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
7시 20분.
약속 장소는 광주에서 사람이 많고, 시끌벅적한 술집들이 모여있는 상무지구 한복판.
술을 마시기 위해 집에 들러 차를 두고 나오려고 했지만, 약속 시각이 훌쩍 넘어버린 탓에 퇴근 후 그대로 상무지구로 도착했다.
휴대폰을 열어 잔뜩 쌓여 있는 톡 메시지를 확인해 보았다.
단톡방이라 몇백 개의 메시지가 있었고, 그중 마지막 메시지인 장소만을 확인하여 술집으로 향했다.
거리를 헤매다 약속 장소인 술집을 발견하고, 문을 열고 들어갔다.
어느 테이블에 앉아 있는지 알아차릴 틈도 없이 들려오는 목소리.
“민지훈! 여기.”
“주인공 오셨네.”
“뭐냐. 왜 이렇게 늦게 와.”
“우리 벌써 소주 각 일 병씩 했다. 얼른 와라.”
구석에 자리를 잡은 5명의 무리. 내 고등학교 동창 놈들이다.
여수에서 나고 자라 친구라고는 전부 여수에 있거나, 서울로 올라간 친구들뿐. 광주에서 만날 친한 친구 하나 없었는데, 얼마 전 나에게 도움을 주었던 그리고 나 역시도 도움을 준 기자 친구, 바로 백승원.
백승원과 연락을 하며 지내다 보니 자연스레 그 시절 같이 다녔던 무리 친구들과 연락이 닿게 되었다.
고등학교 시절 가장 친했던 무리는 아니었지만, 같은 반 친구들이라 두루두루 꽤 친했던 편이다.
사회로 나오고 난 이후에는 명절에나 여수로 내려갔을 때 간간이 보던 친구들.
백승원의 친한 친구들이지만 이번 기회로 인해 끊어졌던 친분이 다시 이어지게 되었다.
세상을 살다 보면 가장 소중한 게 인맥이라고 생각하는 나이기에 이런 자리가 전혀 부담스럽거나 싫지 않았다.
“미안, 미안. 회사에서 일이 좀 늦게 끝나서.”
“역시 지훈이 잘나간다고 하더니. 지금까지 일하고 오고 대단하네.”
제일 안쪽에 자리를 잡은 김현우. 삐딱한 자세로 기대어 앉아 내게 말을 건넸다.
“됐어, 인마. 다들 잘 지냈냐? 진짜 오랜만이다.”
나는 바로 앞 빈자리에 재킷을 벗어두고 의자에 앉았다.
“그러게. 지훈이 정말 오랜만이네. 잘 살았냐?”
“그럼. 작년 설날에 본 게 마지막인 것 같은데…….”
“자자. 지훈이 왔으니까 한잔하자고!”
시끌벅적한 분위기 속에 첫 잔을 시원하게 들이켰다.
“광주까지 오기 힘들었을 텐데 오느라 고생했다.”
나는 빈 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친구들을 번갈아 보면서 이야기를 했다.
“우리 4명 다 승원이랑 지훈이 너 만난다고 여수에서 오후에 모여 가지고 광주까지 왔잖냐.”
“다음에 내가 지훈이랑 내려간다니까 너희가 온다며.”
내 바로 옆자리에 앉은 백승원이 턱을 치켜들고 말을 했다.
“시골 놈들이 광주 도시 구경한다고 왔지 뭐. 하하.”
“도시는 무슨. 촌스럽게.”
오디오가 빌 틈이 없는 이 자리. 오랜만에 고등학교 그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지훈이 1시간이나 늦었으니까, 우리랑 맞추게 혼자 한 잔 더 해.”
“그래, 맞아. 우리 벌써 각자 한 병씩 넘게 마셨다고.”
친구들의 장난기 넘치는 눈총을 이겨내지 못하고 술을 한 잔 더 들이켰다.
나는 술잔을 입에 털어 넣고 고개를 들며 외쳤다.
“오늘 내가 늦기도 늦었고, 너네 광주까지 왔으니까 한턱 쏜다!”
“진짜로?”
“와. 민지훈!”
“민지훈! 민지훈! 민지훈!”
몇 년 만에 만나는 친구들이기도 했고, 이번에 받은 인센티브와 월급 인상까지 더할 나위 없는 기쁨에 쿨하게 술값을 내겠다고 이야기를 했다.
다른 사람들도 아닌 어릴 적 친구들에게 돈을 쓴다고 생각하니 아깝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오히려 뿌듯함에 어깨가 올라가는 느낌.
성인 남자 6명이서 마시는 술에, 술병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두어 시간을 술 마시는 입, 이야기하는 입 모두 쉴새 없이 움직여댔다. 그러는 와중에 술이 약한 친구들은 하나둘 취하는 것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한쪽 벽에 머리를 기대고 잠이 든 친구.
