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영업사원이 되었다-245화 (245/339)

245화

“그래서 이번에 30개 뺀 물건은 그 병원에 팔았어?”

수간호사는 백 이사에게 이번에 덜 받았던 물건 30개의 행방에 대해 묻는 듯했다.

아니, 그 물건을 이미 다른 병원에 판매 완료했는지에 대해 묻고 있다.

“오. 금방 팔았네. 하긴, 거기서는 뒤로 싸게 받으니까 오빠가 판다는 데 마다할 일이 있겠어?”

그 물건을 병원에 납품하는 금액보다 싸게 판다라…….

하긴 백 이사가 따로 돈을 챙겨야 하니, 코리아 메디컬 사업자로 물건을 팔지는 않을 터.

기록이 남지 않고, 자신이 현금을 받아 챙겨야 하기 때문에 기존 가격보다 싸게 넘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나는 인상을 한껏 찡그린 채, 온 신경을 집중해 그녀의 통화에 귀를 기울였다.

“그럼 우리 이번에 그 돈으로 어디 여행 갈까? 그래. 추우니까, 따뜻한 나라 다녀오자. 나도 좋지! 알겠어, 오빠. 이따가 다시 연락하자, 응. 나도 들어가야 해. 알겠어, 끊어.”

전화가 끊기고, 그녀는 동시에 병원 안으로 사라졌다.

동시에 자판기의 빨간 버튼이 눈에 들어왔고, 나는 그제야 버튼을 누를 수 있었다.

치익.

자판기에서는 빠르게 내 커피가 종이컵에 담겼고, 나는 그 커피를 꺼내 옆 벤치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수간호사의 통화 내용, 그리고 백 이사의 행실은 충격적이었다.

과연 진짜일까?

하지만 통화 내용을 들어버린 나는 확신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따로 물건을 빼돌려 다른 곳에 판 돈을 백 이사가 챙겼다는 건, 즉 횡령을 했다는 것이다.

수간호사의 통화 내용으로 짐작건대 이번 한 번이 아닌 듯했다.

그러니까 최소 30개 이상의 물건을 횡령했다는 것인데, 그 금액이 최소 몇백만 원은 될 것이다.

더불어 백 이사는 이미 가정이 있는 몸이다.

내가 알기로 그의 아내는 병원 관련 사람이 절대 아니었다.

고로, 불륜까지 저지르고 있었다는 것.

나는 연속으로 다가오는 충격적인 사실에 연신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가 알고 있던 백 이사가 맞는 것인가.

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 없다더니…….

이 사실을 몰랐으면 몰랐지, 알아버린 이상 가만히 둘 수는 없었다.

불륜도 불륜이지만, 현재 회사의 제품을 횡령하고 있는 그였으니까.

* * *

회사와 조금 떨어진 프랜차이즈 카페 안.

나는 저 멀리서 나를 발견하고 다가오는 조 차장을 향해 손을 뻗었다.

“차장님. 여기입니다!”

그는 환하게 웃는 얼굴로 내게 다가왔다.

“민 과장, 무슨 일이길래 퇴근까지 하고 카페에서 보자는 거야?”

그는 한껏 궁금하다는 얼굴로 내게 물었다.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차는 어떤 거로 드시겠습니까?”

“음… 그냥 따뜻한 커피 한잔하지, 뭐.”

“예.”

잠시 뒤, 우리의 앞에 놓인 뜨거운 커피가 담긴 머그잔 두 개.

조 차장은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는 잔을 들어 한 모금을 들이켰다.

나 역시 백 이사의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목을 축였다.

수간호사의 통화 내용을 들은 나는 이 이야기를 누구에게 전해야 하는가 한참을 고민했었다.

곧바로 백 이사와 이야기를 나눠야 하나?

그렇다면 백 이사는 내게 변명을 대기에 급급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내가 임 사장에게 이야기를 한다면?

알아보기야 하겠지만, 회사에 들어온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나였기에 아직 나에 대한 신뢰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현명하게 이 일을 대처해야 할까 고민하던 중, 나는 내가 회사에서 가장 믿는 사람이자, 따르는 사람인 조 차장에게 이야기해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묻기로 한 것이다.

“그래. 우리 민 과장이 긴히 할 말이 있다는 건 뭘까? 이제 슬슬 궁금한데?”

조 차장은 잔을 든 채 내게 물었다.

“저… 백 이사님에 대해서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뭐? 백 이사님?”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머그잔을 테이블 위로 내려놓았다.

“예. 라임 정형외과 말입니다…….”

나는 그에게 그간 있었던 일들을 모두 늘어놓았다.

내가 이야기를 할수록 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리고 내 이야기가 끝나고 조 차장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그래서 그 물건이 차에 가득 실려 있던 거였네.”

“예? 무슨 말씀이십니까?”

“내가 예전부터 백 이사님 차에 몇 번 탄 적이 있었거든. 저번에 나 차 수리 맡겼을 때, 기억나?”

조 차장은 작년에 차가 갑자기 퍼지는 바람에 몇 주, 차량 수리를 맡겼던 적이 있다.

