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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영업사원이 되었다-68화 (68/339)

68화

【 영역 확장 】

“다음 주…….”

김사랑 원장이 달력을 손가락으로 훑으며 일정을 살피던 그때.

살짝 열려있던 진료실 문틈으로 소리가 들려왔다.

“김 원장.”

김 원장과 나는 놀라 소리가 나는 문 쪽으로 몸을 돌렸다.

조금 열려있던 문을 활짝 열고 들어오는 사람. 바로 모던 정형외과의 안국환 원장이었다.

“원장님, 안녕하십니까.”

나는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안국환 원장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민 대리도 있었네?”

“네. 조금 전에 왔습니다.”

“김 원장 왔다고 민 대리한테 나 벌써 밀린 건가?”

그는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내게 농담을 해 보였다.

“아닙니다. 원장님과 점심 식사 약속이라 김 원장한테 먼저 들렸습니다. 원장님은 항상 1순위이신데요. 하하.”

그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내 어깨를 한 손으로 감싸 토닥이고는 옆에 놓인 의자에 자리를 잡았다.

“둘은 무슨 진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

의자를 당겨 앉은 후 안 원장은 김 원장을 쳐다보며 물었다.

“물건 샘플 요청 좀 하고 있었습니다. 한 번 받아서 물건 봐본 후에 결정하려고요.”

“그래. 민 대리한테 받아서 써보고 괜찮으면 나한테도 소개해 줘, 김 원장.”

“김 원장님. 안 원장님께 이야기 잘 부탁드립니다. 하하.”

“네, 제가 써 보고 피드백 꼭 안 원장님께 드릴게요. 하핫.”

그녀는 생긋 웃으며 안 원장에게 이야기를 했다. 고개를 끄덕이던 안 원장은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혹시 김 원장. 다음 주에 시간 괜찮은가?”

“언제… 말씀하시는 거예요?”

김 원장은 눈을 굴리며 그에게 대답했다.

“민 대리는 언제가 편해?”

그는 김 원장이 아닌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김 원장과 약속을 잡는 것처럼 이야기가 흘러가다가 나에게 가능한 시간을 물어본 다라…….

당황한 나는 연신 눈꺼풀을 깜빡였다.

“저는 항상 비어 있습니다. 불러만 주시면 나가죠. 하하.”

“그럼 김 원장 시간에 맞추면 되겠네.”

안 원장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혹시 어떤 일로…….”

자신을 바라보는 안 원장을 쳐다보며 그녀가 조심스레 물었다.

“나 아는 원장이랑 민 대리랑 술 한잔하기로 했거든. 김 원장도 함께 봤으면 하는데, 어때?”

안 원장의 말에 그녀는 내 눈을 바라보더니 입을 닫고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박승호 원장님 말씀하시는 겁니까?”

어제 명의 병원에 가서 박승호 원장을 만났을 때 안국환 원장이 찾아와 술 약속을 잡기로 했었는데, 그 자리에 김사랑 원장을 함께 부르고 싶었던 모양이다.

“어. 김 원장도 승호랑 친분 쌓으면 좋을 것 같아서.”

조금 뜬금없는 이야기였다.

김사랑 원장이 광주에 오게 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모던 정형외과의 원장들과 친분을 쌓기도 전일 것이다. 그런데 같은 병원도 아닌 명의 병원의 박승호 원장과 친분을 쌓으면 좋을 것 같다라…….

단순히 박승호 원장이 안국환 원장의 친척 동생이라서가 아닐 것 같았다. 이미 결혼을 해 아이도 있는 박 원장이기에 사적인 친분은 아닐 것이고.

그럼 남는 것은 단 하나. 같은 병원에 근무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

순간 박승호 원장이 모던 정형외과로 넘어올 수도 있겠다, 라는 예상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네. 저야 광주에 아는 분들이 많이 없으니까 너무 좋죠. 다음 주에 스케줄 확인해 보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김 원장은 웃으며 안 원장에게 대답했다.

그는 그녀의 말을 들은 후 자리에서 일어나며 입을 열었다.

“민 대리는 김 원장이랑 이야기 끝났나?”

나는 그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가도 괜찮다는 제스처인 것 같았다.

“네, 다 끝났습니다.”

“나 민 대리한테 볼 일 있는데, 그럼 내 방으로 같이 갈까?”

“넵.”

안 원장은 그녀에게 손바닥을 보이며 인사를 하고는 진료실 문 쪽으로 걸어갔다.

나 역시 그를 따라가기 위해 자리에서 살며시 일어났다. 그러자 나를 부르는 그녀.

“민 대리님. 다음 주는 우선 저기서 다 같이 술 마시자.”