그 옆에 기대서 휴대폰을 만지는 친구.
나머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지훈이가 요즘 그렇게 잘나간다며?”
화장실과 담배를 피우러 몇 번 왔다 갔다 하며 바뀐 자리 탓에 내 옆에 자리를 잡게 된 김현우가 입을 열었다.
“잘나가기는 뭐. 늘 똑같지.”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김현우에게 대답했다.
“지훈이, 이쪽 업계에서는 꽤 성공할 거야.”
맞은 편에 조용하게 앉아 있던 백승원이 입을 열었다.
“응?”
나는 그런 백승원에게 눈썹을 들썩이며 되물었다.
“내가 요즘 기사 때문에 병원 돌아다니잖아. 아무래도 지훈이가 내 친구니까, 가면 메디컬 직원 이야기를 하게 되더라고.”
백승원은 소주를 한 잔씩 따라주면서 말을 이어갔다.
“근데 지훈이네 회사가 광주 쪽 병원에 많이 납품하더라고.”
“에이, 그건 우리 회사 일이지. 그게 뭐 내 돈인가.”
나는 백승원이 따라주는 술을 받으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WG 메디컬 이야기하면 대부분 의사들이 지훈이 일 잘한다고 하더라. 내가 다 뿌듯하던데?”
“오. 민지훈!”
백승원의 말에 나머지 친구들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하하. 숨기려고 해도 숨길 수가 없구먼.”
나는 너스레를 떨며 이야기를 했다.
“지훈이한테 잘 보여놔야겠는데?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몰라.”
“그래. 다들 나한테 잘해. 하하.”
“지훈이가 병원에 영업하는 거랬나?”
김현우가 입술을 샐쭉 내밀며 내게 물었다.
“어. 정형외과 쪽으로.”
“제약이랑은 또 다른 거지?”
“완전 다르지. 나는 약이 아니라 의료기기 쪽이니까. 수술하는 데 필요한 기구나 소모품 같은 거 취급하는 회사야.”
“맞네. 생각해 보니까 그쪽 업계는 망할 일이 없겠다.”
백승원 옆에 앉은 박성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작게 읊조렸다.
“왜?”
그러자 그에게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는 김현우.
“봐 봐. 사람이 살면서 사치 이런 거에는 돈을 아껴도 아픈 거에는 돈 못 아끼잖아. 아픈 걸 고쳐야 오래 사니까. 그리고 당장 아픈데 어쩌겠어, 병원 가야지.”
나를 제외한 모두가 그의 말에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병원은 죽어도 망하는 업종이 아니잖아. 근데 병원은 뭐가 있어야 수술을 할 거 아니야. 그러니까 당연히 지훈이 같은 메디컬 업종도 안 망하겠지.”
나 역시도 박성수의 말에 미소를 보였다.
“성수가 잘 아네. 그래서 내가 열심히 이쪽 업계에서 일하고 있는 이유기도 하지. 다른 데는 돈 아껴도 아픈 데에는 장사 없거든.”
나는 검지를 펼쳐 들고 흔들며 말을 했다.
“다들 뼈 안 다치게 조심히 살아라. 뼈 부러지면 고생한다, 진짜로.”
이어 말을 하고는 술잔을 들어 보였다. 그리고 내 쪽으로 다가오는 술잔들과 부딪힌 후 입으로 가져다 댔다.
술잔을 제일 먼저 비우고 내려놓은 김현우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지훈이 돈 많이 버나 보네…….”
시끄러운 분위기 속에 작게 속삭이는 그의 말을 얼핏 들었지만, 그 말 이후 허공을 바라보며 홀로 고개를 주억거리는 그에게 다른 말을 붙일 수가 없었다.
얼마나 더 지났을까. 술잔을 멍하니 바라보며 눈꺼풀을 천천히 감았다 뜨는 백승원. 누가 보아도 취기가 한껏 오른 것 같아 보였다.
“승원아, 괜찮냐?”
걱정되는 마음에 그의 어깨를 툭 건드리며 물었다.
“나 내일 오전에 취재 있는데…….”
백승원은 몸을 앞뒤로 움직이며 늘어진 목소리로 이야기를 했다.
“승원이도 들어가야 할 것 같고, 쟤네도 취했는데 이만 정리할까?”
나는 벽 쪽에 기대어 있는 친구들을 턱으로 가리키며 말을 했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벌써 들어가기 아쉬운데.”
“그래, 우리 광주까지 놀러 온 거라 방도 잡아 놨단 말이야.”
반면 김현우와 박성수는 여전히 쌩쌩한 기운으로 아쉽다는 마음을 드러냈다.
