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화
위대한 아시안
데르비 디탈리아(Derby of Italy)의 경기 파급력은 상상 이상으로 굉장했다.
경기가 끝남과 동시에 이탈리아 언론은 헤드라인과 진의 이름 앞에 새로운 수식어를 달았다.
[grande asiatico(위대한 아시안)]
진이야말로 무리뉴 시대 이후 암흑기를 겪던 팀의 부진을 끊어 낼 선수이며, 지난 십수 년간 챔피언스리그 타이틀을 차지하지 못한 세리에를 다시 부흥시킬 스타임을 증명했다.
또한 상욱은 이제 호날두, 부폰과 함께 세리에 대표 선수로 자리매김했으며 슈퍼스타로서 이름 날리고 있었다.
6경기 13골 5도움
인테르는 이적생의 사기적인 활약에 대단히 만족하면서도 동시에 그들의 예상보다 빨리 상욱을 잃을까 불안해하고 있었다.
[맨시티 1,098억에 진 영입 정조준]
[사리 감독“진이야말로 첼시의 유럽 정복을 이끌 선수”]
이미 프리미어리그 다수의 구단이 상욱에게 수석 코치나 감독 등을 직접 파견하며 상욱을 영입하기 위한 준비에 나섰다.
“이런 말 하는 게 웃기긴 하만······.”
훈련 후 다 함께 식사 중이던 인테르 선수단 사이로 콘테 감독이 다가와서 중얼거린다.
“좀 적당히 잘할 순 없냐? 당장 올겨울에 나갈까 걱정되는구나.”
현재 EPL 다수의 팀이 상욱을 노리고 있다는 소문이 리그 전체에 퍼졌다. 물론 상욱은 아직 이적 한 지 얼마 안 됐기에 다른 팀으로의 이적은 없다고 못 박았으나, 프리미어리그 막강한 슈가 대디들의 제안을 계속 거절하긴 힘들 것이라는 것이 콘테의 예상이다.
“걱정 마세요, 감독님.”
걱정 가득한 콘테의 모습을 본 상욱이 여유롭게 웃으며 중얼거린다.
“아직 여기서 이룬 게 아무것도 없잖아요. 리그도, 챔스도······.”
인테르는 psv와 다른 팀이다. 재력 면에서도 그러하며 전력에서도 진지하게 리그와 챔스를 노릴 만한 빅 클럽이다.
“모두 우승하기 전까진 안 나갈 테니깐.”
인테르에서 다른 클럽으로 이적할 때는 반드시 세계 최고의 선수의 자격으로 이동하고자 맘먹는 상욱이다.
“아 맞다! 진, 오늘 파티 있는데 너 올래? 아니 꼭 와!”
“파티?”
식사 후 개인 웨이트와 체력 강화훈련을 준비 중이었던 상욱이.
“그래! 유베 놈들도 잡았고, 성적도 좋잖아. 간만에 기분 전환 좀 하자구. 우리 맨날 훈련만 하잖아!”
라우타로는 혹시나 이 말을 콘테가 들을까 걱정됐는지 속삭이듯 말한다.
“클럽 하나 통째로 빌렸어. 밀라노에서 제일 잘나가는 모델이랑 셀럽들도 죄다 초대했으니까 진 너는 그냥 오기만 하면 돼!”
현재 유럽 전역에서 가장 핫한 축구 선수. 게다가 모델같이 큰 키에 얼굴까지 잘생긴 상욱은 이미 이탈리아인들의 아이돌과 같은 존재였다.
개인적으로 경기장 외에서 상욱을 만나고자 하는 유명 인사들이 주를 이었으나 그는 인테르 입단 후, 팬 행사를 제외하곤 한 번도 개인적인 모임을 하지 않았다.
대신 피지컬 전문 트레이너, 체력 트레이너, 개인 요리사 등을 고용하여 부단히 실력 향상에 집중했다. 이러니까 구단과 콘테 감독이 상욱에게 푹 빠질 수밖에 없지.
“아니 난 그런 덴 흥미 없······.”
“진도 한번 나와! 가끔씩 즐기기도 하자구!”
“그래, 주변에 너 소개시켜 달라는 사람이 한둘이 아냐!”
이 말을 들은 인테르의 중원 듀오 바렐라와 브로조비치가도 끼어들어 말한다.
아직 파티나 여자에게는 관심이 없던 상욱이 더 귀찮아지기 전에 거절하기 위해 말을 잇자.
“야야, 나 둬라. 진 저 녀석 완전 숙맥이니까. 쟤는 놀고 그런 거 잘 몰라~.”
지나가던 슈크리니아르가 킥킥거리며 웃는다. 사실 이렇게 생각할 만도 하다. 데뷔 후 지금까지 유흥 없이 축구에만 미쳐 살았던 상욱. 심지어 나이도 어리니 팀원들은 그가 노는 것 따윈 전혀 모르는 축구에 모든 것을 바친 금욕주의 아시안이라 생각할 것이다.