그녀는 안 원장에게 들리지 않도록 목소리를 낮춰서 말했다. 아직은 둘이서 술잔을 마주하기에 살짝 부담스러웠었는데 차라리 잘 됐다는 생각에 안도했다.

“네. 샘플은 그 전에 가져다 드릴게요.”

그녀는 나에게 나가도 좋다는 손짓을 보였다.

“오늘도 힘내세요!”

나는 그녀에게 짧은 한마디를 던지고 문을 나섰다.

안국환 원장을 따라 그의 진료실로 들어왔다.

“원장님 오전에 수술 끝나고 식사하시기로 하신 거 맞죠?”

“어. 근데 환자 상태가 안 좋아서 수술 다음 주로 밀렸어. 다음 주에 수술 이미 잡힌 거 있는데, 덕분에 아주 바쁘게 생겼다.”

“오늘 아침에 취소된 거예요?”

“응. 어제까지만 해도 괜찮았는데, 아침에 수술 들어가려고 보니까 안 되겠더라고.”

나이가 들거나 몸의 기본 상태가 안 좋은 환자는 마음대로 수술도 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단순히 뼈가 부러져 수술하는 것이지만, 수술하려면 전신 마취를 해야 하기 때문에 환자의 상태에 따라 수술을 못 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심지어 오늘처럼 수술 날짜와 시간 확정이 되었는데도 수술에 들어가기 전 몸의 상태를 한 번 더 체크하게 되는데, 이때 나이가 많이 드신 분들은 갑자기 감기에 걸렸거나 당뇨 체크를 해서 수술이 딜레이 되기도 한다.

이런 일이 생각보다 많이 일어나는 일이기에, 수술이 밀려 스케줄이 뜨는 경우가 굉장히 많은 편이다.

나는 그의 말에 안 원장의 모니터에 보이는 다음 주 수술 스케줄 표를 곁눈질로 살펴보았다.

“와. 원장님 다음 주에 수술이 꽉 차 있으시네요. 진짜 바쁘시겠다.”

“그러니까. 벌써 피곤하다, 피곤해.”

나는 그의 말에 공감하며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아, 민 대리 저번에 보여줬던 샘플 있잖아.”

지난번 모던 정형외과에서의 시위 사건을 내 도움으로 해결하고 난 후에 우리 회사 물건을 발주한 안 원장.

그 제품을 사용하면서 샘플을 한 종류 더 요청했던 적이 있다.

샘플을 확인하고 사용해 본 뒤에 이야기하자고 하더니, 그 이야기를 지금 하려는 모양.

“네. 창상 피복제 말씀하시는 거죠?”

“응. 샘플 준 거 테스트해 봤더니 제품이 꽤 좋더라고.”

“감사합니다. 저희 사무실에서 취급하는 창상 피복제만 해도 5가지 제조사 제품을 가지고 있는데, 그 제품이 개인적으로는 가장 괜찮은 것 같더라고요.”

“창상 피복제는 아직 비급여 제품이지?”

그는 내가 이전에 샘플로 주었던 제품을 꺼내 들고 나에게 내밀며 물었다.

“맞습니다. 식약처에서 급여로 전환 시킨다는 이야기가 있긴 했는데, 아마 일이 년은 더 있어야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인 후 그는 안경을 고쳐 쓰고 견적서를 빤히 바라보았다.

볼펜을 꺼내 견적서에 한참을 끄적이는 안 원장. 무언가 계산을 하는 것 같았다.

몇 초간의 정적이 흐른 후, 그가 입을 열었다.

“5가지 제품 가지고 있다고 했나?”

“네. 필요하시면 다른 제품들도 가지고 와 보겠…….”

그는 내 말을 자르고 바로 이어 대답했다.

“아니. 30개 물건 넣어줘.”

“네?”

“나 민 대리 하나 보고 물건 넣는 거야. 알지?”

“감사합니다, 원장님.”

“다른 제품이 더 좋은지 나쁜지는 모르겠고, 민 대리가 추천하는 제품이니까 한번 써보려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허리를 숙였다.

“믿어 주신 만큼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진짜 감사합니다.”

“그래.”

안 원장은 벽에 걸린 시계를 쳐다보더니 입을 열었다.

“승호도 곧 오겠네. 좀 일찍 밥 먹으러 넘어갈까?”

“네. 좋습니다.”

* * *

11시.

병원 근처에 있는 광주에서 유명한 퓨전 한정식집에 도착을 했다.

“황제 코스 요리로 3인 주세요.”

자리에 앉아 종업원에게 메뉴판을 건네받자마자 주문을 하는 안국환 원장.

나는 그의 주문에 서둘러 메뉴판을 확인해 보았다.

이 집에서 가장 비싼 한정식 코스. 금액을 확인하려는 내 눈빛을 보더니 안 원장이 입을 열었다.

