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9화
“네? 1,000개나요?”
신소율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게 물었고.
나는 머리를 끄덕였다.
“예, 당장 1,000개 빼도 무리 없는 거죠?”
내 말에 신소율은 입술을 잘근 깨물며 답했다.
“재고가 넉넉해서 무리는 없는데… 1,000개가 어디서 발주 들어온 거예요?”
그녀는 자신의 노트를 뒤적이며 재차 물음을 던졌다.
“저한테 그렇게 대량으로 들어왔던 병원이…….”
나는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입을 열었다.
“기부하려고요.”
“기부를 하신다고요?”
신소율과 문지음은 ‘기부’라는 내 말에 놀란 듯 동시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고.
나를 향해 되물었다.
“1,000개를 전부 기부하신다고요?”
“네,”
내 말에 신소율은 자신의 컴퓨터 파일을 뒤적였고.
미간을 찌푸린 채 심각함을 드러냈다.
“대표님, 파우더 스플린트도 아니고 교정용 스플린트를 지금 기부하시기에는 너무 이제 막 나온 제품이잖아요.”
“그렇죠. 파우더 스플린트는 환자한테밖에 쓰지 못하니까, 기부하는 데 의미가 없어서요. 교정용 제품을 기부해야, 많은 사람이 쓸 수 있잖습니까.”
그녀는 내 말에 입술을 만지작거리며 답했다.
“이거 제조하면서 든 비용과 생산 설비 라인 비용 등 투자한 금액을 아직 회수 못 했어요.”
“알죠. 이제 막 나온 제품이니까요.”
“그런데도 기부를 하신다고요? 아직 본전 회수하려면 멀었다는 거 아시잖아요.”
출시된 지 한 달, 아니 일주일도 채 되지 않은 제품.
투자한 금액을 회수하는 것, 그리고 이윤을 챙기기에 멀었다는 건 당연했다.
“굳이 지금 JH 메디컬에서 기부를 하시려는 이유가…….”
그녀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말을 흐렸고.
나는 신소율을 바라보며 답했다.
“JH 메디컬이 아닌, 배우 진희성 이름으로 기부를 좀 하고 싶어요.”
“네?”
기부를 하겠다고 할 때보다 더욱 놀란 표정의 그녀.
“희성 씨 덕에 홍보 효과가 톡톡했잖아요. 그래서 고마움을 표하고 싶더라고요.”
“그래도……. 만약 그런 거라면 희성 씨한테만 보내 주시면 되는 거 아닌가요?”
신소율은 나를 막아서듯 재차 제안을 했다.
그런 그녀의 반응이 나는 오히려 고마웠다.
대표인 내가 하자는 대로 모든 것을 알았다고 따라오는 게 아니라.
자신의 의견을 어필하는 게 고마운 것이지.
단순히 수동적으로 시키는 일만 하는 게 아니라, 능동적으로 일을 하는 것일 테니까.
“희성 씨한테 보답하려고 했는데, 안 받겠다고 하더라고요.”
내 말에 문지음도 머리를 긁적이며 의견을 표했다.
“그럼… 그냥 안 보내시면 되는 거 아닌가요?”
그녀의 말에 동의하듯 신소율 역시 말을 보탰다.
“맞아요. 게다가 희성 씨한테 1,000개를 기부해 봤자 평생 다 쓰지도 못할 거고요.”
나는 그녀들의 말에 웃으며 답했다.
“당연하죠. 그래서 희성 씨 이름으로 좋은 곳, 필요한 곳에 기부를 하려고 해요.”
“그래도 1,000개씩이나…….”
나는 손가락을 뻗어 허공에 찌르며 입을 열었다.
“1,000개를 기부하는 거, 이거 일석이조 아니, 일석삼조예요.”
“그게 무슨…….”
나는 사무실 테이블 위 올려진 교정용 스플린트를 보며 말했다.
“이제 막 출시된 상품이라, 병원들에는 많이 알려졌지만. 정작 이 제품을 사용해야 할 소비자인 환자분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았어요.”
내 말에 신소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아직 알려지기에는 시간이 부족했죠.”
“그런데 제가 이걸 보냄으로써, 많은 사람이 이 제품을 알게 될 거예요. 1,000개를 기부할 테니 적어도 1,000명은 이 제품을 써 보고 진가를 알게 되겠죠.”
나는 입꼬리를 씨익 올리며 말을 이어 갔다.
“제품 홍보는 물론이고, 저는 진희성 씨에게 고마움을 조금이나 보답할 수 있겠죠.”
문지음은 고개를 끄덕이며 내게 물었다.
“일석삼조라면… 그렇다면 또 하나는요?”
“이 기부를 통해 JH 메디컬의 회사 이미지까지 좋아질 거예요. 희성 씨 이름으로 함께 기부하지만, 거기에 JH 메디컬의 이름도 있을 테니까요.”
