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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영업사원이 되었다-297화 (297/339)

297화

탁—

나는 내가 마실 커피와 강 원장이 주문한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에스프레소 휘핑을 올린 커피를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잘 마실게, 민 대표.”

“네, 원장님.”

그는 자신의 커피를 앞으로 당겨 가 한입 마시며 흡족한 듯 미소를 지었다.

전혀 흔하지 않은 커피 레시피.

내가 이 레시피에 나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린 이유는 따로 있었다.

내 여자친구인 김사랑, 그녀가 즐겨 마시는 커피였기 때문이지.

물론 매번 이 커피를 마시는 건 아니지만, 자주 이 레시피대로 주문을 하고는 했었다.

그래서 내가 절대 잊을 수가 없었지.

너무나도 특이한 주문이었으니까.

그런데 이 주문을 다른 곳도 아닌, 강 원장에게서 듣다니.

강 원장은 빨대로 에스프레소 휘핑을 쓰윽 떠 입에 넣었고.

나를 보고 입꼬리를 씨익 올리며 말했다.

“가끔 당이 떨어질 때, 이렇게 먹거든. 그럼 당이 한 번에 쫘악 차오르는 느낌이야.”

그의 말에 나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근데 당이 떨어졌을 때 마시려면, 차라리 달달한 카라멜마끼아또 같은 게 더 낫지 않으세요?”

내 말에 그는 코를 찡긋거리며 답했다.

“아니. 그건 또 너무 달고. 이게 커피는 씁쓸하면서, 에스프레소 휘핑은 달달한… 나는 이게 좋더라고.”

나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읊조렸다.

“이 커피를 마시는 사람을 또 보다니, 신기하네요.”

강 원장은 내 말이 끝나자마자 눈을 휘둥그레 뜨며 물었다.

“뭐야, 민 대표 주변에 이렇게 마시는 사람이 또 있다는 말이야?”

“네.”

그는 입을 떡 벌린 채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내가 이 커피를 마실 때, 커피를 보고 놀라는 사람은 많았어도 주변에 있다는 반응은 처음 보는데?”

“그러게요. 저도 제 주변에 이렇게 마시는 사람이 딱 한 명이었는데, 원장님이 드시는 걸 보니까 저도 신기하더라고요.”

그는 허공을 바라보고 아련한 표정으로 작게 읊조렸다.

“내 주변에도 이렇게 먹는 사람이 한 명 더 있기는 하지…….”

강 원장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고.

그는 입꼬리를 길게 올리며, 이내 다시 빨대를 잡아 한 모금을 들이켰다.

나는 내 커피잔을 든 채로 그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가 주변에 이렇게 마시는 사람이 또 있다는 말.

그 사람이 내가 아는 사람이려나?

그렇다면… 강 원장도 김사랑과 아는 사이?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더욱 깊은 생각에 몰두했다.

그러고 보니…….

강 원장과 김사랑, 그 둘은 직업이 같은 의사이다.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은 많지만, 모든 직업과 많은 사람을 놓고 본다면 꽤 적은 비율의 직업이기도 하다.

그래서 의사 업계가 워낙 좁기에, 서로를 알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그리고 내 머릿속에 문득 떠오른 한 가지.

강 원장과 김사랑이 동갑이라는 것이다.

설마…….

하지만 강 원장도 내게 김사랑에 대해 이야기한 적은 없었고.

김사랑 역시 내게 강 원장이나 리본 종합병원에 대한 이야기를 했던 적이 없었지.

둘이 아는 사이였다면, 한 번쯤은 내게 말을 했을 법하니까.

워낙 좁은 업계라 의사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서로 아는 의사들에 대해 내게 이야기를 하고는 한다.

김사랑을 혹시 아느냐 물어볼까?

나는 목을 가다듬으며, 강 원장을 바라보았다.

“저… 원장…….”

내 이야기를 듣지 못했는지, 강 원장은 눈썹을 들썩이며 나를 불렀다.

“맞다, 민 대표!”

그의 큰 목소리.

그리고 급히 부르는 말투에 나는 강 원장에게 물어보려던 말이 식도를 타고 넘어가 버렸다.

“네, 원장님.”

“나 민 대표 이달의 메디컬 잡지에 나온 거 봤잖아.”

“아, 그거 보셨습니까?”

그는 내게 엄지를 치켜들며 말했다.

“그럼. 이야… 진짜 대단하던데?”

“하하. 아닙니다. 원장님도 봐주셨다니, 영광입니다.”

“내가 영광이지. 역시 이 바닥은 한 개의 제품만 잘 만들어도 성공할 수가 있어요. 민 대표가 만들었던 파우더 스플린트, 제품 엄청나다고 했잖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생각해 주시면 감사하죠.”

“보자마자 획기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시장에서 잘 먹힌 거지. 그러니까 잡지에까지 나오고, 정말 대단해.”

그는 허공에 눈을 굴리며 말을 이어 갔다.

“그래서 그 교정용 스플린트도 곧 나오는 건가?”

