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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영업사원이 되었다-244화 (244/339)

244화

오늘 내가 라임 정형외과에 백 이사의 심부름으로 가져갔던 물건의 개수는 70개.

여기에 모자랐던 개수 30개를 합치면 총 100개다.

납품서에도 수량은 100개로 찍혀 있다.

그러니 재고장에는 라임 정형외과에 출고된 물건이 70개로 적혀 있어야 하는데, 문제는 100개가 그대로 찍혀 있다는 것.

수간호사의 말대로 미리 30개를 받은 것이라면, 재고장에는 전에 30개가 나갔던 것과 오늘 70개가 나간 것이 적혀 있어야 맞다.

이렇게 파일에 적혀 있다면, 수간호사의 말이 맞지 않는 것이 된다.

만약 수간호사가 착각했다면?

백 이사의 말대로 오늘 100개를 챙긴 후, 그가 30개를 따로 챙겨뒀다고 한다면 모든 말의 앞뒤가 들어맞는다.

오늘 한 번에 100개가 나갔던 것은 맞으니까.

누구의 말이 맞는 거지?

왜 병원과 담당자의 말이 다른 거지?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아 미간을 찌푸린 채 생각에 잠겼다.

이사 직책이나 되는 백 이사가 굳이 이런 큰 실수를 했을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더욱 이상하다고 느끼는 것이지.

“민 과장, 여기서 뭐 해?”

나는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몸을 움츠렸다.

“뭐 하고 있었길래 이렇게 깜짝 놀라?”

“아… 이사님. 오셨습니까?”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건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아닌 물건을 바라보며 물었다.

“오늘 병원은 다 돌고 왔어?”

“예. 다녀와서 사무실 업무 보려고 들어왔습니다.”

“그래. 오늘 민 과장 덕분에 다른 병원 늦지 않고 다녀왔어. 고맙다.”

“하하. 아닙니다.”

대화가 끝이 났음에도 자리를 떠나지 않는 나를 보며, 백 이사는 재차 입을 열었다.

“왜, 뭐 할 말 있어?”

묻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그에게 묻는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조심스러웠다.

이미 병원 앞에서 그와 전화를 하며 물었었고, 그는 내게 답을 했었다.

하지만 나는 그 대답이 오히려 앞뒤가 맞지 않아 미심쩍었기에 재차 물어보고 싶었다.

그에게 재차 물어본다면, 백 이사가 기분이 나쁠 수도 있기 때문에 나는 최대한 기분이 상하지 않게 말을 던졌다.

“저… 이사님.”

내 말에 그는 고개를 살짝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어. 말해.”

“라임 정형외과 말입니다. 오늘 30개가 덜 들어갔던 거… 이사님이 가지고 계시는 거죠?”

내 질문이 끝나자 역시나 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아까 이야기했잖아?”

“아! 네. 그런데 수간호사 선생님은 이미 30개를 받으셨다고 해서요. 제가 오늘 물건을 납품한 거라, 혹시 제가 실수를 했을까 싶어 여쭤봤습니다.”

나는 말을 하자마자 곧장 그의 표정을 살폈다.

내 말에 눈동자를 빠르게 굴리는 백 이사.

“수간호사가 착각했나 본데? 수간호사가 원래 자주 깜빡하더라고. 왜? 나 뭐 의심하는 건가, 민 과장?”

그리고는 눈을 길게 뜨고 곁눈질로 나를 바라보는 백 이사.

기분이 나쁘다는 듯한 느낌이 드러났다.

나는 재빨리 그를 향해 손사래를 쳤다.

“아닙니다. 제가 의심할 게 뭐가 있겠습니까. 저는 이사님 담당 병원인데, 제가 실수를 했을까 걱정이 되는 마음에 여쭤봤습니다.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합니다.”

그는 내 말에 한쪽 입꼬리를 씨익 올리며 답했다.

“하하. 농담이야. 가서 일 봐.”

“네, 알겠습니다.”

이대로 대화는 끝이 났다.

그리고 내 마음속의 찜찜함은 풀리지 않은 채, 오히려 더 의구심만 커져 갔다.