“예. 기억납니다. 그래서 차장님 출퇴근 고생하셨잖습니까.”

“맞아. 그때, 병원에 가야 하는데 차가 없어서 백 이사님 차 몇 번 얻어 탔거든. 백 이사님 차가 회사 차잖아.”

“아… 몰랐습니다.”

“백 이사님 차가 회사에서 뽑아준 회사 차야. 뭐, 이쪽 일은 직책이 위로 가게 되면 회사에서 차도 뽑아주고 하니까.”

회사에서 영업하는 직원에게 회사 차를 뽑아주는 일은 흔히 있는 일이다.

모든 직원에게 차를 뽑아주는 회사도 있지만, 비용적인 문제로 직책이 높은 직원에게만 차량을 제공해 주는 경우가 많은 편이지.

당연히 회사 재량인 셈.

“아무튼,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그래서 백 이사님은 상대적으로 우리보다 병원에 많이 안 가니까, 내가 이사님 차량 탔었거든.”

“네, 그런데요?”

나는 미간이 찌푸려질 정도로 그의 말에 집중했다.

“그때 차에 짐이 있었는데, 병원 보낼 거니까 그대로 놔두라고 하더라고. 트렁크도 아니고 뒷자리에 상자 테이프로 꽁꽁 봉인해서 닫아 놨더라고?”

“그게 혹시… 제가 말씀드린 물건인가요?”

설마 하는 마음으로 그에게 묻자 조 차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어. 그리고 내가 몇 주 뒤에도 한 번 탔었는데, 여전히 그 물건이 있더라고. 심지어 몇 주 사이에 물건 개수가 늘어 있었어.”

내가 회사 물품 창고에서 보았듯이 라임 정형외과에 납품하지 않고 빼돌리는 그 제품은 항상 재고가 넉넉한 물건이다.

즉, 굳이 차에 보관까지 해둘 필요가 전혀 없다는 뜻이지.

더더욱 차에 그 개수가 늘어날 정도로 보관을 했다는 것은 병원에 지속적으로 납품하지 않고, 조금씩 더 빼내고 있었다는 뜻.

내가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입을 벌리고 있자 조 차장이 말을 이어 갔다.

“그래서 이사님한테 물어보니까 병원에 납품할 거라고만 하고 넘어가시더라고. 진짜 라임 정형외과 수간호사랑 짜고 치고, 다른 병원으로 빼돌려서 돈 날름했나 보네. 하. 이사님이 그럴 줄은 몰랐는데.”

조 차장 역시 놀랐는지 혀를 차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조 차장을 향해 물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차장님?”

이제 어떻게 할지가 가장 중요했다.

백 이사에게 사실 여부는 물어보지 않았지만, 이미 확실했다.

조 차장은 한참을 아무 말 없이 생각에 잠겼다.

그러더니 그는 이내 입을 열었다.

“서 부장님께는 말씀드리지 말자. 그게 맞아.”

“예? 혹시 승진 때문…….”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머지않아 승진 기간이기 때문에 승진 이야기가 도는 몇몇 직원들은 항상 몸을 사리고 있다.

이미 작년의 성과로 인해 어느 정도 승진 윤곽이 잡혀있지만, 승진이 발표되기 전 큰일이 터진다면 승진에서 멀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승진 윤곽이 드러나고 있는 사람 중 한 명이 바로 서 부장이다.

조 차장은 항상 서 부장의 승진을 바라왔던 사람이다.

라인의 머리가 올라가야 그 밑의 직원들도 자연스레 따라 오를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지.

맞는 말이다.

서 부장이 부장이라는 직책에서 머무르며, 조 차장과 나를 끌어준다고 해도 한계가 있으니 말이다.

서 부장이 먼저 이사직으로 올라가야 회사의 높은 자리에서 우리를 이끌어줄 수 있을 터.

“어. 서 부장님 이번에 승진하셔야 하는데, 이 시점에서 백 이사의 일을 임 사장님께 이야기한다면 괜한 의심을 살 수도 있어.”

그는 확신에 찬 얼굴로 말을 이어 갔다.

“백 이사님이 횡령을 한 건 사실이지만, 혹여나 일이 잘못된다면 큰일이거든. 어쨌든 승진 여부에서 임 사장님과 백 이사님이 관여를 하기는 하니까 말이야.”

“그래도 이 건을 과연 사장님께서 그냥 넘어가시지는 않겠죠?”

“그러지 않을까? 아무리 지금 이사라고 하지만, 그래도 회사 물건, 돈을 횡령했다는데. 이제 백 이사님이 몰락하면 서 부장님이 제일 높은 자리에 오르시겠지.”

하지만 나는 한편으로 불안한 점이 있었다.

백 이사가 임 과장에게 병원을 넘기고 있기 때문이었다.

백 이사의 마음에서 우러나 임 사장의 조카인 임 과장에게 병원을 넘기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임 사장의 지시로 인해, 백 이사가 거의 영업을 끝낸 병원을 넘겼던 것이지.