“아…….”
“우리 회사는 아직 제품보다 유명하지 못해요. 그러니, 이 기회에 좋은 기업으로 이름을 알린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죠.”
“오오. 좋은데요?”
문지음은 그제야 눈썹을 들썩이며 내게 말했고.
그럼에도 신소율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답했다.
“충분히 좋다고 생각해요. 근데 대표님, 굳이 1,000개나 기부하실 필요가 있는 거예요? 수량이 너무 많아서요.”
나는 몸을 돌려 신소율을 바라보며 말했다.
“소율 씨, 지금은 단순히 우리가 1,000개의 제품값을 손해 본다, 손실 아니냐, 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이건 투자라고 해 두죠.”
“투자요?”
“네. 우리 파우더 스플린트가 물론 제품이 좋아서도 있지만, 처음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된 건 제품이 아니라 진희성 씨 덕이었어요.”
그녀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진희성 씨의 착용과 그의 라이브 방송. 그 단 한 번으로 알려지고, 실제로 제품을 쓰고 나서 입소문이 나면서 제품이 좋다고 인정을 받은 거죠.”
“그렇죠.”
“물론 진희성 씨가 알리지 않았어도, 저는 제품에 자부심이 있어 분명 성공했을 거라고 확신해요. 하지만 그건 오랜 기간이 걸렸을 겁니다.”
그녀는 내 말에 눈을 깜빡이며 집중하고 있었다.
“저는 빠른 기간 안에 많은 이들이 교정용 스플린트를 써 봤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이 기부가 제 의도를 충족하기에 충분히 좋다고 생각하고요.”
내 말에 신소율은 마른 침을 삼켰고.
이내 입꼬리를 씨익 올렸다.
“대표님, 역시 선견지명이 있으신데요?”
그녀는 끝내 내게 엄지를 치켜들었다.
“아닙니다. 하하.”
“그럼 블루 메디컬에 연락해서 1,000개 준비시킬까요?”
“제가 곧 다시 이야기할게요.”
“알겠습니다.”
* * *
미리 예약한 프라이빗한 술집.
세팅되어 있는 음식들을 뒤로한 채, 자리에 앉음과 동시에 재차 문이 열렸다.
“형!”
내 모습을 보자마자 반갑게 손을 흔들며 들어오는 사람.
배우 진희성이었다.
“희성 씨, 왔어요?”
나와 진희성을 서로를 마주 보고 미소를 지었고.
우리는 서둘러 자리에 앉았다.
“잘 지냈어요?”
“네, 형도 잘 지내셨죠?”
“그럼요. 이제 촬영은 끝난 거예요?”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예, 몇 달 뒤에 시사회 하면 형도 한 번 보러 오세요. 초대하고 싶어요.”
“제 돈 주고 표 사서 보러 가도 되는데.”
“에이. 동생이 주연인데, 시사회 와서 보셔야죠. 하하.”
우리는 곧장 술잔을 채웠고.
챙—
술을 마시며 근황에 대한 이야기 나누기를 한참.
몸속에 알코올이 스르르 퍼져 갈 즈음.
진희성이 술을 들이켜 마신 뒤 내게 물었다.
“맞다, 형 오늘 저한테 할 말 있으시다고…….”
나는 서둘러 고개를 들고 입을 열었다.
“네, 제가 기부를 좀 하고 싶어서요.”
“기부요?”
“교정용 스플린트를 희성 씨와 함께 좋은 곳에 기부하고 싶어요.”
그는 내 말에 눈을 휘둥그레 뜨고 소리쳤다.
“정말요?”
“예, 희성 씨한테 그동안 고마운 것도 많아서 보답을 좀 하고 싶었어요. 제가 직접 선물하는 건 싫다고 하시니, 좋은 방법이 뭐가 있을까 싶더라고요.”
그는 어느새 들고 있던 술잔도 내려놓은 채 내 말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래서 희성 씨와 함께 교정용 스플린트를 좋은 곳에 기부하는 건 어떨까 싶은데, 어때요?”
내 말이 끝나자마자 진희성은 입꼬리를 길게 올렸다.
“좋아요.”
기부라는 말에 그는 환한 미소를 보였고.
나 역시 입꼬리를 올린 채 술잔을 높이 들었다.
챙—
우리의 이야기가 성사됐다는 것을 알리는 듯한 술잔.
나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그에게 물었다.
“혹시 기부하고 싶은 곳 있어요?”
내 말에 그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형. 그럼 기부는 어느 정도…….”
“저는 1,000개 생각하고 있어요.”
“그렇게나 많이요?”
진희성은 수량에 놀란 듯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크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그 모습에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머리를 끄덕였다.
“제가 감사한 게 많아서요.”
“그 기부에 저까지 끼워 주신다니까 너무 감사해요, 형.”