물건의 개수에 이상이 있다는데, 자세히 묻지도 않은 채 오히려 내게 ‘의심하는 거 아니냐’라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그걸 왜 의심이라고 생각한 거지?

진짜 수상한 백 이사.

그리고 이곳에 있는 건 우리 둘뿐인데, 또 하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그의 속마음 소리였다.

[괜히 민 과장한테 라임 정형외과 부탁해서……. 하. 의심하거나, 뭐 알아낸 건 아니겠지? 박선희… 항상 말조심하라니까, 진짜!]

나는 그 소리에 발이 얼어붙고 말았다.

역시 뭔가 있구나, 하는 생각에 온몸이 싸해졌다.

하지만 지금 내가 백 이사를 의심하는 근거는 그저 물건이 라임 정형외과에서 빠졌다는 것뿐.

그 물건이 어떻게 됐는지는 전혀 예상이 가지 않는다.

대체 뭘까…….

그리고 ‘박선희’는 누구지?

그의 속마음 소리를 통해 여러 가지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기에, 나는 재빨리 재고 창고에서 빠져나와 자리로 돌아갔다.

자리에 앉은 후에도 여러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라임 정형외과.

박선희.

빠진 물건 30개.

이것들은 대체 뭘 의미하는 걸까?

그리고 이번에 물건이 30개 빠진 거라면, 이전에도 물건이 빠진 적이 있지 않을까?

하지만 내 담당 병원이 아니기에, 병원을 통해 내가 자세히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더군다나 백 이사는 내가 라임 정형외과에 다녀온 것이 불편할 터.

더 이상 내게 라임 정형외과에 대한 심부름은 시키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몰랐으면 몰랐지, 알아버린 이상 나는 백 이사와 라임 정형외과와의 관계를 알아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왜냐, 회사 물건을 통해 정당한 짓을 하고 있지는 않다는 걸 알았으니까.

* * *

“사장님. 아니, 삼촌. 이 정도면 나 올해 승진시켜 줘도 되는 거 아니야?”

“어허. 자꾸 너 반말하는 습관 안 고치면 밖에서도 툭툭 나온다니까?”

임정준 사장과 임승재 과장은 마주 보고 앉아 식사를 하고 있다.

“집인데 뭐 어때. 그리고 회사에서는 임 사장님, 하면서 잘하고 있잖아.”

“그래도 그게 습관되면 회사에서도 툭툭 나오는 거야. 조심해.”

임 과장은 입술을 내밀고 고개를 빠르게 끄덕였다.

“삼촌이 작년에 내 성과 보고 나서 등급 잘 줬었잖아. 그러니까 올해 내가 승진해도 문제없는 거 아닌가?”

임 과장의 말에 임 사장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너… 사람들이 내 조카인 거 다 알고 있잖아. 그런데도 너한테 S등급 주려면, 네가 정말 뛰어나게 성과를 내왔어야 해. 사실 성과는 민 과장이 더 나았었잖아.”

“에이. 나는 민지훈보다 늦게 입사했고, 그리고 입사하고 몇 달 안 된 거치고 성과는 괜찮지 않았나? 큰 병원들도 따오고, 총판도 좀 있었고 말이야.”

임 사장은 수저를 든 손으로 허공을 가로저으며 답했다.

“괜찮은 거 정도는 안 돼. 봐라, 저번 달에 등급 평가 때 조 차장이 바로 태클 걸었잖냐.”

“하. 하필 민지훈이 말도 안 되는 성과를 하도 따오는 바람에 그런 거지. 걔도 올해는 별거 없을 거 아니야. 작년에는 스카우트 돼서 온 거라, 얼마나 애썼을 거야. 안 그래, 삼촌?”

“그러니까, 인마. 네가 민 과장보다 훨씬 더 뛰어나야지. 내가 민 과장을 왜 데리고 왔겠어. 실력 좋으니까 데려온 건데, 너는 내 조카니까 그보다 더 잘해야 하지 않겠어?”

임 과장은 임 사장의 말에 눈을 가늘게 뜨고 고개를 주억거리며 답했다.

