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화
“뭐야. 둘이 아는 사이야?”
눈이 커질 대로 커진 나와 그녀를 번갈아 보며 묻는 김현우.
그녀의 양옆에 앉아 있는 그녀의 지인들 역시 나를 쳐다보았다.
너무 놀라 굳어 있던 나는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
“원장님이 여기에… 어떻게 계세요?”
그녀는 바로 모던 정형외과의 김사랑 원장. 생각지도 못한 김사랑 원장에 나는 말을 더듬으며 물었다.
“원장님?”
김현우는 나보다 더 놀란 표정을 지으며 나를 쳐다보고 물었다.
“어. 병원 원장님이셔.”
“의사 선생님이셨어요? 와, 몰랐어요. 아까는 직장 다니신다면서요.”
그는 김 원장을 바라보며 물었다.
“병원이 제 직장이죠. 하핫.”
그녀는 빙그레 웃으며 김현우에게 대답했다. 그리고는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대리님이 친구분들이 이야기하던 그 잘나가는 친구였어?”
서로에게 존댓말을 하고 있던 이 테이블의 5명. 그 와중에 나에게 반말을 하는 김 원장을 놀란 눈으로 쳐다보았다.
“네? 잘나가는 친구요?”
그녀의 말에 나는 그게 무슨 말이냐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우리가 너 돈도 많고 광주 병원에서 유명한 친구라고 했지. 하하.”
내 옆에 서 있는 박성수가 내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거짓말했다가는 큰일 나. 이거 봐.”
나는 손바닥으로 김사랑 원장을 가리키며 말했다.
“거짓말 아니잖아. 근데 여기서 네가 가는 병원에 의사 선생님을 만날 줄이야.”
“죄송해요. 친구들이 모르고 여기까지 왔네요. 얼른 자리로 가자.”
두 팔을 뻗어 양쪽에 있는 김현우와 박성수의 어깨를 끌어당기며 고갯짓으로 우리의 원래 자리를 가리키며 말을 했다.
자신의 어깨에 올라가 있는 내 팔을 뿌리치고는 김사랑 원장에게 웃으며 말하는 김현우.
“왜. 이야기하시는 거 보니까 너랑 친하신 것 같은데, 그럼 더더욱 같이 먹어도 되지. 그렇죠, 원장님?”
그의 질문에 김 원장 대신 옆에 앉은 그녀의 친구로 보이는 인물이 대답했다.
“네, 그럼요. 같이 먹어도 되잖아, 사랑아.”
“어? 어……. 그래.”
얼떨결에 대답한 김사랑 원장의 말에 김현우는 재빨리 나와 박성수의 팔을 당겨 자리로 앉혔다.
“자, 그럼 이제 6명 전부 다 모였는데 거국적으로 한잔할까요?”
김현우는 내 앞에 놓인 빈 소주잔에 소주를 부으며 큰소리로 외쳤다.
“반갑습니다!”
모두 소주를 털어내고 내가 들어오기 전 하던 이야기들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그래서 저희 아까 어디까지 이야기했죠?”
“아, 그러니까…….”
돌아가는 상황을 보아하니 김현우가 앞에 앉은 김사랑 원장 옆의 친구에게 관심이 있는 모양.
김 원장은 내가 이 자리에 오게 된 것이 민망하고 머쓱한지 술과 안주를 번갈아 보며 눈을 아래로 낮추고 있었다.
“원장님.”
나는 그런 그녀를 보며 미소를 띤 채 소주병을 그녀에게 흔들어 보였다.
술을 어느 정도 마셨는지 볼이 발그레해진 그녀는 나를 쳐다보고 활짝 웃으며 소주잔을 들었다.
“원장님은 광주에 친구분들 없으시다더니, 많으신데요?”
나는 그녀의 양옆에 앉은 그녀의 친구들을 눈길로 가리키며 물었다.
“먼 광주에 혼자 내려와서 걱정된다고 친구들이 하루 내려왔어. 그러는 민 대리님은 같이 술 마실 사람이 회사 사람들밖에 없다며.”
그녀는 소주를 받고, 내가 들고 있던 소주병을 건네받아 내게 술을 따르며 물었다.
“저도 여수에서 친구들이 왔어요. 오랜만에 만났는데, 다들 술을 좀 먹고 와서.”
나는 내 옆 친구들을 곁눈질로 살펴보고는 몸을 그녀 쪽으로 숙인 채 작게 속삭였다.
“불편하시면 저희 돌아갈게요.”
