 대단히 좋은 패스! 만주키치가 잡고 올라갑니다!]
갑작스런 상대의 공격 전환에 놀란 인테르 수비수들이 막으러 달려들자, 페널티 라인 정면에서 공을 잡은 만주키치는 곧장 뛰어 들어오는 호날두에게 백힐로 공을 넘겨주고, 그는 곧 골대 구석으로 동점 골을 성공시킨다.
[호날두 슈웃! 들어갔습니다! 대단히 깔끔한 골입니다! 스코어 동점을 만드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각도자체가 호날두가 굉장히 좋아하는 각에서 들어갔구요. 굉장히 좋은 시간에 터진 골입니다. 인테르에게 넘어갈 뻔한 상황을 한 방에 반전시켰어요!]
순식간에 들어간 골에 인테르 수비진 전원이 당황한다. 데브라이-슈크리나아르-고딘, 세계구급의 수비수들이나 이들이 상대하는 공격수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공격수였다.
전반의 반이 지나가고 있을 때.
[유벤투스가 전술을 바꿨습니다. 압박 강도를 늘리면서 442로 변화했네요.]
[그렇습니다. 지금 형태를 보시면 호날두와 만주키치가 투톱을 서구요, 베르나르데스키가 내려와서 스탠딩 윙어 역할을 해 주고 있거든요? 이게 알레그리 감독의 강점이죠! 상대에 따라 변화무쌍하게 전술을 변경하는 겁니다!]
알레그리는 이번 경기를 위해 플랜 B, C를 모두 짜 왔다. 경기 중 콘테 감독의 약점을 정확히 찾아 이를 공략하는 모습을 보였다. 게다가.
“슈퍼스타는 너희한테만 있는 게 아냐.”
경기를 지켜보던 알레그리 감독이 씩 웃으며 경기장 안을 뛰어가는 호날두 바라본다.
“네놈들의 왕보다 더 뛰어나고, 더 경험 많은 에이스가 우리한테 있다.”
***
알레그리의 작전은 적중했다.
다른 선수들이 부단히 뛰어다니며 공간을 만들어 주자 오프더볼의 최강자인 호날두가 선수들이 만든 공간으로 돌파해서 위치를 잡는다.
[케디라가 만주키치에게 만주키치가 사이드로 뛰어가는 피아니치에게 길게 공을 보냅니다!]
라우타로가 후방까지 내려와 압박을 가하나, 피아니치는 상대를 드리블로 벗겨 내며 인테르 진영으로 크로스를 날린다.
크로스는 생각보다 길었다. 이대로라면 골라인 밖으로 나가는 것이 보통인 상황에서 수비수들이 순간 손 놓고 이를 바라만 본다.
“젠장! 호날두 막아!”
이 상황이 위기임을 안 사람은 단 2명. 상욱은 이를 인테르의 위기라고 생각했고, 호날두는 이것을 득점 기회라고 생각했다.
볼이 골라인을 넘어가기 직전 남들 점프의 2배는 번쩍 뛰어오른 호날두가 이내 골대 구석으로 역전 골을 성공시킨다.
[호날두우우우! 와! 들어갔습니다! 정말 대~단한 오프더볼, 소름 돋는 헤더입니다!]
[역시 세리에 챔피언 유벤투스입니다! 이렇게 쉽게! 경기를 내줄 이유가 없죠!]
역전골을 넣은 그는 인테르 서포들에게 다가가 양팔을 앞으로 내밀고 어깨를 으쓱하는 모습을 보인다.
“Jin, who?”
갑작스런 도발에 인테르 팬들이 이를 부득부득 갈며 욕설을 내뱉으며 소리친다.
인테르 서포들의 분노가 얼마나 컸는지 몇몇 팬들은 펜스를 넘어 그에게 달려들려는 모습을 보이자 놀란 동료들이 호날두를 저지하기까지 한다.
[아- 호날두가 인테르 팬들을 자극시키네요. 저건 얼마 전 진이 했던 인터뷰 때문이라고 봐도 될까요?]
[그렇건 같습니다. 인테르를 우승시키고 득점왕을 차지한다는 말을 하긴 했는데, 사실 호날두 정도의 레전드면 웃으면서 넘기는 줄 알았거든요.]
순식간에 2골을 넣은 유벤투스가 남은 전반을 압도해 나갔다.
알레그리는 아직 정제되지 않은 콘테 볼을 차근차근 밟아 나갔고, 이탈리아 국가대료 센터백 키엘리니와 보누치는 아까 선제골의 충격에서 벗어났는지 환상적인 수비를 보이고 있었다.
[만주키치가 헤더로 공 떨궈 줍니다! 오늘 유벤투스의 키 플레이어는 만주키치네요!]
수비벽을 뚫고 헤더를 따내 바닥에 공이 떨어지기 직전 이를 포착한 호날두가 원터치로 슈팅하려던 찰나,
[호날두우우! 아! 막아 냅니다!]
수비 가담을 위해 내려온 상욱이 슈팅 직전의 공을 막아 앞으로 롱 패스를 보낸다.
“제법이구나, 꼬마야.”
막아 낸 상욱을 보며 으르렁거리는 호날두. 그러나 상욱이 이에 쫄 리가 없다.
“넌 오늘 진짜 뒈졌다.”
자신을 노려보는 상욱을 향해 호날두가 도발을 이어 나갔다.
“왜? 네 잘난 팬들을 도발해서 그러냐? 아님 네 동료들을 제치고 골을 넣어서?”
“뭔 개소리야, 병신아?”
호날두의 도발에 상욱은 오히려 썩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지금이 2대1이니까. 전반에 2대2. 후반에 5대2로 우리가 이기면 되겠네.”
< 세대교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