“예, 예. 알겠습니다. 그놈의 민 과장 이야기는 뭐, 할 때마다 빠지지를 않네. 내가 한번 실력으로 눌러놔야겠어.”

“실력으로 누르기는! 우리 회사 매출에 큰 공 세우고 있는 직원이야. 내가 작년에 민 과장 스카우트해 온 거 얼마나 자랑스러워하는데! 너도 좀 그럴싸한 것 좀 들고 와봐라.”

“저번에 백 이사님이 준 거래처면 상반기까지 매출 탄탄하지 않나?”

임 사장은 쓰읍 소리를 내며, 임 과장을 쏘아보았다.

“언제까지 백 이사한테 거래처 받아서 네 성과로 돌릴 건데! 네가 실력이 없으면 나도 올려 주는 데 한계가 있어. 같은 과장직에서도 민 과장이 압도적으로 실력이 높은데, 직원들 반발도 생각해야 해.”

“그래 봤자 삼촌 회사잖아. 삼촌이 조카 키우겠다는데 누가 뭐라고 하겠어. 내가 승진 전까지 삼촌이 말한 병원 거래 따내오면 되는 거지?”

임 과장은 자신감에 가득 찬 표정으로 임 사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건 당연히 해와야지. 승진 달 되기 전까지 그럴싸한 성과가 몇 개는 있어야 직원들이 반발 안 할 거 아니냐.”

“넵! 어떻게든 민지훈보다 성과 가지고 올 테니까 승진시켜 줘요, 임 사장님. 나이도 있고 조카인 거 다 아는데, 차장 직책 달고 있어야 하지 않겠어? 삼촌도 저번에 말했었잖아. 승진 이야기!”

임 사장은 그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젓가락으로 반찬을 집었다.

“아… 삼촌! 임 사장님!”

“알았어. 내가 다 생각이 있으니까, 너는 일이나 열심히 하고 있어 봐.”

그의 말에 임 과장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손을 이마에 가져다 붙이며 말했다.

“넵! 본부대로 하겠습니다, 사장님. 충성!”

“밥이나 먹어.”

“응, 삼촌. 하핫.”

* * *

며칠 뒤, 행복 정형외과로 향하기 위해 가는 차 안.

나는 잠깐의 텀이 있었기에, 행복 정형외과로 가기 전 핸들을 꺾어 라임 정형외과로 향했다.

백 이사에게서 들었던 속마음, 그 미심쩍은 것을 확인하기 위해 라임 정형외과의 수간호사를 보러 가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건 납품과 관련해 대놓고 물어볼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이렇게 한 번씩 들러 확인해 보는 수밖에 없었다.

한 번 와본 병원이었기에 나는 자연스레 저번에 물건을 넣었던 창고로 곧장 향했다.

창고 문이 열려 있었고 안에는 간호사들이 있었다.

내가 인사를 하기도 전에 그녀들이 먼저 나를 발견했다.

“어디서 오셨을까요?”

“아……. 안녕하세요. 저는 코리아 메디컬의 민지훈 과장이라고 합니다.”

마침 창고 물건을 정리하는 날이었는지, 창고에는 다섯 명의 간호사들이 있었다. 그녀들은 나의 등장으로 하던 일을 멈추고 모두 나를 바라보았다.

“네, 물건 넣으러 오신 건가요?”

제일 앞에 있던 간호사는 나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내 손에 아무런 물건도 들려 있지 않아서인 듯했다.

“그건 아니고…….”

내가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가장 안쪽에 있던 수간호사가 앉아 있던 자리를 박차고 내게 다가왔다.

“코리아 메디컬이요?”

“예. 제가 저번에…….”

“백 이사님한테 저희 지금 물건 발주한 거 없는데, 무슨 일로 오셨어요? 저희 담당자도 아니신 거로 알고 있는데?”

내게 대답할 시간도 주지 않은 채 말을 쏟아붓는 그녀.

내가 이곳에 왔다는 사실을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듯했다.

수간호사가 앞으로 나옴과 동시에 그녀의 복장이 눈에 들어왔다.