그녀 또한 내 목소리에 허리를 테이블 쪽으로 굽혀 이야기를 듣고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괜찮아. 친구분들 재밌는데, 뭐.”
김 원장은 눈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1차에서 마신 술과 2차로 넘어와 우리 셋이서 마신 술만으로도 충분히 취기가 오른 김현우와 박성수.
특히 김현우가 거나하게 취해 가는 것이 눈이 보이기 시작했다.
김사랑 원장의 테이블로 넘어와 어색하다는 핑계로 30여 분을 쉬지 않고 술을 마셔댔으니, 멀쩡할 리가 없었다.
“근데 지훈이는 일 잘해요?”
김현우는 풀린 눈을 겨우 떠내고 김사랑 원장에게 물었다.
“네? 민 대리님이랑은 아직 일 적으로 많이 안 마주쳤었어요.”
그녀는 갑작스레 묻는 그의 질문에 눈을 크게 뜬 채 대답을 했다.
“그래요? 친구들이 이야기하기로는 지훈이가 광주에서 일도 잘하고 돈도 잘 번다고 하더…….”
김현우는 한쪽 입꼬리를 올려 웃으며 이야기를 했고, 말이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김사랑 원장이 다시금 입을 열었다.
“근데 다른 원장님들한테 듣기로는 일 잘한다고 하시더라고요. 친구분들이 맞게 보신 것 같네요.”
“아…….”
그녀의 말에 그는 머쓱했는지 아랫입술을 쭉 내밀고 탄식을 했다. 그러더니 김현우는 테이블 위에 한쪽 팔을 올려 턱을 괴고 허공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지훈이도 이거 해서 돈 잘 버는데, 나도 메디컬이나 해볼까?”
훅 들어오는 그의 혼잣말. 어떤 의미에서 하는 말인지는 몰라도 기분이 썩 유쾌하지는 않았다.
김현우는 휴학과 복학을 반복해 늦은 대학교 졸업 후 취업 준비를 2년여간 하다가 지금은 공무원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회사에서 돈 버는 이야기에 민감해하는 것을 알고 있기에,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하나 고민 하고 있는 찰나, 맞은 편에서 불쑥 내 고민을 뚫고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건 좀 아니지 않나?”
나와 박성수, 그리고 김현우까지 그 목소리에 고개를 들고 앞을 바라보았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김사랑 원장.
“네?”
술자리 30분이 넘도록 조용히 있던 그녀가 먼저 이야기를 하자 김현우는 갑자기 눈을 번쩍 뜨고 그녀에게 물었다.
“나도 메디컬이나 해볼까, 이런 말 말이에요. 그건 좀 아니지 않나 해서요.”
“아, 그건…….”
변명하려는 김현우의 말을 툭 잘라버린 채 그녀는 말을 이어갔다.
“직업에 귀천을 떠나서 누군가가 온 힘을 다해 하고 있는 일을 쉽게 보는 건 아니죠. 다들 저마다 고충과 힘듦이 있을 거고, 그걸 극복하고 노력해서 이뤄낸 성과잖아요.”
그녀의 말에 김현우는 한마디를 못 하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미 알고 계실 테지만 제가 의사잖아요. 이 직업을 갖기까지 저는 잠도 못 자고 밤낮없이 공부만 죽어라 했어요.”
그녀는 내가 느꼈던 멜랑꼴리한 감정을 꿰뚫어 보기라도 한 듯이 나 대신 열변을 토해 냈다.
“근데 방금 현우 씨가 말한 것처럼 누군가가 돈도 많이 버는 것 같던데 나도 의사나 해볼까? 이런 말 들으면 기분이 좋을 것 같지는 않네요. 자칫 잘못 들으면 비하 발언이에요, 그거.”
김 원장은 쉴새 없이 이야기를 쏟아낸 후 앞에 놓인 소주를 홀로 들이켰다.
나는 그런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순간 그녀와 눈이 마주쳤고, 그 눈을 피하지 않은 채 빤히 바라보며 나는 생각에 잠겼다.
의외였다. 그녀의 가치관과 태도, 그리고 이렇게 말로 내뱉는 용기까지.
‘생각보다 괜찮은 여자네, 김사랑 원장.’
여전히 그녀와 눈이 마주쳐 있었고, 그녀는 그런 나를 보며 눈썹을 들썩이며 미소를 지었다.
나는 그 눈을 바라보며 고개를 천천히 끄덕여 보였다.
* * *
아침 일찍 모던 정형외과로 직출을 했다.
안국환 원장과의 점심 약속이었지만, 식사 시간이 아닌 출근 시간부터 병원으로 도착했다.
