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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영업사원이 되었다-298화 (298/339)

298화

빠르게 흔들리는 김사랑의 동공에도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같은 레시피의 커피를 마셨던 사람이 리본 종합병원에 강 원장이라는 사실을 이야기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원장’이라는 단어에도 동공이 흔들리는 그녀.

하지만 나는 굳이 그녀에게 다른 질문을 하거나, 이야기를 보태지 않았다.

“그래서 그 커피 맛있어?”

나는 에둘러 대화를 넘겼고.

그녀는 어색한 웃음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음… 자기도 먹어 볼래?”

김사랑은 내게 커피를 내밀었고.

그녀 역시 내게 재차 캐묻지는 않았다.

나는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좌우로 가로저었다.

강 원장과 김사랑, 그 둘 사이에는 분명 무언가가 있는 것 같았다.

아니, 강 원장이 아니더라도 이 다소 독특한 레시피의 커피를 마시는 누군가는 말이다.

나는 굳이 그녀에게 더 이상 묻고 싶지 않았다.

내가 누구를 말하는 것인지.

그녀가 누구를 생각하는 것인지.

그 사람이 그녀와 어떤 사이였는지 말이다.

김사랑이 생각하는 사람이, 그리고 내가 말하려고 하는 그 사람이 김사랑과 가까운 관계.

혹은 친한 친구였다고 한다면, 분명 반가워했을 터.

그러나 좋지 않은 사이, 혹은 좋았지만 이제는 그렇지 못한 관계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대화를 피했겠지.

나는 그래서 더욱 그녀와 그 대화를 끌고 가고 싶지가 않았다.

과거를 다 안다고 해서 서로에게 무조건 득이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아는 게 힘이라는 말이 있지만,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지금 이 관계는 모르는 게 약이지 않을까, 라는 확신이 들었다.

물론 ‘현재’는 말이다.

내가 알아야 하는 일이라면, 김사랑이 내게 먼저 말을 해 주었겠지.

김사랑은 어색하게 넘어가 버린 대화에 멋쩍었는지 조심스레 내게 물었다.

“이 커피… 아까 자기가 말한 거 말이야…….”

그녀는 내게 말을 하고 싶지 않은 눈빛이 분명히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위해 입을 여는 게 내 눈에 보였다.

“사랑아.”

“응?”

“하고 싶은 말이면 해도 되는데, 굳이 하고 싶지 않으면 꺼내지 않아도 돼.”

내 말에 그녀는 마른 침을 삼키며 천천히 머리를 끄덕였다.

“그렇기는 한데… 내가 말을 끊어 버려서 자기가 불편할까 봐…….”

김사랑의 말에 나는 입꼬리를 올린 채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괜찮아. 네가 나한테 꼭 해야 되는 말이면, 내가 하지 말라고 해도 하겠지. 굳이 꺼내지 않아도 돼.”

내 말에 그녀는 그제야 천천히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내게 입을 닫은 것 때문에 우리 관계가 흐트러질 것이었다면, 우리는 진작 헤어질 얕은 관계였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사랑과 믿음은 견고했고.

나는 그녀를 너무나도 강하게 믿고 있다.

내가 누구보다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그녀가 내게 말하지 않는 것은 그저 숨기기 위한 위험한 사실이기 때문이 아닌.

분명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확신하기 때문이지.

나는 사랑스럽게 웃고 있는 김사랑을 바라보며 톤을 높여 물었다.

“오늘 퇴근하고 어디로 데이트 갈까?”

* * *

“다녀왔습니다.”

“대표님, 오셨어요?”

나를 반기는 신소율과 문지음.

그녀들은 초롱거리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 사무실은 별일 없었죠?”

내 말에 그녀들은 약속이나 한 듯 고개를 빠르게 끄덕이며 내게 물었다.

“대표님, 제품은요?”

“맞아요. 제품 이제 나오는 거예요?”

그녀들은 나를 기다렸다는 듯 아니, 교정용 스플린트를 기다렸다는 듯 내게 재촉하듯 물었고.

나는 미소를 지으며 소리쳤다.

“네, 당장 다음 주부터 판매 가능할 것 같아요!”

내 말에 신소율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외쳤다.

“하아… 다행이다.”

그녀가 이렇게 소리치는 이유.

내가 인터뷰를 했던 이달의 메디컬 잡지.

그 잡지에서 나는 추후 교정용 스플린트에 대한 이야기를 슬쩍 흘렸고.

그래서인지 타 메디컬들과 병원에서 추후 계획과 발주에 대한 이야기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많은 전화가 오고 갔지만, 그걸 감당해 내는 건 오롯이 사무실의 안주인, 신소율이었지.

그 덕에 교정용 스플린트를 나보다 더 애타게 기다린 게 그녀였다.