병원마다 간호사 옷이 다르기는 하지만, 라임 정형외과의 간호사 옷은 왼쪽 가슴 쪽에 자수로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그녀 역시 왼쪽 가슴에 자수로 이름이 박혀 있었다.

수간호사의 이름은 ‘박선희’.

백 이사가 속마음으로 말했던 ‘박선희’는 역시 수간호사였다.

대체 수간호사가 뭘 말조심했어야 한다는 거지?

대체 뭘 숨기고 있기에 나를 이렇게 경계하는 거지?

그녀는 팔짱을 낀 채 벽에 기대어 나를 훑어보았다.

“아… 제가 저번에 왔을 때 수첩을 흘린 것 같아서요. 혹시 여기에 있나 해서 왔습니다.”

내 말에 그녀는 눈을 천천히 감았다 뜨며, 주변 간호사들에게 물었다.

“얘들아. 우리 창고에서 수첩 발견한 거 있니?”

“아니요.”

“저도 못 봤습니다.”

고개를 돌려 다시 나를 바라보는 수간호사.

“들으셨죠? 모르겠다는데? 다른 데 가서 찾아보세요. 그럼 저는 바빠서 이만.”

그리고는 쾅하고 창고 문을 닫아버리는 그녀.

이렇게까지 쌀쌀맞을 일인가 싶었지만 종종 메디컬 직원에게 차가운 병원들이 있기도 하기에 나는 별수 없이 몸을 돌렸다.

행복 정형외과로 가기 위해 병원에서 나오는 길.

하루 내내 돌아다닌 탓에, 피곤했던 나는 커피 한 잔을 뽑아 마시기 위해 병원 뒤쪽 자판기로 향했다.

주머니를 뒤적여 나온 동전 몇 개를 쥐고, 하나씩 자판기에 넣던 그때였다.

100원짜리 동전 5개를 미처 다 넣지 못했는데, 바로 옆 모퉁이에서 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익숙한 목소리인 것 같기도 하고, 낯선 목소리인 것 같기도 한 소리에 나도 모르게 귀를 쫑긋 세웠다.

“여보세요? 어, 오빠. 왜 이제 전화 받아. 바빴어?”

콧소리가 가득한 애교 섞인 목소리.

나는 동전을 마저 넣으며 생각했다.

‘남자 친구랑 달달한가 보네. 나도 얼른 마무리하고 사랑이 만나러 가야…….’

그런 생각을 하던 도중, 재차 들려오는 그녀의 말.

“아니, 방금 민지훈 과장? 또 왔어. 그치? 승민 오빠가 직접 보낸 거 아니지?”

어쩐지!

어디서 들었던 목소리인가 했더니 라임 정형외과의 수간호사 목소리였다.

내게 항상 쌀쌀맞았던 그녀였기에, 내가 들었던 목소리가 맞나? 하고 생각했던 것이지.

탁.

동전을 5개 모두 넣으니 자판기에 불이 들어왔다.

나는 그 버튼을 누르지 않은 채, 그녀의 통화 내용에 귀를 기울였다.

버튼을 눌러 커피가 내려온다면 저 통화 소리가 들리지 않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또 내가 이쪽에 있다는 걸 그녀가 알게 된다면 통화는 즉시 종료될 거라 예상했기에 나는 아무런 움직임 없이 통화 소리에 집중했다.

“와서 갑자기 뭔 수첩 두고 갔다고 하더라고. 그래서는 뭐가 그래서야. 아무 말 안 하고 바로 보냈어. 뭐야? 눈치챈 거 아니지? 나도 요즘 업무 바빠서, 오빠가 물건 넣을 때 다른 간호사가 대신 받겠다고 하더라니까?”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통화를 이어 갔다.

“그래도 절대 안 돼. 밑에 애들이 물건 받으면 물건 개수 빠진 거 바로 알아차릴 거야. 어. 그러니까 앞으로는 꼭 오빠가 직접 와. 다른 사람 보내지 말고! 알겠어.”

그녀는 목을 풀더니 애교가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이어 말하는 대화 내용은 내 귀를 의심케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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