“그건 그러네- 여자랑 손을 잡아 봤겠어, 진이?”
“저 자식 잘생기기만 했지, 아무것도 몰라 아하하!”
악의 없이 헤헤거리며 자신을 놀려 대는 동료들의 모습에 어처구니가 없는 상욱이 피식 웃으며 잠시 생각한 뒤 말한다.
“갈게.”
“응? 와! 정말?!”
의외로 초대를 응한 상욱에게 기쁨과 놀람을 동시에 보이는 라우타로. 상욱은 자신을 놀렸던 동료들을 모두 초대한 뒤
“밀월의 미친개가 피치 위에서만 있던 게 아니거든.”
상욱이 무어라 중얼거렸으나 이를 귀담아듣는 팀원은 아무도 없었다.
***
“이게 무슨······.”
라우타로는 유흥 경험이 없는 동양인 친구에게 성공한 스포츠 스타로서의 삶이 얼마나 즐겁고 짜릿한지 알려 줄 심산이었다.
바라는 모든 것을 이룰 수 있고, 원하는 모든 여자를 안을 수 있다. 일단 그는 자신의 애인인 유명 모델과 함께 상욱을 만나 눈을 휘둥그레 만들어 놓고, 겸사겸사 멋진 애인을 만들어 주기 위해 초대했는데-
“저 자식 뭐······ 아니 일단 미성년자 아냐?”
클럽 한가운데서 양옆에 여성을 끼고 미친 듯 춤추는 상욱. 슈퍼스타면 맨 뒤에서 조용히 팔짱 끼고 앉아 술이나 홀짝거려야 하는데 상욱은 본인이 전면에 나서 파티 분위기를 주도한다.
“어······ 진?”
라우타로가 조심스레 그에게 다가가나 상욱은 동료를 단상 위로 올린 채 함께 호루라기를 불며 춤을 춰 댄다.
“숙맥은 무슨, 너무 잘 노는데?!!”
라우타로의 애인과 그녀의 친구들이 함께 무대 위로 올라가 밀라노 최고의 스타를 한번 만지기 위해 애쓰고, 상욱은 오늘 기꺼이 이들과 교감하며 한껏 즐긴다.
놀란 건 라우타로 뿐만 아니다.
식사 때 상욱을 놀렸던 인테르 선수들 역시 상욱의 모습에 입을 떡 벌리고 그를 바라본다.
“아니, 저 어린놈이 왜 이렇게 잘 노는 거야?”
“축구만 잘하는 줄 알았는데······ 저거 완전······ 미친놈이잖아?”
그리고 이젠 아예 DJ석 위까지 올라가 사람들을 주도해 춤을 춰대는 상욱.
클럽과 파티와 같은 유흥은 다니엘 잭슨 때 지겹게 했다. 런던 클럽과 술집에 다니엘의 사인이 없으면 별 볼 일 없다는 취급을 받았고, 그는 하루에도 여성을 2~3명씩 바꿔가며 즐기곤 했다. 다니엘과 잠자리한 여성들은 ‘그는 마치 드릴과 같았다’라는 말을 할 정도로 엄청난 실력을 갖췄다는 소문이 있었으나······ 지금은 다 옛날얘기다.
“진은 어디 갔어? 걔 완전히 돌았던데!!”
동료의 의외의 모습에 놀란 바렐라가 라우타로에게 다가와 상욱의 위치를 묻는다.
“나도 찾고 있어. 갑자기 사라지더라고.”
“뭐 적당히 모델이랑 따로 방에 있겠지. 그나저나 진짜 의외다. 난 그 녀석이 그렇게 플레이보인지 몰랐어!”
바렐라의 말에 말꼬리를 흐리는 라우타로.
“따로? 그런 것 같진 않던데······.”
클럽 안에 상욱이 없는 것을 확인한 라우타로가 뭐에 이끌린 듯 밖으로 나와 인테르 팀 훈련장으로 걸어간다.
새벽 1시가 넘은 시간,
이 시간에 훈련하는 선수는커녕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은 훈련장 입구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는 라우타로.
“헉······ 허억······.”
그곳엔 공을 잡고 훈련장 전체를 드리블하며 뛰어가는 상욱의 모습이 보인다. 원래도 빛처럼 빠른 선수인데 수비 방해 없이 뛰어 들어가는 모습은 정말 단거리 육상선수와 같았다.
“저게 대체······.”
그저 입을 떡 벌린 채 동료를 바라보던 라우타로가 축구화를 신고 훈련장 안으로 들어오자 상욱이 그에게 공을 보내며 싱긋 웃는다.
“뺏어 봐, 타로.”
6번의 1on1 대결에서 라우타로는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상욱은 동료이자 친구에 대한 존중으로, 최선을 다해 라우타로를 상대했고, 이들의 승부는 마지막 대결에서 라우타로가 지쳐 자리에 벌렁 누웠을 때야 끝났다.