“소율 씨, 이제 다음 주면 당장 물건 출고 가능하니까. 이후 출고 계획은 같이…….”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신소율이 입을 열었다.

“이미 정리해 뒀는데, 바로 보고드려도 될까요?”

“아… 네, 그럼요.”

신소율은 기다렸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책상 위에 올려진 파일을 내게 건넸다.

“여기, 지금 발주 들어온 병원들 수량이고요. 그리고 여기는…….”

그녀는 정리된 파일을 보며 내게 설명을 늘어놓았고.

나는 그녀의 준비성과 업무력에 엄지를 치켜들었다.

“역시, 소율 씨 실력은 진짜 따라올 사람이 없네요.”

그녀는 입꼬리를 씨익 올리며 답했다.

“당연하죠.”

“그럼 저는 블루 메디컬에 수량 한 번 더 체크하고, 소율 씨한테 넘길게요.”

“네, 필요하신 거 있으시면 말씀해 주세요.”

“그럴게요.”

나는 서둘러 대표실로 들어왔고.

블루 메디컬에 연락해 수량을 체크했다.

그렇게 몇십 분의 시간이 흐르고.

나는 바삐 보내던 하루를 마무리해 가고 있었다.

너무나 바빴던 하루.

고단한 몸을 의자에 푸욱 기대었다.

생각보다 빠르게 나온 교정용 스플린트.

그 덕에 신제품인 교정용 스플린트가 파우더 스플린트의 인기를 이어 갈 수가 있게 되었다.

아무래도 업계의 흐름이 빠른 편이다 보니, 한 제품이 업계를 들썩이고 나면.

비슷한 제품들이 업계에 우르르 쏟아질 수밖에 없다.

이미 파우더 스플린트가 메디컬 스플린트 쪽에서 새롭게 나타나자, 비슷한 제품이 나온다는 이야기들이 돌았으니까.

하지만 아직 출시가 된 제품은 없었다.

내가 만든 제품이 나온 것조차 얼마 되지 않았기에.

그런데 나는 그 제품의 흥행을 만끽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서둘러 교정용 스플린트를 만들어 낸 것이지.

그래서 파우더 스플린트로 업계에 이름을 널리 퍼트리던 JH 메디컬.

그 흐름을 타고 교정용 스프린트까지 유명해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교정용 스플린트 카탈로그를 빤히 바라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원장님들 사이에서도 의료용 교정 제품이라, 병원에서도 처방받아 판매할 수 있어서 반응이 꽤 좋았지.”

샘플이 나오자마자 쉴 새 없이 돌아다녔던 병원.

그 시장 조사에서도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물론 실제로 판매가 시작되어 봐야 알겠지만, 조사에서는 그러했다.

나는 입술을 잘근 깨물며 기대감을 가라앉히기 위해 노력했다.

너무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니까.

그리고 그때,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한 사람.

그 사람은 다름 아닌 배우 진희성이었다.

그로 인해 내가 많은 아이디어를 얻게 되었으니까.

나는 주저할 것 없이 서둘러 휴대전화를 들었고.

그에게 문자 하나를 보냈다.

[희성 씨, 할 말 있는데 통화 가능할 때 연락 좀 줄래요?]

배우 생활을 하는 그였기에, 아무 때나 전화를 편히 걸 수는 없었다.

그런데 문자를 보내자마자 휴대전화에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다.

지이잉.

[발신인 : 진희성]

“어? 벌써 전화가 왔다고?”

나는 화면에 뜬 이름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수신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 네, 형. 저 희성이에요.

“아, 혹시 촬영 중일까 봐 문자 보냈어요.”

- 오늘 촬영이 일찍 끝나서, 이제 집 가는 중이거든요. 형 잘 지내시죠?

“그럼요. 희성 씨, 내가 저번에 말한 교정용 스플린트 기억해요?”

내 말에 그는 반가운 목소리로 답했다.

- 당연하죠. 설마 벌써 제품 나온 거예요?

“네, 생각보다 빠르게 마무리가 돼서 물건이 다음 주면 출시될 것 같은데.”

- 이야. 역시 추진력이 형 정도는 돼야 성공할 수 있나 보네요. 축하드려요.

“하하. 고마워요. 그래서 말인데, 이 제품 희성 씨한테 좀 보내주고 싶어서요.”

- 저한테요?

“예. 이렇게 파우더 스플린트가 잘된 것도 희성 씨 덕이고, 교정용 스플린트라는 아이디어도 희성 씨를 보면서 떠올랐거든요.”

- 에이. 제가 한 게 뭐가 있다고…….

“아니에요. 너무 고맙지. 그리고 저번에 말했잖아요. 희성 씨 사용할 제품은 내가 평생 책임지겠다고. 이게 교정용이니까 전체 사이즈, 팔다리용이랑 허리, 목, 전부 보내줄게요.”

- 형. 그럼 제가 너무 죄송하죠.