“네. 안 그래도 오늘 그것 때문에 원장님 뵈러 왔었습니다. 샘플이 나왔는데, 먼저 원장님께 한 번 보여 드리고 싶어서요.”

“어. 저번에 말했잖아. 그래서 그거 엄청나게 기다리고 있었지.”

나는 미리 챙겨 온 샘플을 가방에서 꺼내 그에게 건넸고.

그는 제품을 받아들며 눈썹을 들썩였다.

“이야. 생각보다 외관도 꽤 괜찮네.”

“이 제품은 팔꿈치까지 오는…….”

나는 그에게 제품에 대한 설명을 이어 나갔고.

강 원장은 내 설명에 귀를 기울이고 미간을 찌푸려 한껏 집중하고 있었다.

“민 대표 제품이라면 내가 듣고 보지 않아도, 무조건 사용하지!”

그는 활짝 웃으며 내게 말을 이어 갔다.

“내가 또 민 대표라면, 항상 믿고 응원하잖아?”

“하하. 맞습니다. 늘 잘 챙겨 주셔서 감사하죠.”

강 원장은 늘 나와 관련된 일이라면, 그리고 내가 만든 제품.

내가 판매하는 제품이라면 무조건 구입을 하고는 했었다.

그리고 내 행보에 대해, JH 메디컬에 대해 응원을 아끼지 않았지.

이렇게 나를 아끼는 그는 말로만 응원을 내뱉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사람들을 내게 소개까지 해 준다는 건, 행동으로도 보여 주는 것이었지.

왕십리 종합병원의 하성우 원장.

지금 나와 가까운 하 원장 역시, 강 원장이 자리를 만들어 줬던 것이었다.

“항상 저를 챙겨 주셔서…….”

강 원장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꾸벅이던 그때.

타앗—!

내 옆을 지나 강 원장을 스쳐 지나가던 한 사람.

그 사람이 실수로 강원장의 팔과 부딪치고 말았다.

강 원장의 팔은 테이블에 올려져 있었고, 그 팔은 테이블 밖으로까지 뻗어 있었지.

지나가다가 앞을 제대로 보지 않고 걸어갔다면, 충분히 부딪칠 수 있었던 상황.

그렇다고 팔이 꺾일 정도로 세게 부딪치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강 원장은 자신의 팔이 살짝 뒤로 밀리자 얼굴을 순식간에 일그러뜨렸다.

“아이씨……!”

“아, 죄송합니다.”

그의 팔을 친 중년의 여성은 그에게 고개를 숙여 사과했고.

강 원장은 입술을 말아 넣은 채, 눈을 희번덕 뒤집었다.

“하아… 앞 좀 똑바로 보고 걸어가요. 이게 뭡니까!”

“죄…죄송합니다.”

그녀는 주변에 떨어진 물건이 있는지 살펴보았고.

이 테이블에서 움직인 것이라고는 강 원장의 팔이 미세하게 뒤로 밀렸다는 것, 그뿐이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녀는 달아올라 빨개진 얼굴로 고개를 푸욱 숙이고 재빨리 자리로 달려갔고.

강 원장은 여전히 얼굴을 찌푸린 채, 이를 악물고 말했다.

“아이씨… 재수가 없으려니까.”

부욱—

그는 테이블 위에 올려진, 일회용 물티슈가 담겨 있던 비닐을 찢었다.

그러고는 조금 전 부딪쳤던 부위를 벅벅 닦으며 읊조렸다.

“기분 좋았었는데, 이게 뭐야.”

인상을 잔뜩 찡그린 그의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그저 모른 체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이렇게까지 짜증 내는 이유를 공감할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강 원장에게 그건 아니지 않냐고 말을 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살짝 부딪친 것 가지고, 저렇게까지 할 이유가 있나, 라는 마음뿐.

그러고 보니, 그동안 강 원장의 성격을 돌아본다면 성격이 좋은 편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강 원장은 불친절하고 매사에 예민한 성격이었다.

또 자신이 모든 사람의 우위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한 사람이었다.

그런 성향을 많이 드러내기는 했지만.

내게는 그런 일이 있었던 적도, 나를 자신의 아래로 깔본 적은 없었다.

나를 자신의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그러는지, 적어도 나는 항상 존중해 주었었지.

내가 그의 이런 성향을 알게 된 게 오래되지 않았으니까.

더군다나 그를 보며 눈살을 찌푸릴 때가 있는데 바로 강 원장이 환자를 깔아 본다는 느낌이 들 때다.

그와 대화도 잘 통하고, 이야기를 나누면 재미있지만.

이런 성향을 볼 때마다 강 원장과 내가 안 맞는 부분이 굉장히 크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강 원장과 나는 사적인 관계가 아니라, 일적으로 만난 사이이기에.

우리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선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다.

물론 의사들과 사적으로도 친분이 생기기도 하지만, 나는 강 원장의 성향을 모두 보았기에.

굳이 그와 선을 넘어 사적인 관계로까지 발전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아니, 이러한 행동들에 그 생각이 점점 없어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 * *

몇 주가 지나, 교정용 스플린트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기 직전.