“오늘 저번에 고마웠던 일 있어서 내가 한턱 쏘는 거니까, 든든하게 먹고 가.”

“그래도 원장님 너무 비싼…….”

“나 돈 잘 벌어. 하하.”

너털웃음을 짓는 안 원장.

“안녕하십니까.”

그때 룸 문이 열리고 박승호 원장이 들어왔다.

“일찍 왔네?”

“어. 아까 전화하고 우리는 바로 왔지.”

안 원장은 그에게 짧은 인사를 건넸다. 박 원장이 외투를 벗어 정리하자 곧이어 음식이 차례로 나오기 시작했다.

잡채와 탕평채, 새우찜, 궁중 떡볶이 등 거한 한 상이 차려졌다.

“잘 먹겠습니다.”

내 인사를 필두로 모두 말없이 음식을 흡입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을 배를 채운 뒤, 병원에 관한 주제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그래서 병원장한테 이야기는 했고?”

안국환 원장이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박승호 원장에게 물었다.

“아직. 이야기해야 하는데, 계속 타이밍이 안 맞네.”

“그래도 미리 이야기해야지. 사람 구할 시간도 줘야 하잖아.”

사람 구할 시간?

내 예상이 맞아들어가는 것 같았다. 확신에 찬 표정으로 박 원장에게 질문을 던졌다.

“원장님 명의 병원 그만두시는 겁니까?”

“아… 안 그래도 민 대리한테 이야기해야지 했었는데.”

명의 병원에 오랫동안 터를 잡았던 박승호 원장이었기에 그만둔다는 그의 말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무슨 일 있으신 겁니까?”

심각한 표정을 짓는 내 얼굴을 보고 박 원장은 웃으며 이야기를 했다.

“아니. 예전부터 형이 있는, 그러니까 여기 모던 정형외과로 옮겨야지 생각은 했었거든.”

“그러네요. 안 원장님이 계시니까요.”

“응. 생각만 하다가 이번에 모던 정형외과에 자리 하나가 더 마련될 것 같아서 옮기기로 했어.”

박승호 원장이 모던 정형외과로 온다는 사실에 마음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모던 정형외과는 광주에서 큰 병원이고, 그만큼 영업을 하기 힘든 병원으로 꼽힌다.

모던 정형외과에서 내가 담당하고 있는 써전은 단 한 명.

신동욱 원장이었다.

신 원장을 시작으로 얼마 전 영업에 성공하게 된 내 앞에 지금 앉아 있는 안국환 원장. 그리고 지금 작업 중인 김사랑 원장, 게다가 박승호 원장은 현재 명의 병원에서 내가 담당하고 있는 의사이다.

명의에서 모던 정형외과로 넘어오면서 별다른 이변이 없이 나에게 물건을 그대로 받게 된다면? 그렇다면 모던 정형외과에 내 담당 원장은 총 4명이 되는 셈이지.

이렇게 한 병원에 담당 써전이 많아질수록 내 입지가 높아져 다른 원장들도 자연스레 우리 회사의 물건을 사용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담당 의사 몇 명을 넘어 모든 의사를 담당하게 되면, 그때는 그 병원 자체가 내 담당 병원이 되는 셈이다.

광주, 그리고 전국적으로도 유명한 모던 정형외과가 내 담당 병원이 될 수 있다, 라는 생각을 하니 앞에 놓인 음식을 더 이상 먹지 않아도 배가 불러오는 느낌이었다.

올라가는 입꼬리를 겨우 붙잡고 자세한 일정을 확인하기 위해 박 원장에게 물었다.

“원장님 그럼 언제 옮기시는 겁니까?”

그는 이미 결정을 마친 후라 생각을 하지도 않고 바로 대답을 이어 나갔다.

“다음 달이면 모던으로 출근할 것 같아.”

“얼마 안 남으셨네요.”

“응. 그래서 요즘 정신이 없어.”

그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을 이어갔다.

“맞다. 민 대리, 광주 말고 다른 지역도 영업하나?”

“그럼요. 서울까지는 못해도 전남, 전북까지는 전부 가고 있습니다.”

“여수는?”

콕 집어 여수라고 묻는 그에 말에 나는 화색이 돌았다. 다른 지역도 아닌, 내 고향 지역명이 나오는 순간 반가운 마음이 먼저 들었다.

“여수도 저희 회사에서 많이 맡고 있습니다.”

“민 대리는 여수 가봤어?”

“네. 고향이 여수입니다.”

내 말에 안 원장과 박 원장 모두 놀란 표정을 지으며 나를 동시에 바라보았다.

“민 대리 고향이 여수인지는 몰랐네.”

“그러게. 민 대리 그럼 여천 정형외과도 아는가?”

여천 정형외과.

그 병원은 절대 모를 수가 없는 병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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