“감사하긴요. 제가 희성 씨한테 보답하고 싶어서 생각한 건데, 이렇게 반갑게 받아 줘서 고마워요.”
그는 손사래를 치며 내게 말했다.
“1,000개라는 수량이 쉽지 않았을 텐데… 제가 그냥 저번에 보답받았으면, 더 간단하게 끝날 수 있었는데. 형 돈 너무 많이 쓰게 만든 거 같아서 죄송한데요?”
“하하. 돈은 훨씬 많이 쓰겠지만, 그래도 좋은 일에 쓰게 되니까 좋죠.”
장난기 섞인 내 말에 우리는 웃음을 터트렸고.
이내 진희성은 턱을 어루만지며 생각에 잠겼다.
“음… 어느 곳에 기부를 하면 좋을까요?”
나는 그런 진희성을 가만히 바라보며 대답을 기다렸고.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게 물었다.
“형. 그거 어린아이들이 써도 좋은 거예요?”
“당연하죠. 이게 치료 목적이 아니라, 성장기인 아이들이 사용해도 도움이 많이 돼요.”
내 말에 진희성은 손가락을 튕기며 소리쳤다.
“그럼 저 기부하고 싶은 곳 있어요!”
“어디요?”
그는 반짝이는 눈으로 내게 말했다.
“제가 사실 몇 년 전부터 봉사 활동을 가는 보육원이 몇 곳 있거든요. 촬영이 없는 날 자주 가는 곳이 있어요.”
진희성의 말에 나는 입꼬리를 스르르 올렸다.
사람 대 사람으로 그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에게 이런 따스한 면까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더욱 호감이 가게 되었다.
항상 바쁜 스케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기에.
휴식을 취할 때면 당연히 집에서 쉬거나 여행을 갈 줄 알았지, 봉사 활동을 갈 거라는 건 예상하지 못했으니까.
말이 쉽지, 생각만큼 실천에 옮기기 힘든 것 또한 봉사 활동이다.
자신의 시간, 정성, 체력을 쏟아야 하는 것이니까.
나 역시 어린 시절부터 다니던 여수의 보육원이 생각났고.
한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가지 못했던 그곳이 눈에 아른거렸다.
“희성 씨, 진짜 따스한 사람이네요. 저도 어릴 적부터 가던 보육원이 있는데. 다음에 내려가서 꼭 가 봐야겠어요.”
“형, 여수면 저도 다음에 같이 데려가 줘요. 가는 길에 광주 가서 고향도 가 보고!”
“좋죠. 여수에 있는 그곳은…….”
우리는 그렇게 봉사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한참 이어 나갔다.
그렇게 한 시간의 시간이 흐를 때까지 우리는 1분도 멈추지 않고, 서로에 대해 알아 가며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던 중, 진희성은 환한 얼굴과 함께 내게 말했다.
“형. 그나저나 이제 저한테 말씀 편하게 하세요.”
“그래도…….”
“저는 형이랑 더 가까워지고 싶은데, 형도 저한테 편하게 해 주셔야 좋죠.”
그는 눈썹을 들썩이며 내게 말했고.
진희성의 진심이 담긴 눈빛에 나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항상 사업에서 선을 지키려 노력하지만, 이제 진희성과는 많은 것을 이야기하며 사적인 친분이 쌓여 가고 있음을 느꼈으니까.
“그럴까……?”
“네. 앞으로도 더 자주 만나요, 형.”
* * *
며칠 뒤.
진희성과 이야기했던 보육원 몇 곳.
그리고 그가 요청했던 취약 계층 아동을 위해 기부를 시작했다.
생각보다 1,000개라는 개수는 기부를 하기에 어마어마한 숫자였다.
소모품으로 쓰이는 제품이 아니라, 영구적인 제품이기에 쌓아 두고 쓰게 줄 수가 없었던 것이지.
나는 진희성과 함께 이야기를 나눠, 그가 봉사 활동을 가지 않는 곳.
서울 근교와 지방을 알아봐 제품을 필요로 하는 곳까지 기부 물품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봉사 활동을 가던 여수의 보육원까지.
그렇게 기부가 이어지고, 진희성은 내게 고마움을 표하며 자신의 사비를 더해 제품 1,000개를 보태 더 많은 곳에 기부를 이어 갔다.
며칠이 지나 인터넷 기사는 진희성과 JH 메디컬로 도배되기 시작했다.
[배우 진희성 & JH 메디컬과 함께 의료 제품 기부… 전국의 많은 보육원…….]
[천만 배우 진희성, 따스한 기부의 손길. 함께한 JH 메디컬은 어디?]
[진희성, 메디컬 업체 ‘JH 메디컬’과 손잡고 기부. 그들의 선한 영향력에 대한민국이…….]
기사를 보며 흐뭇하게 미소를 짓던 그때.
지이잉.
지이잉.
휴대전화에서는 알림음이 빗발치기 시작했다.
“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