병원에 들어와 가장 먼저 들린 곳은 김사랑 원장 진료실.
전날 함께 했던 술자리. 숙취로 힘든 건 나뿐만이 아닐 거라는 생각에 마실 것을 사 들고 병원으로 들어왔다.
똑똑.
“원장님.”
“민 대리님. 아침부터 무슨 일이야?”
내 손에 들린 아이스 라떼.
그녀는 내가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내 얼굴에서 시선을 내려 커피에 고정한 채 미소를 지었다.
“제가 반가우신 게 아닌 것 같은데요?”
김 원장의 눈빛을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커피를 그녀에게 건넸다.
“어제 술 마셨더니, 계속 갈증이 나서 힘들었거든. 오늘따라 더 반갑네. 하하.”
그녀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빨대를 커피에 꽂아 쭉 들이켰다.
“어제는 잘 들어가셨어요?”
한참을 마시던 그녀는 내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응. 민 대리님도? 친구분들도 잘 가셨고?”
“네. 저희도 거기서 나와서 바로 들어갔죠.”
그녀와 전날 술자리에서 있었던 일을 커피 안주 삼아 곱씹으며 이야기를 한참이고 이어 나갔다.
“원장님. 이제 광주살이는 좀 할 만하세요?”
“아직도 가끔 실감이 안 나기는 해.”
그녀는 어깨를 들었다 내리며 숨을 몰아 내쉬었다. 그녀가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서울에서 광주로 내려왔지만 가끔 서울이, 고향이 그리운 모양이다.
“그러시겠다. 너무 멀리 내려오셨잖아요.”
“응. 뭐 내 나이가 어린 애도 아닌데, 가족이며 친구며 만날 때 바로 못 만난다는 생각에 문득문득 그립긴 하더라고.”
“당연하죠. 저는 여수까지 한 시간 정도면 가는 거리인데, 원장님은 워낙 멀리 오신 거니까.”
그녀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병원에는 금방 적응하신 거 보면 역시 엘리트이시긴 했나 봐요.”
농담 섞인 내 말에 그녀는 환하게 웃음을 지었다.
“그럼. 나 서울에서 진짜 에이스였다니까?”
“그러면 얼마 안 지나서 광주 에이스로 소문나시겠는걸요? 하하.”
화제가 바뀌고 그녀가 책장을 뒤적이더니 파일 하나를 꺼내 들었다.
“민 대리님. 이거.”
그 꺼낸 파일을 내게 건네는 김 원장. 나는 그것을 받아 펼쳐보았다.
파일 안에는 내가 김 원장이 처음 모던 정형외과로 부임을 했을 때 주었던 카탈로그가 들어 있었다. 그리고 맨 앞장에 체크가 되어 있는 종이 한 장.
카탈로그 목차에 여러 개 체크를 해둔 것을 가리키며 그녀에게 물었다.
“이 체크해 두신 건 어떤 거예요?”
“발주하고 싶어서. 샘플 좀 가져다줄 수 있을까?”
“그럼요. 내일 바로 가져다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샘플 확인하고 발주 안 할 수도 있는 거 알지?”
그녀는 눈을 작게 뜨고 나를 곁눈질하며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이야기를 했다.
“그럼요. 물건이랑 단가 보시고 결정하시는 거죠. 우선 보고 결정해 주세요, 원장님.”
나는 그런 그녀에게 활짝 미소를 보이며 말을 했다.
“내가 사적으로 친구 하자고 해서 무조건 민 대리님 제품 못 써줘.”
“네, 알다마다요. 원장님이 저랑 사적으로 친분 생겼다고 써주시면 물론 감사는 하겠지만, 저도 공과 사는 구분하죠. 하하.”
그녀는 내 말에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는 탁상 달력을 끌어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그리고 우리 다음에 같이 술 한잔하자.”
“네?”
그녀가 나에게 술을 먹자고 제안하자 나는 가장 먼저 당황스러움이 찾아왔다.
다른 원장님들과는 단둘이서 술을 먹은 적이 수두룩하지만, 처음 겪는 여자 원장과의 술자리.
몇 년 전의 지난 연애에서 여자친구와의 술자리 이후로는 없었던 것 같다. 여자와 단둘이 먹는 술자리가.
병원 원장과 메디컬 직원인 내가 술자리를 가지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이고 흔한 일이지만 그 병원 원장이 여자인 김사랑 원장이라는 것에 대한 부담이 없다면 거짓말이었다.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그림에 당혹스러움을 겨우 감춰내고 입을 열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언제가 괜찮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