“죄송하긴, 줄 수 있는 제품이 이런 교정용밖에 없잖아요. 치료용을 준다는 건, 희성 씨가 다쳤을 때밖에 사용 못 하는데. 그건 평생 안 써야 좋은 거니까.”

그는 잠시 답을 망설이더니, 이내 차분한 톤으로 내게 말했다.

- 형. 마음은 정말 감사한데요. 제가 직접 사서 써 볼게요.

“그래도…….”

- 안 그래도 형 교정용 제품 기다렸던 사람 중 하나거든요. 저도 이렇게 저를 생각해 주는 형이 생긴 덕분에 고마움을 표하고 싶어요.

“제가 고맙죠.”

- 형도 왕십리 종합병원에 하 원장님 아시죠?

“네, 희성 씨 하 원장님한테 진료받는 것도 알죠.”

- 거기도 어차피 판매할 것 같은데, 그 병원에서 직접 구매해 볼게요.

“희성 씨, 나는…….”

내 말이 채 끝나기 전에 진희성이 다시금 입을 열었다.

- 형도 그때 말했잖아요. 파우더 스플린트가 잘된 게, 광고성 홍보가 아니라서 팬들, 그리고 많은 환자가 애용하는 거라고.

“그랬죠.”

- 그래서 이번에도 형한테 안 받고, 직접 내돈내산으로 사용해 보고 싶어요. 뭐, 좋으면 또 홍보할 수밖에 없겠죠? 하하.

그러고는 수화기 너머로 진희성이 손가락 튕기는 소리가 들려왔고.

그가 서둘러 말을 이어 갔다.

- 아, 그리고 그렇게 해야 JH 메디컬, 지훈이 형도 더 커질 거고요. 그럼 내가 아는 지훈이 형은 더 유명한 사람이 되어 있겠죠?

“…희성 씨.”

- 나도 메디컬 업계에 유명한 사람이랑 형 동생 하면 좋으니까요. 하하.

제품 홍보를 떠나, 나를 이렇게 생각해 주고.

JH 메디컬의 미래까지, 그리고 나와의 관계까지 깊게 생각해 주는 진희성에게 나는 말을 잇지 못할 고마움을 느꼈다.

“고마워요. 우리 조만간 만나서 한잔해요.”

- 좋죠. 안 그래도 작품 촬영 마무리 시작했는데, 끝나고 저번처럼 진하게 한잔해요.

진희성과의 전화를 마무리하고, 나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를 향한 고마움은 점점 더 커져만 갔고.

그래서 나는 더욱 그에게 좋은 보답을 하고 싶었다.

단순한 선물이 아닌, 의미 있는 무언가를.

* * *

제품 출시와 동시에 교정용 스플린트는 빠르게 판매되고 있었다.

제품 출시가 되기도 전에 선 발주를 했던 병원들부터.

교정용 스플린트를 찾는 환자들로 인해, 급히 발주를 하는 병원들까지.

출시가 되자마자 당연히 JH 메디컬의 여직원들도 정신없는 매일을 보내고 있었다.

판매 직원, 납품 직원이 따로 없는 회사.

그 때문에 제조사인 블루 메디컬은 우리 회사가 아닌, 병원으로 택배를 대신 보내주기도 했고.

중간에서 신소율과 문지음 역시 물건 납품에 대한 통화가 끊이지 않았다.

“소율 씨, 우리 지금 제품 수량은 넉넉하죠?”

그녀는 내 말에 모니터 속 재고를 체크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완전 충분해요. 지금 계속 생산도 하고 있어서, 다음 달까지는 아니 계속 부족한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지난 파우더 스플린트 때, 물량이 부족했던 적이 있었다.

물밀 듯이 들어오는 발주.

그를 받쳐 주지 못하는 제조 공장.

제품이 그렇게 빠르게 성공할 줄 몰라서 생긴 착오였지.

하지만 그 당시 빠르게 수습을 해 납품에 막힘은 없었다.

그리고 이번 교정용 스플린트.

이 제품은 만발의 준비를 마치고 세상 밖으로 드러난 것이지.

“그럼 지금 블루 메디컬에 재고 어느 정도 남았어요?”

신소율은 내 말에 눈에 힘을 주고 모니터를 바라보며 읊조렸다.

“지금 재고가… 3,800개 정도 있네요.”

“발주랑 납품 나갈 물건은요?”

“급한 건 다 나갔고, 당장 다음 주에 나가야 되는 건 600개 정도요. 그리고 계속 제조하고 있어서 전부 가능합니다.”

그녀의 말이 끝나고, 나는 한쪽 입꼬리를 씨익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턱을 치켜들며 그녀에게 말했다.

“소율 씨, 그럼 우리 재고 중에서 내가 1,000개 지금 빼서 써도 되는 거죠?”

“네? 1,000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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