나 역시 다른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피곤해 집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광주까지 온 김현우와 박성수를 위해 자리를 이어가야 할 것 같았다.
“그럼 애들 먼저 들어가라고 하고 셋이 2차를 가자.”
내 말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둘.
“민 대리님, 잘 먹었습니다.”
“나도 잘 먹었다. 이차는 우리가 살게.”
계산대 앞에 서 있는 나를 보며 한마디씩 하고 나가는 친구들. 그런 친구들을 향해 입꼬리를 올려 미소를 지어 보였다.
계산하고 나와 바로 근처에 있는 분위기 좋은 술집으로 향했다.
“와, 여기는 분위기 좋네.”
“그러게. 나도 광주 살면서 집 앞에서만 술 마셨지, 여기는 처음 오네.”
인기가 있는 술집답게 안에는 온 테이블이 가득 차 있었고, 우린 하나 남은 테이블에 겨우 자리를 잡았다.
김현우와 박성수, 모두 내 맞은편에 나란히 자리를 잡았다. 술과 안주를 시킨 후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그 두 명은 술집 안을 스캔하기 시작했다.
“누가 솔로들 아니랄까 봐, 들어오자마자 여자들 스캔하고 있냐?”
나는 그런 친구들을 보며 고개를 가로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야. 너도 솔로잖아.”
박성수의 팩트에 나는 헛기침을 하며 빈 잔에 술을 따라 부었다.
“우리가 여수에만 있잖냐. 광주에 왔으니까 한 번씩 헌팅도 하고 그러는 거지. 인연이 어디에 있을지 모른다고.”
내가 따르는 잔을 손으로 받으며 시선은 술잔이 아닌 여자들에게 향해 있는 김현우.
“됐어. 우리 오랜만에 만났는데 우리끼리 마셔.”
나는 손을 흔들며 그들의 시선을 훔쳐 왔다. 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입을 여는 김현우.
“야, 저기 저 머리 긴 여자 테이블 3명이다.”
“됐다니까. 자자 빨리 짠 하자.”
그제야 시선을 돌려 잔을 부딪치는 그. 술을 한두 잔 마시며 각자의 근황과 다른 친구들의 연애 이야기, 결혼식 이야기가 이어졌다.
진지한 이야기로 오디오가 한참을 채운 후 나는 재킷 안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들었다.
“나 담배 한 대만 피우고 올게.”
“어, 다녀와.”
술집 밖으로 빠져나와 담배를 입에 물었다. 살짝 올라오는 취기에 담배를 한 모금 깊게 마셔댔다. 그리고 긴 날숨에 함께 내뱉는 새하얀 담배 연기.
퇴근 전 김 대표와 나눴던 급여 인상 건을 회상하며 나도 모르게 쓱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왁자지껄한 상무지구 술집 거리의 분위기 속에 알딸딸한 채로 담배를 피우고 있는 지금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기분이 썩 좋았다.
담배를 밟아 꺼트린 후 다시 문을 열고 술집 안으로 들어왔다.
입구 쪽에 자리해 있던 테이블을 보니 그 누구도 없었다.
‘담배 피우러 안 갔고, 화장실을 두 명이서 같이 갔을 리도 없는데? 어디 간 거야.’
문 앞에 서서 술집 안을 둘러보았다.
저 멀리 보이는 익숙한 두 얼굴. 자세히 보기 위해 눈을 찌푸려 보았다. 맞은 편에는 여자 뒤통수로 보이는 사람이 3명이 앉아 있었고, 나와 눈이 마주친 박성수는 손을 들고 이리 오라는 손짓을 해 보였다.
나는 제자리에 서서 고개를 세차게 가로 저었다. 그러자 다가오는 박성수.
“이야기 다 해놨단 말이야. 3 대 3이야. 얼른 와.”
이미 3명의 여자들과 자리를 잡은 후였고, 나 역시도 솔로였기에 몇 초의 짧은 고민 끝에 박성수를 따라 그 테이블로 발걸음을 옮겼다.
“자! 마지막 제 친구 드디어 왔습니다.”
테이블 쪽으로 걸어가는 나를 보며 한껏 미소를 띤 채 여성들에게 말하는 김현우. 조금 전에 진지한 이야기를 하던 그가 맞는지, 저렇게 신나있는 그의 모습에 실소가 터져 나왔다.
“안녕하세요.”
나는 테이블 앞에 다가와 김현우의 맞은편을 바라보며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살짝 숙인 고개를 천천히 들고 3명의 여자들을 차례로 바라보는 그 순간.
“어!”
나는 너무 놀라 육성으로 소리를 내며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런 나를 보며 나와 같은 표정으로 바라보는 그녀.
“민… 대리님?”