나는 가장 처음으로 납품하고 싶은 병원으로 달려갔다.

똑똑.

“네, 들어오세요.”

상냥한 목소리가 문밖으로 새어 나오고 있었고.

나는 밝은 얼굴로 서둘러 문을 벌컥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원장님.”

내 인사에 나보다 더 환한 미소로 나를 반기는 사람.

행복 정형외과의 의사이자, 내 여자친구인 김사랑이었다.

“뭐야, 자기 연락도 안 하고 왔어? 얼른 들어와.”

그녀는 손을 흔들며 나를 반겼고.

“오늘 만나자고 아까 이야기했었잖아.”

“나는 그게 퇴근하고 데이트하자는 건 줄 알았지.”

나는 입꼬리를 올리고 그녀에게 말했다.

“그것도 맞지. 오늘 퇴근하면, 데이트도 하자.”

김사랑은 입술을 움찔거리며 고개를 세차게 위아래로 끄덕였다.

“자기는 퇴근한 거야?”

“아니. 지금은 자기 남자친구가 아니라, JH 메디컬 민지훈 대표로 왔습니다.”

그녀는 내 말에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지은 채 답했다.

“아, 그러세요?”

그러고는 자세를 고쳐 앉아 다시금 입을 열었다.

“민 대표님. 그래서 손에 들린 그건 제 거 사 오신 건가요?”

김사랑의 말에 나는 손가락을 튕기며 외쳤다.

“맞다, 이거 원장님 드시라고 제가 사 왔습니다.”

그녀는 해맑은 얼굴로 두 손을 내밀었다.

“오예. 안 그래도 딱 당 떨어지고 피곤했는데, 잘 됐다.”

나는 커피를 그녀에게 내밀었고.

음료는 그녀가 좋아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에스프레소 휘핑을 올린 커피였다.

김사랑은 서둘러 커피를 쭈욱 들이켜며 흡족한 미소로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위에는 달달하고, 아래는 씁쓸한 이 커피가 최고지!”

좋아하는 그녀를 보니, 나는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때, 김사랑은 나를 보고 급히 서랍 속 책을 한 권 꺼내 내게 내밀었다.

“자기, 이거 잡지에 사진 왜 이렇게 잘 나왔어?”

“응?”

그녀가 내민 것은 이달의 메디컬 잡지였고.

“아니, 내 남친 너무 유명해지면 큰일 나는데. 사진 왜 이렇게 더 잘생기게 나왔냐는 말이야.”

시무룩한 그녀의 얼굴에 나는 웃음을 터트렸다.

“얼른 성공해야 돈도 많이 벌고, 업계에서 제일 잘나가는 메디컬 회사가 돼야지. 안 그래?”

“그렇긴 한데… 자기가 잘생겼는데, 능력도 좋고. 그야말로 영앤 리치가 되면, 다른 여자들이 다 탐내서 어떻게 해.”

김사랑은 아랫입술을 삐죽 내밀고 어깨를 들썩였다.

나는 그런 그녀를 사랑스레 바라보며 말했다.

“나한테 여자가 또 어디 있어. 다른 사람들은 그저 여자인 성별의 사람일 뿐이야. 나한테 여자는 자기밖에 없는 거 알면서.”

“칫.”

팔짱을 끼고 나를 쏘아보는 그녀.

하지만 그녀의 입꼬리는 씨익 올라가고 있었다.

김사랑은 내 옆에 놓인 책자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제 교정용 스플린트 카탈로그 나온 거야?”

“응. 다음 주면 물건 나올 것 같아. 카탈로그 나오자마자 여기로 제일 먼저 왔지.”

“안 그래도 아빠랑 아니, 병원장님이랑 제품 이야기했는데. 워낙 지금 파우더 스플린트도 인기가 좋아서, 교정용도 잘 될 것 같다고 했거든.”

그녀와 나는 한참 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고.

이야기가 마무리되어 갈 쯤.

김사랑이 커피를 쭉 들이켰다.

“근데 사랑아.”

“응?”

“그 커피 말이야.”

내 말에 그녀는 손에 들린 커피를 허공에 들어 흔들었다.

“이거?”

“어. 자기는 이거 언제부터 이렇게 마신 거야?”

“음… 글쎄. 아마 대학교 때부터 이렇게 마셨던 것 같은데. 왜?”

그녀의 말에 나는 미간에 힘을 준 채 답했다.

“그냥 신기해서.”

내 말에 김사랑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뭐야, 싱겁게. 내가 이렇게 마신 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갑자기 궁금하다니까. 무슨 일인지 궁금한데?”

나는 그녀의 말에 김사랑의 눈을 바라보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사실 저번에 이렇게 마시는 사람을 봤거든.”

“그냥 카페에서 마주쳤다고?”

“아니. 내가 아는 다른 병원 원장님인데, 그분이 이렇게 드시더라고.”

“…….”

내 말이 끝나자마자 김사랑의 동공이 빠르게 흔들리고 있었다.

뭐야.

김사랑이랑 강 원장.

정말 그들 사이에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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