“놀려서 미안해, 진.”
“미안하긴, 장난친 건 니콜로 그 녀석인데 뭐.”
대체 왜 이 시간에 나와서 훈련하는지, 힘들진 않은지 라우타로는 상욱에게 하나도 묻지 않았으며, 애초 궁금하지도 않았다. 그저 상욱의 실력을 보면 알 수 있었으니까.
이후 한참을 함께 훈련하던 라우타로는 마침내 추가 훈련을 마친 뒤 헉헉거리는 상욱을 보며 씩 웃는다.
“진, 넌 역시 훈련장에 제일 잘 어울려.”
***
유벤투스전 승리로 자신감이 하늘로 찌른 인테르의 다음 상대는 잘츠부르크와의 챔피언스리그 경기였다.
오스트리아 리그 챔피언인 FC 레드불 잘츠부르크는 월드컵에서 활약한 한국인 윙 포워드 황찬희의 소속 팀으로 한국 언론에선 전상욱과 황찬희의 코리안 더비에 대한 관심을 받았다.
이번 시즌 4경기에 출전해 2골을 넣은 황찬희는 인테르라는 거함을 잡기 위해 만발의 준비를 해 왔으나-
이들이 상대해야 하는 선수는 그저 평범한 공격수가 아니었다.
[라우타로가 빠르게 전진합니다. 수비수 앞에서 몸 밀치고 들어오는데요! 그대로 밀면서 진에게 전달! 진이 받습니다, 대단히 좋은 위치입니다!]
[들어갔어요오오!! 올 시즌 유럽 최고의 선수 진의 선제골!]
오스트리아 챔피언 잘츠부르크는 결코 만만한 팀이 아니다. 황찬희와 미나미노로 이어지는 아시안 듀오는 말 그대로 리그를 폭격중에 있었고, 이번 챔스 본선 D조의 다크호스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강팀이었다.
그러나 상대를 조금 잘못 고른 듯했다.
[3:0 스코어에서 진을 빼 주네요]
[네, 경기도 기울었고 주말에 피오렌티나와 리그 경기도 있으니까요. 적절힌 시기의 교체입니다]
후반 60분에 3:0 스코어.
인테르는 오늘 경기에서 상대 수비를 찢다 못해 완전히 부숴 버린 상욱이 체력 안배를 위해 교체하자, 잘츠부르크에도 무언가 희망이 생기는 듯했다.
상대 에이스가 빠졌으니 전술이 바뀔 것이고, 그 변화는 과정에서 분명히 틈이 있을 것이다- 라는 것이 잘츠부르크의 생각.
뭐 아예 틀린 말은 아니나 에이스가 빠진다고 할지라도 인테르는 결코 약한 팀이 아니었다.
[바렐라가 짧게 드리블 치면서 앞으로 길게!! 어, 오! 순식간에 공간 찾아들어갑니다!]
하프라인 조금 위에서 바렐라, 길게 올린 로빙패스를 받은 라우타로가 페널티 라인 바로 위에 있는 브로조비치에게 연결. 그는 득달같이 달려와 추가 골을 득점한다.
[4대0! 더 볼 것도 없습니다! 완전히 침몰하는 잘츠부르크입니다!]
[위대한 인테르! 무리뉴 시대로의 회귀! 이번 시즌 챔피언스리그 우승 후보 인테르입니다!]
인테르의 초반 기세는 당최 무너질 생각을 않았다. 인테르는 챔스 이후 뒤이은 리그 2경기에서도 1승 1무를 기록하며, 리그 9경기 7승 2무를 기록한다.
성적은 당연히 압도적 리그 1위, 최다득점 최소실점을 기록 중이며, 전상욱은 리그 9경기 15골 6도움을 기록하며 득점과 도움 부분에서 둘 다 1위를 달리게 되었다.
무서운 시즌을 보내는 네라 주리의 상대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루카쿠와 포그바 등의 스타들과 래시포드, 맥토미니와 같은 강력한 유스 출신 선수들이 즐비한 맨유.
리그에선 별 좋은 모습을 보여 주진 못하나, 챔피언스리그에선 무려 PSG를 상대로 1승을 거두는 등 부활을 준비 중이다.
[래시포드vs진 차기 발롱도르는 누구?]
[래시포드와 진, 월드컵에 이은 챔스로 2차전!]
[유나이티드의 심장과 위대한 아시안의 대결 승자는?]
영국 언론과 특히 맨유 측은 이번 대결을 래시포드와 전상욱의 라이벌리에 초점을 맞췄다.
저번 월드컵에서 잉글랜드가 한국에게 이겼으니 래시포드가 지금 상욱에게 앞서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 이들의 어처구니없는 주장.
그리고 위대한 아시안은 다시 한번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경기에 나선다.
< vs 맨유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