자신의 조카를 키우기 위해 노력하는 걸 알고 있음에도 백 이사를 쉽게 쳐낼 수 있을까?

이런 불안감이 들기는 했다.

이건 내가 백 이사의 속마음 소리를 들어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이미 공공연하게 회사 내부에서도 돌고 있던 소문이기는 했다.

당연히 그 소문을 조 차장도 알고 있을 것이다.

“차장님. 그런데 임 사장님이 백 이사님을 과연……. 임 과장 때문에 혹시라도 이 일을 눈감으실까 걱정입니다.”

“백 이사가 아무리 임 과장한테 거래처를 넘기고, 실적을 쌓아줬어도 횡령은 그냥 넘어가지 않으실 거야.”

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예,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아니, 민 과장.”

순간 내 말을 잘라버리는 조 차장.

그의 말에 나는 눈썹을 들썩이며 바라보았다.

“예, 차장님.”

“민 과장도 관여하지 말고 기다려.”

“네?”

“이번에 차장 직책으로 승진할 수도 있어, 민 과장이.”

회사 내부에서 승진 자리에 내 이름도 올라있다는 것을 듣기는 했었다.

“어차피 민 과장이랑 나랑 같이 임 사장님 찾아가서 이야기하는 것보다 내가 혼자 말씀드리는 게 더 나아.”

“그렇지만…….”

“혹시나 나 걱정하는 거라면 걱정할 필요는 더더욱 없고! 나도 이미 백 이사님 차를 봐서 의심하고 있기는 했으니까. 우선 민 과장은 임 과장한테 밀리지 말고, 승진 준비나 철저히 해둬.”

자신의 일처럼 내 승진까지 신경 써주는 조 차장.

“저번 등급 평가 때처럼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하려면 말이야. 이번에는 임 과장보다 더 나은 실력 보여줘서, 혹시나 임 과장이 승진한다면 다른 직원들이 반발할 정도로 실적 쌓아둬.”

나는 그의 굳은 표정과 진지한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게 서 부장과 조 차장 그리고 나까지, 우리 라인이 위로 올라가는 일이었으니까.

“네. 열심히 준비해 두겠습니다.”

“응. 내가 임 사장님께 말씀드리고 이야기해 줄게. 백 이사님 이야기, 나한테 해줘서 고맙다.”

“아닙니다. 저 혼자 어떻게 풀어나가는 게 더 좋을지 몰라 차장님께 의견 여쭤보려고 한 거거든요.”

“그래서 고맙다는 거야. 나도 뭐, 이 김에 임 사장님한테 잘 보여서 승진할 수도 있지 않겠냐? 하하.”

그는 내게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네. 서 부장님이 이사로 올라가시고, 차장님이 그 빈 부장님 자리에 오르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 같습니다. 하하하.”

“그러자!”

그와 머그잔을 들고, 술잔처럼 잔을 부딪쳤다.

* * *

조 차장과 자리를 마무리하자마자 나는 서둘러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사랑아!”

저 멀리 보이는 김사랑.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내게 손을 흔들었다.

그녀에게 달려가자마자 나는 김사랑의 손을 내 양손으로 잡으며 말했다.

“손 차가운 거 봐. 오래 기다렸어?”

“아니. 나도 진짜 방금 도착했어. 손이야 겨울이니까 당연히 차갑지. 그래도 지훈이 네 손은 어떻게 된 게 항상 따뜻해? 진짜 좋다.”

차가운 그녀의 손을 내 온기로 녹이기 위해 양손으로 감싸고 쓰다듬었다.

그녀는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내 한 손을 당겨 깍지를 꼈다.

“가자! 우리 영화 시간 늦겠다.”

나 역시 그녀의 미소에 춥던 온몸이 녹아내렸다.

“그래, 얼른 가자. 사랑이가 좋아하는 공포 영화 보러!”

“아니야. 이번에는 그냥 스릴러라니까? 내가 좋아하는 건 다 공포물인 줄 안다니까, 정말?”

그녀는 웃음을 터트리며 내 손을 잡아끌었다.

추운 겨울이었지만, 그녀의 손을 잡고 걷는 이 길은 따뜻한 봄이나 다름없었다.

영화관으로 걸어가던 길.

“어? 민 과장님!”

나와 김사랑 앞으로 다가오며 나를 부르는 사람.

바로 거대 메디컬의 한민아 과장이었다.

그녀는 재빠르게 나와 김사랑, 그리고 우리가 맞잡고 있는 손을 스캔하는 듯 보였다.

눈동자가 아주 빠르게 위아래로 움직이는 걸 보았기 때문이다.

동시에 김사랑은 맞잡고 있던 내 손을 서둘러 빼냈다.

그리고 그녀는 내게 귓가에 작은 소리로 물었다.

“회사 사람이야?”

한 과장이 내게 ‘민 과장님’이라는 말을 하는 것을 듣고 회사 사람이라고 생각한 모양.

나는 그런 김사랑의 어깨를 한 손으로 감싸며 한 과장을 바라보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